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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호/신작시/신지혜/대청소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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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신지혜
대청소
법정스님이 입적하기 전 한 일은 아마 대청소였을 것이다
한 목숨 받아 이 지상에 왔으면 시간 경영 잘해야지
쓸데없는 일,
남의 집 숟가락이 몇 개이며
남의 농장에 양과 소가 몇 마리인 것이나 헤아려서야 쓰겠느냐
시간탕진으로 소일하고
남은 시간 폐지 쓰듯 펑펑 써버렸으며
죽어 이름 몇 자 남기자고 부질없이 명예나 탐하고
뭘 좀 안다고 신변잡기 끄적거려 절 받으며 껍죽거렸으니,
어리석다 어리석다 어리석다
탄식했을 것이다
서점가에 발 푹푹 빠지는 책속에 하나 더 보태는 것도 그렇고
굶어죽는 이에게 쌀 한 톨 역할도 못할 글줄이나 썼다고,
그는 자기가 풀어놓은 책들 모두 거둬들여 훨훨 불살라버렸다
이 세상에 먹고 사는 일만큼 큰 업적이 없으나 또한
먹는 일은 세상일 잘 배워
자신을 만나라고 주어진 것,
자신을 잘 경영해서 CEO 되라는 것 아닌가
오늘
내 안의 부질없는 마음쪼가리들 다 꺼내놓고
마음쇄신 대청소 한다
곁
이른 아침부터,
노숙자 사역하는 사람들이 빵과 커피를 들고 센추럴파크 앞에 모여있다
어떤 노숙자는 한여름 반팔티를 입고 초겨울의 벤치에 누워있고 어떤 노숙자는
사람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통 은박지속의 무엇인가를 꺼내 먹는다
오래전부터 깎지 않은 더부룩한 수염에 엉겨붙는 정체불명의 흰 부스러기들
노숙자 사역하는 사람들이 다가가 빵과 커피를 건네준다
어떤 노숙자는 눈물 글썽거리고 어떤 노숙자는 환히 웃는다
어떤 트라우마를 겪은 노숙자는 노 노! 를 외치며 뒷걸음친다
이 시간대 같은 하늘을 이고 같은 대지를 밟고 있는 한
우리는 눈물겨운 동지,
새 떼는 무리지어 출근하듯 하늘을 가로질렀고
햇빛 나누며 곁을 내주는 나무들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이렇게 오래오래 곁을 나누는 일뿐이라고
이구동성 머리를 끄덕인다
노숙자들이 벤치에 빙 둘러앉아 끼니를 나누며 주거니 받거니
김 오르는 커피를 따른다
*신지혜 : 서울출생. 2000년 미주《중앙일보》신춘문예 당선. 2002년『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밑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우수문학도서>,재외동포문학상 시부문 대상, 미주동포문학상, 미주시인문학상, The Famous Poet Society New Millenium Poet로 선정. 시와뉴욕 편집위원, 뉴욕중앙일보<시와의대화> 보스톤코리아신문<시가 있는 세상>,뉴욕일보<시로 여는 세상>, 미국최대포털 뉴욕코리아<아침의 시> 좋은시 고정컬럼니스트, 뉴욕예술인협회회장, 세계계관시인협회(United Poets Laureate International)member. Poet Society of America m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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