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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호/신작시/권정일/동충하초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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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권정일
동충하초
샤먼과 토템사이
포자와 숙주사이
벌레와 식물사이
그 사이를
흐느끼지 않는다면
섞여 한 몸이다
티끌의 균사로 흘러들어와 기생하는 포자를 위해
벌레이면서 벌레가 아닌 꽃, 눈꽃으로 피어나야할 어떤 눈물
가로로 날개 찢어 등선하지 못하는 긴 겨울
아무리, 아무려나
태어난 적 없어
불꽃처럼 죽은 나비숙주 나비미라
가벼운 인사
장미 목덜미를 세워 꽃배달 간다
노란포장지에 노란장미를 주문한 그女가 문을 여는 순간까지 우린
처음 보았거나 처음 만난다, 차임벨 소리보다 짧은 무표정이
온통노랑을 낚아챈다고 해야 이건 옳다 그女와의
3초간의 목례, 우린 온몸을 다 구부려 인사하지 않기로 한다
온 표정을 다 지어 안녕, 하지 않기로 한다
쉽게 시드는 화기(花期)를 내가 말하지 않는 건 장미에 대한 예의
꽃씨 같은 그女 얼굴 훼손하지 않으면 성공이다
세계는 닫힌 장소이거나 의미심장하지 않아
가시 많은 꽃이 색향을 흘린다고 나는 말해줄 수 없다
돋는다, 화요일의 가시는 화요일에만
수요일의 가시 때문에 화요일의 장미는 잊는다
가시는 드라이한 눈빛 속에 있다는 속엣말을 100송이에 끼운다
눈을 찔리지는 말자 향기만큼, 질문 없이,
*권정일∙1999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등단. 시집 마지막 주유소, 수상한 비행법, 『양들의 저녁이 왔다』. 부산 작가상, 김구용시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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