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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호/신작시/김화순/구름의 학습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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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김화순
구름의 학습
구름에게 문장론을 가르친다
어디로든 가고픈 구름에게 붙박인 말과 피동의 서술,
말본에 어긋난 하루를 가르친다
나는 지금 구름의 내면이 궁금할 뿐
꿈의 목록이 너무 많은 구름들
끼리끼리 뭉쳤다 이내 증발한다
새털 같은 의문이 뭉개 뭉개 피어난다
양떼 같은 침묵이 떼 지어 흘러간다
구름의 사생활은 물방울의 사연을 대필하는 일
하늘 계단 밟고 계절 밖으로 사라지는 일
무엇으로도 자신을 완성하지 않는 일
구름장 꽝꽝한 봄날 오후
목련나무에 구름꽃 송이송이 환하다
흐르지 못하고 갈팡잘팡하는 뭉개구름들
나의 하루는 곧 비를 뿌릴 듯 눅눅하고
염소구름 몇은 여린 뿔을 쳐들고
새파란 시간을 치받고 있다
오늘 구름의 학습 목표는
궁리와 소멸을 3번 반복하다
2시간 이상 한자리에 머물러
상상이 부풀린 환상1g의 는개를 만드는 것
창조적인 문장을 풀어놓는 구름의 7교시
구름의 학습은 세세년년 거듭된다
우우량량 이어진다
미완성 못갖춘마디
그곳에 가면 나는 외계인이 된다
거대한 우주선 1층 B블록 21열 2번에 앉아
귀를 키우며 숨소리 꽁꽁 말아쥐고
나뭇가지처럼 늘어나고 있는 손가락과 발가락을 본다
208개의 눈동자가 연주를 시작하면
나는 지루하고 뻔한 화성을 벗어나
수성 지나 목성을 돌아 금성에 닿는다
나는 애써 기계적인 지휘를 믿지 않는다
일요일엔 북두칠성을 통과하다 시차를 놓치고
월요일엔 그 시차 때문에 무중력 여자가 된다
나는 b#과 G-음 사이에 축 늘어져서
우주공간으로 끌려다닌다
마음대로 흔들리고 흐르는 카오스
낯선 음계에 이르러 비루한 나를 놓는다
한 달에 한번 나는 4146만km 떨어진 금성으로 간다
귀환은 두렵지 않다
다만 죽지 않고 떠도는 게 무서울 뿐이다
언젠가 음계가 완성되는 날
나는 조용히 우주로 사라질 것이다
*김화순 : 서울 출생. 2004년 ≪시와 정신≫으로 등단. 시집 사랑은 바닥을 쳤다, 시간의 푸른 독. 저서 김종삼 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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