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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호/신작시/장순금/촉,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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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3
댓글 0건 조회 2,371회 작성일 15-07-06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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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장순금


촉, 


장작을 패보려고 도끼를 들었다 휘청, 느닷없이 도끼날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무서운, 무거운 도끼가 제일 힘센 줄 알았는데 허공의 힘이 도끼날을 단박에 낚아챘다
고요한 것이 날 선 것보다 촉이 깊고 빨랐다

허공의 정수리에 허리 꺾이고 
바람의 모서리에 속살 허옇게 쪼개져 속수무책 나가떨어진 생나무 토막들 
그 생즙의 소금기

누굴 위해 제 생살 쪼개 보인 적 있나, 갈라지는 생살의 소금기 견뎌본 적 있는지
나에게 물어 본다
담벼락에 햇살을 끌어당겨 가지런히 누운 장작더미, 산이 품었던 신생의 냄새를 애써 맡고 있다 
 
아궁이에서 
무한천공을 지나 꽃불로 활활 온기로 사는 일 
온기에 쪼개진 마음 데우는 일 견뎌야 지나가는 일 
기다리고 있다

허공의 촉에 장작 한토막이 경전처럼 펼쳐진다   




쿵,


새벽 산책길에 
스스로 지탱을 놓아버린 육백 년 시간을 한순간에 보았다
넋 놓은 육중한 몸통을 땅이 두 손으로 받았다 
쿵, 
월정사 전나무 숲의 어르신이 길게 쓰러졌다 
긴 끈의 마른기침이 툭, 끊어졌다    

그늘 한 구멍씩 몸속에 스민 육백년이 제 삶을 공중에 누설하고 누워버렸다   
새나간 나무의 체온이 속도를 꺾어 억겁을 향해 돌아누웠다
한 시절, 
곡선으로 푸릇한 나이테 부푼 청춘의 염문도 희미한 기억도 부질없이  

아흔 아홉, 큰할머니 땅에 몸 놓아버린 새벽 
한 시절, 
아름다이 달구어진 청춘이 쿵, 지상에 찍힌 지문을 지웠다

문중 어르신이
저승점 환한 불을 켜고 구불구불 먼 길을 막 나섰다 


*장순금 : 1985년 ≪심상≫으로 등단. 시집 골방은 하늘과 가깝다, 햇빛 비타민 외. 동국문학상, 한국시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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