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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호/특집/고명철/4·3혁명과 재일조선인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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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호/특집/고명철/4·3혁명과 재일조선인 문학*
고명철 문학평론가·광운대 교수
4·3혁명과 재일조선인 문학*
1. ‘4·3혁명의 불온성’을 위해
한국사회에서 재일조선인 문학에 대한 비평적 및 학문적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되, 재일조선인 문학에서 주요하게 다뤄지고 있는 대상과 그 문제의식이 구미중심의 문학 제도에 익숙한 이들에게 본격적 탐구의 영역으로 소화하는 것은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즉 재일조선인 문학을 한국문학으로 다뤄야 하는지, 북한문학으로 다뤄야 하는지, 아니면 일본문학으로 다뤄야 하는지, 말하자면 낯익은 근대의 국민문학의 문제틀로 설정하여 다루기 힘든 복잡한 층위의 난제들이 가로놓여 있는 게 현실이다. 여기에는 무엇보다 재일조선인과 연관된 정치사회적 쟁점을 비껴갈 수 없기 때문이다. 널리 알듯이 재일조선인은 일제 식민지배로부터 해방 이전까지 피식민지인의 처지로 일본에서 살면서 지금까지 그곳에서 삶의 터전을 잡아 살고 있는가 하면, 해방 이후 조국으로 귀국했다가 세계 냉전 질서의 구축과 한반도의 해방공간의 혼돈에 따라 다시 일본으로 건너와 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정부 수립 이후 대부분 경제적 문제 해결을 위해 일본으로 밀항하여 살고 있는 등 우리에게 익숙한 근대의 국가, 국민, 국경의 개념과 제도로는 그 역사적 실재를 명확히 포착할 수 없는 일본 사회의 엄연한 ‘구성주체constructive subject’다. 그런데 이 ‘구성주체’는 또 다른 매우 중요한 역사철학적 역할을 맡고 있다. 그것은 20세기 전반기 아시아를 대상으로 한 식민 침탈의 뚜렷한 역사가 화석이 아닌 살아 있는 실체로 증명해보이는 역사적 희생양으로서 일본의 제국주의 만행을 응시하고 비판하는 역할은 물론, 한반도의 주민보다 분단과 관련한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보증된 현실에서 분단체제의 객관현실을 검증하고 비판하는 ‘비판주체critical subject’의 몫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같은 재일조선인의 역사적 실재는 재일조선인 문학의 양축이라고 할 수 있는 김시종金時鐘(1929~)과 김석범金石範(1925~)의 문학을 통해 여실히 드러난다. 무엇보다 그들의 문학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연합국의 승전에 따라 강대국의 정치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재편되는 국제질서 속에서 자주적 민족통일독립국가를 세우지 못한 채 분단을 획책하는 데 봉기한 제주의 4·3혁명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작가 현기영의 단편 「순이 삼촌」(1978)을 계기로 금기시되고 망각을 강요당한 4·3에 대한 역사적 진실을 추구한 4·3문학의 성과는 주목할 만하다. 가령, 4·3 70주년을 맞이하여 “제주4·3은 대한민국의 역사입니다.”란 캐치프레이즈 아래 민관이 함께 한 다채로운 기념 행사가 단적으로 말해주듯, 한국사회에서 4·3문학의 지속적 실천은 4·3이 대한민국의 공식기억official memory으로 복권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4·3의 역사적 진실은 올곧게 해명되었고 그래서 이후 대한민국의 역사로 등재된 것에 대한 기념제의만 해마다 잘 치러내면 그만인가. 이 물음에 대해 김시종과 김석범의 문학은 한국사회에 래디컬한 문제를 제기한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었던 것은 이 한마디로 집결됩니다. 5만이 넘는 제주도의 무고한 희생자들을 단정한 형태로, 혹은 신성한 형태로 그려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안고 있는 희생자는 썩을 대로 썩어서 다가갈 수 없을 정도로 추악한 육체를 드러내고 목숨이 끊어진, 성불 못할 원한을 간직한 시체입니다. 우리는 그 희생자들을 경건함 마음으로 기려서는 안 됩니다. (강조-인용자)
아직 4·3은 정명正名을 못 하고 있습니다. 이름 바롯 짓기, 역사 바로 세우기, 내외 침공자에 대한 정의의 방어 항쟁이 왜 이름 없는 무명비로 제주 평화공원 기념관에 떳떳한 이름을 새기지 못한 채 아직 고요히 누워 있습니까? 이름 없는 백비에 정명을 해서 바로 세워야 합니다. 왜 70년이 되었는데도 아직 정명을 못하고 있는가? 4·3역사 바로 세우기, 자리 매김을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강조-인용자)
김시종과 김석범은 한국사회에 준열히 묻는다. 혹시, 한국사회는 4·3을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기념제의 중 하나로 제도권화함으로써 4·3이 지니고 있는 ‘혁명의 불온성’을 경건성으로 순치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김시종). 그래서 그 역사적 진실 추구의 지난한 도정 속에서 4·3에 대한 정명正名은 그럴듯한 기념제의의 현실정치의 수사학에 나포되는 것은 아닌가(김석범).
그들의 래디컬한 문제제기는 한국사회의 4·3문학을 향한 비판적 성찰이면서,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는 국내의 4·3문학이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기획하고 실천해야 하는가에 대한 참조점을 제공해준다. 그 핵심을 꿰뚫고 있는 것은 ‘4·3혁명의 불온성’에 대한 문학적 상상력에 있는바, 그것은 제국이 획책하는 한반도의 분단에 저항하고 투쟁함으로써 그러한 제국의 국제질서로부터 해방을 이룩한 남과 북의 통일독립 세상을 추구하는 것이다.
2. 김시종 : 냉전과 분단에 대한 종언, 그 시적 행동
김시종의 문학은 ‘분단과 냉전을 극복’하는 그의 시적 고투에 초점을 맞춘다. 그는 4·3혁명의 남로당 세포로 활동하던 중 목숨을 건 도일渡日을 하였고, 재일조선인으로서 일본공산당에 입당하여 반미제국주의 혁명운동과 재일조선인 조직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였으나,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약칭 조총련)의 교조주의적 경직성에 직면하여 조총련을 탈퇴하였다. 이후 김시종은 말 그대로 재일조선인 작가 양석일의 적확한 표현처럼 “남북조선을 등거리에 두고 자기검증을 시도”한다. 김시종의 시집 중 『니이가타』가 문제적인 것은 유소년 시절(10대)과 청년 시절(20대), 그리고 성인 시절(30대)에 이르는 그의 시대경험이 “무두질한 가죽 같은 언어”로 육화된바, 특히 그는 식민제국의 언어를 내파內破하는 ‘복수復讐의 언어’로써 분단과 냉전의 질곡을 넘는 시적 고투를 펼치고 있다. 이것은 제국의 지배(舊제국주의인 일본과 新제국주의인 미국) 아래 식민주의 근대를 경험하며 그 자체가 지닌 억압과 모순 속에서 반식민주의의 시적 실천을 수행하는 김시종의 시문학이 일본 시문학의 경계 안팎에서 래디컬한 시세계를 구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와 관련하여, 『니이가타』에 수록된 시편 중 주목할 게 있다. 1959년부터 1984년까지(중간에 일시 중단 된 적도 있음) 일본 혼슈本州중부 지방 동북부의 동해에 위치한 니가타 현의 니가타 항에서 북한을 오갔던 귀국선에 대한 시편이 그것이다. 기실, 북위 38도선 근처에 위치한 니가타 항은 38도선이 단적으로 상징하듯, 한국전쟁의 휴전으로 인한 국제사회의 냉전 대결구도의 팽팽한 긴장이 흐르는 최전선을 넘나들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니가타는 한반도의 분극 세계를 한순간 무화시킬 수 있는 냉전과 분단을 넘어 통일과 화합을 추구하는 정념의 바다를 만날 수 있는 초극적 경계로서 심상을 지닌다.
북위 38도의
능선稜線을 따라
뱀밥과 같은
동포 일단이
흥건히
바다를 향해 눈뜬
니이가타 출입구에
싹트고 있다.
배와 만나기 위해
산을 넘어서까지 온
사랑이다.
―「제3부 위도가 보인다 1」부분
김시종이 조총련을 탈퇴하기 전까지 관념의 이념태로서 친북성향을 보인 것은 사실이다. 김시종뿐만 아니라 그와 같은 동시대를 살았던 진보적 재일조선인들 상당수는 대동소이하였다. 그런데 우리가 김시종에게 각별히 주목해야 할 것은 그가 반미투쟁을 통해 염원하는 세계는 서로 다른 국가로 나뉜 분단 조국이 아니다. 남과 북이 각자 정치사회적 순혈주의를 내세우며 어느 한 쪽을 일방적으로 압살하는 그런 폭력과 어둠의 세계가 아니다. 여기서, 우리는 “출생은 북선北鮮이고/자란 곳은 남선南鮮이다./한국은 싫고/조선은 좋다.” “그렇다고 해서/지금 북선으로 가고 싶지 않다.” “나는 아직/순도 높은 공화국 공민으로 탈바꿈하지 못했다……”(「제3부 위도가 보인다 2」)는 시행들 사이에 참으로 많은 말들이 떨린 채 매듭을 짓지 못하고, 어떤 여운과 침묵을 남길 수밖에 없는 김시종의 문학적 공명共鳴을 감지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니이가타』가 김시종의 조총련의 교조주의적 경직성에 대한 환멸을 경험한 이후 쓰여졌고, 시집의 출간 역시 힘들게 이뤄진 점을 고려할 때, 그가 니가타에서 출발하는 귀국선, 곧 북송선의 귀국사업에 대해 비판적 거리를 두고 있음을 간과해서 곤란하다.
그런데 김시종의 문학에서 보이는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비판적 거리두기에서 우리가 예의주시할 시적 상상력이 있다. 그것은 『니이가타』의 대미에서 드러나는 시적 행동이다.
해구海溝에서 기어 올라온
균열이
궁벽한
니이가타
시에
나를 멈춰 세운다.
불길한 위도는
금강산 벼랑 끝에서 끊어져 있기에
이것은
아무도 모른다.
나를 빠져나간
모든 것이 떠났다.
망망히 번지는 바다를
한 사내가
걷고 있다.
―「제3부 위도가 보인다·4」 부분
김시종의 시적 퍼스나인 ‘나’는 “망망히 번지는 바다를” “걷고 있다.” ‘나’는 제국의 식민지배 권력이 군림하는 바다의 운명과 함께 하고 있다. 구제국주의 일본에 이은 신제국주의 미국의 출현은 식민지 근대의 빛과 어둠을 지닌 채 재일조선인으로서 ‘재일在日하다’의 동사에 대한 문학적 진실의 탐구를 ‘나’로 하여금 정진하도록 한다. 그 구체적인 시작詩作을 김시종은 북위 38도에 위치한 일본의 니가타에서 혼신의 힘을 쏟는다. 이 혼신의 힘은 『니이가타』의 서문격이라 할 수 있는, “깎아지른 듯한 위도緯度의 낭떠러지여/내 증명의 닻을 끌어당겨라.”하는, 엄중한 자기 결단의 주문에 표백돼 있다.
우리는 『니이가타』를 통해 김시종의 ‘증명’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다. 그의 ‘증명’은 “불길한 위도”에서 읽을 수 있듯, 20세기 냉전질서에 기반한 신제국의 권력에 의해 북위 38도에 그어진 식민지배의 구획선 자체가 비정상적인 것이며, 이렇게 획정된 위도 때문에 분단을 영구히 고착시킬 수 있는, 지극히 위험하고 불길한 위도로 지탱되어서는 안 된다는 시인의 염결성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염결성의 내밀한 자리에는 김시종이 4·3혁명의 복판에서 도일渡日하여 언어절言語絶의 지옥도를 벗어나 목숨을 연명한 것에 대한 자기연민을 벗어나 한때 반미투쟁의 혁명운동을 실천하면서 조국의 영구분단에 대한 저항은 물론, 재일조선인으로서 ‘재일在日하다’가 함의한 중층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문학적 진실이 오롯이 남아 있다.
사실, “『니이가타』의 마지막 일절은, 해석이 곤란한 부분이다.”고 하는데, 그것은 『니이가타』에 나타난 ‘바다’에 대한 시인의 정치사회적 상상력의 구체성에 주목하기보다 시집 곳곳에 변주되고 있는 다양한 심상과 연결시키려는 해석의 비약 때문이 아닐까. 어떻게 보면 김시종 시인은 『니이가타』의 대미를 장식하는 이 마지막 시구를 위해 이 장편시를 썼는지 모른다. 여기에는 이 시집의 제목을 ‘니이가타’로 설정한 시인의 뚜렷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잠시 ‘니이가타’가 놓여 있는 지질학적 특성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해구에서 기어 올라온/균열”에 위치한 ‘니이가타’란 지역은 동북 일본과 서남 일본을 둘로 나누는 화산대의 틈새다. 이곳은 북위 38도선과 포개진다. 말하자면 이 화산대의 틈새로 일본 열도는 둘로 나뉘며(동북 일본/서남 일본), 김시종의 조국은 북위 38도선에 의해 둘로 나뉘고 있다(대한민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묘한 시적 동일시가 아닌가. 이 ‘니이가타틈새’에서 김시종은 현존한다. 그리고 이것은 김시종의 ‘바다’로 표상되는 정치사회적 상상력, 즉 재일조선인으로서 이중의 틈새와 경계―일본 국민과 비非국민,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이’에 존재하는 것을 드러낸다.
그런데 여기서 간과 할 수 없는 것은 김시종의 이 같은 시적 상상력은 이 틈새와 경계, 바꿔 말해 냉전의 분극 세계뿐만 아니라 국가주의 및 국민주의에 구속되지 않고 이것을 해방시킴으로써 그 어떠한 틈새와 경계로부터 구획되지 않는, 그리하여 막힘없이 절로 흘러 혼융되는 세계를 표상하는 바다 위를 걷는 시적 행위를 보인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망망히 번지는 바다를/한 사내가/걷고 있다.”는 것은 재일조선인으로서 냉전과 분단의 현실에 고통스러워하는 김시종의 시적 고뇌를 보여주되 그 현실적 고통을 아파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극복하고자 하는 시적 의지의 결단력을 보여준다. 이것은 한반도의 분단에 종언을 고함으로써 남과 북의 통일독립 세상을 염원하는 재일조선인으로서 정치사회적 욕망이 고스란히 투영된 시적 행동이다.
3. 김석범 : 해방공간의 혼돈과 통일독립 세상을 향한 4·3혁명
4·3혁명에 직접 참여한 김시종과 달리 김석범은 일본에서 4·3을 간접적으로 체험한다.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김석범은 부모가 제주 출신으로 해방 전과 직후 고향 제주와 서울을 다녀간 경험을 바탕으로 혼돈에 휩싸인 해방공간을 자신의 작품 속에 담아낸다. 특히 1948년 가을 이후 4·3혁명에서 전대미문의 학살을 피해 일본으로 밀항한 고향 사람들 중 먼 친척뻘 되는 사람에게 전해들은 제주에서 자행된 참담한 학살과 도일한 제주 여인으로부터 유방이 도려내진 비인간적 고문의 증언을 직접 들은 충격은 엄청난 것이었다. 김석범의 작품 중 장편 『1945년 여름』(1974년 단행본 간행)과 대하소설 『화산도』(1997년 단행본으로 완간)는 이 시기를 대상으로 한바, 무엇보다 재일조선인으로서 해방전후의 현실에 대한 정치적 상상력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왜냐하면 『1945년 여름』은 김석범의 자서전적 성격이 짙은 것으로, 김석범의 시선에 포착된 재일조선인의 두 양상을 밀도 있게 그려낼 뿐만 아니라 그 문제의식이 『화산도』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작중인물 김태조가 일본 사회에서 적나라하게 마주하고 있는 재일조선인의 부끄러운 자화상에 대한 자기인식과 자기비판의 치열한 문제의식과(『1945년 여름』), 그 문제의식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작중인물 이방근과 남승지를 통해 조국의 해방공간에서 제국의 식민주의를 완전히 청산하여 통일독립 세상을 향한 정치적 상상력을 실천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화산도』).
우선, 『1945년 여름』에서 부각되는 작중 인물 김태조의 비판에서 쉽게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일본의 패전과 맞물린 해방에 대한 재일조선인의 반응이다. 그 중 주목되는 것은 작품 속에서 ‘진정한 일본인’으로 동화되기 위해 제국 일본군 장교로서 충실했던 작중 인물 도요카와 나리히로(이성식)가 사회주의자로 전향해 있는 놀라운 현실이다. 김태조에게 도요카와 나리히로의 사회주의 전향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 전이가 아닐 수 없다. 제국의 충실한 국민으로서 자신의 목숨을 바치겠다고 맹세한 한 재일조선인이 아무리 제국이 패망했다고 하더라도 아주 빠른 시기에 반제국주의를 표방했던 사회주의로 전향할 수 있는지 김태조는 좀처럼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해방 직전 도요카와 나리히로의 일본 제국을 위한 결단을 치켜 세우던 친일협력자들이 일본의 패전과 조선의 승리를 만끽하는 기묘한 분위기 속에서 김태조는 “불결하다는 말이 되살아났다.” 일본에서 해방을 경험한 김석범이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8·15’를 맞이할 준비가 부재한 재일조선인이 갑작스러운 해방의 기운 속에서 식민주의 지배에 깊이 침윤된 자신의 삶과 현실에 대한 치열한 자기인식을 바탕으로 한 자기비판이 결여된 공허한 해방의 충족감에 빠져있는 것이다. 과거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현재에 대한 뚜렷한 자기인식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미래를 모색하는 게 아니라 식민지배를 경험하는 동안 입은 상처를 봉인하고 심지어 상처가 더욱 깊이 패이고 있는 재일조선인의 자화상에 대해 김석범은 김태조의 시선을 빌어 이처럼 음울하게 진단한다.
사실, 작품 속에서 해방 직후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재일조선인의 모습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김태조 자신을 향한 자기혐오와 자기부정이나 다를 바 없다. 그래서 김태조는 “신생 조국의 건설을 위해 매진해야 할 이 시기에 자신의 구멍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 것”(302쪽)을 감지한다. 왜냐하면 해방 직후 재일조선인의 부끄러운 자화상에 대한 관조와 비판적 성찰의 태도는 지니되, 김태조 자신이 이에 자족하지 않고 해방된 신생 조국을 위해 참여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태조에게 망설일 선택의 여지가 없다. 해방 직전 “그 딱딱한 껍질 속에 감춰진 뭔가를 만지지 못하고 멀어져버린 경성”(303쪽)을 다시 찾아가 오랫동안 그를 덮고 있던 일본 국민으로서 재일조선인의 껍질을 벗어버려야 한다.
그리하여 김태조는 “8·15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해방된 자유”(347쪽)로 출렁이는 조국 경성으로 돌아온다. 여기서, 대하소설 『화산도』가 『1945년 여름』의 연작은 아니지만,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온 김태조와 같은 재일조선인이 어떠한 역사적 선택 속에서 사유하고 역사의 삶과 일상을 살고 있는지, 그리고 김석범의 또 다른 퍼스나를 통해 조국의 해방공간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대응하면서 살고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문제작이다.
이와 관련하여, 『화산도』에서 주목하고 싶은 인물은 남승지와 이방근이다. 읽는 시각에 따라 남승지는 김태조를 골격으로 하고 있는 인물로 파악할 수 있다. 남승지는 해방 후 일본에 가족을 남겨둔 채 서울을 거쳐 고향 제주도로 귀국하여 4·3이 일어나기 전 중학교 교사로서 남로당원 “가두세포街頭細胞” 활동을 맡고 있는 혁명가다. 그는 해방을 맞이한 이후 “재일조선인으로서 조국에 적응하려는 노력”(1:98쪽)에 진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쉽지 않다. 남승지가 막연히 생각하고 기대했던 해방된 조국의 현실은 한갓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해방공간의 정치경제적 상황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또 다른 새로운 제국의 지배자인 미국이 군정을 선포했고 미군정은 이승만을 정치적 파트너로 삼아 친일협력자를 재등용함으로써 “‘민족반역자’들의 복권 무대가 우선적으로 제공”(1:69쪽)되면서 38도선 이남만이라도 단독정부를 세워야 한다는 이상 난기류가 흐르고 있다. 이런 혼란스러움 속에서 남승지는 “조국의 현실과 재일조선인인 자신과의 거리를 메우기 위한 노력”(1:104쪽)에 신열身熱을 앓고 있다. 여기서 김석범에 의해 탄생된 혁명가 남승지에게 주목할 점이 있다. 남승지는 당 조직을 신뢰하지 못하고 배반하지는 않더라도 당 조직이 초래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해 비판의식을 보인다. 그런데 남승지의 이러한 비판을 그가 동참하고 있는 혁명에 대한 회의적 시각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남승지는 혁명에 동참하기 위한 실존적 고뇌에 천착하면서 결단을 내린 만큼 제주의 혁명 자체를 냉소적·회의적·비관적 시선으로 보지 않는다. 다만 그가 두려워하고 경계하는 것은 실체로서 혁명보다 말, 즉 혁명에 대한 온갖 분식粉飾을 구성하는 것들이 혁명을 욕보이고 혁명을 추하게 하고 그래서 그 분식된 혁명의 말이 생명을 압살하는 폭력이다. 그때, 혁명의 말은 비정상성을 조장하고 정상성을 구속하여 압살하는 ‘괴물’로 둔갑한다. 해방공간의 제주에서 정상성을 압살하는 반공주의가 그것이고, 현실에 착근하지 못한 채 당 조직의 절대성과 교조성을 옹호하는 의사擬似혁명주의가 그것이다.
김석범이 주목하는 남승지가 이렇다면, 『화산도』의 문제적 인물 이방근은 남승지와 같은 혁명가뿐만 아니라 정 반대편에 있는 미군정 및 이승만의 정치세력(서북청년단과 군경)을 동시에 객관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이방근은 정치적 허무주의에 사로잡힌 채 이념적 강박증과 교조주의에 갇힌 사회주의 혁명가들에 대해 매우 신랄한 비판적 견해를 지니되 그들이 일으킨 무장봉기 자체를 전면적으로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혁명 자금을 지원하는가 하면 반민족적 반혁명 인사를 철저히 응징하여 죽이기까지 한다. 뿐만 아니라 무장봉기 혁명에 패배한 자들의 목숨을 밀항선을 이용하여 구제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이방근이란 독특한 인물 형상화를 통해 김석범이 새롭게 발견하고 싶은 문학의 정치적 실재는 무엇인가. 이것은 『화산도』를 통해 궁리하고 있는, 그래서 김석범이 해방공간에서 문학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과 무관하지 않다. 바꿔 말해 김석범은 4·3을 일으킨 제주의 혁명가들이 끝내 그만 둘 수밖에 없는 ‘미완의 혁명’이 함의한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을 『화산도』에서 함께 펼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재일조선인 김석범에게 ‘조선적인 것’과 관련된 정치적 상상력의 맥락에서 구체성을 띤다. 여기에는 ‘국가 공동체’로 수렴되는 정치적 상상력과 다른 ‘지역 공동체’의 문제의식을 소홀히 간주해서 곤란하다. 왜냐하면 김석범이 『화산도』에서 주목하는 해방공간의 혁명이 바로 제주에서 일어난 4·3항쟁이란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비록 4·3무장봉기의 애초 목적이 38도선 이남만 실시되는 대한민국 정부수립에 대한 선거에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남한만의 정부의 탄생을 거부하는 것이지만, 혁명의 과정 속에서 4·3무장봉기는 당시 미국과 소련으로 대별되는 구미식 자본주의적 근대와 소련식 사회주의적 근대에 바탕을 둔 ‘국가 공동체’를 만드는 것으로만 수렴되지 않는 통일독립 세상으로서 또 다른 정치적 상상력을 품고 그것을 실천하고자 한 것을 『화산도』에서 주목해야 한다. 그것은 유럽발 근대의 국민국가 세우기와 또 다른 정치적 함의를 지닌 김석범의 문학적 실천이다. 그것을 기획하고 실천하고자 한 문학적 공간이 제주라는 지역은 김석범의 ‘조선적인 것’을 이해하는 데 간과할 수 없다. 여기에는 해방공간이 말 그대로 식민주의의 억압에서 모든 것들이 풀려나 아직 해방된 국가(/근대)의 제도를 미처 정비하지 못한 혼돈 그 자체인데, 각 정파에 의해 국가의 논의가 이뤄지는 해방공간의 중심(식민지배 공간의 잔존과 잉여인 경성-서울)이 기실 구미의 내셔널리즘에 기반을 둔 입장으로 충만돼 있어 그 바깥의 해방된 정치 공동체에 대한 탐색이 봉쇄돼 있는 것을 고려해본다면, 김석범의 ‘조선적인 것’은 이들 해방공간의 중심과 비판적 거리를 둔다. 그래서 그것은 어떤 대안을 모색하는 것과 연관된 정치적 상상력에 착근돼 있다. 말하자면, 김석범의 ‘조선적인 것’은 일본 제국으로부터 해방된 해방공간에서 모색되는 구미중심주의 내셔널리즘에 기반한 ‘국가 공동체’의 그것과 차질적蹉跌的 성격을 지닌 그것의 대안인 ‘문제지향적 공간’으로서 제주의 ‘지역 공동체’로부터 발견되는 정치적 상상력을 함의하고 있다.
여기서, 4·3무장봉기는 실패한 ‘혁명/항쟁’이지만, 김석범의 『화산도』는 그래서 이후 한층 진전시켜야 할 4·3문학의 새로운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이것은 달리 말해 제주 인민들이 일으킨 4·3무장봉기가 한반도의 남과 북으로 나뉘는 분단된 두 개의 국가와 그 정치체政治體에 대한 부정과 문제제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만큼 무엇보다 일제의 식민주의를 어떻게 극복하여 온전한 해방을 쟁취할 것인지, 그 과정에서 어떠한 통일독립 세상을 향한 정치적 상상력을 펼칠 것인지, 그리하여 미소 냉전체제 아래 구미중심주의 근대에 기반한 국민국가를 그대로 이식 모방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는 ‘대안의 근대(성)’에 대한 4·3문학의 새 과제를 제기한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동안 거둔 4·3문학의 성취에 자족하지 않되 4·3문학이 새롭게 기획하고 실천해야 할 문학적 상상력은 4·3혁명이 추구하여 현상적 실패로 귀결된, 그러나 결코 쉽게 휘발되거나 소멸되지 않는 혁명의 주체들이 꿈꿨던 원대한 세계를 쉼 없이 탐문해야 할 것이다.
4. 분단의 사실수리론事實受理論에 대한 비판적 성찰
재일조선인문학의 양대 산맥인 김시종과 김석범의 존재는 4·3문학의 시계(視界)에서 혁명의 동력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김시종과 김석범은 해방공간의 모든 문제가 압축돼 있는 제주 4·3을 주목한다. 그들은 일본에서 4·3의 역사적 성격의 본질을 명철히 꿰뚫고 있었다. 4·3은 그들에게 혁명 그 자체다. 한국어로 번역된 김석범의 대하소설 『화산도』와 김시종의 시집 『니이가타』를 관통하고 있는 문제의식은 비록 4·3혁명이 미완의 혁명으로 끝났으나 제주 민중이 봉기한 4·3혁명은 해방공간에서 솟구친 민주주의를 향한 새로운 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것인바, 이것은 미군정과 이승만 정치세력이 주도한 반공주의의 폭압 아래 그 혁명의 성격이 심각히 왜곡되면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소 냉전체제로 재편되기 시작한 국제사회의 질서에 한반도가 종속됨에 따라 민주주의를 향한 일체의 논쟁과 논의들, 특히 미국중심의 정치체제에 조금이라도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은 반공주의로 탄압되는 현실에 대한 준열한 저항과 비판을 보인다. 좀 더 부연하면, 제주의 민중이 무장봉기한 4·3혁명은 일제 식민체제가 완전히 종식되지 못한 채 그 식민권력이 새로운 제국‑미국에 의해 재소환되는 것에 대한 비판이고, 그 도정에서 미·소 냉전체제의 전조前兆로 가시화되기 시작한 조국분단에 대한 저항이다. 이것이 바로 김시종과 김석범이 주목한 ‘4·3혁명의 불온성’에 대한 문학적 상상력의 실재다.
한반도를 에워싼 동아시아의 정세는 표면상 평화를 유지하는 듯 하지만, 정작 열강의 팽팽한 힘의 관계를 바탕으로 한 그들의 정치경제적 이해관계는 전쟁의 위기와 긴장을 적절히 활용함으로써 남과 북 사이의 ‘분단의 배음背音’을 유지하고 있다. 게다가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국제질서의 냉엄한 현실을 지켜보아야 한다는 논리 아래 분단을 고착화시킴으로써 각종 반사이득을 얻는 정치경제적 움직임들이 ‘분단의 배음’을 가중시키고, 이것을 아예 자연스레 일상으로 내면화시킴으로써 통일에 대한 환멸과 현실적 불가능성을 기정사실화하는, 그리하여 분단에 대한 사실수리론事實受理論이 팽배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강조하건대, 우리가 김시종과 김석범의 재일조선인 문학을 주목하는 것은 한국사회에서 점차 분단의 일상으로 구조화하(/되)고 있는 예의 사실수리론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통해 그들 문학이 꿈꾸고 있는 남과 북의 통일독립 세상을 향한 문학적 상상력을 결코 저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4·3혁명의 불온성’에 대한 문학적 상상력은 살아 있다.
*이 글은 필자의 「재일조선인 김시종의 장편시집 『니이가타』의 문제의식」, 『김시종, 재일의 중력과 지평의 사상』(8인 공저, 보고사, 2020), 「해방공간, 미완의 혁명, 그리고 김석범의 『화산도』」, 『제주, 화산도를 말하다』(3인 공저, 보고사, 2017), 「재일조선인 김석범, 해방공간, 그리고 역사의 정명」, 무크지 『인문예술』 제3집, 소명출판, 2017 등에서 이 글의 문제의식에 해당하는 부분을 발췌 및 집중 보완하여 작성한 것이다.
1)김시종, 「경건히 뒤돌아보지 말라」(곽형덕 옮김), 《창작과 비평》, 2018년 봄호, 441쪽.
2)김석범, 『다시 한국행』(곽형덕 옮김), 이호철통일로문학상운영위원회 편, 은평구청, 2018년 9월 14일, 39쪽.
3)필자는 김석범의 대하소설『화산도』를 검토하면서 4·3의 역사적 진실을 ‘혁명’의 시각으로 이해하는 작가의 문학적 정치성을 논의하였다. 고명철, 「해방공간의 혼돈과 섬의 혁명에 대한 김석범의 문학적 고투」, 『제주, 화산도를 말하다』, 고명철·김동윤·김동현, 보고사, 2017.
4)김시종은 김석범과의 좌담에서 그가 주축이 돼 1952년에 창간한 시 동인지 『진달래』에 발표된 시와 에세이로 인해 조총련의 비판을 받은 후 북한의 김일성 개인숭배에 대한 문제제기를 경험하면서 북한과 조총련의 교조주의적 사회주의에 대한 깊은 환멸을 경험한다. 이에 대해서는 김시종·김석범, 『왜 계속 써왔는가 왜 침묵해 왔는가』(이경원·오정은 옮김), 문경수 편, 제주대학교 출판부, 2007, 124-127쪽.
5)유숙자, 「재일 시인 김시종의 시세계」, 《실천문학》, 2002년 겨울호, 138쪽.
6)김시종·김석범, 위의 책, 130쪽.
7)김시종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의 일본어에 대한 자의식을 뚜렷이 드러낸다. 그의 일본어는 일본 사회의 밑바닥에 침전돼 있는 식민 지배의 권력을 겨냥한 것이자, 자칫 일본 사회의 내적 논리에 그가 내면화될 것을 냉혹히 경계하는 자기결단의 ‘복수復讐의 언어’이며, ‘원한怨恨의 언어’인 셈이다. 필자는 김시종의 이러한 측면에 초점을 맞춰 김시종의 시선집 『경계의 시』를 분석한 바 있다(고명철, 『식민의 내적 논리를 내파하는 경계의 언어』, 『지독한 사랑』, 보고사, 2010). 김시종의 이 언어적 특질에 대해 일본의 평론가는 다음과 같은 예리한 통찰을 보인다. “잔잔하고 아름다운 ‘일본어’임과 동시에 어딘지 삐걱대는 문체라는 생각이 든다. 장중하면서도 마치 부러진 못으로 긁는 듯한 이화감이 배어나오는 문체. (중략) 만일 ‘포에지’라는 개념이 단순히 시적詩的 무드라는 개념을 넘어 지금도 시인 개개인의 언어의 기명성記名性의 표상으로 통용된다면 이 어딘지 삐걱대는 문체를 통해 이면으로 방사放射되고 있는 것을 일본어에 의한 일본어에 대한 ‘보복報復의 포에지’라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호소미 카즈유키, 「세계문학의 가능성」, 《실천문학》, 2002년 겨울호, 304-305쪽)
8)김시종은 조총련을 탈퇴한 이후 장편시집 『니이가타』를 집필하고 있었다. 『니이가타』 한국어판 간행에 붙이는 글에서 그는 귀국선 사업이 시작될 무렵 이 시집은 거의 다 쓰여진 상태였는데, 조총련 탈퇴 이후 “모든 표현행위로부터 핍색逼塞을 강요당했던 터라, 오로지 일본에 남아 살아가고 있는 내 ‘재일’의 의미를 스스로 생각해 발견해야만 하는 입장”을 숙고하면서 일본에서 1970년에 출판될 때까지 거의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갔다고 한다.
9)오세종, 「타자, 역사, 일본어를 드러낸다」, 『김시종, 재일의 중력과 지평의 사상』(고명철 외 8인 공저), 보고사, 2020, 187쪽.
10)김시종의 문학을 이해하는 데 ‘틈새’는 매우 중요한 핵심이다. ‘틈새’는 제주 4·3의 화마를 벗어나 일본 열도로 피신한 이후 조금도 경험해본 적 없는 ‘재일조선인’으로서 김시종의 현존을 성찰하도록 한 시적 메타포다. 가령, 다음과 같은 시의 부분에서 ‘틈새’에 놓인 김시종의 시작詩作에서 그만의 독특한 ‘복수復讐의 언어’로서 일본어의 기원을 생각해볼 수 있다. “애당초 눌러앉은 곳이 틈새였다/깎아지른 벼랑과 나락을 가르는 금/똑같은 지층이 똑같이 음푹 패어 마주 치켜 서서/단층을 드러내고도 땅금이 깊어진다/그걸 국경이라고도 장벽이라고도 하고/보이지 않는 탓에 평온한 벽이라고도 한다/거기엔 우선 잘 아는 말(언어)이 통하지 않아/촉각 그 심상찮은 낌새만이 눈과 귀가 된다”(김시종, 「여기보다 멀리」 부분, 「경계의 시」, 유숙자 역, 소화, 2008, 163쪽) 이러한 ‘틈새’의 시적 메타포가 장편시집 『니이가타』에서는 북위 38도에 위치한 ‘니이가타’란 구체적 지명과 맞물리면서 김시종의 정치사회적 상상력을 점화시킨 것이다. 김시종의 ‘틈새’에 대해서는 ‘마이니치(每日) 출판문화상’을 수상한 에세이집 『재일의 틈새에서』(윤여일 옮김), 돌베개, 2017에 피력돼 있다.
11)유소년 시절과 청년시절에 대한 김석범의 전기적 사실은 김학동, 『재일조선인 문학과 민족』, 국학자료원, 2009, 360-366쪽.
12)김석범, 『1945년 여름』(김계자 옮김), 보고사, 2017, 329쪽. 이하 이 작품의 부분을 인용할 때 본문에서 (해당 쪽수)를 표기한다.
13)김석범, 『화산도』(김환기·김학동 역) 2권, 보고사, 2015, 167쪽. 이 작품이 부분을 인용할 때 본문에서 (권수:쪽수)를 표기한다.
14)필자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제주가 구미중심주의의 근대를 넘어 ‘해방의 서사’를 기획·실천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 바, 특히 제주가 지닌 지정학적 특성과 인문학적 가치는 제주를 근대의 주권 개념으로만 구속하는 게 아니라 주권 너머를 꿈꾸는, 즉 국민국가의 정치적 상상력을 넘어서는 해방의 기획으로서 ‘문제지향적 공간’으로 설정해야 한다는 것을 논의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고명철, 『제주 리얼리즘: 구미중심주의를 넘어 ‘회통의 근대성’을 상상하는 제주문학』, 《제주작가》, 2017년 가을호.
*고명철 1998년 《월간문학》으로 평론 등단. 광운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문학(문화)을 공부하는 ‘트리콘’ 대표. 계간 《실천문학》, 《리얼리스트》, 《리토피아》, 《비평과 전망》 편집위원 역임. 저서로는 『흔들리는 대지의 서사』, 『리얼리즘이 희망이다』, 『잠 못 이루는 리얼리스트』, 『문학, 전위적 저항의 정치성』, 『뼈꽃이 피다』, 『칼날 위에 서다』 등 다수. 젊은평론가상, 고석규비평문학상, 성균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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