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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호/신작시/강우식/끈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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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강우식
끈
오늘 죽음이 하나로 맺어주어
이승에서 배타고 저승까지 갔다
다시 이승에 나타난 사랑을 보았다.
물골이 세차고 매운 맹골수로에서
한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는
죽어서도 하나가 되는
사랑하는 마음이 만든 끈을 가졌었다.
죽음의 물결이 숨을 끊는 순간에도
얼마나 사랑했으면 끈 하나로
사랑을 잇고 영원한 짝이 되었을까.
사랑이 있기 때문에 일심동체인
둘이는 殺身成仁이란 말 대신
殺身成愛를 보여주고 싶었으리.
어느 때인가 죽음이 이르렀을 때
따에서 죽으나
바다에서 이승의 생을 마감하나
그게 그것이겠지만
아마 둘이서는 사랑한다는
그 사랑의 영원성을 보여주기 위해
끈 하나로 묶이어
잠수부가 엄마 보러가자 하니
살아 알아들은 듯이 한 몸 되어
물 속 배 밖으로 나왔으리.
목숨 줄은 끊기어도 사랑 줄은 이어진
죽으나 사나 그저 하나인
이 곡진한 사랑 앞에
온 나라가 다 원통해서 숨 막히고
산천초목도 울음바다로 젖는
이 애잔함을 우리 어른들이여
무슨 낯으로 쳐다보리.
끈2
기적의 끈은 없었다.
하늘에서 내리는 썩은 동아줄이 아닌
하눌님의 끈은 없었다.
사랑이 아니더라도
이 맹골수로의 물살쯤은 헤치고
모두가 한 끈에 묶이어 살아 나와야 할
우리 아들딸들이
이중섭의 그림같이 천진스럽게
봉숭아꽃 화사한 가지 끝에 매달려
오월의 꽃 같은 웃는 얼굴로 나오는
귀신이란 귀신 다 물리치는
복숭아 꽃가지의 끈은 없었다.
세상천지 어디를 한 발짝 내딛어도
꽃 지천인 하늘땅인데
인당수 심청이를 가진 이 나라에서
이 무슨 변고인가.
부활하여 한송이 꽃으로 부활하여
간절하게, 간절하게 우리들 곁으로 오기를
바다 보고 하늘 보고 비는
모은 두 손이 연꽃이 되는 바람도
바람결에 떨어지는 꽃잎 되고 말았으니
이 어이 살꼬
자식이 이 모진 세파를 이어 살아가는
핏줄 끈이었는데
그 끈이 없으니 이 어이 살꼬.
그래도 이 악물고 넋 놓지 말고
내일 내일하며 오늘을 살아야 할
우리 어른들이다.
이 세상없는 아이들과
저승에서 다시 만날 끈을 지금부터
다부지고 튼실하게 꼬아야 할 우리들이다.
*강우식 : 1941년 강원도 주문진 출생, 1966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호 水兄, 老平, 果山. 시집 사행시초(1974), 고려의 눈보라(1977), 꽃을 꺾기 시작하면서(1979), 물의 혼(1986), 설연집(1988), 어머니의 물감상자(1995), 바보산수(1999), 바보산수 가을 봄(2004) 발간. 시극집 벌거숭이 방문(1983), 시에세이집 세계의 명시를 찾아서(1994), 시론집 육감과 혼, 절망과 구원의 시학(1991), 한국분단시연구, 시연구서 한국 상진주의 시 연구 발간. 현대문학상(1975), 한국시인협회상(1985), 한국펜클럽문학상 시부문(1987), 성균문학상, 월탄문학상(2000) 수상. 성균관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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