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사이트 내 전체검색

수록작품(전체)

54호/신작시/신용목/모름 외 1편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편집부3
댓글 0건 조회 3,085회 작성일 15-07-07 10:59

본문

신작시
신용목

모름


비행기 안을 날고 있는 파리의 고도

혹은 어둠,
인생은 이렇게 설명될 것이다
가고 있다

나는 지금 헬싱키로 가고 있다 암스테르담으로 아니 벵가지나 북해에 가라앉은
비 내리는 고대 도시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중요한 것은 그곳이 아니지,
가고 있다
만일 무사히 도착한다면

꼭 한 벌씩 남는 컵과 스푼이 커플로 비치된 호텔에 젖은 양말을 널어놓고
방패 모양 십자가 고리에 달린 두 개의 열쇠 중
한 개만 시계 방향으로 잠근 채
거리로 갈 것이고

파리는 멈출 수 있겠네
그 허기의 끝에서
가로등이 자수 커튼을 들추는 식당 라마단의 새벽이 떨어뜨린 밥풀 위에,
촛불이 바람을 끄는 날처럼
고요하게

크고 붉은 손이 내리쳐 까만 점처럼 박힌 정지

그럴 수 있을까? 한참을 자다 깨도 방향은 바뀌지 않는다
가고 있다
모든 고도에는 비가 내리고 모든 이동은, 알 수 없음 윙윙거리며 파리는 날고

제자리로 돌아가 안전띠를 착용해주십시오 하늘 들판으로 달려가서는
돌아오지 않는 너의 맨발을
깨진 유리의 뜨거운 혀로 핥으며 태양은 뜨겠지만
춥지 않니?
보이지 않는 얼굴에 구름을 덮어주는데, 이 담요는 실밥이 풀려 빗소리처럼 바닥에 끌리는구나

나는 자리로 돌아가
부표도 없이 지나가는 고도에서 불 속의 글자처럼 사라지는 순간들을 몸으로 동여매고
가고 있다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려야만 열리는 방의 자물쇠와
커리를 나르는 크고 붉은 손을 생각하며

멈출 수 있을까? 까만 점처럼

물에 잠긴 도시 회랑에 켜진 촛불처럼
고요하게,
하루에 백팔십 번 종을 치는 태엽 시계에 관한 진담과
전생에 관한 농담으로
마음의 무언가가 비 내리는 물속에서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것 같다고 느끼며

가고 있다
너로부터 되도록 멀리

무사히 도착한다면
창문을 열고 내다볼 수 있을까? 객석과 객석을 오가는 사이 미지에 도착하는 파리처럼
처마에 매달린 빗방울,
푸른 기와의 밤이 비밀스럽게 품고 있는 보석들을 받으려고
손을 내밀 수 있을까?




청어 
Fishy Smell


익사한 신의 재단에는 물이 필요한가 불이 필요한가 이것은 거북이의 흰 수염에 관한 이야기거나 바다사자의 눈망울 그 불길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얼음으로부터 물을 구원하기 위해 생선을 녹이고 물로부터 물고기를 구원하기 위해 생선을 굽는 이야기 눈물을 흘린다는 것이 우리가 바다에서 왔다는 간증이 아닌 것처럼 잠을 잔다고 해서 우리가 죽음을 학습할 수 없는 것처럼 죽음을 졸업할 수 없는 것처럼 이것은 신앙에 대한 이야기거나 인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식사가 끝나고 슬픔이 끝나고 오로지 죽음만이 끝나지 않는 저녁이 와 내가 내 피 속에 빠져 익사하였을 때 나는 수장된 것인가 화장된 것인가


*신용목 : 1974년 경남 거창에서 태어나 2000년 작가세계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 『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 『아무 날의 도시』가 있으며, 시작문학상과 육사시문학상 젊은시인상을 받았다.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사)대한노래지도자협회
정종권의마이한반도
시낭송영상
리토피아창작시노래영상
기타영상
영코코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정기구독
리토피아후원회안내
신인상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