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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호/신작시/김은경/서울서 둘째로 잘하는 집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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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3
댓글 0건 조회 3,150회 작성일 15-07-03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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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김은경

서울서 둘째로 잘하는 집* 
                          

유신론자는 아니지만 
이 찻집 이름이 마음에 든다 
첫째로 잘하는 건 신에게 맡겨두고 
하느님 다음 둘째로 잘하는 가게가 되겠다고 내건 
1976년 산(産) 간판이 
나이테 많은 나무처럼 단호하여서

속살마저 아파 세상의 좁은 골목들을 지날 때
길은 나를 알아보지만 나는 길을 의식하지 않고
무릎을 굽혀 바라보는 풍경은 
어제와 다르지 않아 견딜 만한 것

물고기 닮은 눈을 끔벅이며
부레를 잃은 자의 허기로 
나는 서늘하였을까 
서자(庶子) 같았을까
손목을 그어버릴 것 같은 낮달이 
자꾸자꾸 따라오는 하오
어떤 생경한 아픔도 단팥죽 한 숟갈 머금으면 
나을지 몰라,
순결주의자의 걸음으로 망명하듯 찻집에 들어서네   
 
신이 주신 해와 구름, 풍문과 병(炳)이 흐르는 
옛 골목을 휘감고 도는 단팥죽 냄새, 
서러움 입 맞추고 날아가는 영산홍 향기가 
불그죽죽 폭죽처럼 타오른다

흔전만전 꽃사태 속
봄이 홀로 자결한다


*서울 삼청동에 있는 단팥죽 가게.




소풍 


볼륨을 키웠다 줄이는 순간에만 나는 골똘해지기로 한다

지린내 풍기는 골목, 국밥은 
아무런 맛이 없어 
차라리 편안하고  

그냥 4호선 타고 오이도 간다

말 안 되는 뉴스들 
숨도 안 쉬어질 것 같은 투구를 쓴 전경들,
동일 지점에서 터지고 마는 풍선들

도심은 안팎으로 추워 연애는 빵처럼 부풀고만 싶고 
그러나 꼼짝없는 12월, 
우뚝 솟아 손가락질하는 등대 혹은 빌딩 들 

가까스로 꽂힌 햇빛이 
가루마냥 부스러지는 섬에서
일순간 늙어버린 행려병자처럼

껌을 삼킨다 
사이다를 엎는다
더 센 술을 찾는다

파도가 가까울수록 수평선은 멀찍이 달아나고

딩—딩—딩—딩 
종착음 울린 전동차 문을 열고 
꾸역꾸역  
밀려오는 바다


*김은경 : 1976년 경북 고령에서 나고, 2000년 『실천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불량 젤리』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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