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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호/책·크리틱/김왕노/어이할까 라는 화두로 이르는 서정의 세계 ―꽃과 짐승과 사물로 직조된 민족혼의 피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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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1
댓글 0건 조회 353회 작성일 22-12-30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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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호/책·크리틱/김왕노/어이할까 라는 화두로 이르는 서정의 세계  ―꽃과 짐승과 사물로 직조된 민족혼의 피날레 


김왕노 시인


어이할까 라는 화두로 이르는 서정의 세계  ―꽃과 짐승과 사물로 직조된 민족혼의 피날레 



1. 이 시대에 필요한 화두 어이할까

나지막한 목소리의 시이나 우핵비육羽翮飛肉처럼 시가 모여 시의 강물을 이루고 시의 세월을 만든다. 시의 유토피아를 건설한다. 서정의 본류를 이루어 유장하게 흘러간다. 이 유장한 서정의 흐름을 이끌어가는 사람이 문효치 시인이다. 총경절축叢輕折軸처럼 시가 모여 어둠의 축을 부러뜨리고 푸른 시절을 펼칠 것이다. 각박한 세상과 일상의 모를 없애준다. 시집이 가진 촉으로 어두운 세월을 밝힌다. 이것은 나의 바람이자 문효치 시인이 몸소 시로 실천해 가고 있는 현실이다. 어이할까 전에 낸 『모데미풀』이란 시집을 읽으면서 시의 날에 가슴이 난자당하는 즐거움을 얻었다. 그런데 『어이할까』라는 시집이 내게 와 자꾸 어이할까, 어이할까 하면서 이미 단정해버린 것에 대한 질문을 던지므로 단정해 버린 올바른 가치관에 대해 변하지 말기를 당부하면서 어이할까라는 질문으로 때로는 반어법 같은 질문으로 잃어버린 정체성을 진단하며 다시 근본이 있는 세상이기를 누누이 당부한다. 크나큰 목소리가 아니나 너무나 큰 의미로 내 꿈의 고개를 푸른 세상으로 돌리게 한다. 


2. 식물적 이미지로 얻는 시정시의 질감

문효치 시인의 『어이할까』 시집 앞의 시집 『모데미풀』에서 내가 쓴 풀의 해체로 복원되는 서정과 민족혼이란 평론에서 “풀은 민족혼을 일깨우는 각성제다. 민초라는 말만 보아도 우리 민족과 풀의 관계를 짐작케 한다. 그래서인지 예로부터 산천초목을 노래하는 시가 시공을 초월해 우리의 사랑을 받아왔다. 문효치 시인의 모데미풀에는 그러한 산천초목처럼 강한 민족성이 시인에게 내재되어 있어 산천초목을 통해 인간의 거친 서정을 다듬질하려는 의도되지 않는 의도를 품고 있다. 강한 민족성을 지닌 순수한 피의 뜨거움이 어둠을 걷어내고 개벽의 날을 부르리라는 염원이 풀이 되어 바람에 물결친다. 산유화나 풀을 시로 풀어낸 시인이 왜 민족시인의 반열에 드는지 이유는 그들의 시는 풀처럼 살아오는 우리를 일깨우며 예찬하기 때문이고 모데미풀도 그러한 맥락서 해석해도 지나친 비약이 아닐 것이다.” 라고 말하였다. 문효치 시인의 시는 쉽게 읽히나 감동과 생각의 깊이가 있는 시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 시의 소재도 너무 큰 곳에서 찾지 않고 너무 큰 상징이나 비약을 사용하지 않으므로 흡수력이 강한 시를 선보인다. 침소봉대하지 않아 고른 이미지이므로 더 강한 이미지가 되는 특징의 시다. 유능제강柔能制剛과 같이 부드럽고 맑으므로 더 강한 시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어이할까』에서는 민족혼을 일깨우던 식물적 이미지와 더불어 동물적 이미지가 어떻게 내재되어 있는 지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오동꽃, 꽃잎, 잎새, 원추리꽃, 계수나무, 붓꽃, 패랭이 꽃, 접시꽃, 쑥, 풀, 꽃, 연꽃, 갈대, 갈대 밭, 풀잎, 풀덤불, 대숲, 비름나물, 열매, 풀꽃, 장미, 진달래꽃, 나무토막, 나무들, 푸른 꽃, 알토마토, 소나무, 매화나무, 매화, 수은행나무, 암은행나무, 작은 꽃, 대나무, 참나무, 산삼, 모시장수, 이내 꽃, 파란 풀꽃, 보리깜부기가 ‘어이할까’에 실린 식물적 이미지며 식물적 느낌도 여기 저기 나타나 있다. 식물이란 동물에게 필수적인 것이면서 동물의 존재를 가능하게 만든다. 불가분이 관계에 있으며 문효치 시인의 식물적 이미지는 장미가 한 번 나타났으나 대부분 우리 일상과 맞닿아 있는 식물적 이미지라 유대감을 형성한다.


붓꽃에 눈 맞출 때

달 하나 건너가고


패랭이꽃 보고 웃을 때

또 별 하나 건너가고


아프게 아프게

물오른 접시꽃 딸 때


쑥은 쑥쑥쑥 커가고


-「쑥」 전문


쑥과 마늘을 먹고 100 일을 굴속에서 견뎌 인간이 되었다는 단군신화에서 보듯이 쑥은 우리의 기원이고 단군 이래로 우리 가슴에 돋아나는 민족혼이자 봄을 상징한다. 구황식물이 있듯이 쑥은 춘궁기에 우리의 잃어버린 입맛을 돋워주며 허기를 채워주는 봄국이 된다. 우리 민족의 즐기는 민족탕이다. 달, 별은 일월이라 자연의 순리를 관장하고 그 사이 사이 피는 꽃은 순리에 따르며 일월과 합일에 이르러 피어난다. 달과 별 붓꽃 패랭이 꽃 접시꽃은 시간의 중심에 있으나 쑥은 아웃사이드에 위치한다. 소외에 머무나 쑥은 쑥쑥쑥 커가며 생명력을 마음껏 뽐낸다. 붓꽃의 꽃말은 좋은 소식, 패랭이는 순수한 사랑, 재능, 거절. 접시꽃은 편안, 단순이며 쑥은 평안이다. 평안이란 사전적 의미로 걱정이나 탈이 없음. 또는 무사히 잘 있음이다. 뽑고 뽑아도 모든 것을 무시하고 쑥쑥 평안한 듯 돋아나는 쑥이 우리 민족혼과 일치한다. 평안은 마음이 평정상태에 이른 것이라 중심이 생겼으므로 수난을 무의로 돌리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꽃과 쑥, 일월과 쑥은 녹음방초 시절을 이루는 필수적인 것이라 이 한 편의 시를 통해 일월과 꽃과 쑥의 어울림이 돋보인다. 쑥의 존재감과 독자성이 은근히 가슴에 스며든다. 


바람 불 때마다

내 가슴 속에 날아와 쌓인

꽃잎들 어이할까


몸서리치는

저 향과 빛깔


그립다가 아픔이 되는

꽃잎들 어이할까

-「어이할까」 전문


어이할까 라는 물음이자 질책이다. 꽃잎은 개화에 이은 낙화에 이른 꽃잎이다. 피어나 절정에 이른 후의 소멸 감에 흠뻑 젖은 꽃잎, 절정을 끝낸 허탈감, 극에 달해 극으로 떨어지는 추락의 허무감, 만감이 교차하는 꽃잎을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생명을 가진 것이면 당연히 가지는 절차고 시간의 이완과 수축에 따른 변화이다. 떨어지는 꽃잎은 이별을 겪은, 버림받은, 영원히 지워지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신분에 이르는 것이다. 떨어지는 꽃잎은 아쉬움의 덩어리이다. 지는 꽃잎을 보고 던지는 어이할까라는 물음 앞에 지는 꽃잎을 위해 나는 뭘 할까 생각하며 진 꽃잎을 드라이플라워로 불멸의 꽃잎을 만들어 주고도 싶다. 질 좋은 울음 우는 곡비로 지는 꽃잎을 울어야 하나 별 생각을 다 하게 된다. 낭자하게 진 꽃잎 위에 뜨거운 눈물을 흘릴까 생각하면서도 꽃잎을 땅에 묻어 다시 꽃으로 피어나는 길을 마련할까 생각하게 된다. 지는 꽃잎의 상징은 청춘을 다한 사람, 생을 다한 사람, 사랑을 다한 사람, 그리움이 사라진 사람, 힘이 사라진 사람, 본류에서 물러난 사람으로 대변되므로 우리가 어떻게 대할 것인가. 모든 사람이 걸어온 과정이 지는 꽃잎과 같은 길이라 우리가 밟아야 할 전철이 결국 지는 꽃잎의 길임을 자각하게 만든다. 꽃잎을 어이할 까라는 말은 결국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과 같다. 세상에 던지는 질문이 아니라 자신에게 던지는 반문이다. 지는 꽃잎이 있어야 태어나는 열매가 있다. 씨가 있다. 시가 있다. 생명의 쳇바퀴를 돌리는 힘이 지는 꽃잎에 있기 때문이다. 이 엄청난 일을 하는 지는 꽃잎을 나는 어이할까.


비름나물에 밥 먹다가

생각난 사람


대숲에 숨어 살다

잠깐 얼굴 내비치는 달처럼


아직도 곱기만 한

내 유년 뒤안길의

빛나는 광채

-「그리운」 전문


비름은 참비름, 털비름·개비름·청비름·눈비름 있으며 비름나물은 참 비름을 일컬으며 집 주위에 흔히 자라는 일년생 초본이다. 비름나물을 먹는 다는 것은 의식주에서 식에 해당하므로 가장 기본적인 생활 중에 그리움이 있다는 것이다. 그립다는 것이다. 유년을 가득 채운 빛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움은 누구나에게 있고 그립기 때문에 살아가는 이유가 되고 그립기 때문에 꿈을 가지는 것이다. 비름나물을 먹다가 흔히 생각나는 사람이라면 연인이 될 수 있고 되돌아가고 싶은 시절의 사람인 것이다. 비름이 끝없이 자라는 강아지풀 언덕을 함께 오른 사람일 수 있다. 때 묻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한 사람이라면 죽어서라도 그 사람이 있는 곳으로 한 벌 뼈를 고스란히 눕히고서 그리워할 사람일 것이다. 일상에서 먼 해원에 있어 끝없이 그리움을 나부끼게 하는 사람일 것이다. 과거의 사람이나 가슴에 현존하는 사람일 것이다. 못 잊을 사람이 비름나물, 대숲, 달, 유년의 뒤안길과 어울려 더욱 그리워지게 만드는 「그리운」이다.


3. 의인법과 활유법을 통한 서정의 파노라마

의인법과 활유법이 능수능란하나 자연스럽다. 문효치 시인의 시에서 별은 살아 숨 쉬는 짐승이다. 별 하나 날아와 앉아 있다. 젖은 빛 물고 온 별이다. 달도 몸을 헐어 꽃잎으로 내려오고 있었지 라며 달도 살아있는 동물이다.  ‘연꽃 속에 구름도 한 점 들어와 성불하면서’ 에서 구름은 성불을 하는 인간으로 상징된다. 칠성무당벌레, 큰 곰과 백조의 밀담, 나비. 뻐꾸기, 달이란 시 부분 ‘보름 동안 날마다 새끼를 낳더니 훌쭉 야위었구나.’ ‘소곤거리는 햇빛들’ ‘우주의 손발이 자국을 찍어 놓은 곳’ 새, 휘파람새, ‘시간은 여러 방향으로 휩쓸려 다니고’  풀꽃이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머무는 구름은 이야기 한다네.’ ‘기슭의 꽃들이 손 흔들어 줄 때’ 짐승, ‘산이 말을 건넨다.’ ‘나이의 속을 벗겨보면 눈물 있구나.’ ‘기어오르는 소리’ ‘흙은 물 냄새가 좋아 바다로 가네.’ ‘내 앞을 지나가는 소리가 멈춘다.’ ‘밤도 쉬고 싶은’ 억 광년을 달려온 별들이 쉰 목소리로 고함치고 있다. 도시의 굴뚝들이 하늘에 삿대질하고 있다. 등으로 의인법과 활유법으로 시의 구체성을 얻고 시의 밀도와 시의 활력을 높이고 있다. 사물과 인간이 공존한다는 우주합일의 사상을 펼치고 있다. 이런 사상이 깔려있으므로 낮은 것, 사소한 것, 눈 밖에 난 것, 소외된 것마저 아우르므로 대의의 융화사상이 문효치 시인의 시에 자리매김할 수밖에 없다.


준마 같은 남자, 장미 같은 여자만이 사랑을 할까

둔덕에 핀 쑥 이파리, 그 위를 나는 하루살이도

모두 다 뜨거운 사랑을 한다

아무리 작은 목숨이라 해도

사랑 없이 어찌 태어났을까

우쭈쭈쭈, 저 이쁜 것들

-「이뻐라」 전문


사랑은 생명을 연장시키는 수단이다. 모든 사물은 사랑을 매개로 영욕을 이어간다. 사람으로 인해 사랑의 본질이 많이 훼손되고 더럽혀졌지만 사랑은 우주 모든 것의 구심점이다. 한 쌍을 벌레가 짝짓기를 하며 풀잎에 앉아있는 것은 예술이다. 아름답다. 부럽다. 사랑은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다. 본능에 이끌려 사랑으로 가는 것 같으나 실은 사랑으로 가려는 섬세한 저울질과 사랑의 순수한 방식에 따라 가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만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살이도 사랑한다는 어쩌면 당연한 말인 것 같으나 사랑의 본질을 환기시키는 이뻐라는 뛰어난 시이다. 사랑 없이 어찌 태어났을까 라는 반문은 모두 사랑으로 태어났다는 단정이다. ‘우쭈쭈쭈, 저 이쁜 것들’ 로 인해 사랑의 완성이 얼마나 지고지순한 가치가 있나를 선명한 언어의 색채로 보여준다. 준마, 장미와 대비되는 쑥 이파리 위에서 사랑을 펼치는 하루살이는 작은 것의 상징이며 작은 사랑을 나타내나 세상 모든 사랑은 경중이 없고 고하가 없는 귀중한 사랑임을 일깨워 준다. 


바람은

흙냄새가 좋아 들판으로 가고


흙은 물냄새가 좋아 바다로 가네


물은 하늘냄새가 그리워 허공으로 가고


하늘은 

사람냄새가 그리워 땅으로 가네

-「윤회」 전문


뭣을 끝없이 향하는 것을 기호라는 말을 한다. 무엇에 근이 박혀 끊지 못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호불호가 분명한 세상이라 집중되는 곳에만 집중되고 사람이 몰리는 곳에 사람이 몰리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심하면 중독이란 말도 한다. 이러한 현상처럼 바람은 들판의 흙, 흙은 물 냄새의 바다, 물은 허공의 하늘냄새, 하늘은 사람냄새의 땅으로 쳇바퀴를 돈다. 서로를 향한 길을 벗어나지 않고 자신과 다른 존재에 초점을 두고 순환한다. 이것이 생명이 연장되는 채널이자 만물이 겪는 순리고 과정이다. 자연의 순리이자 인생의 순리이다. 결국 하늘마저 사람으로 향하는 것은 인본주의 사상이다. 윤회가 가능한 것은 서로가 서로를 위한 존재의 징검다리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윤회는 종교적 색채가 짙을 수 있는 말이나 종교를 떠나 우주만물의 염원이다. 서로가 징검다리가 되어주어 불멸에 이르는 조화의 세상이 우리가 염원하는 세상이다. 이것이 존재가 갈등하며 이르려는 세상이다. 이러한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윤회이다. 모두에게 꿈의 메시지가 되는 시이다.


창덕궁 소나무

잎잎마다 침이고 칼이다


원한으로 서서 버티다가 

하늘을 찌르고 벤다


보춘정 문 앞을 지키고 있는 매화나무에

찔리고 베어진 하늘의 피가 떨어진다.


나무가 온통 

붉은 피칠이다

매화가 붉다

-「수상하다」 전문


하늘은 뭐 하나라는 말이 있다. 죄를 짓고도 멀쩡한 사람을 볼 때 흔히 하는 말이다. 하늘을 매개가 된 이 시는 온통 피에 절여진 처참한 시다. 하늘이 원한의 대상이고 하늘은 상처입고 피 흘린다. 하늘은 절대적이란 관념이 무장한 창덕궁 소나무에 당한다. 푸른 피가 내려야 할 하늘에서 피가 쏟아진다. 엄청난 상상력이 가벼운 몸짓으로 나타나나 눈앞에 섬직한 풍경 하나 일으켜 세운다. 창덕궁은 조선 태종 때(1405) 창건되었는데 태조 때(1935) 지은 경복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창건한 이유는 경복궁이 형세가 나빠서 지었다지만 실은 두 번의 왕자의 난으로 왕위에 오른 피의 현장이 경복궁이기에 창덕궁을 지었다는 설이 있다. 창덕궁에는 왕세자의 학문과 덕행을 닦는 성정각誠正閣에 날개채로 붙어있는 누각의 남향에 ‘보춘정報春亭’과 동향의 ‘희우루喜雨樓’란 두개의 현판이 있다. ‘보춘정報春亭’은 ‘봄이 옴을 맨 먼저 알리고, ‘희우루喜雨樓’는 오랜 가뭄 끝에 비가 내리는 반가운 비라는 뜻이다. 이러한 역사적 바탕위에 쓰진 시이기에 「수상하다」는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피란 비극의 절정에 나타나는 것이면서 피는 생명의 상징이다. 절대적 하늘이 수난을 겪는다는 것은 순리대로 세상을 이끌어가야 하는 하늘이 본연의 자세를 잃었기에 일어난 일일 수 있고 질서를 잃어버린 세상일 수 있다. 하여튼 「수상하다」는 시를 통해 25 시 작가 게오르규가 시인의 역할은 잠수함에 태워진 닭과 같아야 한다는 말을 시인이 수행하고 있다. 잠수함의 태워진 닭은 사람보다 더 예민해 잠수함 안에 희박해진 공기 또는 불길을 예고해 잠수함 안의 사람을 살리듯이 「수상하다」는 시가 세상의 불균형을 불완전을 불길을 예고해 주고 있다. 이러한 경계를 통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생존의 방향을 가늠하게 한다.


귀의 문을 닫았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비어있는 밤이

스멀스멀 들어와 자라고 있다


내 머리통 속에

가득 찬 밤

모든 소리깊이  잠들어버렸다


곧이어 

별 뜨고

달 솟아올랐다

-「귀」 전문


소리가 없는 세상은 평정의 세상이다. 평온의 세상이다. 불통의 시간이 끝나고 내통의 시간이 시작되는 것이다. 침묵보다 더 많은 말이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듯이 신생의 말이 무수히 싹 트기 시작한다. 내 머리 통속 소리 없는 밤이 가득 찼을 때 비로소 우주의 운행이 순조롭게 진행된다. 별이 뜨고 달이 솟아오른다. 이것은 침묵의 힘이다. 함구의 힘이다. 이것은 자신의 존재를 끝없이 알리던 말을 소리를 거두어 버리므로 침묵하는 다른 존재의 인정에서 존재의 확인에서 오는 찬란함이다. 침묵이 키우는 것은 빛으로 오는 달과 별이다. 침묵은 민초의 습성이고 고관대작은 불호령의 습성이 있다. 소리는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소리가 없을 때는 방전된 에너지를 충전하는 생명의 시간이다. 소리가 변화의 시간이라면 소리를 향했던 귀의 문을 닫아건 시간은 사색의 시간이자 소리를 익히는 시간이다. 귀의 문을 닫아건 시점에서 별이 뜨고 달이 뜨는 우주의 시간을 나타낸 시라 더욱 돋보인다.


4. 미세한 감각의 수축과 이완으로 빚어내는 시

핀셋 같은 감각으로 이미지를 찾아내는 것은 시인이 가져야할 필수 요건이다. 모든 것을 흡입하거나 흡수하는 것이 시인의 가져야 할 감각이다. 고난도의 수술을 하는 내과 의사처럼 섬세함을 가져야 밀도 높은 시, 읽히는 시, 친근한 시, 빠져드는 시를 쓸 것이다. 어이할까라는 시집을 읽으면서 전반적으로 미세한 감각으로 세상을 휘둘러보며 정성스레 얻어낸 시라는 느낌이 든다. 대부분 시 제목이 평범하나 시의 내용은 특별하면서도 큰 공감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이 『어이할까』가 이룬 시업이면서 가치인 것이다.


나비가 날아간다

날개 근육에 땀이 난다


황혼의 하늘에

불을 놓고

시간이 날아다닐 때


때 맞춰 뻐꾸기 울어준다


운 좋게 주워온 목숨이 

꽃의 이름으로 익어가다가


팔랑팔랑

팔랑팔랑

-「팔랑팔랑」 전문


이 시를 대하며 충격적이었던 것이 ‘날개 근육에 땀이 난다.’ 이다. 이 촌철살인寸鐵殺人적인 시어가 내 영혼을 사로잡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인의 상상력은 나비 한 마리를 해부한다. 나비 날개 근육에 이르러 땀까지 찾아낸다. 자칫 잘못하면 미미할 수 있다고 간과해버릴 것을 시인은 놓치지 않았다. 우리가 볼 수 없고 생각할 수 없었던 나비 날개 근육이 나비가 팔랑대며 하늘을 접수하고 꽃을 접수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팔랑팔랑 의태어로 생명의 춤사위를 나타내는 절묘함이 짧은 시나 시의 감동을 후폭풍처럼 몰아치게 하는 것이다.


지수야, 저 작은 꽃을 보아라

땅 속 어둠을 뚫고 솟아오르더니

저만큼의 모양과 향기로

하늘 한 모서리를 채우고 있구나


저 꽃이 없었더라면

그리움 일렁이며 흘러 다니는

저 공간, 얼마나 허전했겠냐


생겨나는 것들은 모두

이 세상을 만들어내는 일을

맡아가지고 오는 것


꽃은 꽃대로

돌은 돌대로

밤하늘의 별은 별대로

모두 맡아 할 일이 있는 것


사랑하는 지수야

너에게는 무얼 하라 하더냐

-「편지」 전문


지수가 누군지 몰라도 손녀라는 생각이 든다. 그 조그만 지수에게 더 작은 꽃을 보란다. 태양을 보라는 것도 아니고 바다를 보라는 것도 아니고 산에 올라 낮은 세상을 보며 호연지기를 키우라는 것도 아니고 작은 것을 보라는 것은 작은 것이 가진 가치를 알아라. 는 뜻으로 읽힌다. 자칫 작은 것을 무시하기 쉬운 세상에서 작은 것을 보라는 시인의 마음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생겨나는 것들은 모두/이 세상을 만들어내는 일을/맡아가지고 오는 것’ 을 통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존재하므로 해야 하는 책무가 있다는 것을 일깨운다. ‘사랑하는 지수야/너에게는 무얼 하라 하더냐’ 라는 시어로 작은 꽃 같은 존재라도 하늘 한 모퉁이 세상 한 자리를 차지해 인간에게 이로운 지수가 되라는 아름다운 전언이 흐르는 시다.


아장아장 걷는, 어린 나를 보고

증조부께서 하셨다는 말씀

쯧쯧, 참 못났다


이제금 그 말씀 그대로

참 못났다


그것도 즐거워 

어칠비칠 거닐며

한 생 건너고 있다

-「자화상」 전문


유머와 해학이 흐르는 시다. 옛날엔 오래 살라고 아명을 더럽게 짓는 경우가 많았다. 못났다는 불렀다는 것은 못난 것이 아니라 오래 살라는 기원이 깔려 있었다. 증조부의 못났다는 말을 쫓아 지금껏 못나게 살았다는 것은 시인의 지나친 겸손일 수 있다. 못났으나 떳떳이 사는 것이 잘 났으나 더럽게 사는 일보다 더 훌륭하고 자존감이 사는 일이다. ‘그것도 즐거워/어칠비칠 거닐며한/생 건너고 있다’ 를 통해 긍정적인 자세로 살아가는 시인의 생활을 엿볼 수 있다. 못난 것도 즐거워 어칠비칠 거닐며 한 생 건너고 있는 긍정적인 시인의 모습도 읽을 수 있다. 못난 자화상을 바라보며 가끔 생에 만족하는 시인이 모습이 눈에 떠오르기도 한다. 세상이란 우여곡절의 세상, 구절양장 같은 세상이나 그것을 극복하고 파란만장의 시절을 지나야 녹음방초의 시절에 이른다. 모든 것은 떫은 시절을 지나야 과즙 풍부한 시절에 이르는 것, 어칠비칠하면서도 쓰러지지 않고 군자금을 가슴에 품고 압록강을 건너 북간도로 가는 한 사내의 모습이 자꾸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5.민족혼의 연장선상에 있는 어이할까

 「모데미풀」에서 민족혼을 울부짖는 시에 흠뻑 젖었다. ‘어이할까’에서도 고만고만한 것을 끝까지 아우르고 시로 이끌어내므로 끝내 ‘모데미풀’에서 ‘어이할까’ 도 민족혼을 일깨우는 연장선상에 있는 시집이라 단정한다. 주제가 작으나 울림은 큰 시로 가득 차 있는 ‘어이할까’ 라고 말 할 수 있다. 마부작침磨斧作針 같이 수 없이 갈고 닦은 시가 결국은 바늘 같은 시가 되어 우리의 흉금을 시 읽는 즐거움으로 한 땀 한 땀 수놓아 간다. 중석몰촉中石沒鏃 같이 시에 집중된 시인의 생이 결국은 시의 바다, 민족시의 나라를 이루는데 튼튼한 초석을 마련한다. 수적천석水滴穿石 같이 풀과 작은 것으로 꾸준한 민초의 노래, 민족의 노래로 기어코 거대한 어둠을 깨뜨리고 잃어버린 민족혼의 불길을 지피고 잊어버린 정체성을 찾게 하므로 『어이할까』는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필독서 한 권일 수밖에 없다.





*김왕노 1992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 『아직도 그리움을 하십니까』, 『게릴라-우리나라 최초 디카시집』등. 한국해양문학대상, 박인환 문학상, 지리산 문학상, 디카시 문학상 수상, 수원문학대상 등 수상. 계간 《시와경계》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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