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작품(전체)
52호/책 크리틱/이대의/인고의 울음과 소소한 야생의 독백
페이지 정보

본문
<박수빈 시집 서평>
인고의 울음과 소소한 야생의 독백
이대의
박수빈 시인의 두 번째 시집『청동 울음』(다층)은 시인 내면의 인고에 대한 독백이며 우리시대의 척박한 삶의 풍경을 그려낸 삽화이기도 하다. 첫 시집을 낸지 9년 만에 발간한 이번 시집은 오래 숙성한 울음이 절망같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절망만이 아닌 마침내 움츠린 것을 풀어내는 의지가 있다. 또한 중년의 닳고 닳은 삶 속에 배어든 치열함이 있고 부조리한 세태 풍경이 있다. 언뜻 보기에 소박해 보이나 박수빈 시인이 평론을 쓰면서 시를 깊이있게 읽어 내듯, 그의 시를 곱씹어 보면 단순하면서도 천착하는 이야기들이 시인만의 어조로 조용조용 풀어내고 있다.
1. 인고의 울음과 풀어내는 몸짓
시집 제목에서 암시하듯 울음은 이 시집의 주요 소재다. 그러기에 울음이 뜻하는 의미가 일반적인 울음과는 달라 보인다. 울음은 단순하고 나약한 울음이 아니라 참고 견디면서 풀어내는 한풀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울음은 개인의 울음이기도 하며 시대의 아픔이기도 하다. 우리가 갈망하는 세상을 향한 기다림의 몸짓이기도 하다.
누각에 덩그러니
웅크린 짐승이 빛난다.
울려 퍼지는 시간보다
기다리는 시간이 더 긴 어둠 한 마리,
체증이 밀려온다, 명치끝 부풀고 멍든 기억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오고
묻어버린 사랑이 보인다.
언제까지 그저, 간장 종지여도 좋은
청동울음을 숙성한다.
― 「종메는 어디 갔을까」 전문
종은 혼자 울리지 못한다. 종은 울릴 수 있는 내면의 모든 것을 갖추고 있음에도 혼자 울리지 못하는 처지이므로 인고의 기다림만 존재한다. 이는 시인의 내면과도 상통한다. 이미 모든 것을 갖추고 있으나 직접 나서서 울리지 못하니 내적인 사랑과 욕망을 풀어버리기 위해 끝없이 기다리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시인의 모습과도 같다.
흔히들 종을 울리는 소리로 기억하지만, 종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 침묵이 본 모습일 것이다. 다시 말해 종의 소리는 침묵이다. 그러나 종은 한 번 크게 울릴 때 가장 아름답지 않은가? 종이 울릴 때 가장 종 같이 보이지 않는가? 그 한 번의 울림을 위하여 ‘울려 퍼지는 시간보다 기다리는 시간이 더 긴 어둠 한 마리’가 되는 것이 종의 속성이다. 종은 울려주지 않는 종메가 야속하고 그립기도 하지만 그래도 끝없이 기다린다. 그런 기다림에 지쳐 울음이 나고, 결국 ‘청동 울음을 숙성한다.’
이 시를 좀 더 확장해보면 종을 울리는 세상, 우리가 웅크리고 염원하는 세상이 오기를 기원하는 바람이기도 하다. 암울한 세상에서 누군가 우리의 종을 울려 갈망하는 세상이 오기를 기다리는 기원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종은 울리지 못하고 결국 울음을 숙성해야만 하는 현실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울음은 다양하게 등장한다. 삶의 고단함을 사물이나 동물의 속성을 통해 표현하거나 자유를 갈망하는 소리로 나타나기도 한다.
시계방의 다양한 시계들이 시끄럽게 돌아가며 견디는 울음이 ‘여럿이 모여 울음이 시끄럽다.’(「시계방 풍경」) 거나, 길거리의 고양이가 먹을 것을 찾기 위해 울어대는 울음이 ‘날름거리는 파도처럼 고양이 울음이 옆구리를 간질인다. / 어디서부터 따라온 것일까. / 소금기 낀 고양이 울음소리’(「해당화가 피고 지더라」)와 같이 노숙자 고양이의 울음이 있다. 또 ‘햇빛 고슬한 날의 잘 마르는 이불이라면/ 얇은 물결이/ 물새가 흘리고 간 눈물이/슬로우/슬로우, 퀵’(「비오는 탱고」)은 물새들이 자유를 갈망하는 울음 혹은 눈물로 나타난다. 이렇듯 울음은 내면에서 차갑게 인내하는 산물이고 더 나아가 울음에만 머물지 않는다. 인고의 시간을 통해 하고자 하는 일을 온 몸을 다해 풀어버린다.
첫물을 걸러낸다.
너를 우려내다 나도 우려지나
빳빳한 잎 한결 부드러워지고
감칠 맛 나는 혀끝
― 「몸 풀다」에서
찻잎은 야생에서 자라나 자신의 향을 간직하기 위해 뜨거운 곳에 몸을 데우고 웅크려 견딘다. 이 역시 맛과 향을 간직하고 있지만 ‘종’처럼 누군가의 행위가 있어야만 풀어 놓을 수 있다. 시인은 그런 찻잎의 갈망을 풀어버리기 위해 따듯한 물을 붓는다. 이런 시인의 행위는 결국 갈망했던 소원을 풀어 버리는 것이며 자아 성찰이기도 하다. 따듯한 물을 부어 온 몸에서 우려내는 맛과 향을 느끼며 결국 내면의 인고를 풀고 더 나아가 수동적인 삶에서 적극적인 삶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마침내 ‘달마다 꽃을 피워내는 내 몸’(「로즈데이」)에서와 같이 삶의 꽃을 피우고 싶어 한다.
2. 중년의 느슨함과 소소한 야생의 독백
한창 젊은 시기가 지난 중년은 젊음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인정하기 어렵다. 마음만은 언제나 청춘이고 싶으며 외형에서도 단단하고 팽팽한 모습을 유지하고 싶은 바람이 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중년이 되면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던 삶이 느슨해지고 축 쳐지는 삶이 되어 가는 걸. 중년은 젊은이의 치기 대신 소소한 야생이 있고 삶의 노하우가 있다.
세상의 여자들이 처음부터 빤쓰는 아니지
줄에 걸려 어느새 펑퍼짐하고 방방한
빤쓰, 고무줄이 느슨한
빤쓰, 올이 나가고 구멍이 생긴
빤쓰, 밥상을 쓸고 닦는 행주 같은
오랜 얼룩에 쉰내가 나는 빤쓰
후줄근한 감촉, 민무늬에서 새어나오는 휘파람
다리 사이에 팬티를 살짝 걸치며
엉덩이 실룩이며 바람이 살랑대고
짧은 치마가 팔랑여도 좋아라
개미가 과일껍질에 들러붙듯 레이스가 달리면 더욱
빤쓰는 흐르고 흐른 눅눅한 치즈
새의 깃털들이 허공까지 늘어지네
끊어지며 아슬히 이어지며 끼룩거리네
둥지의 바람 빠진 풍선이겠지
팬티의 무덤이겠지
뱀이 새 허물을 입듯이 빨강 줄무늬 팬티는 언제?
― 「빤쓰」 전문
빤스와 팬티의 차이는 무엇을까? 여기서 팬티는 청춘스럽고, 빤스는 중년스러운 듯해 보인다. 그러나 그 구별이 뭐가 중요하랴? 여기서 빤쓰는 펑퍼짐하고 방방한 그리고 느슨한 것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빤쓰가 결국 젊은 시기가 지난 중년의 여인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렇다. ‘처음부터 빤쓰는 아니’었다. 세상을 살다보니 닳고 닳은 삶이 빤쓰 같은 삶이 되어 버린 것이다. 고무줄이 느슨하고 올이 나가고 구멍이 생기고 쉰내가 나는 빤스, 후줄근하게 젖어 있는 빤쓰에서 삶의 고단함이 느껴진다. 또한 일을 가리지 않고 어떤 일이든 잘 견뎌내는 야생의 삶이 담겨 있다. 그렇지만 아직도 청춘의 열망은 남아 있어 ‘빨강 줄무늬 팬티는 언제?’하고 아쉬움을 나타낸다.
중년의 닳아빠진 삶과 열망이 그대로 보여주는가 하면 소중했던 추억을 잃어버리는 아픔을 노래하기도 한다.
딱따구리 한 마리가 내 안에 산다. 언제부턴가 딱,딱,딱,딱, 울려오는 저 익숙한 소리. 시도 때도 없이 구멍을 판다. 딱,딱,딱,딱, 내 안의 소리를 들키지 않으려 나는 구멍을 꼭꼭 닫고 다닌다. 딱,딱,딱,딱, 봄날이 와도 싸늘한 기운, 누군가는 싸늘한 바람을 읽는다. 이유 없이 저릿저릿 웅크리게 되는 날, 그런 날은 딱따구리가, 내 안의 구멍을 넓혀가기 때문이다. 딱따닥딱따따따....... 달래지지 않는 내 안의 나 혹은 딱따구리, 나의 속을 텅 비워내고 껍데기만 남은, 내 몸의 공명(共鳴).
― 「반지를 잃다」 전문
이 시는 제목과 내용이 절묘하다. 제목에서는 ‘반지를 잃다’로 되어 있으나 시는 딱따구리 한 마리가 나무의 구멍을 파는 내용이다. 반지는 이미 구멍이 있어 손가락에 끼는 것으로 소중한 증표를 간직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반면 딱따구리는 단단한 나무를 쪼아 구멍을 낸다. 이 둘의 연관관계를 통해 단단한 자신의 내면이 세상살이에 시달려 파여 가는 것을 이야기 하고 더불어 내면에 간직하고 있는 원형의 반지까지 잃어버리는 삶을 이야기 하고 있다. 결국 ‘껍데기만 남은, 내 몸의 공명’이 된 상태가 되는 과정을 노래하고 있다. 이렇게 너덜너덜해져 가는 중년의 삶에도 마음은 ‘작은 틈도 허락하지 않고 뜨겁게’(「슬픈 체위」)살아가고 싶은 것이 중년의 소망이다.
3. 우리시대의 부조리한 세태와 동거
앞에서 ‘인고의 울음과 풀어내는 몸짓’에서 울음이 단순한 울음이 아닌 부조리한 세태를 변화하려 하고 풀어내는 것으로 보았다. 울음이 그렇게 보이는 이유는 이번 시집 곳곳에 부조리한 세태를 반영한 작품이 많기 때문이다. 추측컨대 시집을 묶는 과정에서 시대를 반영한 작품이 꽤나 버려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 시대의 사건과 연관된 작품은 사건이 지나버린 순간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리라. 작품으로 역사적 사건을 유추해 볼 수 있으나 시인은 역사적 사건이 지나면 독자의 감성도 바뀌기 때문에 단편적인 유추를 불편하게 생각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시집에는 요즘 시대의 부조리한 일반적 세태만을 정리한 듯하다. 다시 말해 일반화된 부조리를 보여주고 있다. 단순한 풍경만이 아닌 부조리와 동거하는 상태를 반영하고 있다.
동네 아파트 놀이터에는
시계소리... 시계소리... 시계소리...
동화가 사라지고 텅빈다.
마법의 성에 뛰놀던
신데렐라, 하이디, 미운 오리 새끼가 길가에서 울고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파랑새를 죽이는 중
빨간 모자, 피터팬은 “제발 집을 돌려주세요.”
더 이상 빗자루 타고 하늘을 날거나
가랑잎 배 시냇물에 따라다니지 않는 마을
종이비행기가 젖어 간다.
이 학원 저 과외로
아이들은 좀처럼
방과가 끝나지 않는다.
늦도록 노란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오지 못한다.
― 「안데르센 마을의 빈 오후」 전문
우리는 어린 시절에 학교 교과서보다도 동화책을 읽으며 감성을 키워왔다. 동화책 속에 우리의 꿈과 이상이 있고 아름다운 세계가 있어 감동을 받으며 자랐다. 또한 친구들과 대화에서도 동화를 소재로 이야기를 나누었기에 나이가 든 지금까지도 어린 시절 읽은 동화를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아이들은 학교수업을 마치고 시험을 잘 보기 위해 학원교육으로 내몰리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놀이터에 아이들이 없고 동화를 읽을 시간이 없다. 그래서 ‘안데르센 마을은 빈 오후’일 수밖에 없다. 이렇듯 학원교육에 쫒기고 있는 아이들을 풍자한 작품이 있는가 하면 이 시대의 동남아(동네 남아 있는 아줌마)의 형편도 보여주고 있다.
오래전 나는 누렇게 피었다. 그녀도 최루탄처럼 피어 있었다. 시화전의 내 시를 보며 “시국이 이런데 시답잖게 시를 쓰니?” 그녀는 수업 대신 막걸리에 꽹과리, 화염병, 「해방전후사의 인식」 이며 「전환시대의 논리」를 따라 키가 훌쩍, 목이 돌다가
― 「해바라기는 어디로」 중에서
최루탄에 쫒기며 사회변혁 운동을 하던 세대 즉, 자신의 앞날에 대한 걱정보다는 사회의 변화를 위해 운동권으로 활동하던 시대.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읽고 화염병을 던지며 “시국이 이런데 시답잖게 시를 쓰니?” 하고 핀잔하던 시대를 지나, 이젠 아줌마가 되어 동네에 남아서 사오정 남편을 걱정하고 부동산 투기에 대해 꿈을 꾸는 시이다. 이와 같이 불안정한 현실에서 궁핍한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들이 있는가 하면 실업자의 오기와 치기가 담긴 고민이 있다.
난 말야. 인생 한방이라고 생각해. 이 바닥은 도무지 눙칠 데도 없는 막막함이지만, 뱀은 좋겠다 생각한 적이 있어. 페이스오프, 불분명한 전후, 또 뭐가 뱀을 사랑스럽게 하는지,<중략>
면접보고 돌아오는 골목은 어둡고도 길다.
방에 들어서면 절로 몸이 공처럼 웅크려진다.
바람을 넣는 실낱같은 구멍 뿐.
― 「동굴주의자」 중에서
요즘 청년실업자나 사오정 세대 등으로 실업자들의 문제를 사회 문제로 확대하고 있지만 딱히 방법이 없다. 이런 현실에서 취업을 위해 면접을 보러 다니는 실업자가 ‘인생은 한방이라고’ 호기롭게 큰소리치지만 실은 뭐하나 내세울 게 없다. 또한 면접을 보기는 했지만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점점 위축되어 가는 실업자. 실업자는 사회생활도 원만하지 못하고 대인관계도 힘들어져 점차 ‘동굴주의자’가 되어간다. 이런 실업자의 현실은 ‘바람을 넣는 실낱같은 구멍 뿐’이다. 그러다 보니 정상적인 노동을 통해 돈을 벌려하지 않고 일확천금을 노리게 된다. 실업의 상황에서 돈을 벌 수 있는 꿈은 복권 밖에 없다. ‘복권은 근육질의 사내다. 미끈한 여기 좀 보라며 속삭인다. 꿈틀거리며 다가온다. 사내를 만지는 맥박이 빨라지고 끈끈한 혀의 입김 속으로 빨려든다.’(「복권사기」)와 같이 복권이 매력적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끝이 없는 복권사기’에만 기대를 걸며 생활한다.
이와 같이 박수빈 시인의 두 번째 시집『청동 울음』(다층)은 인고의 울음에 대한 내면의 자화상이다. 중년의 소소한 야생을 이야기하거나 우리시대의 부조리한 세태를 이야기할 때도 소리를 높이지 않고 참고 참다가 내면으로 전달하려 한다. 그러므로 박수빈 시인의 시는 화려하지 않고 소박하고 단순하나 가볍지 않다. 그가 평론에서 다른 이의 시를 첨예하게 읽어내듯, 그의 시도 깊은 울림으로 전달하고 있다.
이대의 약력 : 경기도 평택 출생. 199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으로 등단
추천0
- 이전글53호/권두칼럼/고인환/공감의 언어를 위하여 15.07.06
- 다음글52호/책 크리틱/박성현/창조적 행위의 시간성, 혹은 '시'라는 세계의 뒤틀림 15.07.06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