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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호/연가곡 시집/박제천/⌜마틸다⌟ 3부 '사랑의 기쁨' 목련화 외 1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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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3
댓글 0건 조회 3,592회 작성일 15-07-07 10:26

본문

연가곡 시집
박제천

마틸다 제3부 「사랑의 기쁨」 여는 글
  
  
오늘은 문득 당신에게 편지를 쓰고 싶었소. 오래 전 아이오와 시절에 편지를 보내고는 이 글이 처음인 것같소. 아마도 함께 살던 정주네가 미국으로 떠나가, 아파트 한 채를 혼자 독차지하게 된, 그야말로 독거(獨居)가 불러낸 분위기같소.
오늘은 올해 들어 첫눈이 내린 날이라오. 당신 머무는 곳에도 눈이 내리는지요. 내가 사는 곳에는 눈이 오다가 하늘에서 그만 녹아버리고 말았다지만, 신문의 설악산 사진에는 나무들이 저마다 설빔처럼 깨끗한 눈옷을 차려입었더군요.
눈에 덮인 나무들을 들여다보자니 젊은날 내가 머물던 방산리 숲이며 아이오와시티의 숲이 저절로 눈앞에 떠오릅니다. 방산리 숲은 3년이나 머물던 곳이고, 아이오와시티의 숲에서는 석 달쯤 머물었지요. 방산리 숲은 군대시절이라 눈이 내리면 오히려 더욱 고된 생활이어서 잊혀지지 않고 아이오와시절은 자유롭고 안락한 시절이라 눈이 내리면 잘생긴 눈나무숲이 명화처럼 추억을 불러일으킵니다.
아이오와 숲은 숙소였던 메이플라워아파트 바로 앞에 있었지요. 아이오와  강을 건너 산으로 들어가는 숲이었지요. 당신도 알다시피 그무렵은 내가 아이오와 국제 창작프로그램에 참가차 당신과 평생을 살면서 처음이자 유일하게 네 달이나 떨어져 있던 시절이지요. 메이플라워아파트는 아이오와대학의 학생 기숙사지만, 8층 한 층을 우리들 창작프로그램에 참가한 40여명의 문인들에게 배당해 주었답니다. 나는 독일의 젊은 시인과 한 그룹이 되었지요. 주방과 화장실을 공동으로 쓰지만 집필실 겸 거실은 따로 독립된 거처였어요.
그곳에서 그해 8월 말부터 12월 초까지 머물었지요. 돌이켜보니 여름, 가을, 겨울과 인디언 섬머를 한 곳에서 다 겪어본 근사한 생활이었다오. 그 다음은 당신도 알다시피 버팔로를 거쳐 캐나다에 들어갔다가 뉴욕을 통해 크리스마스 날에 귀국을 했지요. 우리에게는 따로 일과가 없었지요. 그 방에서 먹고 자고 뒹굴다가 글감이 생겨나면 바로 집필에 들어가는 식이지요. 그러나 나는 그 방에 머물면서 단 한편의 시도 쓰지 않았지요. 가져간 노자, 장자 원본과 주석서를 심심하면 뒤적이다 졸다 잠드는 그런 생활을 하기로 내게 다짐했고, 그것을 실천에 옮겼지요.
내 방의 창문은 아이오와 강 쪽이어서 창가에 서면 바로 강이 보이고, 그 뒤로 정원처럼 풀밭이 보이고 풀밭 뒤에 산으로 올라가는 숲길이 우거져 있었지요. 멀리서 보는 강과 숲은 참으로 아름다운 어울림이었소.
어느날, 나는 그 숲으로 발길을 옮겼고, 그 숲과의 만남은 첫날부터 참으로 황홀한 것이었소. 굵기가 아름이 넘는 거목들도 많았소. 사이사이 단풍나무, 자작나무, 편백나무, 구상나무, 삼나무, 화백나무들이 나이를 가늠할 수 없게 예쁜 몸매를 뽐내고 있었다오. 하나같이 나무들이 사이좋게 서 있는 그 아래 군데군데 벤치가 놓여 있고 깊이 들어가니 화덕과 식탁, 수도가 마련돼 있었어요. 야영객도 있겠지만 대개는 그곳에 찾아들어 점심을 먹는 사람들을 위해 설치된 것이라오. 나중에 나도 외국문인들과 함께 그곳에서 점심을 먹었다오.
그로부터 나는 아예 책을 들고 그 숲길을 찾았소. 자연목의 벤치도 좋지만, 되도록 거목 아래 자리를 잡고, 나무에 등을 댄 채 나무의 말을 듣는 게 너무나 좋았소. 때로는 그 숨소리를 들었고, 나무 안의 수액들이 가지로 옮겨가는 박동에 귀를 기울였소. 어떤 때는 마치 나무 안에 목공소가 자리잡은 듯 못박는 소리, 대패질하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오. 나무 안에 요정들이 산다는 희랍신화를 떠올리기도 했고, 큰형처럼 착한 우리네 도깨비들이 나를 따라 여기로 왔나 공상에 빠지는 내가 너무 신났소. 책은 베개삼아, 하늘을 보면 우거진 가지 사이 작은 틈새에서 맑은 햇빛이 반짝이며 흘러내리는 게 추사의 [작은 창에 빛이 많아 절로 혼자 오래 앉아 있는다(小窓多明使我久坐)]는 글귀가 실감났어요.
어느 날은 수꾸아미쉬 추장 시애틀의 편지를 나무들에게 읽어주기도 했지요. [나무 속에 흐르는 수액은 우리의 기억을 실어 나른다. ... 연못 위를 쏜살같이 달려가는 부드러운 바람소리와 한낮의 비에 씻긴 바람이 머금은 소나무 내음을 사랑한다. 만물이 숨결을 나누고 있으므로 공기는 소중한 것이다. 짐승들, 나무들, 그리고 인간은 같은 숨결을 나누고 산다.] 
그곳에 비가 내릴 때면 언젠가 읽었던 글처럼 [산비가 수어수어 숲을 밟으며 골은 울었다.(허윤석)]는 구절이 딱 맞아 떨어질 만큼 쉬엄쉬엄 지나가는 빗소리가 취기를 불러일으킨답니다. 그런 날 술병을 들고 거목 밑에서 비를 피하며 술을 마실 때는 내가 문득 신선이 된 것도 같았답니다. 술 이야기에 당신이 눈살을 찌푸리는 게 보이는 것같소.
이제 편지를 끝내지요. 당신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이제야 생각났다오. 요즘은 이렇게 긴 연상을 통해 내가 말하고 싶었던 그 무엇을 만나곤 한답니다. 언젠가 당신이 왜 작품에서 나무들마다 사람이름을 주느냐 물었지요. 그에 대한 긴 대답이 바로 이 편지랍니다. 그 작품을 다시 한번 읽어보세요.
  
……일찍부터 이 지상에서 내가 사랑해온 것들은 오로지 식물뿐이었다 사람들의 손과 발은 나무의 가지, 그 눈들은 이파리인가 ... 계곡 건너 번쩍이는 물방울들, 거기 되는 대로 누워 흘러가는 잎사귀들, 그 건너 숲속에는 허균나무가 허난설헌나무를 부르고, 조광조나무는 황진이나무와 동무삼아 해바라기를 하고 있었다 나도 맨발로 물을 건너 매월당나무 그늘 아래 땀을 들이며 연암나무를 바라보았다 그냥 그러다 동학사에서 다시 내려오는 길에서 나는 저들 이름이란 이름지어진 것의 복제에 불과하고 아직 이름지어지지 않은 것들의 이름이라고 나를 타일렀다 삶이란 큰 실수 앞에서 이름 따위에 매이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라고 그렇게 나를 구슬렸다. --박제천 시 [이름나무] 부분





연가곡시집 마틸다 제3부 「사랑의 기쁨」 14편  

목련화
  
  
눈부시다 목련화여 
그리운  
이 
마음 두손 모아라 
푸르른 목련꽃 가지가지 
황금빛 촛대에 피어난 
불꽃 
아, 숨어사는 새 한 마리 
푸르른 하늘로 날개를 펴네 
  
그립도다 
목련화여 
떨리는 이 마음 두손 모아라 
푸르른 목련꽃 사이사이 
황금빛 등불에 어리는 
얼굴 
아, 타오르는 
꽃 한송이 푸르른 하늘로 
꿈길을 가네 
  
  
  
  
천년향기  
  
  
향기의 말이 귀를 감돌았어요
빛의 말이 반짝였어요 
눈을 감아도 보였어요
 
땅속 어둠도 보석으로 만드는 법
땅속 세상
향기로 말이 통하는 법
  
내쉬는 숨결 따라, 
하늘 나는 나비들 
풀밭을 뛰어다니는 풀벌레들 살펴보았어요
 
모두들 내게 말을 전했어요
  
세상살이의 어둠들,
사람들 견디는 사람살이,
한 덩어리로 묶어내는 그 비법 
그 연금술을 익혔어요
  
그렇게 해종일 마틸다를 보았어요
천년침향을 보았어요
  
  
  
   
달빛거울
  
  
향기 속에서 돌을 꺼내니
돌 속에서 향기를 꺼내니
생각할수록 오묘하고 신통하여라
  
화강석 속에서 피어나는 달무리이듯,
한밤중 어둠 속 금강의 꽃무리이듯
  
부드럽고
향기 나는
달빛거울 들여다보았어라
  
네 안의 나를 꺼내고 싶어
정으로 너를 캐어내며
정으로 너를 다듬으며
  
밤마다
달빛을 한 입, 한 입 먹었어요
그대 반지가 될 때까지 
 
    
  
  
사랑의 화신
 
  
마틸다
그대는 베개 속의 씨앗, 
다락방에 숨겨둔 마술책,
물방울 속 보석, 
즈믄 가람에 떠 있는 달,
지구로 쏜살같이 달려오는 혜성, 
그대는 바람이었어라, 
하염없이 바다를 떠도는 섬이었어라 
바람에 구르는 낙엽, 티끌이었어라
먼지가 되어 떠도는 내 사랑, 마틸다
사랑의 화신이었어라. 
  
  
    
  
다도해
 
 
다도해 저 바다에서 진주들이 제 마음을 분수처럼 뿜어내네 
제 안의 것을 하염없이 뿜어내네
  
다도해 저 바다에
햇빛이 되어 물빛으로 나타나는 마틸다
  
다도해 
저 바다에 산호들이 천년만년 불태우는 사랑
  
한밤중의 내가 
아귀가 되었다가 부처가 되네
 
    
  
  
혼잣말
  
  
온몸에 그림을 그리는 돌의 손을 보셨나요
바람의 연필로 밑그림을 그리고
눈송이 눈송이 물감으로 채색을 하는
돌의 눈을 보셨는지요
  
돌을 쥐고 있으면
심장의 박동소리가 들려와요
내 손의 손금마다 흘러가는 돌의 피, 돌의 숨소리
  
어쩌다 내 손에 와 돌이 된
별 하나,
좋아하는 게 죄 같아서  
  
밤마다, 다시 돌아가라고
하늘로 던지면
밤마다, 다시
별똥별로 불타서 내게 돌아오는 돌이 있답니다
  
  
  
  
그대에게 주고 싶은 꽃
  
 
남해 바다에서
그대에게 주고 싶은 꽃을 보았어라
부를 때마다 다른 얼굴로 나타나는
마법의 꽃,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불러대는 천사,
바다에서 솟아오르는 금강석
마틸다, 그대에게 꽃을 드려요
그 새벽 남해바다,
그대 영원한 잠을 환하게 밝혀주는 
꽃을 드려요
  
  
     
  
눈부신 날의 그대
  
  
눈이 와서 눈부신 날에는 그대, 잠에서 깨어나세요
무화과나무도 잠이 깨고, 그 가지 끝의 새 한 마리
그 부리에 매달린 햇덩이도 잠이 깨어요
무화과 가지그물, 그 두루말이 편지 속에
점점이 웅크린 눈들도 잠이 깨어 눈을 부벼요
무지개 타고
저 눈 속의 새, 잠 속의 여자, 고통 속의 햇덩이
모두 잠이 깨어요
눈이 와서 눈부신 날에는
무화과 열매 속에
내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놓아요
  
  
    

 눈오는 날, 사랑 이야기
  
  
눈이 내리는 날이면 들판으로 나가자
하느님이 보내는 편지를 읽자
예쁜 여자처럼 긴 머리칼을 날리는 나무들은 
모음이 되고
돌들은 자음이 되네
여기 저기 서 있는 눈사람의 마침표
눈밭 속에 뛰어다니는 벌레들의 느낌표
말줄임표로 다가오는 아득한 눈보라의 입맞춤 속에
하느님의 사랑 편지가 
온 들판을 가득 채우네
  
눈이 내리는 날이면 들판으로 나가자
눈밭 아래 꽝꽝 얼어붙은 얼음장 거울에
언 볼 달구며
마틸다, 나와 함께
이루지 못한 사랑 이야기를 읽기로 하자.
  
  
      
  
나무가 나무에게
  
  
나무 속에 불빛이 떨고 있어요 
나무 속에 나무가 흔들리고 있어요
  
나무 속의 그대를 보고 싶어요 듣고 싶어요
온몸으로 느끼고 싶어요
  
마틸다, 그대를 소리쳐 부르고
그대에게 달려가 두 손을 마주잡고 싶어요
  
가난한 마음, 추운 마음, 슬퍼하는 마음이
서로 만나 볼 비비고 가슴 부비듯
  
그대 가지마다 기쁨열매가 맺혀요
  
  
    
  
추억의 나라
  
  
추억의 나라를 만들어요
  
눈물 너머 웃음 너머의 무지개가
하늘로 다리를 놓아요
  
만남의 아픔과 즐거움을 생각해요
아침을 기다리는 어둠이 있어요
  
내가 만든 추억의 나라에는
사막도 바다도 풀꽃도 벌레도 함께 살아요
  
우리가 사는 추억의 나라에서는 
날마다 지나가는 역이 있고 내리고 올라타는 역이 있어요
  
햇빛이 되고 눈이 되고 비가 되고 바람이 되는 꿈을 
마틸다, 그대에게 드려요

  
  
    
산을 오르다보면
  
  
산을 오르다보면 
저 골짝에서 치솟아오르는 불길을 만납니다
  
산을 오르다보면 
이 세상 것이 아닌 바람이며 안개를 만납니다
  
산을 오르다보면 
마침내 내 마음 숨길 수 없습니다
  
마틸다, 당신을 오르다보면 
내 마음 속에 불길 한 덩이가 들어와 있습니다
  
  
  
  
백무동의 봄
    
  
신새벽 백무동의 봄을 아시는지요
물이 물을 만나 물을 껴안고 부둥키고
바위 속 목소리까지 불러내네
  
나무가 나무랑 어깨동무 하고 
밤하늘 달이며 별을 마시다가
나무 속 물감을 물속에 씻어내네
  
신새벽 백무동의 봄을 아시는지요 
해처럼 달처럼 별처럼 환하게 보이는 그대,
눈을 뜨면 그대 모습 모두 사라지는
신새벽 백무동의 봄빛을 아시는지요
  
저 반짝이는 물낯처럼 만지면 부드러운,
저 반짝이는 물눈처럼 마주치면 환해지는
저 빛을,
처음이듯 보내드리면
처음처럼 보내주시던 그 봄빛을 아시는지요
  
  
*박제천 : 196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박제천 시전집⌟(전 5권), 시집 ⌜장자시⌟,⌜달마나무⌟등 12권. 시전집 ⌜밀짚모자 영화관⌟등. 저서 ⌜시를 어떻게 쓸 것인가(공저)⌟, ⌜시를 어떻게 고칠 것인가⌟등. 영역 시집 ⌜Sending the ship Out to Stars(고창수 역)⌟(미국 코넬대 출판부 간행)외. 한국시협상, 현대문학상, 펜문학상 등 수상. 현재 문학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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