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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호/신작단편/장마리/빅토르 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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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1
댓글 0건 조회 292회 작성일 22-12-30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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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호/신작단편/장마리/빅토르 최 


장마리 소설가


빅토르 최



의사는 쥐고 있던 모나미 볼펜을 분리했다. 까만색과 흰색 몸통, 꼬불꼬불한 스프링을 침대 위에 쏟아버리고 가느다란 심지만을 든 채 빅토르에게 말했다. 

“당신 숨구멍은 이 굵기만 하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빅토르는 병원 응급실에 산소 호흡기를 부착하고 한 시간 동안 누워 있었다. 의사는 어려운 의학용어로 말하지 않았다. 덥수룩한 머리와 수염, 큰 눈과 코가 한국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브랜드도 없는 등산복을 작업복으로 입고 있었기에 도내 농공단지나 공단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라고 짐작했다. 빅토르의 성은 최崔였다. 우리말이 서툴렀지만 알아듣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한국에 온 지 한 달이 조금 넘었다.

의사는 삼십 분 정도 안정을 취한 후 처방전을 받아가라고 했다. 빅토르가 대답도 하기 전에 의사는 사라졌다. 고개를 돌리다 맞은편 환자와 눈이 마주쳤다. 양복을 입은 채로 누워있는 그에게서 왈칵 술 냄새가 풍겼다. 이마에는 커다란 반창고를 붙이고 있었고 입술은 잔뜩 부어 있었으며 피딱지가 굳어 있었다. 그는 산소 호흡기를 부착하고 죽음의 경계선을 넘지 않으려고 사투를 벌이는 이방인을 지켜보느라 자신의 상처는 잊은 듯했다. 무슨 볼거리라도 되는 듯 잔뜩 기대를 했는데 놓쳐서 아쉽다는 눈빛이었다. 

빅토르는 일주일 전부터 숨이 가빠오는 증세가 있었다. 전조는 없었고 누군가 숨구멍을 틀어쥐고 막아버린 듯 했다. 등을 구부리고 앉아 천천히 숨을 내쉬며 막혔던 숨구멍이 뚫리기를 기다렸다. 영하 30, 40도를 넘나들던 시베리아 산판에서 벌목을 할 때는 감기 한번 걸리지 않았다. 영하와 영상을 오고가는 한국은 변덕을 부리는 이곳 사람들 같았다. 며칠은 포근했다가 다시 강추위를 했는데 삼한사온이라고 했다. 내복과 패딩, 벙거지까지 쓰고 작업을 하러 간 날은 한 나절도 지나지 않아 땀범벅이 되었다. 다음 날에는 내복을 벗고 작업복 상의만을 걸치고 갔다. 급격히 떨어진 온도로 손과 발이 얼었고 콧물이 흘렀다. 사장은 땀을 흘리는 빅토르에게 추운 나라에서 살던 놈이라 대단하다고 했다가 추위에 벌벌 떠는 모습에는 몸만 컸지 부실하다며 역시 작은 고추가 맵다고 했다.  

독감과 함께 찾아온 이번 증상은 고열과 현기증을 동반했다. 현관문 손잡이를 돌릴 힘마저 없었다. 두 손으로 붙잡고 겨우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찬 공기를 마시면 숨쉬기가 나아질 것 같았다. 그러나 막혀버린 숨통은 좀처럼 뚫리지 않았고 다급함을 누군가에게 알리기 위해 지하의 계단을 올랐다. 벽을 짚고 일어서다가 몇 번이나 꼬꾸라졌다. 주인 할머니가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주검으로 러시아에 돌아갔을 까. 화장되어 최 씨 문중의 선산, 정읍시 입석마을 산 80번지에 뿌려졌을까. 빅토르의 풀어진 눈동자를 보고 할머니가 다급하게 119를 불렀고 구급차가 도착했다. 조금만 더 시간이 지체되었더라면 호흡장애나 쇼크가 발생했을 거라고 의사는 병의 심각성을 말했다. 

침대에서 일어나 간호사들이 앉아 있는 데스크로 갔다. 간호사는 병원비부터 납부하라고 했다. 빅토르는 지갑을 꺼내 돈을 지불했다. 일주일치 임금에 해당하는 몫돈이었다. 간호사가 건네는 처방전을 받아들었다. 호흡은 돌아왔지만 숨소리는 거칠었고 어지럼증이 일었다. 곧장 밖에 있는 약국으로 나가지 못하고 휴게실 의자에 앉았다. 사방이 뚫려 있는 휴게실에는 환자복에 링거를 꽂은 환자와 내원객들이 뒤섞여 있었다. 커다란 벽걸이 텔레비전에는 제주도의 푸른 바다가 화면을 채우고 있었다. 눈 둘 곳이 그곳밖에 없어 무심히 차창 밖을 구경하는 표정으로 사람들은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빅토르도 마찬가지였다. 늙은 해녀들이 까만 잠수복을 입고 숨을 한껏 참았다가 바다 속으로 잠영했다. 해녀들이 사라진 바다는 푸르고 맑았으며 하얗고 둥그런 테왁이 사라진 그녀들의 흔적을 대신했다. 카메라는 바다 위를 나는 살찐 갈매기를 비췄다가 멀리 지나가는 어선들로 옮겨갔다. 파도가 바위에 부딪쳐 포말로 부서지면서 철썩 철썩 바위를 쳤다.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물살을 뚫고 까만 머리가 쑤욱 올라오더니 고개를 내밀고 턱까지 차오른 숨을 내쉬었다. 늙은 해녀의 숨소리에서 훠이…… 훠이…… 휘파람 소리가 났다. 내레이터는 숨비소리라고 했다. 한겨울 시베리아 산판에서도 이런 소리가 날 때가 있었다. 작업반장은 벌목을 금했다. 칼끝을 붙인 시베리아 바람이 오십 미터가 넘는 소나무를 단숨에 넘어트리는 위험한 상황임을 알리는 경고였기 때문이었다. 빅토르는 자신의 숨구멍에서 이런 소리가 나는 게 자신의 삶에 대한 어떤 경고 같았다.

병원에 다녀온 지 이틀이 지났어도 열이 내리지 않았다. 다시 병원을 찾았다. 한국에 온 이유가 취업이 아니었기에 석 달을 넘길 수 없었다. 중고 카마스(원목 운반용 트럭)라도 장만할 돈을 마련해서 러시아로 돌아 갈 생각이었는데 자칫 빈털터리가 될지도 몰랐다. 

엉덩이에 주사를 맞고 링거를 맞기 위해 한 시간을 누워 있었다. 한번 고장 난 기관지는 복구가 어렵다고 의사가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목에서 계속 쌕 쌕 소리가 났다. 숨소리도 문제였지만 폐에 충분히 공급되지 못하는 산소 때문에 호흡곤란이 오면 매우 위험하다고 했다. 호흡곤란이 올 때면 수십 개의 바늘이 가슴을 찌르는 듯 아팠다. 공기를 폐에 공급해 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럴 때는 호흡의 양을 반으로 줄이라고 했다. 또한 감기 때문에 증상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며 둥그런 보라색 흡입기를 가져왔다. UFO를 닮은 흡입기는 60번을 흡입할 수 있다고 숫자를 보여주었다. 세레타이드 250이라고 씌어 있었다. 중증 환자는 세레타이드 500을 사용하는데 우선 한 단계 낮게 처방했으니 사용해 보라고 했다. 열 번 호흡에 한 번은 심호흡을 하라며 장기간 치료가 중요하고 과로하지 말라고 했다. ‘과로’라는 말을 이해 못했다고 생각했는지 심한 일을 하지 말라고 고쳐 말했다.


손으로 벽을 더듬어 스위치를 눌렀다. 지하 원룸이라 낮에도 불을 켜야 했다. 세 개의 스위치를 동시에 누르자 부엌, 화장실, 안방이 훤해졌다. 한 달이 넘었지만 스위치의 정확한 위치가 헷갈렸다. 싱크대에는 어제 저녁에 밥을 먹고 담가놓은 빈 그릇이 그대로 있었다. 밥통을 열었다. 누렇고 딱딱하게 굳은 한 그릇 정도의 밥이 시큼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음식물통에 버리고 설거지를 시작했다. 설거지를 마치고 쌀을 씻어 밥솥에 안치고 카레를 만들기 시작했다. 가장 손쉬운 요리였다. 감자와 당근, 양파를 썰어 냄비에 넣고 식용유를 넣어 볶다가 물을 붓고 끓이기 시작했다. 카레가루를 풀고 야채가 익을 때까지 주걱으로 천천히 저어 주었다. 카레 향이 퍼졌다. 상을 차리기 위해 플라스틱 밥상을 폈다. 펭귄이 노란 모자와 고글을 쓰고 지휘봉으로 구구단을 가리키고 있었다. 사람들은 펭귄을 뽀로로라고 불렀다. 전에 살던 사람이 놓고 간 것인데 주인 할머니는 사용해도 된다고 했다. 카레냄비에 밥을 퍼서 먹었다.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웠다. 가로등 불빛이 창을 통해 들어와 벽에 걸린 작업복과 윗목에 너저분하게 흩어져 있는 것들을 비췄다. 이방인의 삶이란 이처럼 너저분하고 잡다한 것인지도 몰랐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도 그런 삶을 살다가 갔다. 몸이 아프니 외롭고 서글펐다. 초원이 끝없이 펼쳐져 있고 파란 하늘이 지평선 끝에 맞닿아 있으며 하얀 뭉게구름이 그 지평선 끝으로 쉭쉭 달려가는 스텝을 그려보았다. 그 스텝 끝으로 황백색의 자작나무가 빽빽하게 늘어서 있고 한줄기 빛이 쏟아져 자신의 몸을 따스하게 감싸주는 꿈을 꿀 때가 있었다. 그런 아침은 몽정을 한 것처럼 몸이 나른해졌다. 천장에서 별들이 반짝였다. 전에 살던 이가 붙여 놓은 야광별이었다. 주인 할머니는 사장이 소개하지 않았다면 보증금도 없이 석 달 만의 세를 놓지는 않았을 거라고 했다. 여기서 살면서 장가도 가고 돈도 많이 벌라고 했다. 어릴 때 할머니의 무릎에 앉아 밤하늘의 별을 세듯 하나 둘…… 세다가 잠이 들었다. 

누군가 현관문을 두드렸다. 설핏 잠이 들었던 빅토르가 일어나 문을 열었다. 사장이 복숭아통조림 한 박스와 죽을 사들고 왔다. 빅토르가 삼 일이나 일을 나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장은 새로 건축된 원룸의 시공 날짜가 정해졌다며 내일은 현장에 나올 수 있느냐고 물었다. 빅토르는 출근을 하겠다고 했다. 사실 빅토르만큼 성실하고 힘을 잘 쓰는 외국인 노동자를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빅토르와 인연이 된 것은 집안 당숙인 최 의원 때문이었다. 한 세기 전에 독립운동을 하다가 만주로 떠난 문종 어른이 있다는 것을 사장도 알고는 있었다. 최 의원은 그 재종형, 최무성의 손자라고 빅토르를 소개했다. 


마을을 벗어나 야산에 위치해 있는 공장은 조립식 판넬로 지어져 있었다. 입구에 출고될 싱크대가 가득 쌓여 있었다. 이동식 카트가 끼익 끼익 기계소리를 내며 싱크대를 정리하고 있었다. 안쪽에는 조립되지 않은 붙박이장이 포개져 있었다. 창을 통해 비쳐 든 햇빛이 덜 마른 나무 위로 내리쬐었다. 김이 모락모락 피워 올랐다. 영락없이 갓 쪄낸 시루떡이었다. 빅토르는 꿀꺽 침을 삼켰다. 할머니는 집식구의 생일이면 시루떡을 쪄서 윗목에 올려놓고 비원 했다. 시루는 너무 낡아 위와 아래에 철사로 테를 둘렀다. 백 년은 되었다. 쌀과 팥은 조선족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구했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생일에 시루떡을 하지 않았다. 사장의 생일이라고 해서 잔뜩 기대를 하고 갔는데 케이크에 초를 꽂고 해피버스데이투유라고 노래를 불렀고 삼겹살을 먹었다. 몸이 아프고 나서인지 달큰하면서 쫄깃한 시루떡이 그리웠다.

빅토르는 자신의 성姓이 다른 친구들과 왜 다른지 의문을 갖지 않았다. 식구들 외모가 러시아인들과 달랐고 생일에 시루떡을 쪄서 윗목에 올려놓고 비손을 하는 풍습 때문이었다. 할머니는 아버지가 산판으로 들어 갈 때도 시루떡을 쪄서 보냈다. 쌀을 씻어 하루 동안 물에 불렀다가 가루를 내고 촘촘한 망에 곱게 걸렀다. 붉은 팥도 한나절 물에 불렸다가 솥에 삶았다. 팥이 익어갈 때면 구수한 냄새를 풍겼는데 그때부터 빅토르는 할머니 곁을 맴돌았다. 할머니는 밑구멍이 뚫린 시루의 구멍에 무를 썰어 막고 쌀가루 한 겹에 팥 한 겹을 번갈아 쌓았다. 시루를 솥에 얹고 시룻번을 붙인 후 장작불을 지폈다. 시루떡은 오직 할머니만 만들 수 있었고 그들만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러시아가 자유시장 경제를 도입한 이후 많은 이들이 농촌을 떠나 대도시로 떠났는데, 아버지의 독촉에 할머니도 하바롭스크 시내 변두리로 이사 했다. 그 후 할머니는 시루떡을 찌지 않았다. 

빅토르는 사장이 내민 도면을 대조하면서 트럭에 실을 물건들을 확인했다. 도면에 그려진 선들이 어지럽게 이어져 있었다. 어지럼증이 아직 가시지 않아 선들의 굵기가 제각각 다르게 보였다. 

실내가구를 제조하는 이곳은 사장이 작업반장이기도 했다. 아파트나 원룸의 준공을 받기 위한 마지막 공사가 가구설치였다. 시공자들이 공정기간을 맞추지 못하면 건설회사에서는 맨 마지막, 가구팀을 몰아세웠다. 좁은 원룸의 싱크대 설치는 번잡스러웠고 힘들었다. 전기, 가스, 에어컨 설치기사뿐만 아니라 장판을 깔고 도배를 하는 인부들과 좁은 공간을 나눠 써야 했다. 각자의 일을 하면서 타인의 작업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일해야 해서 몸이 큰 빅토르는 곤혹스러웠다. 

사장이 트럭을 공장입구에 바짝 댔다. 이번 공사는 삼 일 동안 해야 해서 하루 몫의 분량만 상차하라고 카트 기사에게 일렀다. 일 톤 트럭의 짐칸이 여백 없이 채워졌다. 

원룸촌이 대개 그렇듯 골목과 골목, 그 사이와 사이 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땅값이 높은 수도권 대학이 이곳에 지방 캠퍼스를 만들면서 원룸촌이 형성되었다. 그 이듬해 중앙부처의 부서 하나가 자리를 옮겨온다는 발표가 났다. 그 이전부터 동네 산이 허물리고 사차선 도로가 만들어졌으며 혁신도시라는 도로명이 생겨났다. 그 개발과 함께 산 아래 다닥다닥 머리를 맞대고 있던 기와집과 슬레이트집이 부숴 지고 흙 담장과 시멘트 담장을 경계로 원룸이 들어섰다. 원주민이 원룸의 주인인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자재를 한 가득 실은 트럭이 골목으로 접어들지 못하고 멈춰 섰다. 이차선이었지만 차선 하나를 물고 차들이 주차해 있었고 간판과 맥락 없이 튀어나온 전봇대와 외벽 때문이었다. 빅토르가 차에서 내려 길잡이 노릇을 했다. 사각지대로 인해 주차된 차들을 긁거나 건물 외벽을 손상시켰다가는 문제가 컸다. 사장은 빅토르의 손짓에 트럭의 꽁무니와 머리를 이쪽저쪽으로 돌렸다가 반 보쯤 뒤로 물러났다가 옆 담장과 건물의 간판을 스치듯 하면서 삼백 미터를 운전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챙모자를 벗고 흐르는 땀을 옷소매로 닦았다. 자재의 양이 많아 사다리차를 불러 옮길 계획이었다. 빅토르의 건강도 좋지 않았고 자신도 힘에 부쳤다. 그런데 공간이 좁아서 어림없었다. 사장은 가래침을 돋워 길바닥에 뱉었다. 빅토르는 고개를 쳐들고 건물을 보았다. 전봇대에 두껍고 까만 전기선이 동그랗게 말려 있었고 촘촘히 얽혀 허공을 가로 질러 원룸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원룸의 이름은 모두 근사했다. 스위트, 그랜드, 센트럴, 화이트빌……. 

이곳 원룸은 4층에 옥탑방 하나로 구조가 모두 같았다. 사장은 각 방을 둘러보고 내려왔다. 등짐으로 나를 수 있는 것, 안고 날라야 하는 것, 비스듬히 등에 지고 날라야 하는 것들을 분류했다. 트럭에서 자재를 내릴 때부터 어느 층부터 짐을 올려야 작업이 효율적일지 결정했다. 이같은 일들은 하찮은 것이 아니었다. 작업자의 몸 상태에 따라 달라졌고 힘을 골고루 써야 몸에 무리도 가지 않았다. 컨디션이 좋을 때는 4층부터 작업을 시작해서 아래층으로 내려와야 수월했다. 연일 지속되는 작업으로 피로가 누적되어 있다면 2층부터 시작해서 긴장된 근육을 풀게 했다. 이도저도 아닐 때는 3층부터 시작해서 몸 상태를 봐서 위층으로 옮겨갈지 결정했다. 이 일로 처자식을 먹여 살린 지가 서른 두 해가 넘었다. 사장이 빅토르와 일을 하겠다고 결정한 것은 최 의원의 부탁 때문만은 아니었다. 독립운동가가 문중 어른이라고 자신의 삶에 어떤 영향력은 끼치지 않았다. 독립운동을 하다가 한 세기 전에 만주로 떠난 문중 어른, 최무성의 손자라는 것보다는 공장에서 일 할 노동자가 필요해서였다. 그러나 최 의원은 시의원 선거 유세 때마다 재종형 최무성을 언급했다. 빅토르는 벌목을 했기에 힘을 쓸 줄 알았다. 행동이 느렸지만 정직했고 잔꾀도 부릴지 몰랐다. 

먼저 등짐부터 나르기로 했다. 사장이 건네주는 상판을 등에 지고 빅토르가 현관으로 들어섰다. 아직 마르지 않은 콘크리트에서 시큼한 냄새가 났다.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난간의 철제 안전바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 회전하는 데 수월했다. 걸리적거리는 장애물 하나가 없다는 것이 작업능률에 큰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었다. 자재가 벽에 부딪히지 않도록 신경을 곤두세우고 한발 한발 계단을 올랐다. 2층 복도로 들어서는데 사다리와 문틀, 에어컨 실외기, 각종 자재가 통행을 막았다. 천장은 에어컨을 설치하느라 뜯어져 있었고 열린 창으로 찬바람이 들어왔다. 방에서는 도배가 한창이었다. 벽지와 장판, 접이식 사다리가 복도 벽에 세워져 있었다. 한사람이 겨우 드나들 수 있는 좁은 통로로 등짐을 지고 가야 하는데 방해물이 많았다. 건물주가 준공을 독촉했음이 분명했다. 대학의 개강과 중앙부처의 인사이동이 발표가 났기 때문이었다. 

사장은 끝 방부터 공사를 시작하자며 빅토르에게 시공목을 박으라고 했다. 시공목 설치가 끝나면 싱크대 상부장을 걸어야 했다. 붙박이장 보다는 싱크대 운반이 쉬웠지만 빅토르의 몸 상태가 좋지 못했고 작업 환경이 나빠서 계획한 대로 하루 일정을 마무리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빅토르는 겨우 한 층을 마무리했는데 망치로 얻어맞은 듯 가슴이 아팠다. 허리를 숙이고 무릎을 잡았다. 의사가 일러준 대로 통증이 찾아오면 이런 자세를 취하라고, 증세를 완화할 수 있다고 직접 자세까지 보여주었던 대로 했다. 세로 선 기관지가 폐로 공기를 들이밀지 못하기 때문에 허리를 숙이고 가로로 만들면 몇 초 동안은 편히 숨을 쉴 수 있었다. 사장이 놀란 눈으로 괜찮으냐고 물었다. 빅토르는 주머니에 넣어 둔 보라색 흡입기를 꺼내 길게 들이마셨다. 바짝 마른 혀에 약가루가 빨려 들어갔고 금방 호흡이 돌아왔다. 그 몇 분이 길게 느껴졌다. 

 

어제 작업하던 시공자들이 청소를 깨끗이 해놓고 철수했다. 콘크리트를 말리기 위해 보일러의 온도도 높여 놓아 따뜻했다. 빅토르는 복도에 쪼그리고 앉아 싱크대와 붙박이장의 공간을 실축한 대로 마감재를 재단했다. 마감을 마친 뒷면에는 각 층의 호수를 적었다. 사장이 재단된 마감재를 가져가는 속도가 더뎌졌다. 전화 통화 때문이었다. 

오후에도 빅토르는 사장의 지시에 따라 마감재를 고정하기 위해 전동 드라이버를 돌렸다. 사장은 바쁘게 움직이면서도 거래처의 전화를 받느라 순간순간 일의 맥락이 끊어졌다. 사다리 위에서 위태롭게 통화를 하느라 고정하지 않은 마감재가 아슬아슬하게 그의 머리 위에 걸려 있었다. 열어 놓은 창문으로 바람이 불자 볼트 하나만 박혀 있던 마감재가 견디지 못하고 밑으로 떨어졌다. 다행히 사장을 비켜 떨어졌지만 옆에서 작업하던 빅토르는 깜짝 놀랐다. 

등산복을 입은 사내가 나타났다. 여느 노동자와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아 사장은 외면하고 통화만 했다. 빅토르도 자신과 같은 노동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가 복도는 물론이고 각 방들까지 살피고 다녔다. 발걸음이 부산스러웠고 문 여닫는 소리도 났다. 한참 만에 돌아온 그는 찌푸린 얼굴로 사장에게 다가갔다. 사장은 발주에 문제가 있어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그는 기다리지 못하고 헛기침을 했다. 건설사 사장이었다. 깨진 마감재를 발견하고 화를 냈다. 빅토르가 재단해서 전해준 마감재를 사장이 끼워 맞추는 과정에서 실수를 했다. 잦은 통화 때문에 헷갈렸다. 아직 현관문에 호수가 붙어 있지 않아 복도 끝, 오른쪽을 1호로 하자는 약속을 잊어버렸다. 방의 호수를 반대로 해서 억지로 끼워 맞추다 보니 마감재 여러 개가 금이 갔다. 뾰족한 수가 없었다. 많이 금 간 것은 다시 작업을 해야 했고 실금 정도는 본드로 붙이고 글라인드로 갈아 눈에 띄지 않게 했다. 


빅토르는 뽀로로 상을 펴놓고 수첩에 입출금을 정리했다. 수입과 지출액이 맞지 않아 몇 번이나 휴대폰 계산기를 다시 눌렀다. 일이천 원 정도면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이만삼천 원이나 되는 큰 금액이었다. 이번 주는 병원을 다녀 온 일밖에 없었다. 혹시 병원비와 약값을 잘못 지출했는지 곰곰이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한국에 온 목적이 여행이기 때문에 다음 달에는 러시아로 돌아가야 했다. 사장은 취업비자로 다시 오라고, 자신과 일 년만 더 일을 하자고 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빛바랜 흑백사진과 금방이라도 바스라질 것 같은 족보를 가지고 입석마을을 찾아왔지만 한 세기 전에 독립운동을 하다가 만주로 떠난 최무성의 손자를 아무도 반겨주지 않았다. 할머니가 조금만 더 일찍 할아버지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당시 방앗간을 운영하면서 독립운동자금을 대주고 있었는데, 방앗간을 탐 낸 사촌이 밀고를 했다고 했다. 빅토르는 최 의원의 할아버지가 그 사촌임을 알았다. 최 의원이 방앗간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930년대 러시아는 고려인들을 하바롭스크로 강제 이주시켰는데 이때 이들도 옮겨와 정착했다. 벌목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아이가 생기지 않다가 마흔 다섯이 되던 해 아들을 낳았다. 그때 한국은 광복을 맞았다. 일 년 후에 최무성은 조국이 광복을 맞았다는 것을 알았지만 돌아오지 못했다. 산판에서 사망했기 때문이었다.  

1992년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는 중앙계획경제에서 자유시장경제로 전환했다. 사기업의 허용과 영리추구를 위한 투기활동, 내·외국인의 투자허용과 공기업의 민영화 정책이 이뤄졌다. 증권이 발행되어 러시아 국민들은 사유화된 기업들로부터 주식을 살 수 있었고 경매를 통해 팔수도 있었다. 빅토르의 아버지는 벌목으로 번 돈을 주식에 손댔다가 전 재산을 날리고 목숨을 끊었다. 그때 빅토르는 다섯 살이었다. 

할머니가 옷장 깊숙한 곳에서 사진 한 장과 족보를 꺼내주며 처음으로 조국에 대해 말했다. 빅토르는 가슴이 뛰었다. 자신의 성이 러시아인과 왜 다른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날 밤 인터넷으로 한국을 검색해 보았다. 입석마을은 구릉 속에 안겨 있는 아주 예쁘고 작은 곳이었다. 당장 한국에 가보고 싶었지만 할머니가 많이 아팠기 때문에, 겨울에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장례를 치르고 한국행 비행기 표를 끊었다. 최 씨 집성촌 입석마을 사람들은 한 세기 전에 독립운동을 하다가 만주로 떠난 최무성을 기억은 했지만 외모가 너무나 다른 빅토르는 반기지 않았다. 시의원인 최 의원이 특히 그랬다.


저수지가 한 눈에 들어오는 야산에는 유럽풍의 전원주택 공사가 한창이었다. 입구는 물론 읍내 곳곳에도 분양공고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사장은 통화를 하면서 언성을 높였다. 하청을 준 업체에서 붙박이장과 싱크대 제품의 질이 형편없다고 했다. 고급주택인 만큼 퀄리티가 있어야 하는데 싸구려라고 했다. 사장은 그 가격에는 그 제품밖에 납품할 수 없다고 처음부터 말하지 않았느냐고, 이 제품이 무슨 싸구려냐고 맞대응 했다. 업체의 사장은 자신들도 남는 게 없어서 그렇다며 이번만 잘해보자고 했다. 사장은 어이가 없다면서 전화를 끊었다. 고급 주택단지의 시공을 맡으면 이득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청을 맡긴 업체도 결국 분양사와 건설사의 하청이었다. 제일 밑바닥에 해당하는 제조업이 손해를 떠맡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제작한 제품들이 그의 말 한마디에 쓰레기가 될 판이었다. 공장에서는 가구의 몸체만 만들고 그 위에 장식되는 것들은 도장업체에 특수 제작을 의뢰했다. 전원주택의 빌트인 가구는 집주인의 취향에 맞게 도면을 보여주고 그들이 말하는 대로 제작했다. 양복 한 벌을 재단하는 데도 하루 이상은 걸릴 것이다. 사장은 빅토르에게 사흘은 야간작업을 해야 한다고 했다. 

빅토르과 사장과 함께 유리와 플라스틱을 재단해서 옷장 문을 만들었다. 치수가 틀리거나 실리콘이 잘 못 칠해지면 처음부터 다시 했다. 사장은 빅토르 덕분에 납품 일을 맞출 수 있었다. 하지만 한 번씩 고개를 숙이고 숨넘어갈 듯 몸부림을 치는 빅토르를 볼 때마다 저러다 죽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고개를 저었다.  

트럭에서 가구 자재들을 내리기 시작했다. 도장된 문들은 작은 충격에도 모서리가 쉽게 떨어져 나갔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벽지가 긁히지 않게 조심해야 했다. 안에서 가구를 조립할 때는 바닥에 떨어진 나사못 하나도 주워야 했다. 이들이 작업하면서 바닥이나 벽에 생채기가 났다고 집 주인이 책임을 물을 수 있었다. 사장은 가구재를 집 안으로 들이기 전에 들어가 이곳저곳을 살피며 확인을 받았다. 주인이 없을 때는 분필로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사진을 찍어 시공업체나 주인에게 보냈다. 

안으로 가구를 옮기려고 하는데 회색 벤츠가 와서 섰다. 깡마른 몸피에 하얀 롱패딩을 입은 집주인이 팔짱을 끼고 이들의 작업을 일일이 지켜보았다. 빅토르는 사장이 건네는 가구의 문을 어부바 해서 옮기는데 주인여자가 문을 막고 서 있거나 좁은 계단을 차지하고 있어서 신경이 쓰였다. 계단을 막 오르는데 갑자기 숨이 턱 막혔다. 얼른 허리를 굽혔다. 등에 진 세 개의 문짝도 아래로 쏠렸다. 두 손으로 문짝을 꽉 잡고 있었지만 등과 머리를 미끄럼 타듯 바닥으로 떨어졌다. 문짝 귀퉁이가 깨져버렸다. 주인여자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사장이 달려왔다. 빅토르는 주머니에서 흡입기를 꺼내 급히 들이마셨다.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서툰 말로 사장에게 자신이 보상하겠다고 했다. 사장은 못 알아들은 척 대꾸하지 않았다. 어떤 때는 침묵이 편했다. 

주인이 원하는 대로 높낮이와 위치를 정확히 맞추어 가며 시공을 마무리했다. 깨진 문짝은 며칠 후 도장을 다시해서 설치하기로 했다. 주인여자는 서재에 들어갈 책장을 맞춰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치수를 재고 가격을 말하자 남편하고 상의를 하고 연락을 하겠다고 했다. 


모처럼 쉬는 날이었지만 빅토르는 딱히 갈 곳이 없어 오후에 공장에 나왔다. 조립을 앞둔 싱크대 상부장과 하부장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사장혼자 작업을 하고 있었다. 빅토르는 인사를 건네며 성큼 걸어갔다. 주문이 밀려 발주한 가구들을 조립하려면 쉴 수가 없다고 했다. 빅토르는 전동기를 집어 들었다. 당장 내일 출고할 자재만 조립을 하라고 했다. 빅토르는 능숙하게 세트를 분류하기 시작했다. 도면을 보며 싱크대 상부장과 하부장, 붙박이장, 신발장을 조립했다. 사장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서비스 문의였다. 빅토르에게 다녀오라고 했다. 사장이 트럭 키를 던져주었다. 

내비게이션은 최종 목적지라고 하는데 집들이 경계도 없이 붙어있어서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없었다. 좁은 길 옆으로 작은 밭이 있었고 연탄재가 버려져 있었다. 빅토르와 같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사는 곳이었다. 사장은 빅토르에게 집을 얻어주면서 공단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집단 거주지라고 했다. 빅토르는 휴대전화를 꺼내 발신을 눌렀다. 한국말이 서툰 여자가 전화를 받았다. 키가 작고 얼굴이 까만 동남아 여자가 걸어 나왔다. 머리를 뒤로 넘겨 고무줄로 묶고 있었는데 나이는 짐작할 수 없었다. 

싱크대 상부장이 비스듬히 내려앉아 있었다. 접시와 그릇들을 한쪽으로 치워놓아 깨진 것들은 없었다. 값이 나갈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빅토르는 순서대로 나사못을 전동 드릴로 풀어헤쳤다. 장을 분리해서 바닥에 내려놓으니 발을 옮길 공간도 없었다. 시공부품이 낯설었다. 시공목을 걸어놓는 방식도 달랐다. 

“이거 우리 거 아니야! 나 이거 못 해!”

여자가 방으로 들어가 약상자를 열고 명함을 한 장 꺼내와 빅토르에게 내밀었다. 명함은 사장 게 맞았다. 빅토르는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장은 다른 업체가 시공을 한 것 같다며 출장비를 받고 수리를 해주라고 했다. 

여자는 문지방에 쪼그리고 앉아 빅토르가 하는 일을 지켜보았다. 시공목을 고정하기에 벽이 너무 낡아 있었다. 콘크리트가 부식되어 상부장을 잡아 줄 힘이 없었다. 다시 설치를 한다고 해도 며칠 못 가 주저앉을 게 뻔했다. 빅토르는 트럭에서 합판을 가져와 재단했다. 시공목을 다시 박고 상부장 양 옆으로 합판을 고정해서 바닥까지 맞닿게 했다. 바닥과 천장 사이에 단단히 고정을 했으니 이제는 내려앉는 일이 없을 거였다. 

여자가 수도꼭지에서 물이 샌다며 그것도 좀 고쳐달라고 했다. 노란 테이프로 칭칭 감아 놓은 수도꼭지를 돌리니 물이 테이프 사이로 질질 흘러 내렸다. 여자가 재잘거렸다. 

“주인 나빠! 고장나도 안 고쳐 줘.”

빅토르는 아무 대꾸 없이 다시 트럭 짐 상자에서 수전을 챙겨왔다. 빅토르는 테이프를 뜯어낸 후 수도꼭지를 분리했다. 여자가 잠깐만 쉬었다 하라며 유리컵에 커피믹스를 타서 건넸다. 여자는 배시시 웃으며 물었다.

“이름이 뭐야? 어디서 왔어?”

빅토르는 대답하지 않았다. 여자의 치근거림이 아니 쓸데없는 친절이 싫었다. 화난 사람처럼 커피를 단숨에 마시고 컵을 내려놓았다. 서둘러 수도꼭지를 교체했다. 연장을 챙겨들며 빅토르가 말했다.

“십 만원 줘. 출장비야.”

여자는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주머니에서 만 원짜리 석 장을 꺼내면서 말했다. 

“이거 밖에 없어! 방 값 줘서 없어. 전화번호 줘. 월급 타면 줄게.”

빅토르는 난감했다.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장은 그냥 그 돈만 받고 오라고 했다. 빅토르는 서둘러 나왔다. 여자는 녹슨 대문에 몸을 기대고 빅토르가 사라질 때까지 쳐다보았다. 


아파트에서의 시공은 계단을 오를 필요 없이 엘리베이터로 자재를 옮기기 때문에 수월했다. 그러나 주민들이 사용하는 시간대는 피해야 했다. 사장이 장비를 들고 먼저 올라갔고 빅토르는 게시판과 엘리베이터 안쪽에 공사 안내문을 붙였다. 공사가 시작되면 소음이 발생했다. 집주인이 이웃과 평소 사이가 좋으면 다행이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애를 먹었다. 벽과 바닥이 연결되어 있는 아파트는 소리가 빠르게 전달되었다. 지은 지 이십 년이 넘은 이십 평대의 아파트는 새로 도장을 해서 깨끗했다. 다음 달에 결혼을 하는 신혼부부의 보금자리였다. 

설치되어 있는 기존의 싱크대를 뜯어내는 작업부터 했다. 전동 드릴로 고정 나사를 하나씩 제거 했다. 상판 제거가 얼추 끝났을 때 아래층에 산다는 할머니가 찾아왔다. 딸이 산후조리를 위해 와 있는데 갓난아기가 놀라서 경기를 한다고 했다. 사장은 바닥에 카펫을 깔아 소음을 줄이겠다고 했다. 빅토르에게 자동차 키를 던져주며 카펫을 가지고 오라고 했다. 빅토르가 막 나가려는데 오십 대 중반정도로 보이고 추리닝차림의 남자가 찾아왔다. 야근을 하고 와서 자야하고 밤에 일을 하러 가야하는데 공사를 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짜증을 부렸다. 곧이어 노인 부부도 나타났다. 그들은 남자 뒤에 서서 추임새처럼 거들었다. 사장은 최대한 소음을 안 내도록 하겠다고 했지만 그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빅토르가 카펫을 어깨에 메고 도착할 때까지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사장이 돌변했다. 자신에게 이러지 말고 관리실과 주인에게 따지라고 했다. 관리실에 허락을 받아 안내문도 다 붙여놓았다고 했다. 빅토르는 가져 온 카펫을 그들 앞으로 쫘악 펼치고 발 구르는 행동을 하며 말했다.

“괜찮아! 소리 작아! 괜찮아!”

그들이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보았다. 빅토르는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 거실 한쪽에 놓아 둔 연장통에서 고무망치를 꺼내서는 벽을 치며 말했다.

“이거 봐! 괜찮아! 소리 작아!”

그런데 누군가 자신의 숨구멍을 막고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몰려왔다. 빅토르는 들고 있던 망치를 놓쳤다. 가슴을 부여잡고 상체를 숙였다. 그들이 놀라 뒤로 물러났다. 빅토르는 얼른 주머니에서 흡입기를 꺼내 들이마셨다. 사장은 이러다가 빅토르가 죽기라도 한다면…… 고개를 흔들었다. 제아무리 독립운동을 한 문중 어른의 자손이라고 해도, 최 의원의 부탁이라고 해도, 숨구멍이 고장 난 빅토르와는  함께 할 수 없었다. 그들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빅토르는 이틀을 앓아누웠다가 공장에 나갔다. 키가 작고 얼굴이 까무잡잡한 사내가 일하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새로 뽑은 직원인 듯했다. 사장은 보이지 않았다. 찾아볼까 하다가 그냥 돌아섰다. 낯선 사내도 빅토르를 본척만척 했다. 최 의원은 최 씨가 한국의 성 씨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지녔고 높을 山과 사람 人, 흙 土 두 개를 포갠 圭는 천자에게 땅을 받아 다스린다는 뜻이 있다고 했다. 기개와 신념, 절개를 뜻하며 ‘최고집’ 혹은 ‘최 씨 앉은 자리에는 풀도 안 난다’라는 속담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 자신에게 최라는 성 씨가, 이 나라의 독립운동을 위해 할아버지가 목숨을 걸었다는 것이, 아무 쓸모없음을 알았다. 빅토르는 한껏 숨을 몰아쉬고 검푸른 바다 속으로 잠영해 들어갔다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 물 위로 고개를 내밀고 훠이, 훠이…… 숨비소리를 내는 해녀처럼,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천천히 내쉬었다. 비자 만료가 한 달이 남아 있었지만 러시아로 돌아가리라 마음을 굳혔다. 시베리아의 칼바람 속에 있으면 자신의 숨소리가 잠잠해질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장마리 2009년 《문학사상》에 단편소설로 등단. 창작집 『선셋 블루스』, 장편소설 『블라인드』, 테마소설집 『두 번 결혼 할 법』(공저), 『마지막 식사』(공저)가 있음. 불꽃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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