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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호/신작시/신정민/헝그리 복서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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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신정민
헝그리 복서
난 뿌리 하나가
화분 밖으로 뻗고 있어
개미농원에 들고 가
조금 더 큰 화분으로
분갈이를 청했더니
꽃을 보려면 놔두라 한다
비좁아서
살아보겠다 그러는 거라고
뿌리에 신경 쓰면
꽃 피우지 않을거라고
우리 모두의 빵*
산복로 주택가에 빵집이 생겼다
유명한 빵집이라고 소문이 자자했다
개업 후 며칠 동안 그들은 줄을 서기도 했다
먼 곳에서도 차를 몰고 와 빵을 사갔다
한 집 건너 지하창고에 있던 목관木棺 공장은
빵집의 영업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인적 없는 한 밤중이나 꼭두새벽에 물건을 내가야 했으므로
아무도 모르게 해내야 할 일이었으므로
둘은 서로를 의지하기 시작했다
내가 들렀을 때는 문 닫을 시간
흰 머릿수건을 쓴 아가씨가 남은 빵을 거두고 있었다
오늘 팔리지 않은 빵은 어디로 가나요, 아가씨
대답이 없는 걸 보니 둘 중 하나는 유령이었다
보이지 않는 주방에서 오븐은 쉬지 않고 죽음을 구워내고
앙금이 잔뜩 든 단팥빵은 구토를
한 겹씩 벗겨지는 크로와상은 식욕을
겉은 바삭하고 속이 부드러운 바게뜨는 새로운 탄생을
빵집이 우리의 가면이라면
그 뒤에 감추어져 있는 건 무엇일까
나는 누군가의 부고처럼 파자마 바람으로 매장을 어슬렁거렸다
늦게까지 불이 켜있는 빵집은
멕시코 식으로 말하자면
축제일로 가득 차 있는 달력처럼 수상했다
*옥타비오 빠스의 ‘태양의 돌’에서
*신정민 : 2003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꽃들이 딸꾹, 뱀이 된 피아노, 티벳만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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