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사이트 내 전체검색

수록작품(전체)

53호/미니서사/박금산/치앙마이 람 하스피틀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편집부3
댓글 0건 조회 3,348회 작성일 15-07-06 13:52

본문

미니서사
박금산

치앙마이 람 하스피틀 

  숙소 앞 도로로 차가 지나갔다. 침실에서 아이가 배 아프다고 소리를 질렀다. 아내는 웃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갔다. 남자는 한숨을 쉬었다. 잠시 후 아내가 공공병원을 알아왔다. 
  간호사는 친절했다. 남자는 여권을 내밀고 초진 서류를 작성했다. 대기실에는 노인들이 많았다. 생후 3개월 미만으로 보이는 영아도 있었다. 남자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눕기를 원했다. 그러나 1인용 플라스틱 의자는 눕는 용도가 아니었다. 
  의사는 몇 시부터 아팠느냐고 물었다. 남자는 전날 점심 무렵부터였다고 대답했다. 아이는 밥을 먹다가 배 아프다고 숟가락을 놓았다. 의사가 검사실로 가라고 했다. 남자와 아이는 소변을 제출했고 간호사는 주사기로 피를 뽑았다. 처음의 대기실로 돌아갔더니 환자들이 배로 늘어 있었다. 모두 노인들과 아이들이었다. 
  의사가 검사 결과를 이야기했다. 
  “맹장염입니다. 수술을 해야합니다.”
  “지금 당장 말입니까?”
  남자는 머뭇거렸다. 낯선 타국에서 아이의 몸에 칼을 들이밀 일이 고통스러웠다. 남자는 오후에 다시 오겠다고 말했다. 의사는 빨리 와야 한다고 말했다. 남자는 진찰실을 나왔다. 간호사가 수납창구를 안내하면서 말했다. 보험이 있으면 치앙마이 람 병원으로 가세요. 
  남자는 친구 의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국제전화임을 알리자 친구의 말이 빨라졌다. 가정의학과 전문의였다. 맹장염은 첫 통증 이후 24시간 내에 처치를 해야 2차 질환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터진 후에는 장기를 세척해야 한다고 했다. 남자는 증상을 물었다. 친구는 복부 통증이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커지고, 우하복부가 딱딱하게 굳는다고 대답했다. 남자는 아이를 눕히고 우하복부를 손으로 만졌다. 말랑말랑했다. 남자는 친구에게 아이의 상태를 설명했다. 시티를 촬영하면 95퍼센트 이상 확신할 수 있다는 것이 친구의 대답이었다. 병원에 시티 장비가 있는지 진료 환경을 잘 살펴보라 했다. 남자가 듣고 싶었던, 맹장염이 아니라는 말은 해주지 않았다. 

  작년의 일기를 꺼냈다. ‘올드 시티에서 밥을 먹었다. 아이가 머리가 아프고 배가 아프다 해서 집으로 돌아왔다’라고 쓴 문장이 있었다. ‘치앙마이가 아내로 하여금 맨손으로 새우껍질을 벗기게 하다’라고 적힌 문장, 남자는 아내에게 일기를 넘겼다. 아내는 아이를 위해 새우죽을 끓였던 지난해의 일을 기억해냈다. 아내는 아이의 증상을 물이 달라져서 생긴 배앓이로 판단했다. 

  다음날이 토요일이라 불안했다. 가족이 모두 차에 타고 치앙마이 람 병원으로 갔다. 어린이 병동이 따로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분위기가 산뜻했다. 쇼핑센터 토이 스토어처럼 쾌적했다. 미끄럼틀이 달린 놀이시설이 눈을 끌었다. 소파 등받이는 애니메이션 캐릭터 디자인이었다. 유니폼을 말끔하게 차려입고 하이힐을 신은 여직원들이 곳곳에서 동선을 안내했다. 
  의사는 체온을 체크하고 피와 소변 검사를 제안했다. 소변을 제출하고 피를 뽑았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아이는 침대에 누워서 컴퓨터 게임을 했다. 진단결과는 감기였다. 의사는 항생제와 해열진통제를 처방했다. 아내는 배앓이에 대해 물었다. 의사는 자기가 진단할 수 없으니 배 부분은 내과를 찾아가 다른 의사에게 진료를 더 받아야 한다고 했다. 우선 수납을 마쳐야 했다. 진료비가 2600밧(9만 1천 원)이었다. 공공병원에서 냈던 120밧보다 무려 스무 배 이상이 많았다. 보험회사에 제출할 진단서가 필요했다. 남자는 전자수첩을 열고 진단서의 영문명을 검색했다. 그 일은 불필요했다. 수납창구 직원은 영수증과 함께 진단서를 자동으로 발급해 주었다. 
  가족들은 대기실에 놓여 있는 초콜릿 음료를 누리기로 했다. 남자와 아내는 의사의 얼굴화장과 빛나던 다이아몬드 반지에 대해 얘기했다. 아이는 약봉지에 그려져 있는 토끼 그림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아이의 우하복부가 딱딱하게 굳을 때까지 내과 방문을 보류하기로 했다.  


*박금산 : 소설가. 1972년 여수 출생. <문예중앙> 신인상으로 등단. 고려대 국문과, 동대학원 졸업. 서울과기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소설집 『생일선물』, 『바디페인팅』, 『그녀는 나의 발가락을 보았을까』. 장편소설 『아일랜드 식탁』, 『존재인 척 아닌 척』.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사)대한노래지도자협회
정종권의마이한반도
시낭송영상
리토피아창작시노래영상
기타영상
영코코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정기구독
리토피아후원회안내
신인상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