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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호/신작시/김락/페르소나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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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3
댓글 0건 조회 2,567회 작성일 15-07-06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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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김락

페르소나들


조그마한 난로 앞에서 젖은 눈썹을 말리는 뱃사람이 있어요
그는 길에서 헤매는 사람을 초대하고 안아주죠
직접 담근 포도주도 주고요
따뜻한 곳에서 차가운 곳으로 
녹색에서 하늘색으로 다시 떠나는 유령선의 주인
그를 묶어둘 수 있는 밧줄은 세상에 없어
셔츠 깃에서 떨어지는 푸른 빗물은 영원히 그치지 않아요

빨갛게 튼 볼에 성냥을 그어 촛불을 밝히는 성녀가 있어요
은빛 대야 위 조용히 떠 있는 빛과 
희미하게 빛을 드리운 줄무늬 커튼보다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그녀
한밤중 부드럽게 풀리는 빛으로 보여주었죠
사람에게 고문당하는 권력과 
하루가 지난 눈사람처럼 측은해진 어른들

썰매 날처럼 뾰족한 턱을 가진 외눈박이 노파를 알아요
그는 들리지 않게 중얼거리기 좋아하죠 삐뚤어진 입으로 웃음을 터뜨리며
선인장을 뚫고 솟구치는 눈물처럼 
가끔은 솔직하게 대화하는 게 어때요 
그를 휘감은 보랏빛 아지랑이도 웃음보를 터뜨려요 
사실 그와 친하지는 않아요
왼쪽으로 돌아가는 방에서 오른쪽으로 도는 그의 실루엣이 어지러워요
죽을 때 까지 한 쪽 눈은 다른 세계를 볼 거예요

이 땅에 표류하는 말 못하는 인어공주가 있었군요
그녀는 인간이지만 핑크물고기에요
물속을 그리워하죠 오늘 보다 좋았던 어제를, 
아득하게 들리던 지상의 종소리가 좋았죠
살결이 부서지는 비늘자국에 열심히 손바닥의 땀을 닦아요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그녀는 침묵하며 달아오른 부지깽이로 
우리의 무미건조한 사랑의 허공을 쑤셔요

그리고 내가 있어요
귀마개 털모자를 쓰고 언 발가락을 잊어버리는
어느 망각인(忘却人)의 안에 
우리가 함께 있어요
이따금 어둠의 무거운 빗장이 풀려도 아무도 돌아가지 않죠
모두 기쁘게 술잔을 부딪칩니다
문처럼 사실을 요구당하지 않기에
날씨는 사랑스럽고 우리는 서로를 달콤하게 속여요




지구에서 발견 된 필름
-Prologue


백발의 요리사 손의 반짝이는 식기들이
길 든 도구들이 자취를 감출 때

사방을 검은 타일로 깐 벽
몽롱한 표정이 끓는 감정의 주전자
입을 열면 빗줄기가 보이는 아궁이가
젤리 오렌지 태양처럼 불 탈 때

먼 별에서 지구로 
망치를 내리치고 있는 거대한 팔뚝
오 삼키려해, 눈 뜨려해

지구에 질문을 한 지 백년밖에 안 됐는데
녹초가 된 시계를 풀고
세계를 한 조각 떠 올릴 때 

너는 고요히 눈을 감고
새로 뜬 스웨터처럼 따가운 눈송이를 맞으며
스토리는 시작된다

핏빛을 맛보는 굴뚝의 혀가 무한히 길어진다


*김락 : 1983년 부산 출생. 2013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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