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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호/신작시/박해림/바다가 운다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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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3
댓글 0건 조회 3,125회 작성일 15-07-07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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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박해림

바다가 운다 


가끔 바다도 슬플 때가 있다
바람에게 등을 내주고 어깨를 들썩이며 엉엉 울 때가 있다
마르지 않는 하수구처럼 솟구친 분노에 갇혀 출구를 찾지 못한 아이처럼
구석에 처박힌 채 아무렇게나 구겨질 때가 있다 

고비모래를 삼킨 바다는 온통 황토빛, 부유하던 낙타와 말과 소의 털 나부랭이는 염수
염수鹽水에 간간하게 간이 배었겠지만 가도가도 닿지 않는 당신의 문 앞에서 절망에 깊게 패인
발자국을 내려놓을 때의 회백색 설렘이거나
생을 분출하지 못한 어느 사내의 모래기슭에 꼭꼭 숨겨놓은 어긋난 사랑이거나
혹은 노암지대露岩地帶를 넘지 못해 뼈다귀만 남은 사랑이거나 
프로토세라톱스의 뼈와 공룡 알들처럼 
껍데기가 잘게 부서져 형체를 알 수 없는 당신이거나
날지 못하는 새 모노니쿠스가의 항변처럼 
거짓말을 할 수 없어 더욱 슬픈 질료들이 뒤섞인 사랑이어서

다 저녁에 쪼그리며 우는 사내가 있다
주둥이에 술병을 물고 바닥을 뒹구는 사내가 있다
슬픔이 뭔지 정말 아는 것 같지 않지만 
사랑이 뭔지 아는, 북받치는 가슴을 가진 사내가 있다




봄, 삼청로 4길


휘어진 길
휘어진 집을 따라 
사람도 모른 척 휘어지는 삼청로 4길
도로변 은행나무가 엉거주춤 바퀴를 굴리고 있다

옷가게 앞의 나무는 어깨가 잘렸고
칼국수 집 지붕에 걸린 나무는 팔을 도려내었다
카페테리아 난간의 나무는 척추를 일으키지 못하고
액세서리 가게 유리너머 나무는 가슴이 밖으로 굽었다
그러나 하나 같이 하늘을 향해 바퀴를 내달리고 있다

제 모양새가 휘어진 것은
제 삶이 엉거주춤한 것은
침묵하는 정의 때문이라고
겉치장에 양심을 벼린 집 때문이라고
눈칫밥 이권에 길들여진 사람 때문이라고 항변하는 것을 
이 길을 숱하게 지났어도 
나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제 가슴에 아기 손톱만한 눈 아린 연둣빛 잎을 달고 있는 
삼청로 4길의 은행나무들 그 난만한 가지 사이로 
봄 햇살이 눈치 없이 휘어지고 있다


*박해림 : 1996년 《시와시학》 등단. 시집으로 『바닥경전』『저물무렵의 詩』『간지럼 타는 배』 등이 있음. 지용신인문학상, 이영도신인문학상, 청마문학상신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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