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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호/신작시/김영애/자전거 도둑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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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김영애
자전거 도둑
며칠째 근처를 서성이며 웅얼거리던
남자가 오늘은 보이지 않는다
거품처럼 가벼운 하루가
정맥의 푸른 지척을 핥아
고개 숙이는 순간
붙드는 힘으로 밀려가며
남자를 기다려본다
간밤의 소음으로 연역된 문장들은
분류된 서가에 꽂힌 채
오후 1시의 햇살에 기대어 있고
바람이 녹슨 바퀴살 사이로 지나간다
남자가 오늘은 보이지 않는다
무거운 기침소리도 끊어지고
초조해진다
거리에 세워둔 시간만큼
자전거가 녹슬어가고
녹슬어버린 만큼 대담해진
남자가 사라진다
남자가 오늘은 보이지 않는다
남자를 기다려본다
기일(忌日)
4호선 한성대 입구를 지나쳤다
졸다가 지나쳤고, 핸드폰을 받다가 지나쳤다
황망히 내린 낮선 곳에
오렌지가 굴러다닌다
오래전 폐쇄된 수도원시절
풀들이 거칠게 자란 정원
뒹구는 부서진 액자
떨어지는 붉은 녹물
성모 품에 안긴 그리스도
손바닥과 발등
절개수술 후 봉합한 자국
수많은 바늘구멍
모두들 목적지에 내린 걸까
빠르게 사라져가는 발자국 소리
긴 플랫폼에 혼자 섰다
스쳐간 차창 속 얼굴
누구인지 확인할 수 없다
세 명의 아이들이 내민 손바닥
경우의 數처럼 다양한 자국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
구멍 속으로 돌아간 아들
기도를 그친 어머니
오렌지가 굴러다닌다
안산행 열차가 진입중이라는데
돌아가도 돌아갈 수 없는 곳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곳
그래도 수도원으로 가야 하는 걸까
오렌지와 세 명의 아이들
경우의 數처럼 다양한 바늘자국
*김영애 : 2008년 ≪시현실≫로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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