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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호/오늘의 시인/김왕노/대표시 수국꽃 수의 외 4편/신작시 리얼한 TV 외 4편/시론 영원한 애송시,그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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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3
댓글 0건 조회 5,450회 작성일 15-07-07 10:15

본문

오늘의 시인
김왕노

대표시

수국 꽃 수의
 

큰형 동생네 우리 식구가 모여
어머니 수의를 
좋은 삼베로 미리 장만하자 상의하였다.
다소 시적인 어머니 그 말씀 듣고는
그 정성 다 알지만 
세상이 다 수읜데 그럴 필요 없단다.
아침 새소리도 수의였고
어젯밤 아버지가 다녀가신 어머니의 꿈이 수의였고
그까짓 죽은 몸이 입고 가는 옷 한 벌보다
헐벗은 마음이 곱게 입고 가는
세상의 아름다운 기억 한 벌이
세상 그 어떤 수의보다 더 좋은 수의라며
여유가 있다면 마당에 꽃이나 더 심으라고 하셨다.
그 말씀 후 어머니 잠든 머리 곁 여름 마당에
수국 꽃 환한 수의가 철마다 곱게 놓여있다.
 




물고기 여자와의 사랑 
 

나 그 여자 몸속에 들어가 
그 여자를 사랑하였다 
그 여자의 생을 
가시로 콱콱 찌르며 사랑하였다 
사랑은 마취제여서 
그 여자 비명을 지르지도 않았다 
내가 그 여자의 전생을 관통하고 있는지 
나도 몰랐다 
 

나 그 여자 속의 가시였다
유선형 몸을 지탱시켜주던 가시였다 
서로가 서로에게 
먼 훗날 독이란 걸 모르고 
나 그 여자 몸속의 가시였다 

내가 살을 녹이고 
살은 가시를 버리고 
냉정하게 되돌아섬을 모르고 
모순의 장난을 눈치도 못 채고 
생의 한철 내내 
나 그 여자의 몸속에 들어가 
그 여자를 사랑하였다 
 
그 여자의 생을 콱콱 찌르면서 보냈다 





네가 나를 자작나무라 부를 때 


네가 나를 자작나무라 부르고 떠난 후 
난 자작나무가 되었다 
누군가를 그 무엇이라 불러준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때로는 위험한가를 알지만 
자작나무니 풀꽃으로 부르기 위해 
제 영혼의 입술을 가다듬고 
셀 수 없이 익혔을 아름다운 발성법 
누구나 애절하게 한 사람을 그 무엇이라 부르고 싶거나 부르지만 
한 사람은 부르는 소리 전혀 들리지 않는 곳으로 흘러가거나 
세상 건너편에 서 있다 
우리가 서로를 그 무엇이라 불러준다면 
우리는 기꺼이 그 무엇이 되어 어둑한 골목에 
환한 외등이나 꽃으로 밤새 타오르며 기다리자 
새벽이 오는 발소리를 그렇게 기다리자 
네가 나를 자작나무라 불러주었듯 
너를 별이라 불러주었을 때 캄캄한 자작나무숲 위로 
네가 별로 떠올라 휘날리면 나만의 별이라 고집하지 않겠다

네가 나를 자작나무라 부를 때 난 자작나무가 되었다 




그 여자 


덕적도에도 새가 있었느냐 물었다 
새가 있었다 한다 
바다 자락에 묻혀 잠잤던 새 
가끔 가시나무 끝에 걸려 울었다 했다 
살 조개 같은 가슴 열어 울었다 했다 
덕적도에도 저녁이 오더냐고 물었다 
한 끼의 밥을 안치면 
저녁은 쌀뜨물처럼 풀려서 온다 했다
물굽이 넘어 푸른 별 앞세워 온다고 했다 
그 여자의 가슴속으로
발목이 무릎이 잠겨 가며 자꾸 물었다

덕적도는 그 여자 
과연 알았을까 
그 여자 기슭 어디 자꾸 내려놓고 싶던 닻
죄 많은 정박의 꿈을
덕적도 그 여자는 




위독


위독은 거대한 짐승입니다. 
위독한 사이 철학자가 되기도 하고 울부짖는 얼굴이 되기도 합니다. 
위독한 자는 심연에 가라앉는 고래가 되어 잠들지 않는 뇌로 우주를 명상하기도 합니다.
위독하다는 소식이 짐승 한 마리로 먼 길을 밤 새워 왔을 때 
나는 날 간 같은 영혼을 던져주려 했습니다. 살 몇 근 거뜬히 베어주려 했습니다. 

일생에 몇 번 위독이란 짐승이 되었을 때
스스로의 살점을 녹여 뼈마디까지 드러나게 한답니다.
무엇을 지탱하기 위해 살가죽을 밀며 드러나는 뼈마디들인지 
죄마저 끝까지 버티게 해주는 뼈마디의 의도가 어디에 숨어 있는지 
결국 죽음 속으로 무너져가면서도 왜 쉬 삭아 내리지 않고 
마지막 까지 관속의 어둠을 견디는 뼈인지 
후략의 말 뒤에 무엇을 덧보태고 싶은지 스스로 묻기도 한답니다. 
멀리서 그대 위독이란 짐승이 되어 누워있습니다.

그대에게서 철철 쏟아져 내리는 마지막 말들이 자귀나무 뿌리를 적셨는지 
미루나무 뿌리를 적셨는지 창밖의 계절은 독 오른 듯 푸르다는데 
그대 이제 이승의 살점 다 빠지고 뼈만 앙상해진 위독이란 짐승 
사랑이고 그리움이고 다 말라가 피골이 상접한 짐승 
그러나 지금은 본성이 살아나 밤하늘을 향해 우우 울부짖는 
지상의 마지막 순결한 한 마리의 짐승 

나마저 화답해 우우 우는 밤이 산맥을 넘어 강을 건너 저렇게 성큼성큼 옵니다. 





신작시

리얼한 TV


리얼한 TV를 보면 슬퍼, 아내의 감시를 의뢰하면, 아내는 대부분 바람을 피워, 대부분 어린 남자와, 돈도 주고, 심지어 차 까지 사주는, 그런데 아내도 남편의 감시를 의뢰해, 그러면 남편도 그 누군가와 바람을 피워, 불륜을 데리고 술집도 가고 모텔도 가고, 리얼한 TV 를 보면 슬퍼, 어디나 바람 난 세상, 뒤죽박죽인 관계, 어떤 경우는 아내와 이혼하려, 어린 남자를 아내에게 접근시켜, 간통으로 몰아가기 위한 남편이 무서워, 남편의 계략에 쉽게 넘어간 아내도 허무맹랑해, 리얼한 TV를 보면 리얼해, 과감한 애정 표현, 늦은 술집이 있어, 모텔이 있어, 카섹스가 있어, 저 숱한 내연의 관계들, 리얼한 TV를 보면 늘 리얼해, 콩가루 나라, 콩가루 집안이 보여, 리얼한 TV를 보면 늘 슬퍼, 저 숱한 외도들, 저 망가진 모습들, 저 숱한 스캔들, 우리의 자화상이 있는 리얼한 TV를 보면 늘 슬퍼, 우습도록 슬퍼, 리얼한 TV를 보면 정말 리얼해, 리얼한 TV를 보는 나도 참 리얼해




나와 백석과 하얀 차와 한계령


가난한 내가 
나타샤를 사랑하는 백석처럼 누군가를 사랑하면
오늘 밤 푹푹 눈은 내려라.

나도 누군가를 사랑하여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앉아 적설의 량만큼 그리움을 푹푹 쌓는다.
그리움을 쌓으면서 생각한다.
나와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와
눈이 푹푹 쌓이는 밤에는
차를 타고 한계령을 넘어가 한 살림 차려 살자

눈은 푹푹 내리고
나는 그 누군가를 생각하고
그 누군가는 이 쌓이는 적설의 그리움이라면
아니 올 리가 없다.
한계령을 넘어간다는 것은 인간의 한계를 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이름을 버리려는 것이 아니다.
사랑의 한계를 넘어가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내리고
아름다운 그 누군가는 나를 사랑하고
주차장에서 하얗게 눈을 뒤집어 쓴 차는 오늘 밤이 좋아
부릉 부릉 혼자서 시동을 걸어 볼 것이다.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패러디해서




그리운 조랑말


난 말에 대해 연연하지 않는다. 애월의 조랑말에 연연한다. 조랑말똥 냄새나는 밤에 연연한다. 조랑말똥냄새 생각하면 내 그리움에 피가 돈다. 난 조용한 밤에 대해 연연하지 않는다. 조랑말 울음 푸른 밤에 연연한다. 암조랑 말 등에 올라타고 히히힝 울어보고 싶은 조랑말의 마음에 연연한다. 떨어지는 별에 연연하지 않는다. 조랑말 등에 떨어지는 별빛에 연연한다. 조랑말 그 짧은 보폭으로 사랑을 찾아가는 조랑말똥냄새 자욱한 밤의 별에 연연한다. 달빛 넘쳐나는 밤에 연연하지 않는다. 암 조랑말이 발정한 달밤에 연연한다. 그 수태의 밤에 연연한다. 세월이 우는 날에 연연하지 않는다. 조랑말 슬픈 눈에만 연연한다. 조랑말이라 불리는 너와 조랑말이라 불리고 싶은 내가 노란 유채 밭에서 노란 사랑에 취해 꺽꺽 숨넘어가는 날에 연연한다.




신화의 나날


거기 아직 동굴이 있지 않느냐. 동굴에 들어앉아 먹어야 할 쑥과 마늘이 있지 않느냐.
거기서 보내야 할 백일이 눈 먼 동굴새우와 있지 않느냐.

아니면 우리의 울력으로 동굴을 만들고 그곳에다 태몽 깊은 밤을 들이고 우리 신화의 수태로 이끄는 삼신할머니나 모시자. 낡은 신화를 갈아치우려고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야 하지 않는가. 다시 반도에 신화가 물결치고 신화의 고래울음 들리고 우리는 신화속의 남녀로 청동발자국 남기면서 자작나무 숲을 지나 우리의 집터에 이르지 않느냐.

신화를 잃어버린 날은 영혼이 사라진 날 같아 작은 바람에도 뿌리 째 뽑히려는 나무 같지 않았느냐. 때로는 백두대간을 따라 내려오다가 길을 놓쳐 허름한 저녁에 이른 푸른 신화를 찾아…… 신화를 만난다는 것만큼 큰 대박이 어디 있느냐. 지은 신화만큼 지상에 거대한 구조물이 어디 있으랴.

거기 아직 동굴이 있지 않느냐. 곰인 너와 호랑이인 내가 찾아들어 쑥과 마늘로 마음을 다질 동굴이 있지 않느냐. 너와 나로부터 시작될 개벽의 날이 우리의 발소리에 잠깨려고 태산처럼 웅크려 있지 않는가.

신화가 없는 것은 사지와 같은 곳이다.  신화에 젖지 않는 풀꽃은 피어도 맹한 꽃이다. 피어도 헛꽃이다. 신화에 흠뻑 젖지 않고 사랑의 미학이니 사랑의 수사학이니 사랑학을 강의 하는 양지바른 곳은 없다.

거기 아직 동굴이 있지 않느냐. 신화가 숨결을 고르면서 태아로 자랄 밀도 높고 따뜻한 어둠이 있지 않느냐. 아니면 신화가 물결치는 바다는, 신화가 풀꽃으로 수천 수 만 송이 피어나는 벌판은

가자, 신화의 동굴을 찾으려고 신화의 동굴을 탐지하는 더듬이를 수천 수 만개 높이 세우고, 종적을 감췄다는 신화의 동굴은 어딘가에 분명 있다. 쿵쾅거리는 고래만한 심장을 가진 신화는 있다. 물푸레나무 숲을 지나고 성황당을 지나 고로쇠나무 숲을 지나면 거기 신화가 아니면 그 무엇이 있을 수 있느냐.

지금은 신화의 동굴을 찾아가기 쉬운 계절, 아니면 오늘이 바로 그 신화를 찾아가야 할 날이 아닌가. 컨디션이 좋은 꿈을 앞세우고, 신화는 고리타분하거나 타성에 젖어 드는 우리를 몰아 새로운 땅에 이르게 하는 것, 새로운 등불을 매달게 하는 것

바람과 물과 불과 공기로 다시 무두질하고 담금질해 내어야 할 우리의 신화

거기 아직 동굴이 있지 않느냐, 오만으로 꼿꼿했던 허리를 굽히고 들어가야 할 신화의 동굴, 당신의 내면이라 할 수 있는 신화의 동굴은 바로 거기 있지 않느냐.





사랑은 짐승


사랑은 자동차만한 심장이 쿵쾅거리는 짐승입니다.
눈은 하도 거서 커다란 우물만 합니다.
한 눈은 빛을 보고 한 눈은 어둠을 봅니다.
사랑은 자맥질에도 능해 세상 가장 깊은 곳에 가라앉아
온몸에 푸른 이끼가 돋아난 체 명상에 잠깁니다.
좌 뇌로는 우주를 생각하고 우 뇌로는 사람을 생각합니다.

사랑은 왕방울만한 별이 뜨는 초원 같은 가슴의 짐승입니다.
가슴에 유목하는 꿈이 게르를 짓기도 합니다.
가슴에 광야의 닭울음소리 메아리칩니다.
가슴 한 편에는 아무르 강 같은 강물이 흐르고
가슴 다른 한 편에는 산이 굽이치는 크나큰 산맥이 있습니다. 

사랑은 너무 크나큰 짐승이어서 혼자서는 기르지 못합니다.
사랑은 너무 크나큰 짐승이어서 혼자서는 감당하지 못합니다.
사랑은 너무 크나큰 짐승이어서 혼자서는 몰아가지 못합니다.
사랑은 너무 크나큰 짐승이어서 혼자서는 재우지는 못합니다.

사랑은 지금도 자동차만한 심장이 쿵쾅거리는 짐승입니다.





영원한 애송시 그 여자


여자란 남자의 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여자에게도 가장 큰 영향을 끼친다. 내 시에도 자주 여자가 등장하면서 내 시도 여자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난 여자인 어머니가 이 세상에 불러낸 어린 짐승이었다. 어미의 속을 다 갉아먹는 염낭거미 새끼 같았다. 어머니의 살과 피로 이루어졌으므로 난 남자의 의식 보다는 여성편향적인 의식을 가졌는지 모른다. 살아가는 데 있어서 내게 가장 영향을 많이 준 것도 앞서 언급한 것처럼 여자다. 난 여자의 섬세한 면을 좋아한다. 여자의 부드러움을 좋아한다. 여자의 표독스러움을 좋아한다. 히프가 둥그런 다산성의 여신상을 좋아한다. 여자는 생명의 출구를 가졌다. 우리는 끝없는 무두질로 그 곳에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기를 기원해 왔다. 여자란 존재가치는 우리 모든 존재의 시원인 것이다. 아름다운 표정의 여자를 보면 감동 받을 수밖에 없다.  어느 책 한권 읽는 것보다 어느 베스트셀러 한권 읽는 것보다 더 많은 감동과 가르침을 준다. 여자란 문장만큼 유장하고 때로는 간결하고 때로는 부드럽고 때로는 뜨거운 것이 없다. 내 어릴 때 나에게 감동을 준 아이는 사촌지간이었던 현미와 현주였다. 초등학교 때 아버지가 군인이어서 4 학년 때까지 같이 학교에 다녔으나 제주도로 돌아갔다.  현미는 총명했고 현주는 선하고 아름다웠다. 학교에 갈 때마다 기뻤던 것은 그들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들이 떠나자 가슴이 허전했고 지금도 가끔 그들의 소식이 어디 있지 않을까 세상에 귀 기울인다. 중학교 때는 정아였다. 멀리서 바라만 보아도 이유도 없이 아래가 부풀어 오르고 부풀어 오른 나를 감춘다고 곤욕을 치르면서 멀리서 그녀를 훔쳐보았다. 고등학교 때는 말 한마디 건너지 않았던 이웃에 이사 온 아이였다. 서로 마주보다가 얼굴이 붉게 물들어 죄지은 듯이 도망치기도 했다. 군 시절엔 입대 했을 때는 휴가 나와 사귄 영아였다.
매사에 과감했던 나는 여자에 눈 뜨고 싶어 제일 처음 버스에서 내리는 아름다운 여자와 사귀기로 하고 아침 버스 터미널에 있었다. 영아를 만났다. 친척 집에 다니러 온 대학생이었던 그녀를 만나 낯선 곳에서 하루 밤이란 말로 앞세우고 동해안을 따라 여행하다가 경주에 이르러 우리의 신화는 탄생했다. 그 서투름, 그 놀라움, 첫 여자, 첫 남자로 보낸 밤이 몽환 같았다. 그 후로 여자는 내가 탐독해야 할 가장 아름다운 책이라는 것을 알았다. 여자가 감추고 있던 신비를 어느 갈피에서 만나기도 했다. 독서 삼매경에 빠지듯이 여자에 빠지기도 했다. 그리고 여자의 질투란 세상에서 가장 날카로운 가시이다. 그 가시가 있으므로 여자는 더 여자다운 것이다. 여자가 질투로 생을 사랑을 망쳐버리는 경우가 있으나 그것이 곧 자기애가 아니라 상대에 대한 사랑이라 모순이지만 여자의 종말을 볼 때 극에 달한 전율을 느낀다. 여자가 없다면 문학의 주제는 당연히 없어진다. 여자와 남자 사이에 사랑이란 매개체가 있어 극적으로 상황이 변하거나 생의 아름다움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은밀히 다가오는 여자의 눈빛은 우주의 깊은 속을 닮았다. 멀어져 가는 여자의 뒷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큰 슬픔을 던진다. 한 남자가 한 여자에 가지는 지독한 사랑이 있다고 하자. 하나 그 사랑이 남자만의 지독한 사랑이라면 문제가 있다. 그러므로 여자와의 사랑은 오묘하고 불확실한 방향성을 가졌기에 남자는 더 애지중지하면서 여자의 사랑에 매달린다. 남자에게 여자가 없다면 생의 의미가 없어진다. 문학에서도 더더욱 그렇다. 여자를 염두에 두지 않았으나 다 여자를 의식한 문학이다. 모든 문학은 지향점을 가졌고 이상향을 가졌기에 그 곳으로 가보면 여자가 있다. 여자의 화려한 오후가 있다. 하여 문학은 여자와의 이루어진 사랑보다는 미완의 사랑에 더 집착한다.  여자에게 가려다가 뒤틀려버린 것을 소재로 그리움이란 첨가제를 넣어 문학을 한다. 남자란 곧 여자를 통해 완성되므로 완전한 여자 완전한 남자로 그 어떤 대상을 놓치고 이뤄질 수는 없다.  내가 문학적으로 여자를 꿈꾸는 것은 여자에게 완전한 남자 하나로 서기 위한 내 바람이기도 할 것이다. 여자가 나의 이상향이자 내 무덤이 되기도 할 것이다. 하나 내가 문학으로 가는 길에는 여자와의 아름다운 동반이 있다. 여자로 인해 내 가슴에 생기는 견딜 수 없는 그리움이 있다. 그 그리움을 파헤치고 그리움을 엮고 주체할 수 없는 그리움으로 울고불고 하고 하는 얼룩들이 나의 문학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여자란 묘해 남자로부터 무궁무진한 생산성을 가지게 한다. 강한 영혼의 장딴지를 가지게 하고 끝없이 여자에게 몰입하게 하는 강한 흡입력을 가지고 있다. 쉼 없이 남자를 달리게 한다. 강한 남자는 강한 여자가 길러낸 것이다. 여자에 대한 그리움이 내 시에서 없는 사랑에 대한 에스프리 또는 라산스카로 어머니로 안개 우황 등으로 나타난다. 나의 영원한 주제이자 뜨거운 화두가 바로 여자다.





없는 사랑에 대한 에스프리 
  
오늘도 새파란 하늘 아래 풀만 눈부셨습니다. 
만나지 못할 것을 압니다. 
그래도 세월은 가겠지만 
세월이 가도 만나지 못할 것을 압니다. 
  
만나지 못하는 날에도 꽃은 즐겁고 
새의 부리는 
노래하며 기쁨에 물들어 노랗습니다. 
  
오늘도 나는 없는 사랑을 기다립니다. 
만나지 못하더라도 
터진 그리움을 한 뜸 한 뜸 깁습니다. 
만나지 못하더라도 
나는 없는 사랑을 내 사랑이라 나직이 불러봅니다. 
  
없는 사랑에 대한 에스프리에서 없는 사랑은 곁에 없는 여자이다. 내 생에 대해 끝없이 갈증을 일으키는 여자다. 곁에 없어도 나의 여자라 불러주어야 할 사랑이다. 세상이 아름다울 때 사랑하는 여자가 곁에 없으면 그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슬픔의 깊이는 해저보다 더 깊다. 곁에 없어도 내 사랑이라 부르는 것은 집착이 아니라 바로 사랑이다.
  
  
  
  
  
라산스카 

라산스카 안녕한가. 아직 난 죄가 아름다운 이 거리에서 휴가 중이다. 우리의 죄에 쓰러져가는 도시의 새벽이며 이 도시 저녁 불빛이며 그래도 죄 속에 무성하게 피어나는 들풀이 아름다운 맬랑꼬리에서 내가 빠져나갈 수 없는 죄의 풀밭에서 인사한다. 라산스카 안녕한가. 
  
맬랑꼬리의 저녁 속으로 사라져가는 소녀의 짧은 머리카락이 안타까운 거리다. 지워도 선명하게 살아나는 죄의 문신으로 난 홀로 한사람의 이름을 불러보며 한 사람의 이름 속으로 저물어가 본다. 라산스카 죄로 가난한 내 이름이 그 누군가의 가슴에 푸른 달빛처럼 떠오를 리 없는 날인데 라산스카 누구나 저물기 위해 여기 머무르고 우리의 만남이 서로에 대한 조문이었음을 언젠가는 깨닫는다. 하지만 이별을 등에 맞고 이곳까지 온 내 가난한 청춘의 단추를 다시 끼워 본다. 라산스카여. 안녕한가. 
  
내 죽은 의식에서 천남성 피어나는 날에는 이 맬랑꼬리를 떠나며 맬랑꼬리에서 휴가는 즐거웠다고 말 할 수 있다. 맬랑꼬리에 기대어 놓았던 푸른 하늘에 대한 믿음과 인간에 대한 사랑은 끝나지 않았음을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라산스카 안녕한가. 맬랑꼬리에서 순례로도 내 죄의 몸은 그대로 죄의 몸이지만 내 죄 속에 드나드는 순결한 바람이 내 죄에 물들지 말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맬랑꼬리다. 라산스카 안녕한가. 
  
라산스카 안녕한가. 나와 함께 맬랑꼬리로 오지 못한 지친 사람들과 틈새 없는 일과를 위해 애도한다. 하늘을 수놓다가 지친 비둘기의 아침과 사랑을 잃고 모든 것을 잃었다고 자포자기해 간 후배의 종말에 애도한다. 라산스카여 안녕한가. 여기 함께 오지 못한 파르티잔과 그의 녹슨 장총을, 아직 그가 가진 칼끝 같은 이념을 애도한다. 맬랑꼬리에서 핀 꽃과 그가 남긴 열매가 더 단단하게 익어가는 맬랑꼬리의 계절인데 내 죄의 한 철인데 라산스카 안녕한가. 
  
라산스카여. 언제 맬랑꼬리를 떠나며 맬랑꼬리의 따뜻한 별을 가슴에 넣어 네게로 가겠다. 국경의 마을 같은 맬랑꼬리에서 총칼처럼 덜커덕거리는 금속성이 새벽꿈을 깨우기도 하는 날이다. 누가 가슴에 비수를 품고 잠드는 밤이지만 누구나 까마득한 반도의 별을 바라보며 함께 잠드는 맬랑꼬리의 밤, 라산스카여 오늘도 안녕 하라. 내 자주 입에 올리는 그레고리 잠자와 갑충과 북방여치 같은 얼굴로 찾아가던 라산스카여 안녕 하라. 
  
 라산스카는 지명일 수 있고 그리운 여자일 수 있다. 중의적인 표현이므로 이 시의 출발점은 바로 그리운 여자란 대상에서 출발하여 라산스카에 이른 시다. 라산스카를 향하는 것은 여자를 향하는 나의 자세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말하고 있다. 라산스카로 가는 사내는 가슴에 따뜻한 별을 넣고 가야 한다. 맬랑꼬리를 뿌리치면서 가야 한다. 맬랑꼬리를 뿌리친 금단증세로 침 질질 흘리면서 절뚝이면서 그러나 부릅뜬 눈으로 가야한다. 안녕한가, 자꾸 묻는다는 것은 안녕 하라는 기원이면서 영혼의 짧은 보폭이 라산스카를 향해 가면서 내는 발소리인 것이다.  누구에게나 라산스카가 있고 누구나 그곳을 순례지로 오체투지하며 가고 있는 것이다. 
  



별 수제비
  
어머니 저 큰 밤하늘을 솥으로 걸어놓고
어머니 청춘을 반죽해
별수제비로 뜯어 넣으신다.
세상 먼 곳으로 갔다가
가파른 골목 지나 허기진 세상 모든 아들 돌아와
별 수제비 한 그릇 거뜬하게 퍼 먹으라고
밤새 저 큰 밤하늘을 솥으로 걸어놓고 
별 수제비 쑤신다.
어머니 사랑 저렇게 밤새 환하시다.

어머니는 나를 이 더러운 세상에 낳은 원수이자 내 생명의 은인이다. 무조건 적인 사랑을 나에게 주므로 난 사랑의 중요성을 몰랐는지도 모른다. 아니 여자에 대한 존경심이 사라졌는지 모른다. 하나 어머니의 사랑은 가면 갈수록 빛을 발한다.  어머니는 여자의 상징이자 희생의 상징이다. 어머니는 세상 불가능한 모든 것은 가능하게 하는 전지전능하신 사랑을 가지셨다. 난 그 전지전능한 사랑을 질투하는지도 모른다. 그 사랑을 얻기 위해 뺏기 위해 배우기 위해 난 여자에게 다가가는지 모른다. 그러나 난 불가능함을 안다. 진실한 여자의 사랑 앞에 무릎 꿇고 만다, 내가 모성애에 굶주린 한 마리 짐승이 되는 것도 어머니의 사랑에 중독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궤나 
  
정강이뼈로 만든 악기가 있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그 정강이뼈로 만든 악기
  
그리워질 때면 그립다고 부는 궤나
그리움보다 더 깊고 길게 부는 궤나
들판의 노을을 붉게 흩어 놓는 궤나 소리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짐승들을 울게 하는 소리
  
오늘은 이 거리를 가는데 종일 정강이뼈가 아파 
전생에 두고 온 누가 
전생에 두고 온 내 정강이뼈를 불고 있나 보다
그립다 그립다고 종일 불고 있나 보다 

전생에 두고 온 것이 무엇일까? 전생의 집, 전생의 자작나무 숲, 전생의 거리, 전생의 공장, 전생의 혁명, 전생의 봄밤, 전생의 전리품, 전생의 호수, 전생의 물총새, 전생의 달맞이 꽃, 아니 내가 전생에 두고 온 것은 한 여자다. 아직 전생을 떠나 내게 오지 못한 한 여자일 수 있다. 그 여자가 내가 거두어 이승으로 가져오지 못한 정강이뼈를 불고 있기에 난 가끔 전생 쪽으로 고개를 돌리기도 하는 것이다. 인연설화가 있다면 그 인연설화는 모름지기 다 여자와 맞닿아 있다. 생의 애절함도 갈급함도 다 여자로부터 온다. 내가 가끔 뒤를 돌아보는 것도 함께 오지 못한 여자를, 가만히 손 내밀어 데려오지 못한 한 여자에 대한 미련 때문일 것이다.




안개 당신 

안개란 당신, 있으나 잡으면 잡히지 않는 안개라는 당신 
모두가 돌아간 밤, 세상에서 안개로 피어오르는 당신, 끝 
없이 자욱한 당신, 안으면 한 없이 안겨오나 실체가 없는 
당신, 안개라는 당신, 당신이 길을 막고 시야를 가려도 원 
망할 수 없는 당신, 안개란 당신, 당신 안에서 모든 게 지 
체되어 슬픔이 내 오랜 동료, 안개란 당신, 미루나무보다 
더 키 큰 당신, 벌판 보다 더 넓은 당신, 강 보다 더 깊은 
당신, 안개란 당신, 어디나 있으나 어디나 없으며 날 외롭 
게 하는 안개란 당신, 까르르 웃으며 안기고 싶은 당신, 
안개란 당신, 참 많은 당신, 전혀 없는 당신, 안개란 당신 

여자의 실체에 대해서 생각한 적이 있다. 여자란 안개라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미루나무 숲 사이로 자욱하게 흐르는 안개는 끝없는 감동으로 몰고 간다. 샛강에 피어오르는 물안개는 신비하기까지 하다. 안개를 침대로 하여 누우면 구천을 꿈으로 날아다닐 것 같다. 그러나 베일에 가려진 여자, 은밀한 여자, 알 듯 모를 듯 한 여자, 비밀의 방에 홀로 앉아있는 여자, 벽속의 여자, 여자의 실체에 대해서 무궁무진한 생각이 나온다.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여자의 소유욕은 남자를 소유하고 남자가 꿈꾸는 세상까지 소유하려 한다. 그러나 여자의 그 행동은 아름답다. 그러므로 남자가 여자에게 빠질 때는 모든 것을 올 인하게 된다. 여자의 실체란 잡으면 없고 놓으면 잡히는 것이다. 그것으로 안달 나는 것이 또 남자라 자꾸 여자를 안으려 한다. 실체의 불분명이 여자의 무기이자 여자의 속성이기도 하다. 안개 같은 여자로 절망의 터널을 지금도 위험하게 혼자 걸어가는 사람이 잇는 것이다.




늦은 저녁 모서리에 너를 낙서하는 날이 시작되었다. 

언제 넌 내 가슴을 지그시 밟고 간 백 년 전 꽃잎이었던가. 

내 마음 지층에 남겨진 네 발자국은 
숱한 내 고열과 생의 무게로 눈부신 화석으로 남았다. 
물방울 화석보다 더 고운 네 발자국에 
내 뺨을 문지르며 아직도 네가 나타나지 않는 늦은 저녁 모서리에 
너를 낙서하는 날이 시작되었다. 

가로등 켜지는 나직한 소리가 네 발자국 소린가 
깜짝깜짝 놀라는 사이사이로 푸른 계절이 지나가버리거나 비가 내리기도 했다. 
낯선 문장이 오래 서성거리기도 했다. 

초승달에 마음 베여 흐느낄 때까지 나의 낙서 속으로 졸음이 찾아들 때까지 
그립다고 했다가 그렇지 안다고 했다가 
그럴지 모른다고 했다가 그럴 수도 있다고 했다가 

시간은 증오마저 향기를 품게 하는데 
언제 넌 내 가슴을 지그시 밟고 간 백 년 전 꽃잎이었던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뚜렷해지는 기억의 잎맥들 
난 꽃잎을 그렸다가 
네 얼굴을 그렸다가 보고 싶다고 했다가 
그렇지 않다고 했다가 죽을 정도로 보고 싶다고 했다가 
죽이고 싶도록 사랑한다고 했다가 널 만난 걸 후회한다고 했다가 
심한 발작을 일으키는 추억을 다독거렸다가 

저녁 모서리에 너를 낙서하는 동안에도 
넌 내 가슴을 지그시 밟고 가는 지금도 그 백 년 전 꽃잎인가. 
물기 머금은 듯 이 향기는 
그리고 밤하늘에 무수히 마중 나온 저 별들은 

나는 널 사랑하다가 죽어 버리려고 한 날들이 있었다. 

너와 나는 서로를 통과해 멀어져 가는 안개라 한 적이 있었다. 서로를 축축이 적시다가는 
네게 젖은 나를 뽀얗게 말린다고 바람을 기다린 적도 있었지만 
이제 묻고 싶다. 내 안에 꽃잎의 발자국화석으로 남아있는 너의 흔적들 
언제 넌 내 가슴을 지그시 밟고 간 백 년 전 꽃잎이었던가. 
 

누가 내 가슴을 지그시 밟고 갔다. 그 발자국의 주인공은 짐승도 아니고 청동의 발자국을 가진 신화도 아니고 여자이다. 난 그 발자국을 운명처럼 가슴에 품고 살아 갈 수밖에 없다. 여자의 이름을 나직이 부르면서 숲 속을 산책할 수밖에 없다. 꽃 앞에 쪼그려 앉아 꽃잎에 맺힌 이슬방울을 바라 볼 수밖에 없다. 휘날리다 낙화의 길 가는 꽃잎 앞에 울먹일 수밖에 없다. 세상 모든 꽃을 위해 두 손을 모을 수밖에 없다. 내가 꽃이라 불러주지 못한 여자에게 속죄 할 수밖에 없다.





우황
 
밤새 뼈골로 그대를 앓았다.
 
그대를 앓고 난 아침, 밤새 몇 그램의 우황이
내 몸에 생겼는지
왜 쓴 쓸개즙보다 더한 우황으로 오는 것이
사랑이라 믿어야 하는지
 
닫아건 창문을 열어젖힌다.
그리운 것들은 약속이나 한 듯
더 먼 곳으로 물러서 있는 아침
 
난 우황 든 소 한 마리로 운다.
언덕에 누운 우황 든 소 한 마리로도
종일 되새김질해야 할 그대라는 사랑
 
아침기운을 타고 
이슬 반짝이는 풀밭까지 번져가는
내 울음이 안쓰럽다.
하나 이 서러운 울음을 앞세워 
풀밭까지 가야한다.
 
풀잎을 뜯어야 그대를 더 앓는 푸른 힘이 생긴다. 

우황을 앓으면서도 찾아가는 것이 여자다. 밤새 뼛골을 앓아 부실한 몸으로도 찾아가는 것이 여자다. 여자에게는 위안이 있다. 따뜻한 자궁이 있다. 뜨거운 입술이 있다. 출렁이는 꿈이 있다.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이 있다. 전혀 성적인 것이 아닌 것 같으면서도 성적인 것이 있다. 살며시 감는 눈이 있다. 결핍을 채워주는 아름다운 젖무덤이 있다. 내 손의 허전을 채워주는 부드러움이 있다. 나직한 신음이 있다. 거울 앞에 앉는 정갈함이 있다. 생을 산다고 방전시킨 힘을 다시 충전시켜주기 위해 내 시든 플러그를 꼽아줄 부드러운 콘센트가 있다. 





꿈의 체인점

산다는 것이 따분하거나 눈물 나면 신종사업을 원하거나 안전하고 탄탄한 사업을 원한다면 이곳으로 오라 봄이면 바람에 휘날리는 배꽃 아침이면 안개처럼 피어오는 새떼 흥건히 고여 냇물처럼 흘러가는 푸른 달빛 사이 몇 백 년 묵은 소나무 숲 사이 꿈의 체인점이 있다 방안에 흑백 TV 한 대 나무 기러기 한 쌍 송사리 떼가 헤엄치는 작은 어항 고만고만하게 모여 손때 묻고 길들어지며 먼지를 덮어Tm기도 하지만 걸레질할 때마다 당당해지는 그들 방문 왈칵 열고 들어오는 텃밭의 파 꽃 냄새 밤꽃냄새 미치도록 진동하는 조그만 꿈의 체인점이 있다 이곳에 오면 사랑이 샘물처럼 퐁퐁 솟는 꿈의 체인점이 있다 이곳에 오면 신속히 수선되거나 갈아 끼워지는 당신의 꿈 새살이 돋아나는 당신의 꿈 꿈속 가득 들어찬 바람도 피고름도 말끔히 짜준다 푸드덕 날아오르는 잿 비둘기 패랭이꽃 언덕도 가꾸어 준다 이 근처에 오면 거친 꿈의 면을 손질하는 톱밥도 휘날린다 일이 밀리 목재소처럼 밤새 불이 켜져 있기도 한다 주문을 하면 숲속으로 드나드는 족제비처럼 신속히 배달도 나간다 휴전선을 국경선을 넘어 배달도 나간다 우리의 사업은 세계적으로 번창해야하니까 앞으로 전망이 좋으니까 비도 바람도 무릅쓰고 배달 나간다 당신이 이곳에 와 별을 원하면 당신의 녹슨 하늘을 닦아 지금도 생생한 오리온좌를 큰곰자리를 견우와 직녀성을 보여줄 것이다 당신이 깨어진 술병처럼 날이 서 누군가의 발바닥을 찌르거나 헌 비닐봉지처럼 이리저리 뒹굴 때 당신의 불변 속으로 질 좋은 석탄 같은 잠을 화석 같은 잠을 수십 삽 퍼 넣어줄 것이다 화력 좋은 꿈에 불도 당겨줄 것이다 이제 이 꿈의 체인점으로 오라 정 바쁘시다면 당신의 집 가까이서 찾아보라 당신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다 당신의 주문을 기다리고 있다 분명 당신의 집 근처에서 꿈의 체인점은 성업 중일 것이다. 

꿈의 체인점을 노래했지만 나를 갈급하게 하는 것은 꿈의 체인점이 아니다. 내가 꿈의 체인점을 노래하지만 결국은 꿈의 체인점으로 가고 싶은 내 마음을 반어법처럼 나타낸다.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은 꿈의 체인점의 냉장고를 닦으면서 그리움의 유효기간을 확인하며 알뜰하게 살고 있는 여자 곁일 것이다.  마음먹기에 지옥과 천국이 될 수 있는 곳이 이 세상이다. 꿈이 있다고 하면 꿈이 있고 없다고 하면 또 없는 불가사의한 것이 이 세상이다. 결국은 꿈의 체인점이란  꿈의 체인점 같은 사랑을 만나기 위한 몸짓일 것이다. 나를 영원히 목마르게 하면서 또 오아시스를 가지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사람을 가장 외롭게 하는 것은 사람이고 사람을 가장 슬프게 하는 것이 사람이다. 남자를 가장 외롭게 하는 것이 여자이다. 그 원초적 쓸쓸함을 메우기 위해 남자는  출애굽 한 것처럼 사막으로 이뤄진 광야 같은 세상을 떠돈다. 꿈의 체인점에 환한 등을 켜고 기다리는 긴 손가락의 여자를 향해 몇 번이나 목숨을 갈아 신으면서 가려고 한다.
 여자에 대한 그리움이 스며든 시를 읽어보았고 앞으로도 내 시의 주제는 여전히 여자일 수밖에 없다. 여자란 여자뿐 만이 아니라 내가 향해 가는 지향점일 수 있고 나의 이상향이자 내 최후의 무덤이자 내 청춘의 요람일 수 있다. 나의 지옥이자 낙원일 수 있다. 여자에 대한 클로즈업은 결국 내 영혼의 영토를 넓히기 위한 작업이다. 때로는 여자의 신비, 그 베일을 벗기기 위한 작업이 아니라 내 생에 충실이 바로 여자에 대한 충실로 나타난다. 결국 내 삶의 노래는 바로 여자에 대한 노래다. 참혹하게도 영원한 내 애송시가 그 여자이기 때문이다.


*김왕노 : 매일신문 꿈의 체인점으로 신춘문예 당선. {슬픔도 진화한다}, {말달리자 아버지(문광부 지정도서)}, {사랑, 그 백년에 대하여}, {중독-박인환문학상 수상집}, {사진속의 바다-해양문학상 수상집} 등 2003 년 제 8 회 한국해양문학대상, 2006 년 제 7 회 박인환 문학상, 2008 년 제 3 회 지리산 문학상, 2013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 문학창작상 등 수상, 시인축구단 글발 단장, 현재 문학잡지 시와 경계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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