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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호/집중조명/권경아/영혼의 인간은 그렇게 탄생한다 - 김주대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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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조명
권경아
영혼의 인간은 그렇게 탄생한다
김주대는 첫 시집 도화동 사십계단에서 억압과 폭력에 시달리는 민중의 구체적인 삶을 통해 진정한 삶의 가치와 아름다움에 천착하는 시세계를 보여주었다. 이후 아름다운 삶의 가치를 추구하는 시쓰기를 끊임없이 시도하며 진정한 삶의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그리움의 넓이에서 보여주었던 삶의 아름다움은 ‘그리움’을 지나 ‘꿈’을 찾아가는 길로 이어지고 있다. 이번의 신작시들은 이러한 시세계의 맥락과 닿아있다. 삶과 대면하는 자의 공격성과 살아가는 자의 그리움과 슬픔을 지나 꿈을 통해 영혼의 인간에 도달하고자 하는 의지가 구체화되어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김주대가 노래하는 ‘영혼의 인간’의 탄생이다.
* 공격
공격은 1차원 선의 세계이다.
무지몽매 달려가 어느 끝에 다다르면 공격은 완성되고 파괴만 남는다.
그리고 세계는 닫힌다.
- 「영혼의 인간」 중에서, 그리움의 넓이
김주대는 「영혼의 인간」에서 인간의 삶의 방식을 차원의 세계를 통해 그려내고 있다. 1차원의 선의 세계, 2차원의 면의 세계, 3차원의 입체의 세계, 그리고 시공간이 자유로운 4차원의 세계를 통해 인간의 삶이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지는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공격은 1차원의 선의 세계”라 말하고 있다. “무지몽매 달려가 어느 끝에 다다르면 공격은 완성되고 파괴만 남는” 1차원의 세계는 세계를 향한 절규와 몸부림과 같다. 그리고 파괴만 남은 세계는 닫히고 만다.
그러나 시인의 공격은 맹목적인 공격이 아니다. 또 다른 시작을 위한 공격, 새로운 건설을 위한 파괴를 시도한다.
세찬 빗줄기 위로 깃발을 올립니다, 전하. 소신은 말갈의 피를 받아 검은 지평선을 홀로 걸어온 사람, 전하의 목을 칠 역적입니다. 생전 처음 보는 번개가 궁궐을 때리고 피뢰침 속으로 사라질 때 소신은 올 것이옵니다. 곧이어 새와 구름이 지나간 곳, 나비가 얇은 날개로 허공을 저며 낸 화사한 길을 끊는 번개가 칠 것입니다. 전하, 소신의 붉은 머리카락이 빗줄기 속에서 망나니처럼 펄럭이고 차가운 비명소리가 들리거든 귀를 여시고 무릎을 꿇어야합니다. 전하, 역적의 시간이 전하의 은총으로 왔지만 익숙히 멈출 수 없어 지독한 고독 이후에 혼란한 역적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옵니다. 눈부신 어둠의 기둥 위로 쏟아지는 빗발을 따라 오는 새벽, 젖은 깃발이 마르기도 전에, 세계를 받치던 전하의 무릎은 부서지고 역적의 나라는 완성될 것입니다. 그 때 피 묻은 칼을 들고 날선 지평선을 마저 넘겠습니다. 전하, 소신은 말갈의 후예, 완성된 역적의 나라에서도 지평선 너머 지평선으로 가는 행려자입니다. 시작은 언제나 시작이오니 전하, 그럼 하해 같은 은혜 소신의 어미에게 그랬듯이 전하의 목을 치겠습니다.
- 「시작」 전문
이 시에서 시인은 스스로를 역적이라 말한다. “검은 지평선을 홀로 걸어온 사람, 전하의 목을 칠 역적”이라 말하는 것이다. “생전 처음 보는 번개가 궁궐을 때리고” “나비가 얇은 날개로 허공을 저며 낸 화사한 길을 끊는 번개”가 칠 때 “소신은 올 것”이 말한다. 그러면 전하는 귀를 열고 무릎을 꿇어야만 할 것이다. 홀로 역적이라 말하며 세계에 온 힘을 다해 저항하고 있다. 이 역적의 시간은 전하의 은총으로 온 것이다. 이 세계가 시인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역적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는 것이다. 이에 시인은 새로이 “역적의 나라를 건설”하고자 하는 뜻을 품게 된다.
공격은 1차원의 세계이다. 1차원의 공격에서는 파괴만 남고 세계는 닫힌다. 그러나 시인이 꿈꾸는 세계는 파괴만이 남고 닫힌 세계가 아니라 새로운 건설위에 만들어진 열린 세계이다. 전하의 목을 치고 역적의 나라를 건설하는 것. 새로이 건설될 역적의 나라이다. 이 시의 제목이 ‘시작’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파괴는 곧 새로운 시작인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여기서 안주하지 않는다. “완성된 역적의 나라에서도 지평선 너머 지평선으로 가는 행려자”가 되어 새로운 길을 나서고 있다. 또 다른 세계를 더 나은 세계를 위한 여행. 1차원 너머 또 다른 차원으로 길을 떠나고 있는 것이다.
* 그리움
그리움은 2차원 면의 세계이다.
견딜 수 없는 갈망으로 천지를 두루 헤맬 때
그리움의 아득한 넓이는 완성된다.
- 「영혼의 인간」 중에서, 그리움의 넓이
그리움은 2차원 면의 세계이다. 견딜 수 없는 갈망으로 천지사방을 헤맬 때 “그리움의 아득한 넓이”는 비로소 완성이 되는 것이다. 파괴 위에 역적의 나라를 건설했지만 주체할 수 없는 갈망은 어쩔 수 없었다. 견딜 수 없는 갈망은 결국 ‘그리움’을 낳게 된다.
가속팽창 하는 우주의 끝에 가장 먼저 이를 수 있는 것도
우주가 아직 이르지 못한, 시공이 없는 곳에 갈 수 있는 것도
그리움이다
그러니까 세계는 꼼짝없이 그리움의 안이다
- 「안(內)」 전문
2차원 면의 세계는 끊임없는 갈망의 세계이다. 욕망의 세계는 끝이 없어 “가속팽창하는 우주”와도 같다. 그러나 아무리 가속팽창을 한다 해도 결국 이 세계는 욕망의 세계, 갈망의 세계, 그리움의 세계이다. “그러니까 세계는 꼼짝없이 그리움의 안”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갈망의 소용돌이가 결국 “당신과 나의 밖으로 계절이 퍼져”(「중력파」) 나가게 한다. “사랑한다는 아득한 목소리와 함께” “그리움을 더하여 차원마다 다른 세계가 열리”고 있다. 뜨거운 시간이 측량되지 않는 기호로 운명을 관통하는. “떨리는 피부에 서로를 새기던 생이 물결치”고 갈망은 또 다른 세계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 슬픔
슬픔은 3차원 입체의 세계이다.
그리움의 아득한 넓이를 가진 사람이
생을 온전히 지고 위를 향해 꿈으로 솟구치다가도
수직으로 떨어져 고통의 구덩이에 빠지면
그의 생은 마침내 3차원 입체를 가지게 된다.
사람다워 보이기 시작한다.
- 「영혼의 인간」 중에서, 그리움의 넓이
3차원의 세계는 슬픔이다. “그리움의 아득한 넓이”를 가진 사람이 자신의 생을 온전히 지고 꿈을 향해 위로 솟구치다가 결국 수직으로 떨어져 구덩이에 빠지게 된다. 마침내 3차원 입체의 세계로 진입한 것이다. 그리움의 아득한 넓이를 경험하고 꿈을 향해 치솟다가 추락하여 고통과 슬픔 또한 경험할 때 비로소 사람다워진다. 이것이 인간들이 살아가는 세계이다.
사방 파도소리만 보이는 깜깜한 밤 바다
소리에 갇힌다
온몸이 소리에 조각당하는 기분
뼛속으로 파도가 지나가는 서늘한 감각
어두웠던 마음 한쪽이 무너지며
소리의 동굴이 생긴다
- 「해식동굴」 전문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는 소리마저도 고통이고 슬픔이 된다. 파도소리만 들리는 어두운 밤바다에 소리만이 진동한다. 그 소리에 온몸이 “조각당하는 기분”. “뼛속으로 파도가 지나가는 서늘한 감각”이다. 파도가 해안을 침식하듯 소리는 인간의 온몸을 침식하고 있다. 파도가 해안의 약한 부분을 침식하듯 무너지는 것은 인간의 어두웠던 마음 한쪽이다. 인간은 이러한 소리의 동굴을 품고 살아가고 있다.
* 영혼의 인간
꿈을 가진 사람은
시간과 공간 이동이 가능한 4차원의 세계로 갈 수 있다.
나열된 3차원의 세계들을 연속적으로 관통하는 것은
꿈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 인간의 삶은 꿈을 통해 과거든 미래든
다른 세계로 이동한다.
그리고 이동에는 반드시 영혼이 동행하게 된다.
영혼의 인간은 그렇게 탄생한다.
- 「영혼의 인간」 중에서, 그리움의 넓이
소리의 동굴을 품고 살아가는 이 세계에서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은 꿈을 갖는 것이다. 시인은 “꿈을 가진 사람은 시간과 공간 이동이 가능한 4차원의 세계로 갈 수 있다”고 말한다. 나열된 3차원의 세계들을 연속적으로 관통 할 수 있는 것은 꿈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꿈을 통해서만이 과거나 미래로 이동할 수 있다. 시공간을 초월하고 자유롭게 시공간을 넘나드는 자. 이 이동에는 반드시 영혼이 동행하게 된다. 이것이 시인이 말하는 “영혼의 인간”이다. 파괴를 지나 새로운 시작과 함께 그리움과 슬픔이 다가온다. 그 그리움과 고통, 슬픔을 지나면서도 꿈을 잃어버리지 않는 자. 꿈을 간직한 자만이 영혼의 인간이 될 수 있다.
바람이 허공에 새겨놓은 문자를
읽을 수 있게 되리라
살이었던 욕심을 남김없이 내려놓고
신의 발을 무사히 만질 수 있도록
영혼에서 살이 빠져나가는 시간
바람의 지문을 영혼에 새기는 일이다
넘치던 말들과 형상을 보내고
허공에 섬세하게 깃들게 되리라
몸 전체가 꽃잎처럼 얇은 고막이 되어
지평선에 누우면
별들의 발소리가 들리겠지
살을 버린 이성은 비로소 세계를 흐느낄 것이고
혀가 된 푸른 바람이 말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 때에도 우리는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 「풍장」 전문
비록 육체가 사라진다 해도 영혼은 사라지지 않는다. 욕심이었던 살을 남김없이 내려놓고 신의 발을 무사히 만질 수 있을 만큼 가벼워지는 시간. 그것은 영혼에서 살이 빠져나가는 시간이다. 곧 “바람의 지문을 영혼에 새기는 일”이다. 그리움과 슬픔과 고통이었던 삶의 잔해들을 버리고 난 후 “몸 전체가 꽃잎처럼 얇은 고막”이 되어 지평선에 눕게 되는 것이다.
꿈을 가진 사람이 갈수 있다는 4차원의 세계. 그러나 4차원의 세계는 3차원의 세계에 사는 인간으로서는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와 같다.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지 못한 세계이기에 어떠한 상황을 맞게 될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4차원이라도 추측 가능한 부분이 있다고 한다. 차원이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방향의 개수와 같다. 1차원 공간은 수직선 하나로 이루어진 공간이며, 2차원은 앞뒤, 좌우의 2가지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는 평면의 공간이며, 3차원은 앞뒤, 좌우, 위아래의 3가지 방향으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2차원은 1차원의 세계를 포함하고 있으며, 3차원은 2차원의 세계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4차원의 세계는 3차원의 세계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살아가는 3차원의 세계는 4차원의 일부가 된다는 것이다. 그 미묘한 교차점으로 인해 인간은 끊임없이 4차원의 세계를 예측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3차원의 세계와 4차원의 세계 사이의 교차점. 시인은 그것을 ‘꿈’이라 말하고 있다. “꿈을 가진 사람은 시간과 공간 이동이 가능한 4차원의 세계”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꿈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라고 말한다. 인간에게 꿈이란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무엇일 것이다. 그리고 그 이동에 반드시 동행하게 된다는 ‘영혼’.
김주대는 인간의 삶을 차원의 세계를 통해 그리는 섬세한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다. 공격으로 파괴만을 남기는 시기를 지나 삶의 그리움과 고통, 슬픔을 아는 시기를 지나 “영혼의 인간”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영혼의 인간”이 되는 길은 꿈을 잃지 않는 것. 이번 신작시들에서는 이러한 영혼의 인간이 되는 과정이 더욱 구체화되어 나타나고 있다. 「시작」에서는 파괴만 남는 공격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위한 파괴를 보여줌으로써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고 ,「안(內)」과 「중력파」에서는 뜨거운 욕망의 세계를 보여주었다. 「해식동굴」에서는 들끓는 욕망으로 인해 마음 한 구석이 침식당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으며 「풍장」에서는 인간의 삶에서 결국 영원한 것은 “영혼”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은 결국 꿈을 가진 자이다. 그 꿈을 가진 자를 시인은 “영혼의 인간”이라 부른다. “영혼의 인간은 그렇게 탄생한다”.
* 권경아 : 문학평론가. 2003년 <시와세계>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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