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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호/신작시/남태식/무덤꽃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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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남태식
무덤꽃
금강봄맞이꽃 윤판나물 대극 갯장구채는 봄에 피는 봄꽃이고, 해오라비난초 돌꽃 약모밀 우산나물 절굿대는 여름에 피는 여름꽃이며, 울릉국화 꼭두서니 돌피 낙동구절초 수원잔대는 가을에 피는 가을꽃이고, 수선화 털머위 사프란 해국은 겨울에도 피는 겨울꽃이다.
모두 야생의 꽃으로 산과 들과 강변과 길가에서 철을 알고 철따라 핀다. 한꺼번에 다투어 피기도 하고 다투어 이어서 피기도 하지만, 다툼은 다툼이 아니어서 사시사철 갖가지 색 색깔로 조화롭게 꾸밀 뿐, 산야의 작은 한 귀퉁이도 무너뜨리거나 사라지게는 안 한다.
무덤 안에서 피는 꽃이 있다. 이 꽃은 그러니까 무덤꽃이다. 무덤 안은 철이 따로 없으니 이 꽃은 철없는 꽃이다. 그러니까 망나니꽃이다. 아무 때나 다투어서 피고 다투어 이어서 피는데, 다툼은 다툼이어서 말을 휘두를 때마다 산야의 한 귀퉁이가 무너지거나 사라진다.
개는 개끼리 한통속으로 골목에서, 새는 새끼리 한통속으로 하늘에서 놀듯이, 무덤꽃은 무덤꽃끼리 한통속으로 무덤 안에서 논다. 야생의 꽃들은 야생의 꽃들끼리 다투어도 야생에서 한통속으로 놀아야 하는 법, 무덤 안을 기웃거리는 야생은 곧 시들어 향기를 잃는다.
무덤꽃들은 자주 말을 휘둘러 야생의 꽃들을 찍어 내모는데, 언젠가는 무덤꽃들이 어느 야생의 한 꽃무리를 찍어 내몰 때 다른 야생의 몇 꽃무리도 무덤 안으로 가 들러리를 서더니, 철없는 말바람에 철 이른 눈바람이 몰아쳐 한통속의 야생의 꽃들이 무수히 스러졌다.
낯익으나 낯 선 풍경 앞에서 나머지 야생의 꽃들은 말을 잃었는데, 무덤꽃들이 뒷춤에 감춘 이어서 누구를 향할지 알 수 없는 저 손가락들을 못 본 체 하고 미리 떨며 선 들러리에 또 오래 줄줄이 수치를 당할 거다. 그러니까 무덤 안에서 노는 꽃은 다 무덤꽃이다.
녹는 눈
밤새 참으며 들이마셔 한껏 부피를 늘린 눈이 아침이 오자 숨을 내뱉는다.
내쉬고 쉬고 내쉬고 쉬고. 내 한 때 순정의 바람이 하 세월 빠지고 있다.
남태식
2003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속살 드러낸 것들은 모두 아름답다, 내 슬픈 전설의 그 뱀, 리토피아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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