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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호/신작시/이은/오늘의 얼굴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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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3
댓글 0건 조회 2,751회 작성일 15-07-06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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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이은


오늘의 얼굴 


당신은 침대 위에 누워 있고 나를 올려다보는 
당신의 눈 속으로 내가 들어가요   
으으으으 순간 잇몸이 무너진 자리에서 
모음이 으깨지는 소리 
툭 튀어나온 광대뼈가 무너져내리는 소리     
침대에서 빠져나와 의자에 앉은 당신
이불을 돌돌 말고 
 
문을 확 열어젖히니 
침대 위 목단 꽃잎이 꼬들꼬들 말려가요   
털어내도 털어내지지 않는 소리 
한 움큼의 머리카락이 휙 날아가요   
아들이 훔쳐 갔다는 동전 몇 잎도 튀어나와요   

바닥에 떨어진 살비닐을 긁어모으며 나는 묻죠
오늘 무얼할까? 나는 당신의 귓밥을 파내고 
손톱을 자르고 머리를 빗겨내리고 
한 소쿠리 시금치를 다듬고 
한 냄비 야채스프를 끓이고 
그 다음엔 그 다음엔 무얼할까?

내가 몇 살이니? 손가락을 꼽으며 딴청하듯 묻는 당신
9살이지? 장난치듯 대답하는 나는 55살
그런데 다시 당신은 신음소리를 내며 으으으으
무너져내리는 당신 얼굴 속으로 내가 걸어가고

이렇게 멀건 눈으로 서로 바라보고
한 술의 죽을 입으로 떠먹이고
당신은 내가 되고 내가 당신이 되고 




진짜 사람


성대가 제거된 채 입양되어 온 지 여덟 해 
머리를 바닥에 짓찧는 여자   
종일 방안 한구석에 웅크리고 있다가
갑자기 마룻바닥을 긁어대는 여자 
식탁 밑으로 기어들어가 그림자가 되는 여자  
게슴치레한 눈 다크 서클이 점점 내려오는 여자  
흐르는 젖을 제가 빨고 있는 늙은 여자 

빨래 탈탈 터는 소리를 좋아하고 
종일 배 깔고 누웠다가 발바닥에 그늘을 새개는 여자 
평생 입은 옷 벗지 못하는 여자  
밤이면 나와 한 이불 속에서 살을 맞대고 자는  
천둥벌거숭이 

화장터로 떠나는 네 발 달린 여자
맨발에 신발을 신기고 
하얀 거즈로 시신을 염하고 종이 상자에 담는다
다리에 털이 나 있고 갈색 꼬리를 돌돌 말고 있는  
여자 축축한 혓바닥으로 털을 핥는다 

김포 엔젤 화장터로 떠나는 차창 밖으로
저기 까만 가죽신 한 켤레 신고 사람 하나 지나간다 
  

*이은 : 2006 ≪시와시학≫으로 등단. 시집 불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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