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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호/신작시/조재형/자화상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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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3
댓글 0건 조회 2,790회 작성일 15-07-06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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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조재형

자화상
- 대외비對外秘


한 때 나는 일간지로 발행되기를 열망했다
새로운 반전이 되고 오늘의 운세가 되고
당대에 회자되는 특종의 꿈을 잉태한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나를 구독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그들에게 나는 지나간 서정抒情이고
한 풀 꺾인 시대의 금기어이고
케케묵은 혁명의 원조라는 걸

어느 때인가는 칼이라고 호언했다
닥치는 대로 잘라 버리겠노라
하지만 곧 알게 되었다
이가 빠진 나는 그들이 두려울 만큼 벼리지 않다는 걸

또 어떤 날은 수심 깊은 가방으로, 혹은 어깨 넓은 그릇으로
이웃과 형제를 포용하길 바랐다
하지만 누구도 담을 수 없다는 걸 알았다
비관의 구멍이 숭숭 뚫린 내게 수용되길 꺼린다는 걸

의자가 되려는 꿈을 가진 적도 있다
직립의 꼿꼿한 생生을 누려온 나는 곧
온전한 다리가 두 개뿐이란 걸 알았다
산새도 호랑나비도 풀씨도 나를 앉지 않더라니

한 때는 사방을 탐닉하는 둥근 공이었으면 했다
어찌된 일인지 경기장 밖으로 내던져지곤 했다
오래전부터 눈물이 누수 되고 있었다는
절반의 슬픔이 빠진 나는 뻥 차더라도
더 이상 하프라인을 넘지 못한다는 걸
주목할 만한 그들의 파격이 나를 분석해버린 터였다

누구도 진부한 나로 대체되기를 거부했다
줄곧 나를 천착해온 창공의 까마귀와 밤하늘의 별들이
머리카락 한 올까지 헤아리고 있다는 것
그러니 더 이상 나는 표절될 수 없다는 것

평생 나인 줄 알고 끌고 온 나는
사실은 어느 전생의 후기라는 것이다
나는 여태껏 부록에 머무르고 있다는
새 본문은 아직 전개되고 있지 않았다는
때로는 생시 같기도 때로는 꿈같기도 한
이 모든 걸
무디어진 나만 모르고 있더라는 





백년해로 


아파트 C드라이브에 입주한 아래층 노부부
하루가 멀다고 부팅만 하면 설전이다

보아하니 할머니의 연전연패
이런 니미럴, 도발적인 음향이 섞였어도
이른 아침 게시되는 메아리는 굿모닝이다
어쩌다 그 소리 들리지 않는 날
프리웨어 방청객은 변고가 아닌지 솔깃해진다
고수인 할아범이 할멈을 난타하는 북소리
삭제되었으면 싶은 소음이라기보다
아직 일선에서 백업 중인 알람이려니 한다
언제부턴가 방전된 모니터처럼 깜빡이는 할머니
아무리 두드려도 멈추지 않는 버퍼링이다
그나저나 두터운 저 방호벽이 아니면
老부부는 NO부부가 되고 말았을 일이다만
현관에서 접속할 때면 말끔히 복원된 표정들
보청기 수리를 포기하고 폐쇄한 모양이다

폭설을 뚫고 오늘도
버럭 고함이 업로드 중이다
오프라인 볼륨이 점차 올라간다
싸륵싸륵 입력하던 창문을 로그오프 한다


*조재형 : 2011년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 지문을 수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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