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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호/미니서사/김혜정/금붕어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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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니서사
미니서사
김혜정
금붕어의 시간
그와 그녀는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십 년 만인데 서로를 단번에 알아보았다. 그가 그녀에게 카페에 가자고 했고 그녀는 말없이 그를 따랐다.
희미한 불빛이 그들을 과거의 어느 시간으로 인도했고 각자 깊은 상념에 잠겼다. 그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머리가 짧아진 것 외에는 달라진 게 없었다. 하지만 예전의 그녀라고도 할 수 없었다. 그녀의 분위기는 전보다 훨씬 지적이고 세련미가 흘렀다. 그는 그녀에게서 익숙함과 낯섦을 동시에 느꼈다. 그녀에게 남자가 있다는 것은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남자가 없는 여자는 저렇게 싱그러울 수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가슴이 시큰했다. 그녀는 말이 없었다. 그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한동안 형언할 수 없는 기운이 둘 사이를 오갔다. 십 년 전의 감정이 사라지지 않고 몸속에 웅크리고 있다가 한순간에 깨어날 줄은 두 사람 다 알지 못했다. 그가 먼저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넌 여전하다.”
“너도.”
그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녀는 뿌리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입가에 수줍은 미소가 걸렸다. 그의 마음이 바다 한가운데서 파도를 만난 배처럼 출렁였다. 그는 그녀의 손을 더욱 세게 잡았다. 그의 온기가 그녀에게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그녀는 가슴이 저릿했다. 그는 그녀에게 깊이 빨려 들어갔다.
“결혼은 했지?”
그녀가 그에게 물었다.
“으응, 근데 이혼했어. 너는?”
그가 혼자라는 데 그녀는 안도감을 느꼈다.
“…….”
“당연한 걸 물었지?”
“오래 전에 한 남자에게 버림받았는데 그 뒤로 남자라면 좀 두려워.”
그 역시 오래 전 한 여자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해왔다.
그는 오래도록 그녀를 기다렸다고 말하고 싶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십 년 전 그날 그녀와 만나기로 했던 연못을 떠올렸다.
“그날 그 연못에 있던 금붕어들은 다 죽었겠지?”
그가 말했다.
“금붕어라니? 그날 연못은 텅 비어 있었는데.”
“무슨 소리야? 금붕어가 얼마나 많았는데. 내가 먹이도 주었는걸.”
그녀는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본 것 또한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순간, 그의 머릿속에 섬광처럼 스쳐가는 게 있었다. 오래 전 그날 무언가가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았고,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 김혜정 : 여수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을 졸업. 1996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단편「비디오가게 남자」당선. 소설집 『복어가 배를 부풀리는 까닭은』『바람의 집』『수상한 이웃』장편소설『달의 문(門)』『독립명랑소녀』‘제15회 서라벌문학상 신인상’‘간행물윤리위원회 우수청소년 저작상’‘송순문학상’‘2013 아르코창작지원금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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