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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호/신작시/안영미/이모티콘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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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1
댓글 0건 조회 289회 작성일 22-12-29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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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호/신작시/안영미/이모티콘 외 1편 


안영미


이모티콘 외 1편



지난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표정이 표정을 삭제하고 따라왔던 걸까

감탄사가 감탄 없이 자라고 있었어

꼭 답장할 필요는 없었는데

웃고 있지만 앙다문 입이 보여 

가면 안쪽의 쓸모는 잊어버려

아침 8시, 네가 없는 침대 위 

나의 표정은 너무나 잘 알고 있잖아

오늘은 손이 바빠지고 

기도가 난무하는 일요일일 뿐이야

요리와 기도 뒤에 그림자가 잔뜩 슬어 있어

숨길 수 있는 비열함의 시작과 끝이 궁금해

상태와 기분 따위는 중요하지 않아

웃고 싶을 땐 우는 가면을 , 

울고 싶을 땐 화난 가면을 쓰면 되니까 

조롱이 혀끝에 걸렸어

말들이 테두리를 치고 있어

유쾌한 가짜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얼굴을 닮은

원시적인 표정을 보여줘

단순한건 언제나 처음에 가까우니까 

누구를 위한 건지도 모를 

근심은 다운로드 할 필요가 없어

삭제조차 낭비야 

연민은 간명하니까

휴지통이 삼킨 말들 앞에서 

이젠 수신 거부할 순간이야

보유한 표정은 많지 않아도 

대답은 매번 하나로 귀결되니까

자학을 위한 감탄사는 늘 넘쳐나니까

믿거나 말거나 마지막 터치는 늘 유보할 거야

용서는 끝까지 나만의 것이니까 





메멘토모리*



오래된 집 처마 밑 

거미줄에 허공 한쪽이 붙잡혀 있다

꽃등에가 붙어 발버둥친다

여기 살다 간 늙은 영혼을 알고 있었다면

조금만 더 거미줄은 조심했어야 했다

  

허공은 언제나 너머의 투명을 품는다

유리에 부딪혀 죽은 새들과

거울에 갇혀 죽은 나의 표정과

명품점 쇼윈도 앞에서 붐비던 나의 치욕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는 

너머의 세계가 도처에 깔려있다

  

그저 날개가 원하는 것은 

위험조차 느낄 수 없는 허공 바깥이다 

그러니 허공이 깃털처럼 가볍다는 말은 금지다

나비잠을 겨우 붙들고 할딱거리고 있는 어린 꽃등에의 호흡은

끝까지 힘겨워야 하는가 

들깨 구슬 같은 눈으로 말하는 허공의 기척과

첫 날갯짓이 맞물려 있는 시간

기도는 하늘을 향하지 말고 새근거리는 체온을 붙잡아야 한다

  

너머의 허공이 흔들리고

내 눈동자도 따라서 흔들린다

어른거리는 꽃등에 앞 

거미의 집요한 입이 오늘을 삼키려다 

꽃등에와 함께 툭 떨어진다

신이 소리친다

메멘토모리 메멘토모리

꽃등에 날개에 붙은 거미줄을 걷어낸다

피식, 우주 하나 펼쳐진다  

  

*‘죽음을 생각하라’, ‘죽음을 잊지 마라’라고 하는 의미의 경구驚句.





*안영미 2019년 《열린시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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