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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호/신작시/이종호/젖은 종이로 모여든다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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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이종호
젖은 종이로 모여 든다
오전 이야기가 지나간 산책로 길가에
버려진 작은 종이 조각이
비에 젖고 있다
젖지 않고서는 안 되는 기다림
대신 울어 주는 빗줄기에 두들겨 맞아
팽창된 표정
지난 먼 시간 잘려 나간 아픈 제 탯줄
그 숨결에 닿고 싶어
젖은 바닥에 귀를 묻고 있다
잎 지운 닥나무 가지에서
날개를 쉬다간 새 울음은
비 맞은 종이 틈에서 멀게 들려오고
가지에 두고 온 밤 벌레 소리들이
하나 둘
젖은 종이로 모여든다
기다려진다
심박수가 비슷했을까
한계의 선을 넘어 온 흰나비 한 마리
파란 하늘을 벗어 버리고
내 무릎 위에 내려앉는다
몇 겹의 팽팽한 긴장 위에서
몸은 묵처럼 굳어지고
행여 둘 사이에 금이 갈까
하얀 날개를 눈으로만 쓰다듬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두 다리에 쥐가 나도록
벤치에 앉아 숨을 죽이는데
노랑나비가 다가오자
벗었던 하늘을 이고
다시 날아오른다
하얀 두근거림이 날아오르니
무릎 끝이 허전하다
종일
나비가 기다려진다
*이종호 : 2013년 시현실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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