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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호/신작시/이종만/로봇은 위로를 싫어한다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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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이종만
로봇은 위로를 싫어한다
일의 광기에 빠진 로봇아저씨
묵정밭을 갈아엎게 한다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로봇 머리 위 손바닥만 한 채광판이
베푸는 만찬으로 포만감에 빠지면
로봇의 머리 위에 앉은 구름이 소화를 시켜주고
다감함이 푸른 하늘 속으로 떠간다
애환도 없는 로봇 아저씨
땀은 몸 속의 피였지만
로봇은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다
키 넘는 밭둑으로 밀쳐놓고
삐걱거렸던 관절만 멈추운다
감사해 하는 말 로봇 아저씨에게
하지 않아야 한다
로봇은 위로를 싫어한다
옷을 벗었다
목욕을 하려고 옷을 벗었다
겉옷을 벗으면 또 겉옷
겉옷이 몸에 수없이 겹쳐져 있다
평생 옷만 껴입다
불효하며 살았다고
목욕탕 주인이 핀잔을 놓는다
옷을 벗고 옷을 벗으면
옷 속에 배었던 땀방울이
신안 천일염으로 쌓였다
옷 속에서 몇 됫박 쏟아지고 있다
옷을 벗으며
몸이 비대해지도록
옷만 껴입고 살아온 것을 알았다
백화점에서 사 입은 옷을 벗으며
돈 없어 입안이 바싹 타오르던 날을
생각하며 옷을 벗다
목욕탕 문은 닫혔는데
옷을 훌훌 벗어버리는 알몸의 자유를 위해
서둘러 옷을 벗고 있다
*이종만 : 1992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오늘은 이 산이 고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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