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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호/특집1/현대시와 방/유형진/'혁명'과 '구석'과 '갈매나무'가 있는 세 개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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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3
댓글 0건 조회 3,774회 작성일 15-07-08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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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1 현대시와 방
유형진

'혁명’과 ‘구석’과 ‘갈매나무’가 있는 세 개의 방


  오랫동안 방 밖으로 나가지 않은 채 지낸 적이 있었다. 앉은 자리에서 해가 뜨고 해가 지는 광경을 바라보며. 꼭 방 밖으로 나가지 않아야지 마음먹었던 것은 아닌데, 나를 방 밖으로 나오게 할 어떤 이유도 계기도 없었던 시절이었다. 방안에서 나는 무얼 하였던가. 책을 읽었고, 멍하니 있었고, 마음에 새기지 않을 만큼만 음악을 들었다. 그리고도 남은 시간에는 시를 썼다. 어쩌면 시를 쓰기 위한 여백을 만드느라고 마음에 남지 않을 만큼만 음악을 들었고, 멍하니 있었고, 책을 읽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시를 쓰던 그 방에서 시도 읽었다. 
  꼭 그때 읽었던 시는 아니지만 ‘방’ 하면 세 편의 시가 떠오른다. 1930년대 쓰여 진 백석의 시, 1960년대에 쓰여 진 김수영의 시, 그리고 최근 읽은 이영주의 시다. 나에게 이 세 개의 방은 나의 시를 쓰는 그 모든 방으로 비밀 통로가 나 있다.


#1. 혁명의 방


혁명은 안 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그 방의 벽에는 싸우라 싸우라 싸우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어둠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나는 모든 노래를 그 방에 함께 남기고 왔을 게다
그렇듯 이제 나의 가슴은 이유 없이 메말랐다
그 방의 벽은 나의 가슴이고 나의 사지일까
일하라 일하라 일하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나의 가슴을 울리고 있지만
나는 그 노래도 그 전의 노래도 함께 다 잊어버리고 말았다

혁명은 안 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나는 인제 녹슨 펜과 뼈와 광기━
실망의 가벼움을 재산으로 삼을 줄 안다
이 가벼움 혹시나 역사일지도 모르는
이 가벼움을 나는 나의 재산으로 삼았다
 
혁명은 안 되고 나는 방만 바꾸었지만
나의 입 속에는 달콤한 의지의 잔재 대신에
다시 쓰디쓴 냄새만 되살아났지만

방을 잃고 낙서를 잃고 기대를 잃고
노래를 잃고 가벼움마저 잃어도

이제 나는 무엇인지 모르게 기쁘고
나의 가슴은 이유 없이 풍성하다


_ 김수영 시, 「그 방을 생각하며」전문 / 시집『거대한 뿌리』에서(1960) 


  세상이 온통 뒤죽박죽이고 뒤숭숭하다. 무엇하나 제자리에 잘 놓여있는 것이 없고, 흉흉한 일에 대해 모두 원인을 알고 싶어 하지만 누구도 그 이유를 제대로 알 수가 없다. 검찰과 경찰, 정부가 뉴스에 발표한 이유들은 전혀 타당성과 근거가 없어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고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이는 일이 잦아졌다. 그렇게 모여, 갑자기 사랑하는 자식과 가족을 잃고 슬픔과 비통에 빠진 이들을 위해 진실을 밝혀달라고 외치지만 매일 쏟아지는 소식들에는 뭐 하나 뚜렷하게 달라지는 것이 없다. 그 ‘참사’가 벌어진지 100일이 훨씬 지났는데도 말이다. 

  김수영이「그 방을 생각하며」라는 시를 쓰던 1960년을 생각해 본다. 그 해는 3.15부정선거로 촉발된 4.19의거가 있던 해였다. 그를 계기로 전쟁직후 부정축재를 일삼으며 독재하던 제1공화국 이승만 정권이 하야함으로써 혁명은 완수 된 것처럼 보여 졌다. 하지만 그때는 혁명의 주체세력이 정치권력으로 성장하기엔 무리가 있었던 어수선한 시기였다. 혁명주체세력이 기성정치인들에게 혁명과업의 수행을 일임하였기 때문에 결국 기성권력질서는 그대로 존속한 채 과도내각을 거쳐 제2공화국이 수립되었던 것이다.¹ 그래서 시인이 바라던 그 ‘혁명’은 안 되고 방만 바꾼 것이 되었다고 한 것이 아니었을까. 정말 시인의 예견대로 ‘혁명은 안 되고’ ‘방만 바꾼’ 바람에 개헌을 통한 민주주의가 뿌리내리기도 전에 그 이듬해 군부에 의해 5.16쿠데타가 일어났다. 그래서 오랜 군부독재의 막을 열게 만들었던 해이기도 하다. 하지만 시인은 ‘쓰디쓴 냄새만 되살아났지만/ 방을 잃고 낙서를 잃고 기대를 잃고/ 노래를 잃고 가벼움마저 잃어도//이제 나는 무엇인지 모르게 기쁘고/나의 가슴은 이유 없이 풍성하다’고 말하고 있다. 아마도 오랜 바람이었던 독재정권의 무너짐에 일시적 ‘가슴 벅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김수영이 저 시를 쓰던 1960년에서 54년이 지난 지금도 정치적인 상황은 전혀 달라진 것이 없는 듯하다. 대선당시 부정선거 의혹이 있는 국정원 댓글 사건이 해결되기도 전에 벌어진 세월호 참사에 대처하는 정부의 무능도 그렇고, 언론과 정치권이 보여주는 행태 또한 그렇다. 그래서 이 모든 것에 대해 많은 이들이 대통령의 책임을 묻고 있다. 하지만 현 정권은 전혀 아랑곳 하지 않고, 귀가 없는 사람처럼 굴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김수영의 저 시가 쓰여 지던 그때처럼 지금도 대통령의 하야로 문제가 해결이 될 것인가 묻는다면 그것은 아닌 것 같다. 또 다시 ‘혁명은 안 되고 방만 바꾼’ 꼴이 되지 않으리란 법이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렇게 된다면 우리도 잠시 가슴 벅참 때문에 ‘무엇인지 모르게 기쁘고 가슴이 이유 없이 풍성해’ 지겠지만 단지 그 순간뿐이지 않을까? 어리석게도 멀지 않은 과거에 벌어진 일을 되풀이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럴 때 일수록 보다 냉철하고 조용히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슬픔과 비통함에 잠겨 있는 유가족들을 위해서라도 그렇다. 참사의 원인을 밝히고, 왜 한명도 구조하지 못했는지를 파악해 내기 위한 ‘세월호 특별법’이 그 모든 일의 처음에 와야 하는 일인 것이다. 그 법을 통하여 밝혀진 진실에 따라 책임 져야 할 사람이 있으면 책임지고, 물러나야 할 사람이 있으면 물러나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는 사람 하나를 매실밭에서 변사체로 발견했다고 하며 앞뒤가 안 맞는 수사의 모습만 비추어 보여준다. 그러면서 ‘세월호 특별법’ 조차 통과 시킬 수 없게 만드는 국회의원들은 도대체 어느 나라 국회의원들일까?



#2. 구석의 방


그는 조용해지고 조용해진다 이것은 그가 변하는 것일까 목소리가 변하는 것일까 너무 먼 길을 돌아서 너무 먼 유랑을 숨긴 채 그는 가고 있다

가만히 방구석에 앉아 어떤 물질을 만지고 있으면 공기가 꽉 찬다

구석에서 달아나려는 벌레의 수많은 발을 꾹꾹 누르면 저녁이 가라 앉는다
가슴에서 돋아나는 이 발들 창문이 뚝뚝 떨어져 내리는 시간에는 크고 우아한 지네가 되는 것 같다

누군가를 기다리다 보면 벽이 아닌 곳에서도 구석을 만질 수 있다

하루 종일 떠나지 않는 침묵 이것은 저녁이면 변하는 것일까 가슴의 크기가 변하는 것일까 아무 맛도 나지 않는 침묵

구석은 맛없이 천천히 흘러가고 있다

이상하지? 왜 조용하다는 것은 슬픔을 과장하는 순간들이 모인 것인지 그는 새로 도착할 요일들이 과장한 대로 흘러가는 유랑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가슴 안에서만 자라는 이 많은 발들로 다른 세계로 가야한다

저녁이 사라진 후 누군가를 기다릴 수도 없게 되는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그는 몰래 혼자 쓴 문장처럼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저녁 밖으로 뻗어가는 구석을 만지면서 걸어가고 있다 조용하고 아주 조용하게


_ 이영주 시,「자라는 구석」전문 / 시집 『차가운 사탕들』에서(2014)


  김수영 시인의 방은 ‘거리의 대립적 공간으로서의 방’²이라면, 이영주 시인의 방은 방 자체로 하나의 새로운 차원을 형성하는 우주다. 1960년대의 김수영 시인은 상상하기도 쉽지 않을 고도로 극대화된 방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은 혼자 방구석에 앉아서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 ‘가만히 방구석에 앉아 어떤 물질을 만지고 있으면 공기가 꽉 찬다’고 말하는 시인이 만지던 ‘어떤 물질’은 무엇일까? 어쨌든 그것은 그 방안을 꽉 채우고도 남을 만큼 뭉게뭉게 구름처럼 피어오른다. 심지어 공간이 부족하면 방의 ‘구석’을 ‘자라게’ 할 만큼 점점 커진다. 이것을 어떤 순수한 ‘정념(情念)’이라고 임의로 말해 보자. 이 ‘정념’은 구석은 모자랄 정도로 자라지만 시인은 ‘구석’이 더 필요하다. ‘누군가를 기다리다 보면 벽이 아닌 곳에서도 구석을 만질 수 있’기 때문에 어느 순간 구석을 더 자라게 할 필요가 없어진다. 여기까지 오면 이제 방은 더 이상 육면체의 공간이 아니게 된다. 시인이 애초 놓여 있던 방의 공간은 와해되고 시간은 해체 되면서 어떤 다른 차원으로 진입하게 된다. 그 차원에서는 ‘하루 종일 떠나지 않는 침묵’이 있고, 그 침묵은 너무 조용하고 조용해져서 ‘아무 맛도 나지 않는’것이다. 아무 맛도 나지 않는 침묵이란 그 침묵을 얻기까지의 맛들을 잃어버리고, 놓아 버려야만 얻을 수 있는 무의미(無意味)인, 무미(無味)의 침묵이다. 일정한 질량감을 갖고 있던 ‘정념’또한 무미의 침묵 속으로 흡수 되어 버려 무게 형태도 사라진다. 침묵은 이제 공기와 같아져 버렸다. 그래서 그 침묵은 처음엔 구석에 놓여있었는데 방의 한 가운데로 물처럼, 공기처럼 천천히 흘러 다닌다. 하지만 시인의 말에 따르면 이상하게도 ‘슬픔을 과장하는 순간들’이 모이면 조용해진다. 누군가를 기다리던 가슴에서 발이 돋아나 크고 우아한 지네가 되기도 하고 그 발로 차원으로 넘나들며 먼 곳을 유랑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질량도 부피도 없는 유랑이라 우리는 서로 만날 일이 없다. 해체된 시간과 와해된 공간 속에서는 ‘저녁이 사라진 후 누군가(대상)를 기다릴 수도 없고’, 그래서 시인은 ‘저녁(시간) 밖으로 뻗어가는 구석(공간)을 만지면서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조용하고 아주 조용하게’.  



#3. 갈매나무의 방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네 집 헌 샅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위에 뜻 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밖에 나가지두 않고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 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장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끓어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 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_백석 시,「남신의주 유동박시봉방(南新義州柳洞朴時逢方)」전문/《학풍》에서
(1948)


  백석의 이 시「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을 읽을 때마나 너무 쓸쓸해서 나도 모르게 옷깃을 여미게 된다. 아무리 계절이 여름이라도 어느덧 저 북방의 타관에서 맞이하는 겨울, 한 번도 가 본적 없는 낯선 곳의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 화로를 끌어안고 추위를 녹이며 누워, 다정한 가족과 그리운 고향과 어쩔 수 없는 나의 운명을 생각해 보는 한 사내가 꼭 나 인것만 같다. 평안도 정주가 고향인 시인은 어쩌다 남신의주까지 가게 되었을까? 게다 ‘사랑하는 아내도 없고, 아내와 살던 집도 없어지고, 살뜰한 부모와 형제와도 멀리 떨어져’, 저 쓸쓸한 방에서 저렇게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 하는 것’인가! 

  백석 시인은 일제강점기, 어린나이에 문학과 영문학에 재능을 보이며 열아홉의 나이에《조선일보》신춘문예에 소설로 등단한다. 그 후 조선일보 선발 장학생으로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 돌아와 조선일보에 입사에 계열 잡지인《여성》의 편집일 하며 시를 쓰게 된다. 그 후 2년 동안 묶여 있던 신문사 교정직을 버리고 본격적으로 여러 고장을 돌아다니며 고유의 민속, 명절, 향토 음식 같은 갖가지 풍물과 방언 등을 취재해 시에 담아 낸다.³ 그러다가 모든 것을 버리고 만주로 가서 시 100편을 건져 오겠다며 떠났던 것이다. 여행을 좋아하고 모국어를 사랑했던 시인은 그렇게 먼 곳까지 가서 저러한 고독을 대면하고 자신의 운명을 생각해 보는 시를 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다가 문득 창밖을 바라보거나 높은 천장을 바라보다 보면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슬픔이며 한탄’이 더는 시인의 마음을 휘젓지 않고 앙금으로 가라앉을 쯤, 창문을 때리는 싸락눈 소리를 듣는다. 그때 시인은 ‘뒷옆에 바우 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생각하는 것이다. 그 시기가 일제 강점기였으니 온갖 불우하고 울분이 터지는 일이 오죽이나 많았겠는가. 시인은 어떻게라도 ‘희망’이 필요 했을 것이다.
  갈매나무는 볕을 좋아하고, 물이 잘 빠지지 않은 습한 곳에서는 잘 자라지 않는, 추위에는 강하지만 맑은 공기에서만 잘 자라는 나무라고 한다. 시인은 갈매나무의 이런 습성을 두고 ‘굳고 정한’ 나무라고 하였던 것 같다. 어둡고 습하고 추운 낯선 곳의 방에 누워 이런 나무를 상상해 보는 시인을 떠올려 본다. 그는 필경 ‘굳고 정한’ 그 나무에 자신을 대입하여 먼 곳에서도 뜻을 잃지 않고 버티려는 의지를 돋우려 했던 것 같다. 그 이후, 시인 스스로도 어쩌지 못하는 시인의 운명에 대해서는 너무 많은 저서⁴에 밝혀져 있으므로 더는 언급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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¹ 김운태 외 공저,『한국정치론』박영사, (1994)
² 이은정,『김수영, 혹은 시적 양심』 ‘살림지식총서 271’. 살림출판사, (2006)
³ 장석주,『나는 문학이다』‘백석-빼어난 토속어 지향, 그 시적 보고’. 나무이야기, (2009)
⁴안도현,『백석 평전』다산책방, (2014) / 김재용,『백석 전집』실천문학사(1997)


*유형진 : 2001년《현대문학》등단. 시집『피터래빗 저격사건』,『가벼운 마음의 소유자들』,『피터 판과 친구들』(디지털시집)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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