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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호/신작시/강인섭/가을편지 1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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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3
댓글 0건 조회 2,813회 작성일 15-07-03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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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가을편지1(햇볕이야기)

강인섭




소식 끊긴지 오래인 옛 친구에게
편지를 쓴다.

나이들 수록 햇볕과 자주 노니는게 좋다는데
요즘 자네도 그렇게 하고 있는지 궁금하이
이 가을이 가기 전에 햇살에 몸을 맡기고
우리가 건널 이승의 마지막 난간까지
눈감고 다녀와 보는 것도 어떨지?

내가 몸 져 누워 있을 때
CT, MRI등 온갖 기계들에 몸 속 구석구석을
들여다 보게 한 후 자주 햇볕과 어울리다 보니
그 놈은 얼굴만 그을리는게 아니라
영혼의 구석구석까지 파고들어
가끔 우주의 기(氣)도 전해주고 가더군

그 동안 비뚤어진 심사도 바로 펴주고
해묵은 오해와 원한도 삭혀주니 말이야

늦가을 오후 공원의 벤치에서 만나는 햇볕이나
툇마루에 내려앉는 양지 볕도 좋지만
오늘은 모처럼 산 그림자 내리는 
골짜기에서 어스를 때까지
햇볕과 개울물 그리고 내가 한데 어울려
한나절 놀다 올 참이네.




가을편지2(동희형에게)

강인섭


60년 전 전쟁 중에 흔적 없이 사라져
혼백만 고향 산천을 떠돌고 있을
한 영혼을 위해 이 편지를 쓴다.

이세상에서 이름조차 잊혀진 사람
동희형은 내 6촌 형이다.
당숙이 외지에서 낳아온 서자여서
족보나 호적은 물론 이세상 어디에도
그가 살다간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

다만 내 기억으로는
집안에서도 구박을 받으며 자란 탓에 반항아였으나
천대 속에 자란 자식이 효자이듯이 가문을 위하는 마음은 남달랐다.
그런 그가 전쟁 중에 바람처럼 사라졌다가
빨치산 대장이 되어 고향에 돌아왔다.

낮에는 대한민국 밤에는 인민공화국이던 시절이라
야밤중에 몰래 마을을 순찰(?)한 후 
우리 집 대나무 숲을 빠져나가
신작로 쪽으로 사라지곤 했다고 한다

젊은이는 모두 피난보내고 빈 집을 지키시던
할아버지, 할머니를 찾아와 집안걱정을 많이 했는데
그 후 동희형은 인근 홍덕 전투에서 전사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소속도 군번도 없는 그의 주검은
누구도 수습하는 이 없이
그대로 고향산천을 떠도는 원혼이 되고만 것이다.

그래서 일까
동네아이들은 전쟁 후 동희형 같은 원혼들이
따로 몰려 다니며 귀신이 되었다고 믿었고
마을곡간이나 대숲 같은 데에서


두세 두세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내는 것도 그들의 소행이라고 여겼다.

이제 전쟁 때 유복자로 태어난 아이가 할아버지가 되었고
적자도 서자도 없는 세상에서
우리모두 오순도순 살아가고 있나니
동희형 같은 원혼들을 모아 고향 땅 어느 산자락에서
푸닥거리라도 한 번 하면 어떨지...


*강인섭 : 1936년 전북 고창 출생. 한국외국어대학교 불문학과를 졸업한 후 파리대학에서 수학했다. 195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후, 녹슨 경의선 등 4권의 시집과  더 넓은 세계로 등의 수상집, 평론집을 다수 출간했다. <동아일보> 워싱턴특파원. 논설위원. 관훈클럽 총무를 역임하고, 통일민주당 부총재, 제14. 16대 국회의원과 대통령정무수석을 지냈다. 한국외대 석좌교수와 호남대 겸임교수를 지낸 후, 현재 강우규기념사업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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