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사이트 내 전체검색

수록작품(전체)

54호/신작시/이병철/불조심 포스타 외 1편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편집부3
댓글 0건 조회 4,176회 작성일 15-07-07 11:50

본문

신작시
이병철

불조심 포스터


  1
  불이 혀를 내밀어 집을 삼키는 그림을 그릴 거야 우리 집이 그렇게 타버렸으니까, 잘 그릴 수 있어 불에 타 녹아버린 지구본을 들고 울던 봄날, 라면을 끓이려 부루스타를 켜면 푸른 불꽃에서 태어난 새들이 내 눈을 쪼아대곤 했다

  불을 더 빨갛게 그리라니까, 선생님이 뺨을 때렸다 화끈거리는 뺨 위로 햇살이 눌러붙었다 상장을 받아 온 나를 할아버지는 기사식당에 데려갔다 접시 위에 올려진 돈까스가 아프리카 대륙처럼 보였다 나 이담에 아프리카에 갈래, 할아버지가 내 뺨을 어루만졌다 

  그리운 이들은 모두 아프리카에 있다고, 누군가 그랬다 그게 거짓말이란 걸 내가 알았을 때 할아버지는 불 속에 누워 잠들었다 어른들이 돌아가며 내 뺨을 만졌고 뺨을 만지는 손가락들이 크레파스가 되어 그림을 그렸다 표정이 생길 때마다 뺨이 화끈거렸다

  2
  불이 데려갈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겠어 
  아니, 내가 불이 되어 당신들을 데려갈 거야 

  온몸에 불이 붙은 채 대로를 달리는 상상을 한다 불은 예쁘고 따뜻하다 
  
  불이야, 누가 외친다 
  불에 타지 않는 내 뺨, 거기 반짝이는 웃음을 조심하라며





두더지 잡기


  두더지는 구멍 속에서 무슨 생각을 할까 유쾌한 폭력을 기다리고 있을까 구멍 밖 세상을 찌르는 가시가 되고 싶을까 머리통을 두드려 맞아도 헤벌쭉 웃기만 하는 두더지가 좋아 여자들이 고무망치를 들고 두더지를 잡는다 약 올리는 두더지 휘파람 부는 두더지 귀여운 두더지를 이제부터 귀두라고 부를래 귀두는 말랑말랑하면서 단단한 야생성을 지녔지 고무망치 대신 하이힐 굽으로 귀두를 때리고 싶어 팡팡 터지는 향수 냄새에 귀두가 고개를 내밀 때마다 세계는 발랄해지고 미끈거리는 잇몸들이 숨 가쁘다 웃는지 우는지 알 수 없는 귀두야 빨간 색연필로 점수를 매겨줄까 일그러진 눈썹을 붙여줄까 전자음악이 끝나면 캄캄한 구멍 속으로 되돌아가는 귀두, 뱉어내지 못한 울음을 꿀떡 꿀떡 삼킨다 빳빳한 귀여움이 쪼그라들지 않는다


*이종호 : 2014년《시인수첩》신인상 등단. 중앙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 졸업.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사)대한노래지도자협회
정종권의마이한반도
시낭송영상
리토피아창작시노래영상
기타영상
영코코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정기구독
리토피아후원회안내
신인상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