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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호/신작시/안상학/내 한 손이 내 한 손을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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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안상학
내 한 손이 내 한 손을
감기에 걸려 저린 손 살펴보다가 불현듯
언제 한번 내가 내 손을
살갑게 잡아준 적 있었나 생각해보네
없었네 단 한번도
왼손으로 오른손을 곱게 잡아준 적 없었네
갓 태어난 아이의 손을 잡듯 살포시 잡아준 적 없었네
오른손으로 왼손을 정성스레 어루만진 적도 없었네
떨면서 애인의 손을 잡듯 살며시 잡아준 적도 없었네
한 손이 가시 찔렸을 때 맨 먼저 다가가 살피던 한 손
무거운 짐을 들 때 가장 먼저 함께한 손
그 수고로운 손을 서로
추호도 어루만진 적 없었다는 생각에 문득
계면쩍어 하면서 쓰다듬어보네
남의 손인 듯 느껴보네
애인의 손인 듯 애무해보네 난생처음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게
닿을 듯 말 듯 감싸보네 감싸여도 보네
겨울 물은 그렇게 흘러가는 중
겨우내 물은 죽으면서 천천히 흘러가는 중
가으내 땅 속 깊이 스스로를 저장하지 못한
잉여의 물들이 제대로 죽어가는 시간
눈보라는 동천 여항을 떠돌던 물들의 시신
스스로 눈꽃 조화를 품은 조문행렬
저장된 물들의 허묘에 상복을 입히는 시간
폭포는 투신하면서 동사한 물의 상장喪杖
언 강은 강철로 된 무지개*로 짠 관짝
만년설은 영면한 물로 기운 두건
겨울 물은 그렇게 죽어서도 천천히
아주 천천히 흘러가는 중
(도무지 사람 말고는 아무도 재촉하지 않는)
때가 되면 봄은
반드시 그 죽은 물을 써서 꽃의 형상을 지을 것이다
*이육사 시 「絶頂」에서 얻음.
*안상학 : 1962년 경북 안동 출생. 198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그대 무사한가, 안동소주, 오래된 엽서, 아배 생각.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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