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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호/미니서사/박금산/성에 대해 잘못 고민하는 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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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1
댓글 0건 조회 301회 작성일 22-12-30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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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호/미니서사/박금산/성에 대해 잘못 고민하는 박 교수 


박금산 소설가


성에 대해 잘못 고민하는 박 교수



박 교수는 컴퓨터를 켰다. 강제 성폭력 예방교육을 받은 다음 날이었다. 강의실의 수강생들과 성별이 달랐기에 박 교수는 언제나 자신의 성을 의식했다. 

컴퓨터가 부팅을 끝냈다. 박 교수는 과목명으로 이름을 지정한 폴더를 열었다. 바야흐로 성적 시즌이었다. 학기를 마감하기 위해 성적을 입력하는 일이 남았다. 

폴더 속의 파일을 바라보던 박 교수의 눈동자가 달덩이처럼 커졌다. 비탈을 구르는 눈덩이처럼 부피가 커졌다. 박 교수는 깜짝 놀라서 땀을 흘렸다. 창피했다. 민망했다. 부끄러웠다. 욕지기가 치밀었다. 몸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누가 보고 있지 않은지 사방을 살폈다. 박 교수는 손바닥을 바지에 문질렀다. 땀이 흥건했다. 


컴퓨터의 폴더에는 엑셀 파일이 하나 있었다. 

박 교수를 놀라게 만든 파일은 이름이 ‘성적자료’였다. 


박 교수는 이름을 바꾸기로 했다. ‘성적’을 고쳐서 ‘평가’로 바꾸었다. ‘성적자료’는 ‘평가자료’가 되었다.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박 교수는 엑셀 프로그램의 수식을 이용해서 자료를 정렬하고 숫자를 계산했다. 순위를 매기고 등급을 확정했다. 그리고 학교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평가 결과를 입력하기로 했다. 


박 교수는 정신이 멍해졌다. 마우스로 클릭해야 할 곳에 ‘성적입력’이라 적힌 아이콘이 있었다. 미칠 것 같은 노릇이었다. 성적이라니! 그것을 클릭해야 자료를 입력할 수 있었다. 그것이 맡겨진 일이었다. 박 교수는 기도했다. 하느님, 제발! 이 땅의 언어를 바꿔주세요. 


박 교수는 눈을 감고 버튼을 클릭했다. 


박 교수는 바뀌어 있을 화면을 기대한 후 눈을 떴다. 눈 앞 화면에 뜬 모든 단어가 성적이었다. 성적입력, 성적수정, 성적분포, 성적확인, 성적출력, 성적등급, 성적저장, 성적열람……. 박 교수는 사표를 생각했다. 컴퓨터를 폭파시키고 싶었다. 교수 짓을 끝내고 싶었다. 성으로 횡포를 부리는 자의 역할은 끝장내고 싶었다. 


박 교수는 오바이트가 나오려는 것을 참으며 자료를 입력하고, 확인하고, 수정하고, 확정한 후, 출력하고, 결과지에 사인을 했다. 그는 성적이라는 말을 쳐다보기만 해도 오바이트가 나올 것 같았다. 성적으로 크게 잘못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박금산 소설가. 여수 출생. 《문예중앙》으로 등단. 서울과기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소설집 『생일선물』, 『바디페인팅』, 『그녀는 나의 발가락을 보았을까』. 장편소설 『아일랜드 식탁』, 『존재인 척 아닌 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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