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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호/연재/윤의섭/표현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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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토피아 - 윤의섭 포에티카 ⑫
표현의 技術 ․ 7
- 비인과성에 의한 ‘낯설게 하기’
시에 비논리적인 면이 있다는 말에 동감하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 시의 상상력이나 표현에서의 시적 허용 같은 부분에 대한 설명에 비논리적이라는 말이 동원되어서는 안 된다고 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시의 비논리적인 면은 철저한 논리적 사유를 통해 표출된 것이기 때문이다. 겉보기에는 그것이 이성의 영역을 벗어난 것처럼 보여도 그 내적 구조와 질서는 빈 틈 없는 체계를 통한 강력한 논리성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흔히 시에서 비논리적인 면은 인과관계가 파괴된 상태의 비약적인 표현에 의해 발생한다. 이 비인과성은 자주 나타나지는 않지만 그것의 효과는 은유나 환유와 같은 여타의 수사학적 장치만큼이나 탁월하다. 그 효과 중 한 가지는 ‘낯설게 하기’를 유발한다는 데 있다. 주지하듯 ‘낯설게 하기’는 독자가 갖고 있는 대상에 대한 ‘자동화’를 부수고, 습관적인 인식의 틀을 깨도록 유도하는 장치이다. 시에서의 비인과성은 습관적이며 자동화되어 있는 우리의 인식에 강한 타격을 주며 새롭게 대상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한다. 당연히 우리는 원인과 결과의 타당한 관계성에 길들어 있기 때문에 그 관계가 예상 밖으로 어긋나거나 깨졌을 때 새로운 충격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기존의 인식 영역을 넘어 전혀 다른 관점에서 대상을 인식하고 사유하게 된다. 비인과성이 나타나 있는 시를 필자의 시를 포함해 몇 편 살펴보기로 한다.
호수 쪽으로 비스듬히 붉은 철제 사다리가 놓여있었다
오리발을 신은 남자가 거기서 서성이는 것을 본적이 있는데
잠깐 사이, 사다리만 남고 남자는 사라졌다
연인들이 허리를 감싸 안고 사다리에 걸터 앉아있는 걸 본 적이 있는데
연인들만 남고 사다리는 사라졌다
노랑어리연꽃과 수 만 개, 빛과 물의 층계를 밟고
네게로 건너가고 싶은 내 마음이 호젓하게 사다리 위에 앉아 있었는데
초록초록, 박태기나무 잎사귀가 내 곁에 있었는데,
사다리만 남고 아무도 없다
아무도 없고 허공만 남아 있다
- 송종규, 「사다리」 전문
이 시의 2연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오리발을 신은 남자가 있었는데, “잠깐 사이, 사다리만 남고 남자는 사라졌다”. 물론 그리 신기한 일은 아닐 수 있다. 화자가 잠시 눈을 돌린 사이에 남자가 호수로 들어갔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에서는 그러한 구체적인 상황, 즉 사다리만 남게 된 원인이 밝혀져 있지 않아, 사다리만 남은 사건은 이유 없이 벌어진 결과로 남는다. 이러한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는 곳은 같은 연의 “연인들만 남고 사다리는 사라졌다” 부분이다. 여기서는 앞부분과는 다르게 사람이 남고 거꾸로 사다리가 사라진 것이다. 사다리가 사라진 것 자체가 불가사의할 뿐만 아니라 그것의 원인도 밝혀져 있지 않다. 이와 함께 이 시의 비인과성은 ‘사다리’와 ‘남자’, 그리고 ‘사다리’와 ‘연인’ 사이에 이렇다할만 한 관련성이 없다는 데에도 있다. 그러나 이 시에 마치 상대성이론에서 공간에 시간을 추가시켰던 것처럼 ‘시간성’을 집어넣어 보자. 그러면 모든 의문이 쉽게 풀린다. 즉, 사다리가 남고 남자가 사라진 현상에는 아주 오랜 시간, 적어도 남자가 호수도 들어가거나 다른 곳으로 가버려 보이지 않을 정도의 시간이 흘렀으며, 시에서는 그 시간의 경과가 생략되어 있는 것이다. 또한 연인은 남았는데 사다리가 사라진 경우도, 적어도 사다리가 철거되었거나 어떠한 이유로든 사다리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 될 때까지의 시간이 흘러간 것이다. 따라서 이 시는 의도적으로 시간성을 배제한 채, 압축된 현상을 동시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시간으로 이어진 인과관계를 차단하고 익숙하지 않은 풍경을 통한 ‘낯설게 하기’의 효과를 불러오고 있는 것이다.
아프지 않은데 눈이 온다
슬프지 않은데 꽃을 피우는 蘭도 있다
처연하게 노을 지거나
부른 적 없는데 달이 뜨는 날도 있다
하마터면 마른 낙엽 이리저리 몰고 다니는 바람길 따라
간신히 그어진 지방도 깊숙이 사라져갈 뻔도 했다
보고 싶은데
결코 나타나지 않는 풍경도 있다
풍경 속에 잠든 사람도 마찬가지다
오늘은 벽에 걸린 거대한 사진 액자를 종일 바라보고 섰다
부서진 기와 조각이 역광을 받아 빛나는
지금은 저 잿빛 갯벌이 추억하고 있을 소금 창고의 잔해가
벽 앞에 서 있는 잔해를 마주 보고 웃는다
멀리서 해연풍이 불어왔다
눈이 오는데 아프지 않다
긴 추억의 시작이다
- 윤의섭, 「魔力」 전문
이 시에서 보이는 비인과성 역시 자동화된 인식의 틀을 깨는 기능을 하고 있다. 시의 첫 행을 보면 “아프지 않은데 눈이 온다”라고 되어 있는데, 주지하듯 아프거나 아프지 않은 것과 눈과는 아무런 관련성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구절은 ‘~데’라는 ‘종속적 연결어미’를 통해 앞뒤의 문장을 연결함으로써 마치 아프거나 아프지 않은 것이 눈이 오는 것과 인과적으로 관계가 있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말하자면 ‘아프면 눈이 온다’라는 인과성이 당연한 전제로 선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전제를 바탕으로 이 시의 첫 행에서는 그 비인과적인 인과관계에 따라야 하는 자연현상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프지도 않은데도 눈이 오다는 어긋난 상황을 진술하고 있다. 이러한 사정은 2행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리고 시의 종결부에서 “눈이 오는데 아프지 않다”라고 한 부분 역시 눈이 오는 것과 아픔과의 인과성이 성립되어 있는 것처럼 표현된 것이다. 우리가 재고해봐야 할 점은 이 비인과성이 타당하냐 타당하지 않냐는 데에 있지 않다. 그것보다 우리는 이러한 비인과성을 통해 인간의 내면과 자연 현상의 관계가 이어질 수 있으며 더 나아가 그러한 비인과적 사유를 통해 세계를 새롭게, 다르게 인식할 수 있다는 데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시의 비인과성 역시 ‘낯설게 하기’의 효과를 증폭시키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 나와 취향이 같으면 좋겠어 그건 함께 고독해지는 일
일어나자마자 커피를 마시고 산책길 나무는 꼭 고개 들어 올려보고 절판된 책과 담배와 듣지도 않는 레코드를 수집하고 달력에는 절대 메모하지 않고
그건 서로 쓸쓸해지는 일
- 윤의섭, 「협연」 부분
이 시의 비인과적 양상은 취향과 고독을 연결시켜 놓은 데서 발견된다. 이 둘의 관계도 모호할 뿐만 아니라, 서로 취향이 같으면 가까워지면 가까워졌지 둘 다 고독해진다는 것은 역시 비논리적인 진술인 것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 시는 각자의 취향에 열중한다는 것, 그것도 같은 취향에 각자 열중한다는 것은 그만큼 고독과는 다른 차원에서 둘의 관계가 완벽한 일치를 이루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말하자면 그것은 완벽한 분업이 이루어진 가운데 가장 조화로운 화음을 이룰 수 있는 최상의 ‘협연’인 것이다.
만약 이러한 의도를 인과적 틀로 제시하는 방식이라면 그 시는 더 많은 설명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그러나 비인과적 표현은 비약과 압축을 통해, 그리고 의표를 찌르는 ‘낯설게 하기’의 효과를 통해, 쓰인 문장이 포괄하고 있는 의미보다 더 많은 의미를 산출해 낼 수 있는 것이다. 비인과적 표현과 인식은 통찰적 시안과 평범함을 거부하는 시인의 의지가 토대를 이루는 가운데 효과적으로 형상화될 수 있다. 언제 어디서 어떠한 시를 쓰든 우리는 우리 스스로 ‘자동화’ 되고 관습적으로, 늘 쓰던 방식대로 시를 쓰고 있지는 않나 항상 되돌아보아야 한다. 끝없는 실험정신, 그칠 줄 모르는 시도. 이 글에서 우리는 시의 표현 기술에 대해 말하고 있긴 하지만 더 좋은 표현을 쓰고자 하는 실험정신과 시도가 없으면 아무리 좋은 기술도 써먹을 수 없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좋은 시’를 쓰기 위해서는 이렇듯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스스로의 추동을 필요로 한다.
* 윤의섭 : 1968년 경기도 시흥 출생, 1994년 <문학과 사회>로 등단, 21세기 전망 동인, 시집 ⌜말괄량이 삐삐의 죽음⌟, ⌜천국의 난민⌟, ⌜붉은 달은 미친 듯이 궤도를 돈다⌟, ⌜마계⌟. 대전대학교 국어국문 ∙창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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