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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호/권두칼럼/장종권/따뜻한 것이 세상을 자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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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호/권두칼럼/장종권/따뜻한 것이 세상을 자라게 한다
장종권 시인·본지 주간
따뜻한 것이 세상을 자라게 한다
같은 자尺를 사용한다 하더라도 날씨가 더워 온도가 올라가게 되면 자尺의 길이가 미세하게나마 늘어나게 되고 날씨가 추우면 온도가 내려가게 되어 자尺의 길이가 미세하게나마 줄어든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온도에 따라 길이가 달라지게 된다는 것인데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런 까닭으로 철로의 연결지점이 약간씩 벌어져 있는 것이나 다리의 이음새 부분에 약간의 틈이 있는 곳을 우리는 쉽사리 볼 수가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온도에 따라 길이가 달라지기 때문에 구매하는 상품의 길이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온도의 차이로 인하여 모든 물질의 길이에는 차이가 생긴다. 길이에도 정해진 기준이 없어 위치마다 높이마다 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온도의 차이에 따라 따뜻한 곳에서는 늘어나고 차가운 곳에서는 줄어든다. 우리의 눈으로는 절대 분별할 수 없지만 이론적으로는 충분히 그렇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세상에는 불변하는 것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고, 그 변화도 따지고 보면 절대로 종잡을 수가 없다는 말이 성립하게 된다. 세상은 상대적일 뿐이지 결코 절대적이지는 않다. 상대적으로 달리 보일 뿐이지 절대적인 불변의 모습이나 얼굴은 없다는 말일지도 모른다.
죽어있는 물질도 이러하건대 살아있는 생명체에겐 물어 무엇 하겠는가. 살아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 드러나게 변하는 온도이다. 마음 먹기에 따라 한꺼번에 오르기도 하고 한꺼번에 떨어지기도 하는 온도이다. 그렇게 변하는 온도에 따라 마음은 천당과 지옥을 오락가락하게 되고, 그와 접촉하는 사람들 역시 그로 인해 천당과 지옥을 오락가락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의 온도 차이에 따라 상대방의 생각과는 별개로 만사의 길이가 오락가락하며 변하게 된다면 이는 자연스러운 일일까, 아니면 자연스러움에서 턱없이 벗어난 것일까.
온도 차이에 따라 세상만사의 크기는 변하게 되어 있다. 피가 뜨거울수록 크기는 커지게 되고, 피가 차가워질수록 크기는 오므라들게 되어 있다. 이것이 우리에게 뜨거운 피가 요구되는 이유가 아닐까. 피가 뜨거워져야 세상은 더욱 자라게 되고 피가 뜨거워져야 사람들은 자신이 자라고 있음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식은 피와 차가워진 피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을 하겠다고 시도나 할 수 있을까.
자신의 피를 차갑게 식혀두기를 원하는 사람들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세상 보기를 객관적으로 또는 이성적으로 바라보기를 즐기면서 그것이 마치 세상의 진실이나 되는 것처럼 자신만만해 하는 사람들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의 온도에 따라 세상이 자라기도 하고 오그라들기도 한다는 것을 알고나 있는 것일까. 자신의 온도와는 전혀 무관하게 세상은 자라기도 하고 오그라들기도 한다고 믿는 것이 물론 잘못은 아니다. 어차피 세상 만사가 변하지 않는 그대로라고 믿는 것 자체에서부터 이미 문제는 드러나 있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진실이나 정의, 선이나 사랑조차도 온도에 따라 변하는 것일 수 있다. 그대는 뜨거운가, 만약 그렇다면 세상의 진실도 자라면서 커다랗게 다가올 것이다. 그대는 차가운가, 그렇다면 그대의 사랑도 얼음처럼 얼어붙어 오그라들게 될 것이다. 그대가 뜨거운 한 어린 시절의 추억도 커다런 모습으로 기억 속에서 자라게 될 것이다. 그대가 차가워지면 어떤 기억도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릴 것이다. 비록 온도는 혈연이나 학연, 지연에 따라 다르기도 할 것이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다름을 믿어야 한다. 차이와 변화에 관대해야 한다. 온도의 차이에 따라 세상 만사는 다른 모습으로 변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절대적인 선도 절대적인 악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온도의 차이에 따라 약간씩 달리 보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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