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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호/신작시/정선희/모퉁이집 사내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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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정선희
모퉁이집 사내
동네 모퉁이집 사내 어디로 갔을까 키가 훌쩍 크고 병약한 그 사내 어디로 갔을까 하루에도 몇 번씩 동네 한 바퀴, 땅을 줍던 사내 어디로 갔을까 눈이 크고 팔다리가 길어서 구름을 닮은 사내, 걸을 때마다 땅이 휘청, 팔다리를 심던 사내 어디로 갔을까 눈이 마주쳐 몇 번인가 인사를 할 뻔했지 그러나 그와 나는 모르는 사이, 우리는 알아도 모르는 사이, 혼자 있는 그 눈은 고양이의 눈 같아서 아는 척 하면 안 되는 사이, 대문도 닫지 않고 그는 어디로 갔을까 입춘대길 건양다경 아직도 붙어있는데 그는 며칠 째 소식이 없다 걸을 때마다 빈 깡통소리가 나는 다리로 어디로 갔을까 오른 손 오른 발이 둥둥 떠다니는 어설픈 동작으로 그는 지금 어디를 헤매고 있을까? 20년도 더 된 봄날이었다
지족마을 우리식당
벚꽃이 지는 날은
바다가 허기로 나를 불러
연육교를 지나고 남해대교를 지나고
지족마을 우리식당에 와서
멸치쌈밥을 먹으며 생각한다
입안 가득 상추쌈을 밀어 넣으며
뱃속에 들어간 멸치 수를 헤아리며
맛집을 다녀 간 사람들이 남긴 쪽지를
연애편지처럼 읽고 키득거리며 생각한다
봄날에 근심 걱정 다 내려놓고 온
사람들의 얼굴에는 꽃향기가 어려 있어
오늘은 이 세상이 살만한 세상 같아
상추쌈 잇새 끼우고
공기밥 추가를 외치며 생각한다
명품백이 없어도 45평 아파트가 없어도
올해 아들이 좋은 대학에 못 가도
무슨 짓이든 저지르고 싶은 봄날
지족마을 우리 식당에 와서 생각한다
지족도
우리도
당신도
나도
섬처럼 떠다니는 이 봄날에,
* 정선희 : 경남 진주 출생. 2012년 『문학과의식』, 2013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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