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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호/신작시/안명옥/고흐의 의자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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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3
댓글 0건 조회 3,093회 작성일 15-07-07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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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안명옥

고흐의 의자 
             

안락한 의자에선 상상력이 안 나와
불안정한 상태가 신의 축복이야 

물감을 짜먹으며 테오에게 편지를 쓰던 
충혈된 두 눈을 기억하는 의자

시간을 저축하는 일이 시를 쓰는 일이라면 
영원히 사는 일이 그림을 그리는 일이었다면 

고흐의 체온을 기억한다 고흐의 무게를 알고 있다 
가만히 앉아서 중얼거리던 목소리를 기억하는

삐걱거리는 나무계단을 올라와 
다락방 작은 창문을 가진 방에서
고흐가 귀를 자른 것을 이해한다는 표정을 짓는 의자 

겨우 주어진 이 한자리도
시간이 다되면 내줘야 하는 의자




신발
       

신었던 모든 신발들은 그리움을 품는다

신고 싶어도 신을 수 없는 신발 
벗어버리고 싶어도 신을 수밖에 없는 신발
누군가의 신발이 내 것처럼 느껴지던 신발
위태로운 길을 여기 저기 밟고 다니던 신발
고비사막을 건너 히말라야 산정에서 
인도 갠지스강으로 순례의 길 동참해주던 신발

강을 건너다 잃어버린 신발은 어디에서 어떤 생을 살까
신발 소리만 듣고도 누군지 알아보던 당신처럼
신발 소리를 내내 기다리던 날의 하루처럼
내 신발은 내 마음을 먼저 알고 길을 가곤 했었다

나는 불량품으로 태어났어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절차를 목격한 신발과
내가 더 자라지 않기를 바라던 신발은 버려도
이상한 일이야
신발장에 신발이 가득한데 신발이 없다
신지 않는 신발을 버리지도 못하고  
신고 싶어도 신을 수 없는 하이힐 구두들처럼 

무얼 또 절망할까
그런 날이면 나는 또 발목을 접 찔릴 것인가
벗어둔 신발이 늘 업어져 있는 검은 구두와
또 한 해를 넘기고
아침이 되어도 들어오지 않은 신발 때문에 
현관이 훤해지던 날
구두를 사러 갔다가 그냥 돌아온 얇은 지갑 같아

무얼 또 실패할까
신고 싶은 신발을 신고 남은 길을 가려고
폼 나는 신발을 샀다
신발이 바뀌니 걸음걸이가 바뀌고 
새 구두는 자꾸 불편하고 
차라리 쇼윈도우 마네킹이 되고 싶었다


*안명옥 : 2002년 시와시학 신춘문예 시 등단. 시집으로, 서사시집『소서노』와 장편서사시집『나, 진성은 신라의 왕이다』, 『칼』이 있고, 창작동화로 『강감찬과 납작코 오빛나』, 동화『금방울전』등이 있음. 성균 문학상, 바움문학상 작품상, 만해 ‘님’ 시인상 우수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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