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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호/한시산책/서경희/서경희고향의 산은 달과 내 기억속에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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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산책
서경희
고향의 산은 달과 내 기억 속에만 있다.
-이백의 달과 산
타국에서의 일상을 접고 고국을 찾은 이가 먼 기억 속의 고향 산천을 확인하기 위해 서둘러 길을 떠났다가 실망하여 돌아왔다. 그런데 그의 고향에 대한 기억은 과연 진실일까?
문학 작품 속에서 나와 같은 세대의 문인이 묘사한 옛 고향 동네가 내 기억과 너무나 달라서 이의를 제기한 적이 있었다. 우연히 만나, 진실을 가리다가, 인간이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이 이렇게도 다를 수 있을까 싶었다.
“아아! 우리가 동 시대를 같은 공간에서 숨 쉬고 지낸 것 맞아?”
광활한 땅 중국을 가장 많이 주유한 시인은 단연 이백(701~762)일 것이다. 일본 명치서원明治書院에서 발행한 연구자료한문학 11권에 실린 ‘이백족적도李白足跡図’를 펜으로 이어보니, 이백의 발길이 닿은 중국의 명산과 강하 등은 이루 셀 수 없을 정도였다.
이백의 자字는 태백이며, 호는 청련거사라고 한다. 현재 사천성 청련靑漣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그의 부친이 부유한 서역상인이라는 일설도 있다.
이백은 두보와 달리 가정을 등한시한 인물로 알려져 있지만, 「남릉에서 아이들과 이별하고 장안으로 들어가며」라는 시에서, 책을 읽는 남편의 큰 뜻을 알지 못하고 경시한 주매신朱買臣의 아내에 대해 언급하며, “나 또한 집 하직하고 서쪽 장안으로 들어간다오”라고 한 것으로 보아, 결혼하여 자식도 두었던 것은 확실하며, 선성과 당도 인근 남릉에서 가족과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백은 26세에 고향을 떠나 양자강을 따라 10년간 유랑하며 맹호연孟浩然 등 시인들과 교유했고, 36세 즈음에는 산동성에서 몇 년 살기도 했다. 42세에 하지장賀知章이 당 현종에게 추천하여 한림공봉翰林供奉에 임명되기도 했으나 3년을 채우지 못하고, 다시 하북 각지를 방랑하며, 두보杜甫와 조우하기도 했다. 안녹산의 난 이후 숙종의 반대편 참모로 있다가 토벌되어 귀양가게 되었지만, 유배지로 가는 도중 사면령을 받았고, 이후 선성宣城에서 6년간 지낸 후 62세에 안휘성 당도當塗에서 병사하였다.
이백의 시 「정야사靜夜思」는 당시삼백수에 「야사夜思」라는 제목으로 소개되고 있으며, 고향을 생각하는 시 가운데 단연 으뜸이다.
침상 앞의 밝은 달빛,
땅 위에 서리 내렸나 했네.
머리 들어 산의 달 바라보다가,
고개 숙이고 고향 생각 하네.
牀前明月光 疑是地上霜
擧頭望山月 低頭思故鄕
이백이 떠올리는 고향은 사천성 청련이다. 이백은 고향을 떠난 후 다시는 고향땅을 밟지 않았다고 한다. 타향에서 한밤중에 달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고향 생각에 고개를 떨구는 이백에게 달은 ‘공유 안테나’이기도 하다. 이백이 달을 보며 시를 읊으면 고향 땅 그리움의 대상도 달에 실린 이백의 마음을 읽는다. 고향을 비추는 달과 자신이 바라보는 달. 세상천지를 유랑하면서도 어디서나 바라볼 수 있는 그 달이 있었기에 이백은 62세까지 버틸 수 있었을 것이다. 어떤 교수는 이백의 달을 이백의 꿈이라고도 하지만.
장안에서 내쳐진 후 48세의 이백이 경정산에 이르러 읊은 「독좌경정산獨坐敬亭山」은 ‘산에 대한 명시’ 여러 편 중 한 수로 꼽힌다.
뭇새들 높이 날아 사라지고
외론 구름 홀로 한가로이 떠가네.
서로 바라보며 서로 싫증나지 않는 건
다만 경정산 뿐이지.
衆鳥高飛盡 孤雲獨去閑
相看兩不厭 只有敬亭山
경정산은 중국 안휘성의 선성宣城에 있으며, 천하제일 명산인 황산黃山의 북쪽 지류이다. 선성은 이백이 흠모했던 남제南齊의 시인 사조謝脁(464~499)가 태수를 지낸 곳이기도 하다. 월간 ≪선원禪苑≫2008년 6월호 기사에 의하면, 경정산에는 이백의 「독좌경정산」 시비詩碑와 당·송 대의 유명한 시인들의 기념 시비가 곳곳에 있어서 ‘강남시산江南詩山’으로 불리며, 공기가 맑고 지질이 좋아 예로부터 차산지로도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이백의 맑은 기운이 전해지는 시이다. 친구인 맹호연(689~740)도 가고, 그를 추천해준 하지장(659~744)도 이미 세상을 떠났다. 어느새 재잘대던 새들도 다 높이 날아가고, 하늘에 외롭게 떠있던 구름조차 유유히 흘러 가버렸다. 어느새 혼자만 남은 외로움도 잠깐. 눈앞의 경정산이 그를 떠나지 않고 지기처럼 그를 바라보고 있다. “다만 경정산만이 있구나.” 이백의 마음이 시공을 초월하여 여기까지 전해진다.
이백은 세상을 떠나기 전, 먼 친척인 당도현령에게 자신을 부탁했다. 당도는 경정산의 북쪽에 위치한 양자강 하류지역이다. 이백은 결국 경정산과 가까운 곳에서 일생을 마친다.
이백의 「산중문답山中問答」은 산시의 백미이다. 제목이 「산중답속인山中答俗人」이나 「답산중속인答山中俗人」으로 되어 있는 책도 있다.
내게 묻기를 무슨 뜻으로 푸른 산에 사는가?
웃으며 답하지 않으니 마음 스스로 한가로워.
복사꽃 물에 흘러 멀리 내려가니
별천지요 인간세상 아닐세.
問余何意棲碧山 笑而不答心自閑
桃花流水渺然去 別有天地非人間
이백은 속인이 푸른 산에 사는 이유를 묻자, 웃기만 한다. 그가 체득한 경지는 속인이 아닌 자연인 이백만이 알 수 있다.
1200여년 전 ‘이태백이 놀던 달’은 시인이 가장 사랑하던 산을 여전히 비추고 있다. 이백이 남긴 1000여 수는 비록 술의 힘을 빌렸다고는 하나, 거리낌 없이 호방한 기질의 그였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지금도 우리는 그의 시를 보고 감탄할 뿐이다.
*서경희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연구원. 한성대, 카톨릭대, 성대 강사 역임. 역서로 영조어제해제, 열하기행시주, 정산이병휴의시와철학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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