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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호/소시집/김점례/내편 외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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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1
댓글 0건 조회 311회 작성일 22-12-30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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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호/소시집/김점례/내편 외 4편 


김점례


내편



물컹한 어둠 속에 몸을 담고 휘적휘적


물가에 늘어진 버드나무 유령처럼 너울거린다.

저기 앞 검게 서있는 거인은 입간판이다

뒤에서 밀어붙이는 우악스런 입김은 드센 바람이다

서두르는 발목을 잡아채는 건 튀어나온 돌부리다 


눈빛은 어둠을 쏘며 의심하다 안심하고

내가 나에게 의지하고  


유유한 물결은 아직 숨죽이며 흐른다.

믿을 건 조금씩 달이 기우는 것 

조급해 하지 않고 걷는 것 

그리고 머지않아 왼쪽이 따뜻해지는 것 


캄캄한 공포를 무릅쓰는 건 저 어둠 속 어디쯤에서

걸음을 재촉하는 당신이 있다는 것 

그 믿음의 무게는 깊은 어둠을 걷어찬다.


신호처럼 새가 어둠 속에서 낮게 우짖는다.


당신이 저만큼 검은 실루엣 환한 미소로 보인다.





봄마중



불땀머리로 칼란디바 꽃대가 해 마중을 간다.

잣대로 재면 한 뼘도 안 되는 거리를 하얗게 불태워 가는 동안 

열린 창문으로 햇발이 다녀간 뒤 앞선 봄이 앉아 있다


초로의 노인이 금빛 햇살 흩뿌려진 언덕배기에 앉아 

겨울을 털어내고 있다


고양이가 털 고르듯이 두꺼운 옷을 벗고 

머리를 자분자분 두들기더니 팔 어깨 다리까지 

토닥토닥 털어내고 있다


하늘하늘한 바람 곁에 머물러 신성한 의식에 힘을 모은다.


작은 창을 통하여 봄의 섬세한 손짓을 엿보고 있는 

나의 시간은 정지 돼 있고 봄은 한 뼘 더 성장한다.


봄은 누군가의 고요한 손짓으로 시작되는 것 

골짜기에 오소소 웅크리고 있던 봄이 얼떨결에 

노인의 손끝에 이끌려 나와 버렸다


꽃물 든 바람 한 바가지 푹 떠서 

머리에 끼얹고 묵은 때를 씻겨내고 싶다.





사회적 거리 두기

―코로나 19



시절이 수상하여 집을 사수하며 행동반경이 

열 걸음 스무 걸음 사이에 갇혔다 


아침나절 아무 제제도 없이 거실 깊숙이 들어와 

해작이는 볕을 만지는 게 그나마 좋다


열린 문으로 미안한 듯 머리를 쓸며 들어온 

바람과 말을 섞는다.


카톡으로 날아온 소식을 손님인 듯 맞이하고 안부를 묻는다.


마음속으로 불러낼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은 큰 행운이다 


익숙하지 않은 통제의 난감함과 낯선 휴지기  

하루하루 말린 사과를 씹은 듯 느리게 음미해 온 날들 


깊어지려는 시간을 준비하면서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오는 나를 맞이한다. 


밀착된 사회적 소통의 시간은 묘연하고.





오후 2시와 3시 사이



장대 끝에 기다랗게 팽팽한 빨랫줄 

지나던 바람에 툭 차인다.


오수를 즐기던 햇살 물방울처럼 튀어 오른다.


바싹 마른 빨래 희희낙락 그네 타다가 뒹굴다가 

꽃잎처럼 한둘 땅에 내려 흙먼지와 씨름 한 판


혼자의 시간에 오롯이 혼자의 시간을 

통제하며 마음껏 낭비하며 반성하며 


내가 만든 담장 아래 주저앉아 

시인 백석을 찾아들고 애걸복걸 통사정을 하다가


행주로 말갛게 닦아낸 하늘에 맨얼굴을 갖다 댄다

하늘 무늬가 볼에 얼룩처럼 파랗게 찍혔다


문득 혼곤한 세상이다. 





자목련



그늘에 홀로 선 목련나무에 작은 새들 

열매처럼 매달려 부리로 콕콕 잠을 깨운다 

 

계절이 바뀌었는데 자꾸만 깊은 그늘로만 

기울어지는 마음인가


새들의 재촉에 서두르는 모양이 애처롭다 

 

하루 이틀 지켜보다 조금 늦어도 괜찮다고 토닥이는데

놀란 작은 새들 포르르 날아가면서 할퀸 생채기에

 

자목련 꽃 송글송글 핏방울처럼 맺혔다.


그늘은 누군가의 뒤에 서는 것

해바라기만 하다가 한 발짝 씩 뒤쳐진다. 





*김점례 2017년 《리토피아》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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