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작품(전체)
51호(가을)장편소설 분재/강인봉/타나의 달 2
페이지 정보

본문
장편소설 분재
강인봉
타나의 달 2
2.
본의는 아니었지만 차라리 그것을 구경한 것이 죄였을까. 결국 준우는 그 값을 너무도 비싸게 지불해야 했다. 어찌 된 영문인지 그로 인해 줄곧 그 시련과 방황의 연속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이미 그렇게 그 세계와 만나지도록 정해진 어떤 필연이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그런 세상에 대해선 전혀 문외한인 그가 그것을 구경하게 된 건 순전히 그 최윤희 때문이었다. 산에 들어가 죽은 듯이 엎드려 요양을 하고 있던 그녀가 난데없이 아예 그냥 출가 입산을 해버리겠다는 엉뚱한 편지를 보내온 것이었다. 그 편지를 받자마자 그녀의 어머니는 당장 그를 불러놓고 길길이 뛰었다.
“이 사람아, 그거 하나도 못 말리고 자넨 대체 뭣하는 사람인가?”
딸 단속도 하나 제대로 못하고서 모든 게 그의 탓이라는 듯 그녀의 어머니가 으르렁거렸다. 일찍이 남편을 여의고 홀로 두 남매를 키우면서 살아온 여자라 그런지 성깔이 아주 보통이 아니었다.
하긴 그 여자는 벌써 얼굴 생김새부터가 호랑이상이었다. 사내처럼 두 눈이 쭉 찢어지고, 코는 주먹만 하고, 입은 함지박처럼 컸다. 그런데 그 속에서 어떻게 토끼처럼 예쁜 딸이 나왔는지 그는 늘 그게 의문이었다.
그러고 보면 윤희는 아버지를 닮은 게 확실했다. 윤희의 아버지도 원래 중학교 교사였는데, 동네 사람들의 말로는 윤희네 어머니의 팔자가 너무 세서 남편이 일찍 죽었다고 했다. 그녀는 억척스럽게 시장에서 장사를 한다. 그러기에 빈손으로 시작해서 35평짜리 아파트까지 샀지 않는가.
준우의 아버지가 다행히 부동산 중개업을 하고 있어서 그걸 살 때 많이 도와주었었다. 피차 무엇 한 가지 내세울 게 없는 집안들이지만 그래도 윤희네가 먹고 사는 것 하나만은 탄탄했다. 그럼에도 그녀의 어머니는 윤희의 월급까지 일일이 다 챙겨서 저축을 한다. 그래서도 윤희의 그 예기치 않은 출가는 당연히 어머니에게 큰 낭패가 아닐 수 없을 것이었다.
“지가 학교 선생 노릇한 지가 얼마나 되었다고……. 그러기에 내가 그때 뭐라고 했나? 어디 여관에라도 꽉 잡아끌고 가서 우선 일부터 내고 보라고 했지 않았나.”
“…….”
“그래, 사람이 아무리 못났어도 그렇지. 명색이 뭣 달린 사람이. 자네 그것은 대체 어디다 써먹으려고 그리 아껴 두었나. 약혼까지 한 여자도 하나 못 휘어잡는단 말인가? 비록 약혼식은 안 올렸지만.”
“그래서 그게 어찌 제 탓입니까?”
묵묵히 앉아 있던 준우가 돌연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더 이상 가만히 듣고 있기가 민망했다.
그러자 그녀의 어머니도 다시 사납게 눈꼬리를 치켜 올렸다.
“그럼 누구 탓인가?”
“…….”
그때 밖에 나갔던 윤희의 동생 윤호가 방에 들어왔으므로 그는 그냥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녀도 흘끗 윤호를 보더니 슬그머니 목소리를 누그러뜨렸다.
“한때는 나도 절에 반쯤 미쳐서 불공을 올리러 다니곤 했지만, 참말로 그놈의 여승들은 도무지 무슨 낙으로 그리 적적하게 사는지 모르겠어. 그렇다고 먹고 사는 것이나마 풍족하다면 또 몰라. 고작 밥 한 그릇, 산나물 몇 접시가 전부 아닌가. 참말로.”
그녀의 어머니가 다시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그래서 그것을 보다 못해 준우는 그 길로 용두사를 찾아 떠난 것이었다. 그녀 어머니는 그녀를 만나기만 하면 다짜고짜 따귀부터 몇 대 갈기고 나서 무조건 머리끄덩이를 비틀어 쥐고라도 끌고 내려오라고 했다.
하지만 준우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또 무슨 변덕에선지 그녀가 아주 짐을 싸들고 집으로 돌아간 뒤였다. 밥상머리에서 그 절의 행자와 입씨름을 하다가 쫓겨났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평소 윤희의 성품으로 봐서는 절대로 누구와 핏대를 올리며 말다툼 같은 걸 할 여자는 아니었다. 어쨌든 그는 그날 윤희의 남은 죄를 몽땅 다 뒤집어쓰면서도 그 절에서 하룻밤 신세를 질 수밖에 없었다. 그 시간 도로 산을 내려가 보았자 이미 차편은 끊어진 뒤일 터였다.
“그렇게 안 보았는데 그 아가씨도 성깔은 있더구먼.”
하필 부목의 방에서 얹혀 자게 되었는데 그 부목이라는 사람의 말이었다. 나이는 한 오십 중반쯤이나 되었을까. 그날 밤 그 사람도 왠지 잠을 못 이루고 엎치락뒤치락 뒤척이고 있었다. 속가에 두고 온 자식이라도 생각이 나서 그런 것일까. 준우는 베개 밑으로 서늘하게 흘러오는 개울물 소리를 듣다 말고 그쪽으로 돌아누웠다.
“그 여자가 워낙 싸가지 없이 호강하게만 자란 탓입니다.”
이제 돌아가면 버릇을 단단히 고쳐놔야겠다고 그는 별렀다. 사람이 아무리 분수를 몰라도 그렇지, 그게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인가 말이다. 하지만 윤희네 어머니는 그 ‘싸가지가 없다’는 말을 듣자 자기더러 한 소리인 줄 알고 펄쩍 뛰는 시늉을 했다.
“뭐, 싸가지? 지금 누가 더 싸가지가 없는 짓인가?”
그걸 보고 준우는 희뜩 웃음을 깨물었다. 절로 한숨이 나왔다.
“윤희더러 한 소립니다. 요양을 하러 간 일만 해도 그렇지요. 정녕 그럴 테면 마땅히 저한테도 일단 한 번 상의를 했어야 할 게 아닙니까. 하여튼 싸가지는 되게 없어요.”
“그러게 누가 뭐래나. 몇 번이나 죽을상을 지으며 머리가 계속해서 띵하게 아프다고, 당분간 학교를 휴직하고 절간에 가서 좀 쉬고 싶다고 해서, 그럼 그러라고 그랬지. 아직 적금도 한참 더 부어야 하는데도…….”
“몸이 아프다면 당연히 병원으로 가라고 했어야지요.”
“나도 그게 잘못이었네. 하지만 누가 일이 그렇게 될 줄 알았나.”
물어보나마나 어디가 아픈지도 뻔했고, 그 요양이라고 해보았자 별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몇 년 전에도 그 병이랄 것도 없는 병을 가지고 산에 가서 노닥거리다가 온 적이 있었다. 갓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였다. 그때는 준우가 직접 그 운주암雲珠庵에까지 데려다 주었었다.
가끔 머리가 띵하고 신열이 오르고 어떤 때는 심하게 현기증이 나고 하는 그런 병이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산에만 있으면 머리가 절로 맑아지고 그 모든 증세들이 감쪽같이 싹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사실 병명도 없는 병이었고, 그 암자도 윤희가 벌써 여고 다닐 때부터 수련회다, 뭐다 해서 인연이 각별했으므로 얼마든지 자유롭게 지낼 수가 있었다. 그래서 윤희는 학교 발령을 받을 때까지 그곳에서 줄곧 지냈고, 그 대신 그녀의 어머니가 몇 번 찾아가 불공을 크게 해주기도 했다.
그런데 그때 부목이 어둠 속에서 몸을 꿈틀했다.
“자네 지금 그 아가씨 싸가지가 없다고 그랬나?”
이건 또 무슨 소린가? 그렇다면 이분도 필시 그 윤희처럼 고약한 딸자식이라도 하나 있단 말인가. 준우는 다시 차갑게 베개 밑으로 흘러오는 개울물 소리에 귀를 열었다. 그러나 그의 귀에 먼저 들어온 건 부목의 말이었다.
“도대체 왜 싸가지가 있어야 한단 말인가. 사람들은 따로 착한 일을 찾지만, 그 선이 곧 악인 것을. 그런데 그 악을 떠나 따로 선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 말을 듣고 준우는 갑자기 어리둥절해졌다. 감히 불목하니의 입에서 주제넘게 그런 말이 다 나오다니…….
그는 슬그머니 언성을 높였다.
“그럼 계속 그렇게 제멋대로 살아야 합니까?”
그때서야 다시 개울물 흐르는 소리가 돌돌돌 들려왔다.
그러나 부목은 여전히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지 말고 자네나 제멋대로 살지 말게나.”
이 말을 듣고는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아니, 제가 왜 제멋대로 삽니까?”
“허어, 그래도 내 말뜻을 못 알아듣는군. 이제 보니 자네가 그 아가씨보다도 더 미련하이. 그래도 그 아가씨는 그런대로 두 귀는 제대로 뚫렸더구먼.”
준우하곤 도무지 말귀가 안 통한다는 듯 이어 부목은 혀를 찼다.
그럼에도 윤희는 그 후 그분을 가리켜 “아아, 그 절도깨비 같은 중늙은이? 그이는 그저 그 절의 머슴일 뿐이에요”라고 간단하게 잘라 말했다. 그럼 왜 갑자기 엉뚱하게 출가입산을 하려고 했었느냐는 말에는 “엉뚱하긴, 나도 한 번 직접 그 도인이 되어 보고 싶어서 그랬지요. 도인만 되면 세상을 자유자재로 살 수가 있어요. 자유자재로 축지법도 쓰고, 앉아서 삼천리, 서서 육천리,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한눈에 훤히 내다보고, 신통력도 부리고, 남의 사주팔자 같은 것도 죄다 알 수가 있구요. 그런데, 그 절의 나이 많은 행자가 이러는 거지 뭐예요. 그런 도인이 되려면 벌써 생김새부터가 보통 사람들하곤 영판 달라야 한다나요. 눈이 부리부리하게 빛나고, 귀는 보통 사람들의 것보다 두 배는 더 커야 하고……. 하지만 내 귀는 이게 뭐예요. 준우 씨 귀보다도 더 작잖아요.”라며 픽 웃었다. 그래도 자기가 문제 많은 여자인 줄은 아는가. “그 나이 많은 행자, 자기 얼굴의 생김새는 또 어떻고? 알고 보니까 그 여자도 문제가 많은 여자였어요. 남편하고 이혼을 하고 왔대나 어쨌대나.”
산에 올라갈 때는 급한 마음이어서 몰랐는데 다음날 쉬엄쉬엄 산을 둘러보니 경치 하나는 정말 기가 막혔다. 특히 그 개울 하나만 해도 장관이었다. 제멋대로 울퉁불퉁하게 생긴 돌멩이들이 밤낮없이 돌돌돌 소리를 내며 그 하 맑은 물에 둥글게 씻기고 있었다. 또한 물이 어찌나 차가운지 그 흐르는 소리만 들어도 이가 시릴 지경이었다. 거기다가 며칠 뒤에는 용두사가 생긴 이래 처음으로 그 큰스님을 모셔 와서 크게 법회를 연다 하여 준우는 염치 좋게 두 눈 딱 감고 그대로 눌러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 법석法席에서 큰스님은 끝내 묵묵부답이었고, 부목은 그렇게 큰스님에게 톡톡히 망신을 준 뒤 어리둥절해 있는 좌중을 한 번 둘러보더니 허어, 하고 두어 번 헛기침을 내뱉고는 이내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제야 주지 스님은 겨우 덫에서 풀려난 듯 끌끌 혀를 찼고, 그 사이 잔뜩 부목에게로 집중되었던 전 대중의 시선이 도로 법상에 앉은 큰스님에게로 옮겨가자, 지그시 눈을 내리감고 있던 큰스님은 서둘러 주장자를 집어 들더니 법상을 세 번 치고 곧 하좌下座했다.
세상은 참 오래 살고 볼 일이었다. 준우는 그날 부목이 주지 스님으로부터 되게 야단이라도 맞고 내쫓길 줄 알았는데, 그러나 주지 스님은 자기 방에 들어가 꼼짝을 않고 있었고, 오히려 그 큰스님이 체면도 없이 능글능글 웃으며 부목에게 아첨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나이도 큰스님이 무려 10여 살은 족히 더 많아 보였다.
개울가에서였다. 그 개울가에 앉아서 빨래를 하고 있는 부목의 곁으로 바짝 다가서는 사람이 있었다. 그때 준우는 화장실에 다녀오는 길이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큰스님이라는 걸 깨닫고는 자신도 모르게 그쪽으로 발걸음이 옮겨졌다.
“한 십년 사뭇 안 보이더니 여기 와서 그래, 부목살이를 다 하고 있소?”
그 복숭아꽃처럼 아름다운 얼굴에 비굴한 미소를 담으며 큰스님이 먼저 말을 걸고 있었다.
부목은 희뜩 큰스님의 얼굴을 한 번 훔쳐보더니 도로 무뚝뚝하게 빨래를 계속했다. 색이 다 날아가고 소매 끝이 날깃날깃 해진 작업복 상의였다.
“순 엉터리 조실祖室 큰스님 노릇하는 거보다야 한결 낫지. 나는 다만 내 밥벌이만을 할 뿐이니까.”
“밥벌이? 그 밥벌이 두 번만 하면 그러다 아주 머슴이 되어 버리겠소. 그리고 누군 그냥 놀고먹나? 밥벌이라면 나도 다 이게 밥벌이야.”
큰스님도 짐짓 언성을 높였다.
“당신이 지금 밥벌이라구? 그럼 왜 공연히 사람들을 그렇게 속이고 있는가? 사람이, 왔으면 그냥 좋게 놀다가나 갈 일이지.”
이번에는 부목이 정면으로 큰스님을 노려보았다.
“뭐, 내가 사람들을 속이고 있다고?”
큰스님이 펄쩍 뛰는 시늉을 했다.
“그럼 그게 사람들을 속이는 일이지 않고.”
부목의 목소리가 다소 누그러졌다.
“내 법문이 어디가 잘못되었기에?”
“크게 잘못되다마다. 그래, 그것도 법문이라고 했는가? 경허 선사의 일화만 해도 그렇지. 경허 스님의 밀씨를 구하여 밭을 일구어 심고…… 하는 말은 경허 스님 당신이 그렇게 하겠다는 뜻이 아니고, 만공이 네가 지금 바로 그렇게 하여 먹고 있구나, 하고 은근히 비웃으며 나무라는 말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며…….”
큰스님의 얼굴에 슬그머니 핏기가 가시고 있었다.
“또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가 왜 거기서 나오는가? 그 말이 무슨 뜻인 줄이나 알고서 하는가?”
“그거야 어디 내 말인가. 종정 스님의 말이지.”
큰스님이 마지못해 어눌하게 대꾸했다. 완전히 주눅이 든 목소리였다.
“그렇다면 그게 어디 종정 스님의 말인가? 중국의 남악 회양南嶽懷讓이 한 말이지. 하지만 근본적으로 산과 물을 알아야지. 산과 물이 생기기 전에는 무엇인가? 산이 산이라 말하는가, 물이 물이라 말하는가? 다 실체가 있는가? 하긴 그 도리를 당신이 어떻게 알겠는가. 그런데 앵무새처럼 남의 말을 잘도 하더구먼. 마치 그것이 자기의 말인 것처럼. 자기의 말을 해야지, 왜 원숭이처럼 남의 흉내를 내고 다니나? 마음은 마음이 아니야. 그러므로 마음인 거야! 그런데 종정 스님은 어떻고, 돈오돈수는 또 어떻다고?”
“…….”
큰스님은 아예 고개를 돌려 부목을 외면해 버렸다.
부목의 목소리가 다시 시끄럽게 살아나고 있었다.
“몇 년간 종정 스님 밑에서 밥을 얻어먹더니 당신도 이제 그 스님의 개가 다 되었더구먼. 하긴 종정 스님도 남의 밥을 얻어먹기는 마찬가지지. 그 돈오돈수는 남악 회양의 스승 육조 혜능六祖慧能이 한 말이지 않나. 그러기에, 진정으로 깨달았다면 자기 자신의 말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얘기야. 진실로 자기 밥이 있다면 왜 자기 밥을 놔두고 남의 밥을 얻어먹겠나? 그건 이미 자기의 밥이 없다는 얘기가 아닌가? 안 그렇소?”
“…….”
큰스님은 차마 얼굴을 제대로 들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 얼굴에 돌이라도 던지듯 부목은 이어 말했다.
“하지만 사실 알고 보면 그 ‘돈오돈수’는 크게 잘못된 말이야. 이미 돈오돈수를 해버렸다면 어떻게 그 돈오돈수라는 말이 나오겠는가? 그래서 깨친 사람은, 깨쳤다 하면 그 깨쳤다는 허물이 남기 때문에 깨쳤다는 말을 하지 않는 법이라고. 가령 침묵이라고 했을 때 그것이 침묵인가, 웅변인가? 그래서 깨치고 보면, 그 돈오돈수가 바로 돈오점수頓悟漸修인 거야. 하지만 종정 스님은 꿈에도 도를 깨치지 못한 사람이라 그 도리를 까맣게 모르고 있는 거지.”
“뭐, 뭐라고? 종정 스님이 깨닫지 못했다고? 이, 이 사람이 지금 제정신이야?”
큰스님은 그제야 급히 입을 열었다. 정말 기가 막혀 죽겠다는 얼굴이었다.
“그럼 왜 그렇게 남의 다 되지 못한 설익은 밥이나 얻어먹고 살겠나. 그런데 무슨 영화를 위한 종정이고, 큰스님인가? 그리고 또 당신도 사기를 칠 것이 따로 있지, 왜 그 따위 되지도 않은 설익은 찬밥 같은 말을 앵무새처럼 옮기고 다니나? 그까짓 큰스님이라는 소리를 그렇게도 듣고 싶어? 그래서 그렇게 큰스님이란 소리를 들으니 행복하신가? 사람이 그만큼 나이를 먹었으면 창피한 줄을 알아야지.”
“으흐, 흐흐흐. 내 이런 사람을 다 보았나. 이 사람이 정말…….”
큰스님은 눈에 꾹 힘을 주며 부목을 노려보다가 끝내 먼 하늘을 향해 웃음소리인지, 울음소리인지 모를 괴상한 소리를 내고 말았다.
하지만 부목은 거기까지 쫒아가서 짖어댔다.
“그리고, 주장자도 그렇지. 그 드는 도리도 하나 모르면서 그렇게 들었는가? 그 또한 좋게 삼십방三十棒이오. 당신이 바로 그 삼십방을 맞아야 한다는 얘기야. 그렇게 사람들을 속이다가 죽으면 어느 곳으로 떨어지는 줄이나 아는가? 그 죄 무간지옥이오. 그러기에 자기 공부부터 해야지. 그 주장자가 본래 어디서 나왔는가? 그러기에 옛스승이 뭐라고 하시던가. 섣불리 그 자리에 앉지 말라고 하시지 않던가.”
이제 할말을 다 했는지 부목의 얼굴에 차츰 노여움이 지워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 준우로선 도무지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그분이 그냥 보통 부목은 아닌 모양이라고만 막연히 생각했을 뿐이었다. 글쎄, 너무도 미련한 탓이었을까. 그래서 준우는 못내 아쉬움이 하나 남고 있었다. 윤희에게 이걸 못 보여주는 것이 그것이었다. 윤희라면 분명 어느 정도는 그 말들을 알아들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또 그러잖아도 윤희는 이런 분을 못 만나 안달하는 여자였다.
어쨌든 부목은 그날 다시 여전히 공양주 보살의 잔소리를 들으며 후원의 마당을 청소하고 있었다. 아무 말없이 장작을 패고 불을 때며 남은 해를 마저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뜻밖에도 거기 또 하나 끼어드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번에는 현기 거사라고 하는 점잖은 양복 차림의 한 신사와 새파랗게 젊은 비구니 스님이었다. 몇 명의 건장한 시자들을 거느리고 이제 막 큰스님이 하산한 뒤였다.
현기 거사는 산문에 들어서자마자 그 앞에 얼쩡거리고 있는 주지 스님에게 대뜸 부목의 방부터 물었다. 하지만 주지 스님은 마치 벌레라도 씹은 얼굴로 심드렁하게 큰스님을 배웅하고 돌아선 터였다. 그래서 준우가 얼른 그들을 부목이 있는 후원으로 안내해 주었다. 그도 그때 마침 하산을 하려던 참이었다.
부목이 먼저 그들을 알아본 듯 불을 때다가 엉거주춤 일어났다.
“아니, 현기 거사님이 여긴 웬일입니까?”
그러나 부목은 그다지 현기 거사를 살갑게 반기는 얼굴은 아니었다. 그저 어정쩡하게 서서 겸연쩍게 웃고 있을 뿐이었다.
“웬일이냐니? 이 절 부목을 좀 잡아가려고 왔지.”
“이까짓 부목은 잡아가서 어디다 쓰게? 그런데 혜지 너는 어쩐 일이냐?”
그제야 부목이 비구니를 흘끗 바라보더니 혀를 차듯 말했다. 이때 준우는 비구니와 처음 눈이 마주쳤다. 너무 맑고 깊어서 금방 그 속에 빨려들 것만 같은 눈이었다.
“명화원에 갔다가 거기서 혜지 스님을 만났지요. 그래서 같이 온 겁니다.”
현기 거사가 대신 입을 열어 주었다.
“명화원에는 또 뭣하러 갔었더냐? 이제는 네 녀석까지 벌써부터 그 타령인가? 그저 자기가 하는 공부나 할 일이지.”
여기서 준우는 다시 또 마음이 왠지 모르게 우울했다. 아무리 새파랗게 젊은 비구니라지만 불목하니 주제에 그리 말을 마구 내뱉다니. 아까는 공연히 생트집을 잡아 큰스님과 일전을 벌이기까지 했지 않는가.
그때 현기 거사가 얼른 그들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아, 그렇게라도 살아야지, 스님이라면. 그런데, 아까 오다가 진봉 스님을 만났소. 그 자가 여기까지 어쩐 일이지?”
“여기서 아주 크게 법회를 열었지요.”
하지만 부목은 이제 아무 표정이 없는 얼굴이었다.
오히려 현기 거사가 얼굴을 번쩍 쳐들었다. 그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법회? 그 자가 여기 저기 몇 백만 원씩 돈 받고 다니며 법문을 한다는 말이 있더니, 그게 사실이었구먼. 불쌍한 사람. 대원사에 조실로 앉아 있으면서 온갖 호강을 누리는 것만도 부족해서 이제는 이 절 저 절 기웃거려? 어쩌다가 이 자비 문중에 그런 순 가짜, 사기꾼이 나왔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중생들이야 조실 스님이니까 무조건 우러러 받들겠지만, 그 입에서 과연 어떤 말이 나올꼬?”
이 말 또한 준우로선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나이로 본다면야 현기 거사는 그 큰스님과 별 차이가 없었다.
이제 부목은 다시 돌아앉아 불을 때고 있었다.
현기 거사가 깊게 한숨을 토해 냈다.
“그러기에 이제는 부목이 바른 법을 펴야 할 세상이 된 겁니다.”
부목은 불을 때다 말고 허,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 자기 중생을 놔두고 어디 가서 누구를 제도한단 말요.”
그러나 그 손은 어딘지 모르게 떨리고 있었다.
“또, 또, 그 소리. 내가 지금 부목하고 말장난이나 하자고 여기 온 줄 압니까? 어서 짐이나 챙기시오. 어디, 챙길 짐이나 있을까. 챙길 짐이라도 있다면 또 모르지.”
부목도 그날 결국 현기 거사를 따라 하산을 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준우는 그때까지도 최면에 걸린 듯 비구니 혜지의 얼굴만을 정신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도대체 이 스님의 수행은 어떤 것이기에 얼굴의 표정 하나만 가지고도 이처럼 사람의 마음을 떨리게 하는 것일까. 그 희고 갸름한 얼굴에 붓으로 그린 듯한 초승달 모양의 선명한 두 눈썹. 조용히 생기를 띠고 있는 눈. 안정감 있게 꾹 자리를 잡고 있는 코. 꼭 다물고 있는데도 금세 사글사글 상냥한 말들이 쏟아져 나올 것 같은 입.
그런데 그로부터 두어 주일쯤 지난 뒤였을까. 그날 준우는 윤희를 따라 어느 고아원을 방문하게 되었다. 중학교 미술교사를 하고 있는 그녀는 불심佛心 때문인지 매달 하루씩 고아원을 찾아 인정을 나누곤 했지만 그는 사실 그런 일에 대해서는 일체 무관심이었다. 또 고아원이라면 축축한 습지식물처럼 연상되어 와서 마음이 개운치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날 준우는 뜻밖에도 윤희로부터 그 고아원의 원장이 여승이라는 말을 들은 것이었다. 그러잖아도 용두사에 가서 그분을 만나고 온 뒤부턴 어쩐지 그쪽으로 자꾸 쏠리는 마음을 떨쳐버리기 어려웠던 그였다. 전혀 그런 불교에 대해 문외한이었던 그는 그 일이 있고 난 뒤에야 비로소 조금씩 관심을 가지고 그 방면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고아원은 시내 변두리에 있었다. 변두리라 해도 그리 넓은 편이 아니었는데 그 안에 법당이 있어서 그렇게 보인 것일까. 거기다가 올망졸망한 아이들이 20여 명 밝게 뛰놀고 있어서였을까. 그것은 마치 커다란 유치원 같았다. 아이들이 윤희를 보자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때 마침 뜰 앞에 고만고만한 채송화도 함초롬히 피고 있었다.
준비해온 사과 한 상자를 들고 윤희와 그가 현관에 들어서자 이미 올 줄 알고 기다렸다는 듯 현관 앞에 서 있던 원장이 두 손을 모으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런데 여승은 윤희를 ‘보살님’이라고 불렀다. 준우도 물론 그동안 적잖은 관심을 가지고 불교에 대해 이것저것 알아본 건 많았지만, 그러나 막상 머잖아 자기 아내가 될 여자가 ‘보살님’이라고 불리자 어쩐지 기분이 좀 야릇했다. 얼마 전에는 직접 출가 입산까지 하려던 그녀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윤희는 그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태연스럽게 지내오고 있었다.
잠시 어정쩡하게 서 있는 그에게 윤희가 말했다.
“우리, 아이들의 방이나 한 번 둘러보고 올까요?”
“그럴까, 보살님.”
여승이 얼른 받았다. 그녀들은 진작부터 그렇게 서로 마음이 통해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준우는 그만 자신도 모르게 법당 쪽으로 발길이 향해지고 있었다. 이제 막 법당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다름 아닌 그 용두사에 올라왔던 혜지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눈치였다. 평소에 안면이 있었던 듯 그녀는 그저 윤희에게로만 눈길을 둔 채 다소곳이 머리를 숙여 합장을 해 보였다.
“스님, 혜지 스님이 아니십니까?”
다소 섭섭해 하는 표정으로 준우가 알은체를 하자 그제야 혜지는 그에게 눈길을 주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뿐, 도로 윤희에게로 눈길을 가져가더니 그녀는 고개를 두어 번 갸우뚱거렸다. 여전히 스무 살 정도밖에 안 되어 보이는 앳된 얼굴이었다.
“저, 스님을 용두사에서 한 번 뵌 적이 있는데요. 두어 주일 전에 현기 거사와 함께 그 절의 불목하니를 찾으러 갔지 않았습니까?”
그때서야 혜지의 입에서 아, 소리가 짧게 새어나왔다. 그리곤 이내 그 애티가 풀잎처럼 묻어 있는 얼굴에 싱긋 미소를 띠었다.
“뜻밖이군요. 한데 이 명화원엔 웬일이세요?”
혜지는 다시 윤희에게로 눈길을 가져갔다. 그러나 그때 윤희는 이미 원장을 따라 아이들의 방에 들어가고 있었다.
그제서야 준우는 문득 그 용두사에서 그들이 얘기하던 명화원이 생각났다. 이제 보니 그 명화원이라는 게 바로 이 고아원이었군.
“그분은 사실 불목하니가 아니라, 스님입니다. 용담 선사라고, 한때는 아주 유명한 큰스님이었지요. 제가 입산을 하기 전에요. 저도 실은 그분을 따라 입산을 한 거예요.”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멀거니 바라보며 혜지가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스님? 그분이 큰스님이라고?”
준우는 순간 관자놀이가 욱신거렸다. 이 여자가 지금 누굴 놀리고 있나. 그는 벌린 입을 닫지 못했다.
그때 윤희가 아이들의 방에서 나오고 있었다.
“사실은 이 명화원도 큰스님이 세웠어요. 그 현기 거사님의 도움을 받아서요. 그분은 병원 원장이십니다. 지금도 그분은 남모르게 이 명화원을 돌봐주고 있지요.”
이제야 준우는 그 용두사에서 그들이 나눈 대화를 조금씩 이해할 만했다.
“큰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스님들은 거개가 자식을 낳아 키워주지 않기 때문에 성불하지 못하고 죽으면 대부분 고아로 태어나기 십상이라고. 그래서 처음 큰스님이 이 명화원을 세웠지 않았나 싶어요. 그러나 이 가운데서 도인도 나오고, 보살도 나오고, 부처도 나오겠지요.”
맑게 씻긴 눈으로 혜지가 넌지시 그를 바라보았다.
그 눈과 마주치는 순간 준우는 다시 어떤 이상한 아픔을 느꼈다. 출가 이전의 그 눈에는 과연 무엇이 담겨 있었을까. 그는 차마 그걸 상상하기가 두렵다. 대체 이 여자는 무슨 말 못할 사연이 있어 입산을 한 것일까. 하지만 그는 이 여승이 몇 살 때 입산을 했는가도 묻지 못한다.
혜지는 말을 이었다.
“여기서 어느 정도 자라 학교 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그래서 자기의 의사에 따라 절에 보내지기도 하지요.”
그렇다면 정작 그 용담이 그렇게 머리도 깎지 않고 속복을 걸치고 다니며 주로 절간의 불목하니 노릇을 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준우는 좀더 불교를 깊이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 그로서는 어쨌든 그분은 이미 스님의 복색이 아니니 스님이라고 부를 순 없는 일이었다.
“아니, 그럼 그 절도깨비 같은 중늙은이 머슴이 진짜 도인이었단 말예요?”
돌아오면서, 윤희가 그 혜지를 어떻게 알게 되었느냐고 잔뜩 호기심을 가지고 묻기에 용담의 얘기를 되도록 소상하게 들려주자 그녀는 깜짝 놀랐다.
“세상에,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그럴 줄 알았으면 며칠만 더 있다가 집에 돌아올 걸. 난 그것도 모르고 그 앞에서 얼마나 시건방을 떨었는지. 어쨌거나 그렇담 그거 참 아주 잘 되었네요. 안 그래도 나는 그런 도인을 꼭 한 번 만나보려고 찾으러 다니는 여자잖아요. 준우 씬 그런 나를 두고 정신이 좀 이상한 데가 있는 여자라고 가끔 지청구를 주지만요.”
그래도 나름대로 효녀였던 것만은 사실이다.
그녀는 미술대학 2학년 때 어머니가 그만 고혈압으로 되게 한 번 쓰러진 뒤 운신을 못하고 자리에 드러눕는 바람에 1년간 휴학을 하고 간병을 하게 되었었다. 거기다가 그 어머니는 병석에 누워서도 부처님 뵙기만을 원하는 것이었고, 그 모습을 보다 못한 윤희는 어머니를 대신해서 지극 정성으로 절에 기도를 하러 다녔다. 이때부터 사실 그녀의 그 산행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어떤 화가를 만나게 된 모양이었다.
그 화가는 처음엔 주로 법당에 모셔진 부처님의 얼굴을 그리러 다녔는데, 알고 보았더니 각 절의 부처님도 그 얼굴 생김새가 다르고, 또 알고 보았더니 그 각각의 불상은 모두 부처님의 상이 아닌, 바로 그 불상을 조성한 조각가의 얼굴이더라는 것이었다.
거기서 그 화가는 헛수고임을 깨닫고, 그럴 바엔 차라리 그냥 육안으로 보이는 스님들의 얼굴이나 그려보자 하였고, 그러다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제는 아예 도인의 얼굴을 그려보자 하였는데, 전국의 각 사찰을 다 샅샅이 뒤지고 다녔어도 진짜 도인같이 보이는 얼굴은 하나도 없더라는 것이었다.
그것도 과연 불심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윤희도 나름대로 그 사람에게 감화되어 지금도 틈만 나면 습관처럼 이 산 저 산을 찾아다니며 그런 도인을 꼭 한 번 만나보는 게 소원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비웃을지 모르지만 이제 난 어쩌면 그런 분을 만나기 위해 살고 있는 여자인지도 몰라요.”
준우는 한없이 그녀가 부드럽고 사랑스러워지다가도 그럴 때는 정말이지, 그 얼굴이 어딘가 좀 안 되어 있어 보였다. 능선처럼 시원하게 툭 트인 이마에다, 해안선같이 온유하게 돌고 있는 턱의 선. 상큼하게 높은 코. 도드라진 입술. 얼굴의 선들이 이지적으로 선명하여 한눈에도 예쁘고 강한 인상을 주고 있음에도 어딘가 하나 나사가 빠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3.
준우가 다시 혜지를 만나게 된 것은 바로 그 윤희의 그림에서였다. 그날 그는 그러잖아도 잠시 읽던 책을 덮어놓고 윤희를 생각하고 있었다. 점심때 어머니가 모처럼 국수를 맛있게 삶아줘서 꾹꾹 눌러가며 두 그릇이나 먹었더니 뱃속은 아직도 든든했다. 그걸 먹을 때도 그는 두어 번 윤희를 생각했다.
용케 그녀에게서 전화가 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전화 받아라. 윤희다.”
어머니가 무선전화기의 송수화기를 건네주자마자 저쪽에서 금세 포근한 윤희의 음성이 들렸다.
“준우 씨, 나예요.”
“응. 안 그래도 마침 윤희를 한 번 만나보려고 하던 참인데, 이거 텔레파시가 통한 모양이지?”
윤희와 명화원에 가서 혜지를 만나고 온 뒤 그가 유일하게 한 것은 책을 한 권 사본 일이었다. 서산 대사의 선가구감禪家龜鑑이었다. 그리고 그는 밤을 새워가며 그것만을 내리 읽었다. 말씀이야 읽을수록 정말 부처님과 나란히 앉아도 좋을 만큼 훌륭한 것 같았지만 그러나 그는 도무지 그 깊은 속뜻을 알 수가 없어 연일 책상 앞에 앉아 끙끙거리고 있었다.
선禪을 알려면 무엇보다도 그 책을 읽어야 한다며 윤희가 한사코 권해서 사보았는데 아무래도 그녀에게 가지고 가서 다시 몇 마디 물어봐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그때 마침 윤희에게서 먼저 전화가 온 것이었다. 그것도 참 알 수 없는 일이지.
“뭐하고 있어요? 어서 빨리 안 나가고…….”
“네? 어서 빨리 나가라니요?”
갑자기 윤희의 깜짝 놀라는 목소리였다.
그는 피식 웃었다.
“아니야. 어머니 보고 말했어. 그래, 지금 거기 어디야?”
아직도 어머니는 그에게 무슨 할말이라도 있는지 안 나가고 방안에 머뭇거리고 있었다.
“집이에요. 지금 그 다방으로 나오세요. 준우 씨에게 보여드릴 게 있어요.”
다시 윤희의 목소리가 포근해지고 있었다.
“그 시청 앞에 있는 초원 다방 말이지?”
“네. 거기서 만나요.”
“좋았어. 내가 지금 바로 나가지. 그럼 이따 거기서 봐.”
다시 그 서글서글한 목소리가 들려올 성싶더니 저쪽에서 먼저 다그락 전화기에 송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윤희도 그날 명화원에서 용담의 얘기를 듣고 난 이후부터는 원장 스님과 더 사이가 가까워져 틈틈이 거기서 참선 공부까지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여기 한 물건이 있는데 본래부터 한없이 밝고 신령하여 난 것도 아니며 죽음도 없었다. 이름 지을 길 없고 모양 그릴 수도 없다.”
거기 첫 장에 이렇게 씌어져 있었다.
그렇다면 그 ‘한 물건’이란 무엇인가?
자기의 모든 헛된 욕망을 버리고 그 한 물건만 깨달으면 비로소 생사윤회에서 벗어나 대해탈을 얻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준우로서도 한 번 해볼 만한 일이긴 했다. 자기야 어차피 물질 같은 것에 대해서는 전혀 욕심이 없으니까. 그다지 손해 볼 것도 없는 일이지 않겠는가. 그까짓 버리고 말 것도 없으니까.
그럼에도 그는 그게 못내 불만인 것이 사랑하는 사람도 갖지 말라고 하는 말 때문이었다. 적어도 그것 한 가지만은 빼놓아야 했다. 하지만 윤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그것에 정신이 반쯤은 빠져 있는 것이었다. 그녀는 분명 자기에 대한 사랑도 별거 아니라는 얘기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그는 다소 섭섭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 생각을 해서 그런진 몰라도 요즘은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가끔 들기도 한다. 윤희가 자기를 두고 어디론가 멀리 떠나 버릴 것만 같은 것이었다.
급히 옷을 갈아입고 밖에 나오니 하늘이 우중충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비라도 한바탕 쏟아지려나. 준우는 잔뜩 찌푸려 있는 하늘을 보자 괜스레 가슴이 답답해지고 있었다.
그는 걸음을 빨리 했다.
“여기예요, 준우 씨.”
흰색 잔 타일이 정갈하게 깔린 계단을 밟고 이층에 올라가 초원 다방의 문을 열자 저쪽 구석 창가에 앉아 있던 윤희가 손을 들어 보였다.
“생각보다 빨리 나왔네요.”
이내 그쪽으로 다가가 의자에 마주앉자 흰 이를 가지런히 드러내보이며 그녀가 밝게 웃었다. 이럴 때는 또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윤희네가 아파트를 분양 받아 입주해 가기 전까지 그들은 줄곧 아래윗집에서 아무리 작고 하찮은 음식이라도 같이 나눠 먹으며 살았었다. 그래서 그들의 관계는 너무나도 자연스럽다. 마치 오누이처럼. 윤희는 준우보다 세 살이나 아래다. 그래서 철들기 전에는 오빠라고 부르며 따라다녔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오히려 윤희가 준우보다 먼저 더 의젓하게 어른이 되어 버린 기분이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부드럽게 정이 밴 목소리였다.
“어떻게 지내나마나 나야 뭐 노상 그렇고 그렇지.”
그러자 윤희가 못마땅하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 선가귀감은 다 읽어보았어요?”
“가지고 다니면서까지 짬짬이 세 번도 더 읽었어. 그런데 난 도무지 무슨 뜻인지 통 알 수가 있어야지. 어떤 부분은 그 문장조차 이해하기가 어려워. 마치 겹겹 구름 속을 헤매고 있는 기분이야.”
준우는 부러 얼굴에 과장되게 엄살을 부렸다.
“그러니까 마음으로 읽어야지요.”
윤희는 기어이 그를 나무라고 말았다. 그러더니, 그녀가 준우 앞에 그림을 하나 꺼내놓았다.
“그럼 이거나 한 번 보세요.”
“아니, 이건 대체 무슨 엉뚱한 그림이지?”
그림을 보자마자 준우는 눈을 크게 벌려 떴다.
박박 머리를 깎은 것으로 봐서는 스님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장바닥에 앉아서 장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뭔가를 팔고 있었는데 그것은 무엇인지 분명치가 않았다.
“그래, 이걸 보여 주려고 나를 불러낸 거야? 그런데 이건 뭐지?”
준우가 그것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그녀는 얼른 대답했다.
“그건 과일이에요. 시장에서 과일 장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에요.”
8절지 크기의 켄트지였다. 윤희는 원래 한국화가 전공인데, 이번에는 투명한 색감의 수채화였다. 크게 공을 들인 흔적이 보이지 않는데도 타고난 솜씨가 좋아서인지 볼수록 그림이 선명하게 살아나고 있었다.
“거기서 그 스님이 과일 장사를 하고 있어요. 그래서 그걸 한 번 그려본 거예요.”
무슨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듯이 윤희가 자랑스럽게 웃었다. 하지만 준우는 실망이 가득한 얼굴로 혀를 차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 스님이라니?”
“꼬박 며칠 동안 몰래 숨어서 그려온 거예요. 보세요. 비록 장사를 하고 있으면서도 얼굴의 표정이 얼마나 평화로워요. 그래서 여기에 이 노을까지 그려 넣은 거예요. 앞으로도 기회가 있으면 나도 계속 이런 그림을 그려볼 생각이에요.”
선홍빛 노을이 서서히 그 얼굴을 물들이고 있었다.
“그런데 이 스님은 대체 누구지? 요즘 세상에 이런 스님도 있나? 이렇게 승복을 입고서 과일 장사를 하고 있던가?”
그러고 보니 어디서 많이 눈에 익은 얼굴인 것 같기도 했다. 얼굴의 윤곽도 그렇고, 특히 눈과 코는 거의 실물에 가깝게 그린 듯한 느낌을 주었다.
“승복은 안 입고 있었어요. 내가 이렇게 그려 넣은 거지. 그리고 그 스님은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그것도 내가 벗겨버린 거예요.”
그녀는 여전히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렇다면 그가 스님이라는 걸 어떻게 알았어?”
“지난번 명화원에서 준우 씨도 보았잖아요. 바로 그 혜지 스님이에요. 한 일주일 전쯤 되었을 거예요. 엄마를 만나러 시장에 갔다가 거기서 우연히 그 스님을 다시 보게 된 거죠. 아무리 변복을 하고 있었어도 그 스님은 워낙 생김새가 특이해서 금방 알아보았어요.”
윤희의 어머니도 시장에서 장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스님이 왜 하필 그런 장사를 하고 있는 걸까요?”
윤희가 그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준우는 쓸쓸히 머리를 내저었다. 그래서 그 돈으로 명화원 아이들을 도와주려고? 그 스승에 그 제자라더니, 도무지 묘한 사람들이다. 스승은 심지어 비구니들이 사는 처소에까지 가서 불목하니 노릇을 하지 않나, 제자는 또 고아들의 온갖 뒤치다꺼리를 하지 않나…….
하지만 혜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뜻밖이었다. 준우를 잔뜩 실망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날은 이미 날이 저물어 포기하고 다음날 아침 일찌감치 그 시장에 찾아갔더니 아닌 게 아니라 그녀는 거기 있었다.
“공부도 안 하고 빈둥빈둥 자빠져 놀면서 남의 귀한 시줏물만 축내고 있다며 모지락스럽게 옷을 벗기더니, 나가서 다시 빌어 처먹든지 벌어 처먹든지 하라고 쫓아내지 뭐예요.”
혜지는 그를 보더니 놀라지도 싱긋이 웃으며 묻지도 않은 말을 먼저 했다. 아직도 애티가 풀잎처럼 곱게 묻어 있는 그 얼굴이었다. 가을 먼 호수처럼 맑게 물이 찰랑이는 그녀의 두 눈은 더없이 평화롭게 보였다. 그런데 그 얼굴이 25살이라니.
“누가요?”
준우는 그녀의 옷차림에 신경을 쓰느라 묻지 않아도 될 말을 묻고 말았다. 어디서 주워 입었는지 다 낡아빠진 청바지에다 꾀죄죄하게 모자까지 눌러쓰고 있는 것이 가관이었다.
“누군 누구겠어요. 큰스님이지.”
그는 더 할말이 없어 웃고 말았다. 혜지도 피시시 따라 웃었다.
“그렇게도 세속 일이 궁금하고 재미있거든 이제 그만 절간에서 나가라고 하더군요. 그렇게도 아이들이 귀엽고 사랑스럽거든 부디 좋은 남자를 만나서 아들딸 낳고 잘 살라고.”
그녀는 여전히 천진스럽게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준우는 그 말을 듣고 정색을 했다.
“그래서 이런 곳에 나와서 이렇게 장사를 하고 그럽니까? 그렇게 안 보았는데 그분도 무자비한 사람이군.”
하지만 준우는 처음부터 그가 그런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럼 뭐 할 수 있나요.”
“사실 그 아이들을 돌봐주는 일보다 더 큰 자비심이 어디 있겠습니까.”
준우는 그동안 몇 번 어떤 막연한 그리움으로 혼자서 그 명화원에 찾아간 일이 있었다. 윤희한테는 미안한 줄 알면서도 그는 그쪽으로 끌리는 자신의 마음을 어찌 할 수 없었다. 왜였을까. 혜지의 눈을 마주보고 있으면 마치 어떤 더러운 곳에 있다가 돌아와 깨끗하게 목욕을 하고 나오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는 차마 안으론 들어가지 못하고 대문 앞에서만 서성이다가 돌아오곤 했다.
“실은 그 일 때문에 혼난 거지요. 그렇게 스스로 거짓 인생을 살다가 죽으면 축생으로 떨어진다나요. 공부를 못하면, 아무리 남을 구한다 해도 오히려 그 구한다는 내가 먼저 아상我相에 떨어지는데 여기서 무엇을 구하는 것이 있겠느냐는 거예요. 그래도 그 아이들은 어디 그래요. 부모가 없는 아이들이라 일일이 다 신경을 써서 챙겨줘야 하는데……. 하지만 차라리 잘 되었지 뭐예요. 어차피 공부도 못하는 몸 이렇게 힘들게 일이나 해야지요. 그리고 이렇게 벌어서 아이들을 돌봐주는 게 한결 더 떳떳하구요.”
이 말을 할 때 처음엔 조금 자조하는 빛이 보이는 것 같더니, 차츰 그녀의 목소리 속에는 어딘지 모르게 결연한 의지가 묻어나고 있었다.
“그럼 우리 어디 가서 차나 한잔 할까요?”
“장사를 해야지요.”
그녀는 쑥스럽다는 듯이 웃었다.
“장사야 오늘 하루 쉬면 어떻습니까?”
잠시 망설이더니 그녀가 말했다.
“좋아요. 그럼 딱 한 시간만 내지요.”
“그런데 혜지 스님이 그처럼 그 고아들을 지극히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은 대체 어디서 생기는 걸까요?”
가까운 다방에 들어가 자리에 마주앉자 준우는 슬쩍 한 번 그걸 물어보았다. 지난번 그녀에게서 들은 소리가 있어서였다. 그렇다면, 그것도 다 전생에서부터 그 아이들과 그럴 만한 어떤 인연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과연 그 전생이 정말로 있는 것이라면.
하지만 혜지는 선뜻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찻잔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녀는 찻잔을 들어 소리 안 나게 몇 모금 삼켰다.
“빚 갚는 일이지요.”
그녀가 알쏭달쏭하게 말했다. 준우는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난 선방 수좌禪房首座이면서도 돈을 벌어 그 아이들을 돕는 일이라면 뭐든지 가리지 않고 나섰어요. 탁발은 물론이요, 다른 절에까지 원정 가서 불공도 해준 적이 있지요. 불공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에요. 대개 부처님께 향이나 차, 꽃, 과일 따위로 공양하는 것을 불공이라 하는데, 그게 뭐가 나쁜 일이겠어요. 중생 공양이 곧 부처님 공양이라는 말도 있지요. 무심으로 남에게 베푸는 것은 다 부처님 공양이에요.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재물을 많이 들여서 죽은 이의 명복을 비는 법회를 재齋라고 하지요.”
혜지는 다시 찻잔을 들어 목을 축였다. 그러고 나서 그 티 한점 묻지 않은 앳된 얼굴에 싱긋이 미소를 띠었다.
“나는 심지어 그 초상집에까지도 불려가서 시다림을 해주곤 했지요. 비구니 스님들은 원래 그런 곳엔 잘 안 가요. 그러나 전 그렇게 해서라도 돈을 받아 아이들을 보살펴주기 위한 욕심 때문에 여러 번 그 빈소의 시신 앞에서 염불을 해준 일이 있어요. 그런데 그게 어찌 빚 갚는 일이 아니겠어요. 하지만 그런 빚은 천번 만번 갚아도 기분 좋지요.”
남은 찻잔을 마저 다 비우며 준우는 머리를 주억거렸다.
“그럼 그분과는 대체 어디서 처음 만나게 되었습니까?”
그것도 준우는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혜지는 갑자기 도둑질이라도 하다 들킨 사람처럼 움찔 몸을 떨었다. 그러고는 아무 말이 없다가 한참 후에야 겨우 “글쎄요” 했다. 언뜻 보니 그녀의 그 가을 호수처럼 맑은 눈에 뿌연 안개가 끼고 있었다.
“아직 이런 얘긴 누구한테도 해본 적이 없어서요.”
그녀가 수줍게 얼굴을 붉혔다.
“말하기 곤란하면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나는 그저…….”
하지만 그녀는 결연히 말했다.
“나도 사실은 고아였어요. 다행히 할머니는 한 분 계셨지만요.”
그 말을 듣자 준우는 갑자기 멍청해지는 기분이었다. 혜지는 안개가 자욱이 낀 눈으로 자기 앞에 놓인 찻잔을 오래오래 바라보았다.
“하지만 할머니와 함께 집도 없이 떠돌며 구걸을 하고 있었어요. 고향이 어디인지,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어요. 그러다 우연히 큰스님을 만나게 된 거예요.”
어느 사이 그녀의 눈 끝에 소리없이 눈물이 한점 맺혀 있었다.
……그때 아홉 살이었던가? 어느 무더운 여름이었다. 그녀는 배가 몹시도 고파 참외 장수의 리어카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땀을 뻘뻘 흘리며 참외껍데기를 주워 먹고 있었다.
그런데 웬 스님이 지나가다가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더니 걸음을 멈추는 것이었다. 하도 측은하게 보였던지 혀를 쯧쯧 차더니 스님이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참외를 하나 사주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참외를 먹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스님이 그녀에게 물었다.
“왜 참외껍데기는 주워 먹으면서 정작 참외는 먹지 않느냐?”
그녀는 고개를 떨어뜨리고 아무 말도 못했다. 재차 다그쳐 묻는 바람에 겨우 대답했다. 실은 할머니에게 갖다 드리고 싶어서 그런다고…….
먼 하늘을 바라보며 허어, 웃더니 스님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럼 내가 참외를 더 사줄 테니 네 할머니에게도 갖다 드리렴.”
그런데 그때 마침 할머니가 그곳에 온 것이었다. 그리고 아마 스님이 너무나 마음이 좋게 보여서 그랬을 거였다. 할머니는 다짜고짜 스님을 붙들고 늘어지며 사정을 하는 것이었다.
“제발 이놈 좀 데리고 가서 공부나 시켜 주시요. 나는 이대로 죽어도 좋으니께요. 사람이 아무리 밥은 빌어먹고 살아도, 어린 것이 그래도 공부는 해야 쓰지 않겠소?”
처음엔 스님이 깜짝 놀라더니, 한참 동안 할머니의 사정 얘기를 다 듣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할머니는 더러 돈이 좀 있어 보이는 사람만 만나면 그렇게 지나가는 말로 넋두리를 해보기도 했는데, 그날은 왠지 필사적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펄쩍 뛰었다.
“할무이, 나는 안 따라 갈래요. 내가 없으면 할무이는 어떻게 살아요.”
“그럴 것 없다. 너는 어차피 내 친손녀도 아니고. 또, 너 때문에 나는 마음 놓고 편히 죽지도 못하고 이 고생을 더 하고 있지 않냐.”
언제나 할머니의 말로는, 그녀는 당신의 친손녀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녀가 세 살쯤 되었을 때 길거리에서 주워다가 기른 거랬다. 하지만 그녀는 한 번도 자기를 낳아준 부모에 대한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오직 할머니만이…….
그때 스님이 말했다.
“그럼 할머니도 같이 가서 살면 될 거 아뇨.”
“참말이어라우?”
스님이 가만히 있자 할머니가 다시 큰 소리로 물었다.
“시방 그게 참말이어라우?”
그런데 스님을 따라가 보니 그곳은 절이 아니고 웬 고아원이었다. 그것이 지금 바로 그 명화원이다.
“그때는 아이들도 여남은 명밖에 없었고, 지금의 원장 스님은 그저 와서 큰스님을 돕고 있을 뿐이었지요. 그리고 그때는 스님도 아니었구요. 그럼에도 그분 또한 정말 모든 고아들의 엄마였어요. 그러다가 나중에야 청암사에 가서 삭발을 하고 스님이 되었지요. 이것은 제 생각입니다만, 원장 스님은 결국 그 아이들을 위해 삭발을 했지 않았나 싶어요. 참다운 이타행利他行은 바로 자기를 비우는 행위이고, 그래야 그 자리에서 부처를 보게 되는 거라고 해요.”
이제 그녀의 눈에서는 차츰 안개가 걷혀 가고 있었다.
내막을 알고 보니 혜지 스님도 참 기가 막힌 인생이었구나, 그는 중얼거렸다. 그런데, 사실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그녀는 왜 굳이 자기가 고아였다는 사실을 숨김없이 밝히는 것일까.
그녀는 말을 이었다.
“일이 그렇게 되자 큰스님은 모든 걸 지금의 원장 스님에게 맡겨 버리고 나를 데리고 도로 절에 들어갔지요. 물론 할머니는 명화원에 그대로 두고요. 큰스님은 오래 전부터 나를 비구니로 만들고 싶었나 봐요. 하지만 나는 막상 할머니와 헤어지고 큰스님을 따라 산에 올라가려니 어찌나 눈물이 나오던지 앞이 보이지 않았어요.”
그것도 참으로 놀라운 일이라고, 준우는 다시 중얼거렸다. 그분에게 그런 섬세하고 따뜻한 마음의 구석이 있었다니.
“그래도 할머니는 원장 스님 덕분에 편안히 사시다가 몇 해 전에 돌아가셨지요. 원장 스님은 살아 있는 관음보살이에요. 장 선생님 같으면 그렇게 남을 위해 자기 자신의 모든 걸 헌 신짝처럼 버릴 수가 있겠어요?”
혜지는 이제 그 가을 호수처럼 깊은 눈을 먼 하늘에 보냈다. 그 눈에는 다시 맑게 물이 찰랑이고 있었다.
“하지만 원장 스님은 그게 다 큰스님의 법력이라고 생각해요. 큰스님은 아마 지금쯤 월명산 지장암에서 일을 하고 계실 거예요.”
밤길
1.
“사실 아무리 세상없이 서로 깊이 사랑하는 사이라 해도 둘이 같이 있을 때는 남남이다. 오히려 떨어져 혼자 있을 때 그들은 서로 하나가 된다. 자신의 몸무게가 줄어든 만큼 발걸음은 훨씬 가뿐해지는 법이다. 그래서 침묵은 지금 그 스스로 모든 것과의 소리없는 대화를 나누고 있는 중이다.”
이것을 좀더 일찍 깨달을 수 있었다면.
혜지는 오늘도 혼자 바다 끝에 오도카니 앉아서 끝없이 물속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때 그녀가 좀더 냉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면 그 운명은 무사히 비껴갔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왜 그를 분명하게 거절하지 못하고 그 월명산의 동행을 약속해버리고 만 것일까.
이따금 구름만 몇 점 대리석처럼 잠겨 외로이 씻길 뿐 바다는 눈이 시리게 깊고 적막한 감청빛이다. 햇빛이 그 위에 물고기의 비늘처럼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문득 눈을 들면 멀리 장산곶의 바로 머리맡에 인당수가 언뜻 손바닥만하게 보인다. 황해도 해주 서단에서 오랜 해식애로 인해 절벽이 병풍처럼 돌출한 곶串이다.
이 섬에서 그곳까지의 거리는 불과 17 킬로이다. 바다 너머로 손을 뻗으면 금방 손끝에 닿을 듯 빤히 보여도 이제 그쪽은 갈 수 없는 북녘 땅이다. 그 적막한 거리를 갈매기만 하염없이 날고 있었다.
그날 그를 차마 거절하지 못한 것은, 그가 몇 번 혼자서 그녀를 만나기 위해 명화원에 찾아와서는 안으로 들어오지도 못하고 대문 앞에서만 서성이다가 돌아갔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 말을 하고 있을 때는 그의 눈빛이 이미 그녀의 깊은 곳에 들어와 있었다. 하지만 그 눈은 결코 그녀를 한 이성으로는 보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자기가 입고 있는 승복이 전혀 부끄럽지가 않았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학교 다닐 때 그녀는 그 잿빛 승복을 얼마나 부끄러워했던가. 큰스님을 따라 산으로 올라간 그녀는 시오리 산길을 혼자 부지런히 걸어서 오르내리며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녔다.
“사람이 아무리 밥은 빌어먹고 살아도, 어린 것이 그래도 공부는 해야 쓰지 않겠소?”
할머니의 이 말을 하도 많이 들어서 그녀는 그 학교가 그렇게도 다녀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도 그때는 나이가 어린 탓으로 절에서 모든 학비를 다 대주었었다. 하지만 그녀가 정작 대학에 가서 그 하고 싶은 사회복지학을 공부할 때는 너무도 힘이 들고 막막했다. 그때 그녀는 자기가 입고 있는 그 잿빛 승복을 얼마나 저주했는지 모른다.
어떤 돈 많은 신도는 그녀의 학비를 도와주겠다는 핑계를 대고 노골적으로 음심淫心을 품고 그녀에게 접근해 온 일도 있었다. 어디 그 뿐인가. 심지어는 스님들까지 돈을 미끼로 그녀를 유혹한 일도 있었다. 그것이 그녀는 가장 서럽고 억울했다. 그래도 명색이 눈 푸른 비구가 한 줌도 안 되는 비구니의 육체를 탐내다니.
그제야 혜지는 눈을 돌려 주변 경관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과연 고려 충신 이대기가 ‘늙은 신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칭찬할 만큼 기암절벽들이 질펀하게 비경을 이루고 있었다. 특히 저 해금강의 총석정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것 같다는 장군바위, 코끼리바위, 신선대는 이제 막 바다 속에서 불쑥 솟아오른 것처럼 기이했다. 그 오묘한 침묵 속에 파도만 전설처럼 부서지고 있었다.
그래서 이 섬을 찾는 관광객들에겐 무엇보다 가장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두무진이다. 이 서해 최북단의 섬에서도 인간은 신석기시대부터 부족을 형성해서 살았다고 한다. 아까는 해녀들이 그녀가 앉아 있는 바위 밑의 물속에까지 와서 물질을 하기에 요즘은 무엇을 잡느냐고 물었더니 꺽죽이라고 하는 아주 흉측하게 못 생긴 고기를 보여주었다.
이제 겨울이 되어야 이곳 해녀들은 해삼이나 전복을 잡는다. 봄철에는 까나리를 잡아서 액젓을 담고, 여름철에는 피서객들을 맞아 돈을 벌고, 요즘 가을철에는 멸치가 많이 잡힌다. 저쪽 능선을 넘어 포구에 들어가면 언제나 구수한 멸치 냄새가 코끝을 덥히고 있었다. 그곳은 멸치를 삶아서 말리는 작업장이다.
파도는 끊임없이 흰 뱃살을 내보이며 와불臥佛처럼 기다랗게 누워 있는 장산곶 쪽으로 밀려가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또렷이 몸을 열고 앉아 있던 인당수는 이제 흐릿한 해무 속에 슬그머니 몸을 감추고 있었다.
심청이가 아버지 심 봉사의 눈을 뜨게 하려고 공양미 삼백 석에 팔려가 제물로 몸을 던졌다는 곳이다. 차라리 그녀도 어린 날 그런 부모라도 있었으면. 이곳에 나올 때마다 혜지는 매번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지금까지 그녀가 살아오면서 가장 서럽고 힘든 부분이 바로 이것이었다. 차라리 어린 날 그녀에게도 지선처럼 그런 원수 같은 의부라도 있었으면…….
아직도 흐릿한 해무 속에 잠겨 인당수는 보이지 않는다. 파도만 허전하게 철석이며 되돌아오고 있었다. 그래서 이것이 바로 업보業報라는 것일까. 혜지는 힘없이 눈빛을 발 아래로 떨어뜨렸다. 어차피 여자는 이 아픈 속성을 지니고 태어나는 것일까. 그때 그와 함께 그 월명산에만 가지 않았더라도. 그럼에도 그녀는 왜 아직도 그를 못내 안타깝게 기다리는지.
하지만 그가 받을 충격을 생각한다면 차라리 오지 않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럴 수는 없는 것이, 거기에 아무 죄없이 억울한 또 한 사람의 생명이 걸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문득 눈을 들자 그제야 서서히 해무가 걷히고 인당수가 다시 언뜻 맑게 씻긴 몸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자리에 그의 얼굴이 자꾸 어른거린다.
“그분이 지금 과연 저 산에 계실까요?”
그날 윤희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한껏 달뜬 얼굴로 이렇게 지껄였고, 혜지는 대답 대신 눈을 들어 다시 한 번 월명산을 망연히 올려다보았다. 목화송이처럼 흰 구름이 한점 거기 머물러 있었다. 윤희의 그 물음은 버스를 타고 이곳에 오기까지 아마 열 번도 더 넘게 들었을 것이었다.
혜지는 산꼭대기의 구름에서 천천히 시선을 거두어들였다. 절은 그 산봉우리 뒤에 숨어 있다고 했다. 그들을 싣고 온 버스는 어느새 꽁무니에 뿌옇게 흙먼지를 달고 멀리 산모퉁이로 기우뚱 사라져 가고 있었다.
“그럼 이제 슬슬 올라가봐요. 그분이 지금 과연 저 절에 계실지, 이번에야말로 진짜 보물을 찾아보았으면 좋겠는데…….”
윤희가 이번에는 준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자그마한 체구에 도무지 그런 의욕은 어디서 그렇게 샘솟아나는지. 그녀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돋아 있는 콧등을 살짝 찡그리며 웃었다. 이제는 그 사람의 얼굴만 봐도 그 사람의 마음을 훤히 다 읽을 수 있다는 그녀였다.
“그땐 정말 절머슴인 줄 알고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어서 자세히 얼굴을 보지 못했어요.”
하지만 준우는 시큰둥하게 동문서답을 했다.
“그 절에 다 닿기도 전에 해가 떨어지지 않을까. 꼬박 십리를 올라가야 한다는데…….”
그러고 보니 이제 해도 서천에 몇 뼘밖에 남지 않았다. 9월로 접어들어 다소 그 열기는 누그러졌지만, 길가의 나뭇잎들은 아직도 습관처럼 몸을 비틀고 있었다.
혜지는 일단 신발 끈을 고쳐 매었다. 그 사이 윤희는 준우를 따라 벌써 저만큼 성큼성큼 걷고 있었다. 사실 준우도 공연히 말 한마디 잘못 들려주고 사서 그 고생이었다. 그가 혜지를 만나고 간 날부터 윤희는 며칠 동안 줄곧 그 용담의 상상 속에 살고 있었다. 하지만 글쎄, 이번에 그녀의 소원이 이루어질까.
“우리 여기 좀 앉아서 쉬었다 가요.”
가파른 산길을 한참 동안 땀을 뻘뻘 흘리며 준우를 따라가던 윤희가 어깨를 들먹이고 숨을 몇 번 헉헉거리더니 풀섶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혜지가 가까이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나직이 속삭이듯 입을 열었다.
“이젠 혜지 스님도 이해할 수 있겠지요? 내가 왜 그분을 꼭 한 번 만나보고자 하는가를요. 정말 그런 도인이라면 한 번 만나보고 죽어도 여한이 없겠어요. 정말.”
혜지도 엉거주춤 엉덩이를 붙이고 그 옆에 앉았다. 윤희는 등산화를 벗어 던졌다. 어디서 새 울음소리가 다그르르, 목탁 소리처럼 들렸다.
“저 놀빛같이 고운 얼굴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넋 놓고 서쪽 하늘을 바라보고 있던 윤희가 무심코 또 중얼거렸다. 아닌 게 아니라 거기에는 어느새 노을이 불꽃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는 온통 푸른 들녘이어서 그것은 어찌 보면 거대한 연꽃 같기도 했다. 거기다가 다시 어디서 다그르르, 새 울음소리가 들리자 윤희는 그만 묘한 기분이 드는지 눈빛을 달싹이며 혜지의 얼굴을 더듬었다. 혜지는 설레설레 머리를 흔들었다.
“부처님은 과연 어떻게 생기셨을까요? 저 선홍빛 노을의 흔적 없는 마음처럼? 그래서 사월 초파일 절 도량에 수없이 걸리는 그 연등으로도 오는 걸까요? 아니면 가난한 노파의 그 신심 깊은 마음처럼? 아니면, 그냥 저 들녘에 욕심 없이 사는 농부들의 마음처럼 생기셨을까?”
꿈을 꾸듯 윤희는 자기의 눈빛이 가 닿는 곳마다 끝없이 부처를 상상하고 있었다.
“언젠가 머리를 기른 석가모니의 사진이라는 걸 본 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부처님의 얼굴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지금 그녀는 그 마지막 희망을 안고 이 산을 오른다.
“결국 자기의 얼굴은 자기가 만드는 거예요. 그 얼굴의 표정 하나 하나는 곧 그 마음의 동작 동작인 거예요. 혜지 스님의 얼굴을 봐요. 그리고 저 짐승들의 얼굴을 봐요.”
혜지는 윤희를 향해 가만히 입을 벌렸다. 그것은 전혀 뜻밖의 말이었다.
이제 노을은 푸른 들 끝에 핏빛처럼 번지고 있었다.
“그래서 생긴 대로 산다거나, 생긴 대로 논다는 말이 있잖아요. 생각은 표정을 낳고, 그 습관이 얼굴을 만들어요.”
그렇다면, 하고 혜지는 생각했다. 지금 윤희 자기의 얼굴은 어떠한가? 그래서 그 마음이 하 맑다 못해 별빛처럼 초롱한 두 눈을 반짝이고 있는가. 그래서 약혼까지 한 여자가 얼마 전에 겁도 없이 혼자서 도암산에 그 진짜 도인을 찾으러 갔다 오다가 그 지경으로 당했는가. 어슬어슬 땅거미가 깔리는 후미진 산길을 내려오다가 몇 명의 건달들을 만나 하마터면 강간을 당할 뻔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날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준우에게 또박또박 냉랭히 말하더라는 것이었다.
“그놈들은 정말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어요. 맹수도 그런 맹수들은 처음 보았어요. 소위 인간의 얼굴이라는 게 그렇게까지 비참하고 가엾게 보이긴 처음이었어요. 그래서 이 시대에 내가 더욱 그 도인의 얼굴을 찾아 헤매는 거예요. 이제 내 마음을 알겠어요?”
도무지 구김살 하나 없는 여자였다.
윤희의 배낭 뒤통수에는 ‘밀레’라는 프랑스 상표가 별처럼 붙어 있었다. 멜빵이 편하고, 방수는 물론, 짐이 다른 것들보다 많이 들어간다며 그녀는 종종 그 배낭에 자부심을 가지고 산을 오른다. 그녀는 소지하고 있는 장비도 없는 것이 없으며 대부분이 다 외제였다. 그녀는 그 자기의 등산 장비만 팔아도 웬만한 사람의 살림 한 밑천은 족히 될 거라며 때때로 포근한 행복감에 젖곤 했다. 그러다 가끔 심심하면 그걸 하나씩 개비한다. 그래서 배낭부터 시작해서 준우가 가지고 있는 장비는 모두 다 그녀가 쓰다가 싫증이 나서 준 것들이었다.
깊은 산 속이라 그런지 노을이 아득히 땅 끝으로 잦아들자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지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짙은 풀내음이 코끝에 물씬 묻어나왔다. 상수리나무 가지를 헤치고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니 아직도 산꼭대기는 까마득했다. 혜지는 철없는 아이처럼 여유 있게 풀냄새에 흠뻑 젖어 있는 윤희를 재촉했다.
“이제 그만 일어나요. 이러다간 정말 그 절에 닿기도 전에 어두워지겠어요.”
그러나 그녀는 혜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다시 한가롭게 물었다.
“정말 그분의 얼굴은 어떻게 생기셨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그 얼굴을 좀더 자세히 눈여겨봐둘 걸. 난 이제 그분의 모습도 잘 기억이 나질 않아요. 그땐 정말 절머슴인 줄 알고…….”
윤희는 오직 그것만이 궁금하다는 얼굴이었다.
혜지는 이제 어이가 없어 쓴웃음을 삼키며 얼른 고개를 돌려 버렸다. 세상에 이런 여자가 어디 또 있을까. 하지만 윤희가 전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마땅히 도인이라면 그 앉아 있는 자리가 달라야 하고, 먹는 음식도 달라야 하고, 모든 사람들로부터 받는 대접도 달라야 하고, 그리고 사실은 무엇보다도 하는 일이 달라야 하는데, 그분은 고작 그 불목하니의 신분이었지 않는가. 조금 별다른.
“하지만 사십 세의 나이에 밤새도록 눈을 맞고 밖에 섰다가 차고 온 칼로 왼팔을 끊어 신信을 바치고 달마의 법을 이어 선禪의 대하를 이룬 중국 선종의 이조 혜가二祖慧可도 때로는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며 살았어요.”
“……?”
윤희는 혜지를 향해 귀를 쫑긋 세웠다.
“또 서산 대사의 스승 부용 영관 선사芙蓉靈觀禪師도 한국 법맥의 육조六祖임에도 불구하고 자청해서 걸인생활까지 달게 했구요.”
큰스님은 어린시절을 사촌형과 함께 아주 슬프게 보냈다고 한다. 그는 단 하나 그것이 한이다. 그것은 혜지의 경험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 어린시절 할머니와 함께 구걸하고 다니며 살던 그녀였으니까. 그래서 그는 언제나 자기 자신을 꾸짖기 위해서 그리 노동을 하는 거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사실 아직도 힘들게 그 시절의 아픔을 견디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 사촌 준구 형은 큰아버지의 아들로 용담보다 두 살이나 위였는데, 자기 아버지가 그만 병으로 죽는 바람에 청상이 된 그 어머니를 개가시키기 위해 할머니가 데리고 온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너무도 어려서부터 둘이 다 같이 할머니의 품 안에서 자랐기 때문에 친형제인 줄 알았다. 그러던 것이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자 이상하게 서서히 표가 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같은 해에 나란히 입학을 했지만, 나이가 두 살 위여서 그랬는지 공부는 그 준구 형이 아주 특별히 더 잘했다. 반에서 늘 일등을 했으니까. 그럼에도 언제나 소심하고 과묵한 편이었으며 그저 입을 벌리고 소리없이 웃기를 좋아했다. 그랬으므로 그는 동네 사람들로부터 귀염과 선망을 한 몸에 받았다. 정작 용담 어머니의 가시 돋친 눈길만 빼놓고.
그들은 이제 할머니의 치마폭에서 벗어나 공부방에서 함께 공부를 했는데 거기서부터 차별이 기가 막히게 시작되었다. 그 준구 형은 공부를 더디게 하는 용담을 가르쳐 주느라고 자기 공부를 못해서 으레 용담보다 늦게 자곤 했는데도 어머니는 은밀히 용담만을 따로 불러서 맛있는 밤참을 주곤 하는 거였다.
“가지고 가서 준구 형이랑 같이 나눠 먹을래.”
용담이 그 밤참을 들고 공부방으로 가려고 하면 어머니는 사정없이 눈을 흘겼다. 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용담 혼자서 목에 넘어가겠는가. 그런데 그것이 어떻게 호강인가? 용담은 도무지 그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또 운동회를 할 때나 소풍을 갈 때도 용돈의 차별은 기가 막혔다. 물론 남들 앞에서 일차적으로 주는 돈이야 액수가 같았지만 용담에겐 뒤에 따로 몰래 주는 돈이 있었다.
용담으로서도 정작 참기 어려운 것은 중학교에 올라갈 때였다. 그처럼 공부 잘하고 선생님들로부터 칭찬이 자자하던 준구 형은 중학교 대신 머슴이 거처하는 사랑방으로 내려 보내는 것이었다. 옷도 용담이 입다 버린 너덜너덜 다 떨어진 걸 입혔다.
그러고서 머슴을 따라 논에 보내 일을 배우게 했다. 이제는 차츰 노골적으로 동네 체면도 안 가렸다. 심지어는 용담의 심부름까지도 곧잘 시켰다. 하지만 그도 사람인지라 너무도 고단하여 몸이 말을 잘 안 듣는다. 그럴 때는 기다렸다는 듯이 여지없이 그의 등줄기에 회초리가 떨어졌다.
“엄니, 때리지 말어. 준구 형이 불쌍하잖어. 중학교도 안 보내주고 왜 맨날 일만 시키는 거여. 제발 준구 형 좀 때리지 말어.”
용담이 준구 형 대신 무릎을 꿇고 손바닥을 싹싹 빌면서 사정을 했다.
악독한 어머니에게 밀려 아무 힘이 없어진 할머니는 말없이 눈물만 훔쳤다. 그 심정인들 오죽했겠는가. 하지만 할머니로서는 불가항력이었다. 속수무책이었다. 허수아비였다. 그저 늙고 힘이 없는 게 죄였다.
그래서 밤에 할머니는 준구 형을 불러다 놓고 말했다.
“첫째는 내가 쥑일 년이다. 이런 꼴을 보려면서 내가 무엇하러 너를 데려왔을꼬. 첫째는 내가 쥑일 년이다. 악연이 따로 없구나. 이제 지 년도 한 번 두고 볼 일이다. 남이간디? 바로 지 조카자식이여. 누구보다도 지 년이 먼저 불쌍한 줄을 알아야 혀. 내가 너무 오래 살았구나. 너무 오래 살아서 너를 보호해줄 아무 힘이 없구나.”
그러면 준구 형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그의 그 소리 없이 우는 모습을 보면 용담이 더 슬펐다.
“죽고 싶다.”
용담이 그의 이 말을 들은 것은 그해 여름방학 때였다. 초저녁 달이 찢어지게 밝았다. 그 달빛을 받으며 용담은 여느 때처럼 제각의 느티나무 아래로 갔다. 먼저 저녁을 먹고 집을 나온 준구 형은 그러나 그곳에 없었다. 그들은 밤마다 그곳에 나와 놀다가 자곤 했던 것이다. 그런데 준구 형은 어디 갔을까. 그저 느티나무만 우두커니 선 채 먼 산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용담은 도로 돌아섰다.
그런데 바로 그때 제각 안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우는 소리 같았다. 누굴까. 준구 형? 하지만 준구 형은 아닐 것이다. 준구 형은 절대 소리를 내어 우는 법이 없었으니까. 용담은 발뒤꿈치를 들고 가만가만 제각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아, 그런데 거기 준구 형이 마루에 걸터앉아서 처음으로 소리 죽여 섧게 흐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그걸 보자 용담도 갑자기 목이 메었다. 다만 어머니의 그 편애 하나가 얼마나 모질고 잔인하게 여린 가슴들을 짓밟고 있는가. 그래서 용담은 사실 준구 형 때문에 소년시절 아무런 꿈도 가질 수가 없었다. 그때 용담은 오히려 준구 형보다도 더 깊게 상처받고 있었고, 그리고 그것이 장차 그에게 오히려 한 사람의 아들이 되지 못하게 한 가장 큰 원인이었다.
어느새 용담의 두 눈에도 뜨거운 물기가 어려 있었다. 달은 여전히 찢어지게 밝았다. 지금 준구 형은 얼마나 부당하게 압박과 설움을 당하며 인간 이하의 삶을 살고 있는가. 그런데도 나는 이것이 진정 호강인가? 나야말로 정말 죽고 싶다.
이때부터 용담은 남모르게 서서히 그 마음이 불문佛門으로 열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용담은 힘없이 그곳에서 물러나왔다. 그런데, 그때 준구 형이 그를 불렀다. 용담은 말없이 준구 형 곁으로 가서 앉았다.
“너, 이거 내가 사줬다고 하지 마. 누구한테도. 알겠지?”
준구 형 옆에 웬 운동화가 한 켤레 놓여 있었다. 그러나 왜 그랬을까. 준구 형은 그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용담 같았으면 오히려 더 자랑을 하고 싶었을 텐데 말이다.
“그런데 이 운동화 어떻게 산 거야?”
아주 값 비싼 고급 운동화였다.
“응, 그거.”
그러고 나서 한참 동안 말이 없다가 준구 형은 머쓱하게 먼 달을 보았다. 그때 그 달의 얼굴도 준구 형처럼 멋쩍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실은 말야, 나도 중학교에 들어가면 신으려고 운동회를 할 때나 소풍 갈 때 준 돈을 안 쓰고 죄다 모아두었다가 산 거야. 하지만 이젠 뭐…….”
아무 소용이 없지 않느냐는 말을 잊지 못했다. 그런데 그 소풍 갈 때마다 받은 돈을 다 꼬박꼬박 모아서 운동화를 미리 사두었다니. 하긴 용담의 돈으로 둘이서 같이 썼으니까. 하지만 준구 형이 받은 돈은 그게 몇 푼이나 될까.
“아무튼 너 이거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마. 할머니한테도. 약속할 수 있겠지?”
“그것보다도 형, 내가 알아보니까 ‘강의록’이라는 책을 보고 집에서 혼자 공부해서 검정고시만 합격하면 중학교를 졸업한 자격을 준대. 내가 그 책을 사다줄 테니까 형도 한 번 그렇게 해서 그 검정고시를 볼쳐? 형은 원래 공부를 잘 하잖어.”
용담은 사뭇 사정을 했다.
하지만 준구 형은 금세 풀이 죽었다.
“나는 날마다 들에 나가 일을 해야 하는데 그럴 시간이나 있어야지.”
그런 준구 형이 끝내 가출을 하게 된 것은 용담이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어디서 무슨 달가운 얘길 들었는지 자기도 서울에 가서 야간 중학교라도 다녀야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차비를 마련하기 위해 용담은 장롱 속에 감춰둔 어머니의 돈을 훔쳤다. 그리고 자기의 새 옷을 입혀 준구 형을 앞세우고 밤에 몰래 역전을 향해 걸었다.
“옷이 조금 작지?”
하지만 어머니가 이 사실을 알면 어떤 얼굴을 할까.
“그래도 그냥 입고 가야지.”
이 옷 말곤 나는 입고 갈 옷도 없잖어, 라는 말은 또 도로 삼킨다.
“나도 같이 갈까?”
그러자 준구 형이 문득 걸음을 멈췄다. 그의 얼굴에 사금파리처럼 달빛이 가득했다.
“할머니한테 얘길 잘해 줘.”
이제 보니 할머니도 모르게 떠나온 길이었다. 용담은 그날 밤 역전까지 가는 길이 한없이 멀었다. 마치 저승길처럼. 그래서 어쩌면 이때 용담은 차라리 그 고아원을 하나 짓는 게 꿈이었는지 모른다. 또 결국은 용담이 그렇게 현기 거사의 도움까지 받아가며 명화원을 세운 걸 보면. 그래서 그 아이들은 어쨌든 아무 차별 없는 사랑을 받으며 자기의 삶을 구김살 없이 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다음날 어머니는 준구 형이 자기의 돈을 도둑질해서 달아났다고 길길이 뛰며 바가지로 욕을 퍼부어대었다.
“썩을 놈. 호랑이가 물어갈 놈…….”
하지만 그들은 그날 밤 역전에서 피눈물로 헤어졌다. 준구 형의 마지막 이 한 마디는 지금도 생생히 잊혀지지 않는다.
“나는 너밖에 없다.”
하기야 그런 말은 어머니도 곧잘 지껄인다.
“나는 너밖에 없다.”
그러면서 용담이 자기의 그 좁은 온실 속에서만 무럭무럭 자라주기를 기원했지만, 그러나 용담은 마치 반항처럼 준구 형을 맹렬히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용담이 어머니의 그 좁은 온실 속에서 가까스로 벗어나고 있을 때,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집을 나간 준구 형은 떠돌아다니며 쓰리꾼질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고, 차디찬 수갑을 차고 형무소에 들어갔다는 것이었고, 심지어는 깡패들과 싸우다가 맞아 죽었다는 소문까지 들렸다.
“나는 너밖에 없다.”
2.
이윽고 그들이 지장암에 당도한 것은 묽은 먹물처럼 번지던 어둠의 흐름이 점점 선명해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저만큼 앞에 반짝이는 불빛을 먼저 발견한 것은 윤희였다. 눅눅한 어둠 속에서 그녀의 입가에 박꽃처럼 흰 미소가 파문지고 있었다.
“이제 다 왔으니 여기서 잠깐 땀이나 좀 닦고 가요.”
그리 험한 산길은 아니었지만 워낙 먼 거리를 걸어온 터라 다들 등줄기가 땀으로 축축이 젖어 있었다.
“그러지요.”
혜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큰스님이 지금도 과연 저 절에 있는지는 아직 모를 일이었다. 그녀 역시 우연히 아는 스님을 만나 큰스님이 지장암에 가는 걸 보았다는 말만을 들었을 뿐이었다.
그때 갑자기 혜지의 머리 위에 있는 나뭇가지에서 푸드득, 산새가 날아올랐다. 깜짝 놀란 혜지는 얼른 준우에게 몸을 기댔다. 그 바람에 혜지의 물컹한 젖무덤이 본의 아니게 준우의 손 안에 가득히 쥐어졌다. 그는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아직까지 윤희의 젖가슴도 한 번 만져보지 못한 그였다. 혜지는 어린 물고기처럼 한참 동안이나 그의 손 안에서 버둥거렸다.
준우는 마치 먹이를 죄어감은 구렁이가 이제 그만 힘을 풀듯 슬그머니 손을 폈다. 혜지는 이내 가슴지느러미를 파닥이며 빠져나갔다. 하지만 아직도 그녀의 더운 입김은 그의 목덜미를 은은히 간질이고 있었다.
“그런데 두 분은 언제쯤 결혼을 하나요?”
시치미를 뚝 떼고 혜지가 짐짓 밝은 목소리로 물었다.
“혜지 스님은 절에서만 사신 분이라 한 번도 사랑을 해본 적이 없겠군요.”
준우는 엉겁결에 그렇게 대답했다. 그러자, 혜지의 입 속에서 꼴깍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왜요. 꼭 학교에서만 공부를 하나요? 보고, 듣고, 생각하는 건 다 공부예요.”
“그럼 혜지 스님도 누굴 한 번 사랑해본 적이 있단 말입니까?”
“그럼 전 사람이 아니란 말인가요?”
그녀가 쿡, 웃었다.
“물론 스님도 사람이지요. 사람이고, 여자지요.”
준우는 머리를 끄덕거렸다.
“릴케가 이런 말을 했지요? 자기는 이제 죽어도 한이 없을 정도로 한 번 기가 막힌 사랑을 했다고. 나도 한 번 죽도록 사랑을 해보고 싶은 적은 있었지요. 혼자서 외롭고 어렵게 학교 공부를 할 때였어요.”
“그런데 스님은 왜 못하셨나요?”
준우는 침처럼 입가에 웃음을 흘렸다. 도무지 그 속을 알 수 없는 묘한 여자였다. 준우의 손 안에는 아직도 그녀의 풋풋한 살내음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장 선생님처럼 천성이 깨끗하고 따뜻한 사람이 어디 또 있나요. 하지만 사랑이 눈에 가리면 사랑도 못하고 몸만 상하는 법이에요. 그 대상이 마침내 자기의 소유가 됐을 때 그 사랑은 이미 끝이 난 것이구요. 그 신비의 문은 오직 자기 안에서 발견될 뿐이지 결코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에요. 이것만 알고 살면 절대 사랑에 속지는 않을 거예요.”
“듣고 보니 그럴듯한 말인데요.”
“그래서 릴케는 이런 말을 했어요. 사랑은 인간의 마지막 시련이며, 우리의 모든 생활은 그것을 위한 준비에 불과하다고…….”
그때 소변이라도 보러 갔는지 잠시 안 보이던 윤희가 저쪽 숲 속에서 부스럭거리며 돌아오고 있었다.
“여기 오니 별들이 참 많죠?”
준우 옆에 사뿐히 주저앉으며 윤희가 달게 속삭였다.
“이렇게 서로 좋은 인연을 만나게 된 건 두 분의 큰 복이에요. 이 세상 무엇 한 가지 그냥 우연으로 된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혜지는 윤희에게 부럽다는 듯한 눈길을 보냈다. 그러자, 윤희는 얼른 준우에게 어깨를 기댔다. 하지만 준우는 쓸쓸히 혜지에게 눈길을 주었다. 그런데 이 스님은 왜 그처럼 세속의 일에 은근히 흥미를 느끼고 있는 것일까.
“부처님의 마음은 이렇게 적막한 것일까요?”
윤희는 다시 또 시작이었다. 이제 그녀는 그 수없이 많은 밤하늘의 별빛 속을 헤매고 있었다.
혜지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등줄기에 땀이 식자 갑자기 야기가 으스스하게 느껴져 와서 그런 것일까. 저만큼 지장암의 불빛이 사뭇 따사롭게 보였다.
그런데 그것도 참 공교로운 일이었다. 그들이 막 산문에 들어서자 하필이면 그때 그 방안의 불빛이 훅 꺼져버리는 것이었다. 그들은 그만 그 자리에 걸음을 멈추고 선 채 잠시 멍청해졌다. 절 도량의 몇 평 남짓 오목한 평지만 빼놓고는 다시 곧장 가파르게 내려가는 산길이었다. 절이 산꼭대기 뒤에 짐승의 둥지처럼 기묘하게 숨어 있는 것이었고, 멀리 뻗어나간 능선들은 붓으로 죽죽 그어놓은 선처럼 보였다.
혜지가 흘끗 바라보니 윤희는 법당을 향해 다소곳이 허리를 접으며 합장을 하고 있었다. 그분이 지금 과연 이 절에 있을까.
혜지는 성큼 요사채 방문 앞으로 다가갔다.
“밤늦게 실례합니다.”
몇 번 망설이다가 그녀가 그렇게 부르자 방안에 불은 이내 도로 켜졌다. 하지만 이 시간 결코 늦은 밤은 아니었다. 하루 종일 밭에 나가 고단하게 일들이라도 하고 왔는지 이 절의 스님들이 너무 일찍 자리에 누운 탓이었고, 아직은 안 미안해도 좋을 초저녁이었다. 어느 사이 윤희는 혜지의 등 뒤에 바짝 붙어 서 있었다.
이윽고 방문이 열렸다.
“누구시오? 이 산중에…….”
방에서 나온 스님은 거동으로 보아 나이가 늙수그레한 사람인 듯싶었다. 하지만 그 스님은 뜻밖에도 단박 반가운 기색이 역력했다. 아마도 오랜 산중생활에 퍽이나 사람의 냄새가 그리웠던가 보다고 혜지는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스님은 방안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마주앉자마자 한눈에 얼른 그들의 행색을 깊숙이 담아보는 눈치였다. 방안은 훈훈했다. 흔들리는 촛불 아래서 스님의 얼굴에 잠시 적적한 세월의 그림자가 지나가고 있었다.
“공양은 하셨소?”
배려 깊은 눈으로 따뜻하게 웃으며 스님은 먼저 혜지에게 그것부터 물었다. 육십이 조금 안 되었을까, 아니면 조금 넘었을까. 산에서 사는 스님들 특유의 더없이 부드럽고 여유 있게 가라앉은 인상이었다. 활처럼 휜 검은 눈썹에, 엊그제 삭발을 다시 했는지 머리는 반지르르 윤이 났다.
“버스에서 내려 미리 요기를 하고 왔습니다.”
혜지가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그녀는 씁쓸히 입맛을 다셨다. 실은 그녀가 그 아래 가게에 들러 뭐라도 좀 사서 저녁이나 때우고 올라가자고 했는데도 윤희가 싫다고 해서 그만둔 것이었고, 요사채에 방이 여러 개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방에선 전혀 사람의 기척이 들리지 않는 것이 혹시 이 스님 혼자서 사는 게 아닐까, 더 이상 수고를 끼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저 준우는 배고프지 않을까.
“그런데 이 밤중에 무슨 일이오? 젊디젊은 비구니 스님이…….”
“사람을 좀 만나러 왔습니다.”
이번에는 윤희가 얼른 대답했다.
“사람? 여긴 나 혼자서 사는데 도대체 누굴 만나러 왔단 말요?”
스님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그 소리를 듣자 윤희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번쩍 들었다. 금세 하얗게 변해가는 얼굴이었다. 스님이 다시 머리를 가만히 흔들었다.
“실은 이 암자에 도인이 한 분 와서 지내고 있다기에 그분을 찾아왔는데요.”
우물쭈물하다가 윤희를 흘끗 보며 준우가 말했다. 윤희의 눈에서는 시나브로 초점이 풀려가고 있었다.
“도인? 이곳에 그런 사람이 온 적은 없고, 용담이라고 하는 파계승인가 부목인가 하는 사람만 하나 와서 지내다가 며칠 전에 내려갔지.”
스님이 시큰둥하게 내뱉었다.
“그럼 그분은 어디로 간다고 하던가요?”
윤희가 얼른 물었다. 이제 그녀의 얼굴에는 다시 팽팽하게 날이 선 긴장감이 종종걸음을 치고 있었다.
“글쎄, 그거야 나도 알 수 없지.”
다시 맥 풀리는 소리였다.
혜지는 또 절로 윤희에게로 신경이 쓰였다. 그녀는 딱한 눈으로 윤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윤희는 이제 아무 힘이 없는 얼굴이었다. 끝없이 파도가 밀려나가 버린 저물녘 갯벌처럼. 그녀는 말없이 그 빈 갯벌에 뻘뻘 기어다니는 게들을 눈앞에 떠올리고 있었다. 희망은, 이제 희망은 없는 것일까.
“한데 그 사람, 좌우지간 일 하나는 아주 귀신같이 잘 하더구먼. 뭐, 이것저것 시킬 것도 없으니까. 한데 문제는, 그 사람을 찾아온 어떤 젊은 수좌에게 있었지. 사람들이 어디 그렇게 술을 퍼마시고서야…… 원.”
“그분에게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조심스럽게 준우가 물었다.
“내 비구니 스님에게 이런 얘길 해서 어떨지는 모르겠소만, 며칠 전에 그 사람에게 어떤 젊은 수좌가 하나 찾아왔는데 글쎄, 가관입디다. 손님들도 아마 그쪽 길로 오셨을 테지만, 여기서 그 지산리로 내려가자면 딱 십리요. 그런데 그 젊은 수좌가 내리 사흘간이나 밤마다 그 지산리에 내려가 술을 사다 나르지 않았겠소. 보기와는 달리 그 젊은 사람도 그거 보통은 아니데. 밤새도록 마주앉아 주거니 받거니, 대단하더군.”
재미있다는 듯 스님이 크크크 소리를 내며 웃었다.
“자기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다고 하던 사람이 술이 몇 잔 들어가자 그 젊은 수좌를 앞에 앉혀 놓고 이러지를 않겠소. 만약 독사의 독이 독이 아니라 약이라면, 사람을 죽이는 그만큼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살리겠느냐. 수도修道란 본래 그런 것이다. 그 독을 약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그 어느 누가 독사를 무서워하리. 이 술 또한 마찬가지다. 보살의 일이니라. 크크크. 이 소식을 아는가, 마는가?”
스님은 허공을 향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가뜩이나 침울해 있던 윤희는 그제야 솔깃이 귀를 세웠다. 그녀는 스님 앞으로 바짝 다가앉으며 침을 꼴깍 삼켰다.
“도통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지. 독의 근본만 알면 자연 약의 근본도 알게 되어 있다나. 그렇다면 한 마디 물으라. 독은 무엇입니까? 그놈이 곧 약이니라. 약은 무엇입니까? 이미 독이니라. 그렇지 않고는 천 마디 만 마디 해보았자 그게 다 헤매는 짓이라나. 소위 중생이라고 하는 그놈이 바로 부처라나. 그렇게 며칠간 밤새도록 마주앉아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횡설수설하다가 둘이서 손잡고 산을 내려가 버렸소. 크크크.”
“그럼 그전엔 그분하고 전혀 모르는 사이였습니까?”
윤희를 슬쩍 건너다보며 준우가 물었다.
“아니지. 거년 겨울에도 이 절 주지를 찾아와서 함께 지내다 가는 걸 보았소. 그때 나는 큰절에 살고 있어서 자세한 건 못 보았지만. 지금은 인도에 가 있지만, 아마 이 절 주지하고는 옛날부터 잘 알고 지내는 사이인 것 같았소.”
인도엔 무슨 일로 갔느냐고 물으려다가 혜지는 도로 입을 다물어 버렸다. 밖에서는 스적스적 바람이 뜰을 쓸고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고즈넉하게 흔들리는 촛불을 바라보며 잠시 말이 없더니 스님이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이 산 속에서 사람들의 체취가 그립지도 않는 것일까. 그도 어차피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인 것이어서 다른 사람들의 존재는 아예 필요가 없는 것일까.
옛날 어느 마을에 큰불이 나서 그 불을 끄다가 그만 세 사람의 젊은이가 타죽고 말았다고 한다. 세 혼령은 따로따로 염라대왕 앞에 가서 머리를 조아리게 되었고, 염라대왕이 물었다.
“네가 그같이 착한 일을 하다가 목숨을 잃었으니 내 다시 너에게 기회를 주리라. 네 소원이 무엇이냐?”
그러자 한 혼령은 큰 부자가 되는 것이 소원이었고, 또 한 혼령은 높은 벼슬이나 한 자리 얻어서 떵떵거리며 사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런데 마지막 혼령은 꽤 심각했다. 이제 생각해 보니 그까짓 인간사 그게 다 그거라며 돈도 권력도 필요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너는 소원이 없단 말이지?”
“소원이 하나 있긴 합니다. 저는 그저 어디 물 맑고 경치 좋은 심산에 들어가서 도나 닦고 살았으면 여한이 없겠습니다.”
그러자 염라대왕이 노발대발하더라는 것이다.
“예끼, 이놈! 세상에 그런 게 있다면 내가 지금 이 짓거리나 하고 있겠냐? 내가 먼저 벌써 갔지.”
뒷간에 볼일을 보러 나간 줄 알았는데, 돌아와서 스님이 말했다.
“먼 산을 올라오느라 고단할 테니 이제 그만 저쪽 방에 건너가 자도록 하시오. 나도 종일 밭일을 했더니 고단해 죽겠구먼.”
방을 하나 치우고 온 모양이었다.
윤희가 먼저 힘없이 몸을 일으켰다. 방문을 열자 바람이 훅 방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자지러지듯 촛불이 크게 한 번 흔들렸다.
3.
밖에 나오니 그제야 달은 산마루에 기어오르고 있었다. 어디서 쫄쫄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돌샘이었다. 그것은 법당 모퉁이의 어둠 속에 있었다. 밤바람이 차가워지고 있었다. 혜지가 앞서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때까지도 윤희는 혼자 마루 끝에 우두커니 서서 울적한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저 스님의 얼굴은 도인같이 안 보여?”
윗목으로 올라가 자리를 펴며 준우가 말했다.
“저 스님은 지금 이 산 속에서 방황하고 있어요. 얼굴에 그렇게 씌어져 있어요. 스님이 산에서 방황을 하다니요. 산에서는 날짐승도 방황하지 않는 법이에요. 이미 그 산과 하나가 되어 있기 때문이죠.”
“저 스님이 지금 이 산 속에서 방황을 하고 있다니? 그럼 왜 이렇게 혼자서 살고 있겠어.”
“산에서 산다고 다 같은 스님인 줄 알아요. 아까 뭘 들었어요? 고단해 죽겠다고 하잖아요. 그것은 아직 그 일하고도 하나가 못 되었기 때문이에요.”
결코 그리 큰 목소리가 아니었는데 윤희의 그 말은 이상하게 혜지의 가슴을 울렸다. 멀리서 소쩍새 울음소리가 처량하게 들렸다.
소쩍새는 어느 산에서나 처량하게 우는가.
언젠가 청암사에서 예불을 마친 뒤였다. 지암 노장까지 모시고 전대중이 모두 용담의 법문을 들을 요량으로 찻잔을 앞에 놓고 큰방에 둘러앉아 있었다. 방안에는 잠시 고즈넉한 침묵이 흘렀다. 이따금 침묵을 깨고 어디서 소쩍새 울음소리가 처량하게 들려왔다. 생침을 삼키며 대중은 열심히 용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달빛처럼 차고 맑은 표정이었다. 이런 눈이 시리게 적막한 밤이 있어 그도 결국 이 산을 떠나지 못하는 것일까. 용담은 그 무렵 청암사에서 불목하니 일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절에서는 아무도 그를 말리지 않는다.
그때 말없이 앉아 용담을 무겁게 바라보고 있던 지암 노장이 불쑥 입을 열었다.
“이 늙은이는 절에 들어와서 팔십 평생을 사는 동안 견성을 못한 것이 한이우. 이제 어언 갈 때가 다 되어 큰스님께 꼭 한 마디 묻겠소. 제발 이 늙은이를 위해 한 말씀 해주시구려. 단적으로 말해서 견성은 무엇이우?”
그제야 용담은 천천히 찻잔을 들어 입술을 축였다. 그러자 스님들도 얼떨결에 자기 앞에 놓인 찻잔을 집어 들었다.
“산닭도 울 줄 알면 그게 바로 견성이지요.”
찻잔을 내려놓으며 용담은 뜻 모를 웃음을 입가에 물었다.
하지만 지암 노장은 그 전혀 예기치 않은 대답에 쭈글한 얼굴을 더 쭈그리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녀는 다시 물었다. 평소에는 별로 말이 없던 지암 노장이었다.
“그렇다면 성불은 무엇이우? 견성이 곧 성불이 아닌가요?”
용담은 지그시 눈길을 아래로 내리깐 채 찻잔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그의 입가에는 아직도 그 뜻 모를 웃음이 은근히 물려 있었다. 흔들리는 촛불 아래 어디서 다시 소쩍새 울음소리만 외롭게 들려오고 있을 뿐 방안에는 기침소리 하나 나지 않고 있었다.
이윽고 용담이 입가에 물고 있던 웃음을 뚝 그쳤다.
“그렇다면 산닭이 두 번 운 소식은 아는가? 그거 참 모래를 쪄서 밥을 짓는 소리를 하고 있군요.”
이어 그는 절레절레 머리를 흔들었다.
“내가 그러께인가 남방의 어느 선원에 볼일이 있어 내려갔을 때 보니 그곳 스님들은 다들 분명히 그렇게 알고 있던데요. 그러므로 돈오돈수頓悟頓修를 해야 한다고. 그 부산 해운정사 금모선원의 조실 진제 스님도 돈오점수頓悟漸修 사상은 선종禪宗의 정안종사正眼宗師의 안목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고…….”
노니老尼의 손에는 알이 굵은 단주가 움켜쥐어져 있었다.
“턱도 없지요!”
“턱도 없어요?”
그 순간 지암 노장은 주름 깊은 얼굴을 바짝 쳐들었다. 그 니의 상좌들도 잔뜩 혼란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멍청하게 용담을 바라보았다. 턱도 없다니? 그 진제 스님뿐만 아니라 성철 스님을 비롯해서 지금 우리나라의 역량 있는 선사들은 오직 그 돈오돈수만이 정법正法이라고 학인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대선사들이 턱도 없다니.
사실 그 성철 스님만 해도 어떤 분인가? 몇 년 전에 열반했을 때는 온 나라 안이 다 시끌벅적하고 굉장하지 않았는가. 각 신문․방송국에서도 연일 떠들어댔다. 그때 나온 신문의 큰 제목만 봐도 ‘금세기 최고 선지식’이니, ‘이 시대의 정신적 스승’이니, ‘성철 불교의 신화’니, ‘선의 거목’이니, ‘불교계 마지막 전설’이니, ‘푸른 산의 부처’니, 이루 다 말할 수 없이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추앙해 마지않았다. 그리고 그 다비식은 또 얼마나 화려했던가. 실로 50만 불자가 분향하고, 국장國葬을 방불케 한 국민적 애도 속의 거룩한 장례였다.
“그렇다면 오직 용담 큰스님 혼자만이 정법이 아니라고 극단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이우?”
지암 노장은 서슴없이 말했다. 노장은 생각보다 대범했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그냥 얼렁뚱땅 지나갈 일이 아니지 않는가. 과연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지.
용담은 다시 입가에 예의 그 멋없는 웃음을 흘렸다.
“그거 다 자다가 남의 다리를 긁는 격이지요.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아직 그 견성이 허물妄想로 남아 있는데 그것이 어떻게 성불입니까? 그거 순 말장난이지. 오히려 그 견성을 놓아 버려야만 그것이 비로소 성불입니다. 그래서 깨달은 자의 입에서는 절대 그런 말이 나올 수가 없는 법이지요. 그것은 성불이라는 말만 알 뿐 그 실체를 모르는 탓입니다. 이는 분명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한 마디 더 묻겠소. 어떤 것이 산닭이 우는 것이우?”
하지만 용담은 씩 웃으며 지암 노장을 향해 주먹을 한 번 번쩍 들이대는 시늉만을 해 보일 뿐이었다.
“알겠습니까? 노스님이라, 이쯤에서 그만 그치는 것입니다. 또한 산닭이 한가롭게 울었군.”
지암 노장은 다시 물었다.
“그 산닭이 운다는 것은 필경 무슨 뜻이우?”
“굳이 꼭 산닭이 아니라고 해도 됩니다. 그것은 다만 달을 가리킨 손가락일 뿐이니, 그냥 산새가 울었다고 해도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여기서 노스님은 그저 달만 보면 됩니다.”
“나는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구먼.”
“내가 지금 노스님께 바로 그 부처를 보여드린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것이 바로 성불이지요.”
“……?”
그제야 대중은 모두 입을 벌렸다.
“그거 참 이 늙은이는 갈수록 더 모를 말이우.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사실 그 돈오돈수는 중국의 육조 혜능 조사六祖慧能祖師가 처음 주창한 것으로서 1천3백여 년 동안 선가禪家의 정통 지침서指針書로 전전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조사선祖師禪이지 않소.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역대 조사歷代祖師들이 다 턱도 없단 말이우? 그분들이 다 자기 자신을 속였다는 건가요?”
그때 다시 어디서 소쩍새 울음소리가 애달프게 들려왔다. 지암 노장은 부르르 힘겹게 어깨를 떨었다. 그 니의 주름 깊은 얼굴은 벌써부터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나는 역대 조사들이 다 턱도 없단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분들이 다 자기 자신을 속였다는 말은 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이것은 오직 나 혼자만이 그 1천3백여 년의 전통을 거스르며 주장하고 있는 것도 아닐 겁니다. 잘 모르긴 해도 그분들 중에 그걸 지적하신 분들이 왜 안 계셨겠습니까?
성철 스님이 편역한 육조 단경六祖壇經을 보면 거기 유전돈법唯傳頓法에 ‘자성自性은 단박에 닦는 것이니 세우면 점차가 있으므로 세우지 않느니라’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혜능은 그렇게 큰 오점을 남겼습니다. 혜능은 일자무식이라 누가 그렇게 기록을 잘못했는지는 모르지만, 이것은 명백한 실수입니다. 그럼에도 성철 스님은 혜능의 말이라 무조건 옳은 줄로 알고서 혜능이 가장 실수한 부분을 가장 좋은 것으로 잘못 추종하고 있는 것입니다.”
“…….”
지암 노장은 아프게 쭈글한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이 없었다.
“사실은 그 ‘자성은 단박에 닦는다’는 것을 혜능 자신이 오히려 엉뚱하게 세운 것입니다. 자성을 도무지 어떻게 닦는단 말입니까? 원래로 닦을 것이 없는 이 자성이요, 그 닦을 것 없음을 아는自覺 것이 곧 견성인 것입니다. 닦을 것이 있다면 그게 어디 불성佛性이겠습니까? 그런데 혜능은 거기에 공연히 ‘돈수頓修’를 세워서 스스로 ‘점수漸修’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성을 보는 것으로써 이미 다 닦은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어찌 다시 돈․점이 있겠습니까? 진정 ‘견성이 곧 성불’일 것 같으면, 견성頓悟할 그때 이미 돈수成佛를 해버렸는데, 그럼 이제 와서 다시 죽는 놈은 무엇입니까? 자기가 죽는가, 남이 죽는가?
그럼에도 성철 스님은 오히려 서산 대사西山大師를 ‘돈오점수頓悟漸修’를 주장한다 하여 아주 마음껏 따지고 나무랐으며 심지어는 지해종도知解宗徒라고까지 비판해 버렸습니다. ‘돈오점수 사상을 신봉하는 자는 전부 지해종도이다. 원래 지해는 정법을 장애하는 최대 금기이므로 선문禪門의 정안 조사들은 이를 통렬히 배척하였다. 그러므로 선문에서 지해종도라 하면 이는 납승의 생명을 상실한 것이니 돈오점수 사상은 이렇게 가공한 결과를 초래한다’고.”
“…….”
그때 갑자기 밖에서 바람이 요란하게 방문을 때렸다. 대중들은 흠칫 놀랐다. 하지만 바람은 문창호지를 관통해서 들어오진 못했다. 문풍지만 파르르파르르 울었다.
대중은 다시 열심히 용담의 얼굴을 주목했다.
“그러기에 남의 말끝만 따라다니지 말고 자기가 직접 깨달아야 합니다. 성철 스님은 침묵의 실체를 모르기 때문에 ‘침묵’이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감히 침묵이라고 했을 때 그것이 과연 ‘침묵’인가요, 아니면 ‘웅변’인가요? 같은 이치입니다. 그래서 돈오돈수가 곧 돈오점수입니다. 죽은 자의 입에서 어떻게 죽었다는 말이 나오겠습니까? 가령, 죽은 놈이 ‘나 죽었소’라고 한다면 그게 과연 죽어 있는 놈입니까, 살아 있는 놈입니까?
그렇다고 부否를 진眞이라고 감싸주어 같이 거짓말해서 많은 사람들을 상하게 하는 것이 덕은 아닙니다. 아무리 석가모니 부처님일지라도 잘못된 것이 있으면 오히려 바로 잡아드려야 그것이 후학의 도리인 거지요. 공자님의 말씀에도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참으로 아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진실하지 못하면 그것부터가 벌써 도가 아니지요. 그런데 거기에 다시 무슨 말을 더 보태겠습니까?”
좌중을 한 번 찬찬히 둘러보더니 용담은 다시 찻잔을 집어 들었다. 하지만 대중들은 뭔가 못내 허탈한 듯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지암 노장이 허공을 향해 두어 번 헛기침을 했다.
“이 늙은이도 그것만은 동감이우. 누가 되었든 확실히 깨닫지도 못하고서 깨달았다고 거짓말하는 건 나쁘다고 생각하우. 비록 도는 못 깨쳤을지라도 나 자신도 진실하고 깨끗하게 살기 위해 오늘날까지 이 납의를 걸치고 있는 게 아니겠우. 이 늙은이는 열 살 때 큰아버지의 손에 끌려 절에 들어와서 팔십 평생을 사는 동안 그저 시줏물만 축냈을 뿐 무엇 한 가지 이렇다 하게 이뤄놓은 것도 없이 허송하고 말았소만. 그런데 그까짓 속인들과 똑같이 거짓말을 하고 살 테면 무엇 하러 이 산에 사는가. 오히려 중생들도 하지 말아야 할 거짓말이지.”
그날 용담의 그 말은 혜지에게도 큰 충격을 주었다. 그녀는 어느 책에선가 분명히 성철 스님의 이 글을 읽었기 때문이다.
“깨달았다고 거짓말하여 반야般若를 비방한 죄는 극히 무거우니, 지옥을 천만 번 갈지언정 깨달았다고 거짓말해서는 안 된다. 알면서도 일부러 저지르면 산 채로 지옥에 떨어진다.”
“차라리 그때 그 스님의 얼굴이 도인처럼 보였어요. 절에서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스님이 한 분 계셨어요. 그래서인지 그 스님의 얼굴은 언제나 깊은 우수에 잠겨 있었어요. 그런데 또 그 어머니의 얼굴이 오히려 아들의 얼굴을 닮아가고 있더라구요. 왜일까요? 준우 씬 정말 슬픔을 한 번이라도 깊이 느껴본 일이 있나요?”
윤희가 말갛게 눈을 뜨고 준우를 바라보았다.
“세상에 그런 어리석은 말이 어딨어. 슬픔을 느껴본 일이 있느냐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야?”
준우는 퉁명스럽게 받았다. 정말이지, 그는 이제 윤희가 더 이상 깊이 불교에 빠져드는 것은 싫었다. 그런데 그때 알 수 없게 혜지까지 두 눈을 촉촉이 빛내고 있었다.
그녀는 까닭 모르게 혼자서 싱긋이 웃었다.
“말하자면 그 내면을 봐야 한다는 거죠. 그래서 부부는 서로 얼굴이 닮는다고 하잖아요. 한 물건을 봐도 같은 생각을 일으키니까요. 그렇다면 장 선생님은 윤희 씨와 얼마나 얼굴이 닮았다고 생각하나요?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위해 주며 하나로 닮아갈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이에요. 나는 무엇보다도 그것이 가장 부러워요. 단 한 번도 가정다운 가정을 가져보지 못한 나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요.”
하지만 그 불교적으로 본다면 오히려 준우와 윤희는 어쩌면 차라리 전생에서부터 오누이 사이였는지도 모른다.
이거 아무래도 내가 여태 이 스님을 잘못 보았는가, 준우는 중얼거렸다. 그는 가만히 손바닥을 펴보았다. 아직도 거기 혜지의 희뿌연 젖무덤이 먼 추억처럼 아련히 남아 있었다. 윤희한테는 미안한 줄 알면서도 그는 또 그쪽으로 끌리는 자신의 마음을 어찌 할 수가 없었다.
혜지는 말을 이었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그 아들에게 ‘나후라’라고 이름을 지어준 건 그냥 단순히 ‘괴로움’이라는 뜻이 아니었어요. 석가모니 부처님 당신의 수행에 있어 ‘장애’라는 뜻이 아니었어요. 결코 ‘불필요’가 아니었어요. 그것은 바로 그 아들에게 있어 오히려 지극한 연민이었어요. 거기서 나온 대자비심이었어요. 내가 인생을 살아 보니 생로병사 이것이 가장 괴로운 것이더라. 그러니, 너도 장차 또 그걸 견디며 얼마나 괴로울 것이냐…… 하는 아들을 위한 안타까움이었어요.”
그때 아랫목에서 갑자기 끙끙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윤희가 벽을 향해 허리를 접고 옆으로 누운 채 사타구니에 두 손을 찔러넣고 새처럼 끄윽끄윽 울음을 삼키고 있었다.
혜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디 아파요?”
“아니에요. 잠깐 엄마를 생각했어요.”
호옥, 하고 길게 한 번 한숨을 토해 내더니 윤희가 혜지 쪽으로 돌아누웠다.
“그런데 스님, 이제 그분은 어디로 가셨는지 알 수가 없을까요? 정말로 도인은 도인인 모양인데…… 그 달은 어디 가서 지는가요.”
“알아보면 아마 알 길이 있을 거예요.”
그러니 아무 걱정 말고 어서 잠이나 자라는 듯이 말했다. 준우는 어느새 잠 속으로 스르르 빠져들고 있었다.
“부처님의 얼굴을 그리려면 내가 직접 그 부처를 보는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감히 부처님은 볼래야 볼 수 없고, 그래서 그 도인을 통해서 부처님의 심오한 자비의 빛을 만나보려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분은 왜 그렇게 승도 속도 아니게 살고 있는 걸까요?”
윤희는 고개를 들고 혜지를 바라보았다. 아직도 윤희의 눈빛은 호기심이 흥건히 묻어 있었다.
“…….”
하지만 혜지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때 그 화가는 말했어요. 자기가 딱 한 번 못 그린 불상佛像이 있었다고. 바로 석굴암의 불상이라는 거예요. 그 화가는 정말 단 한 번의 붓도 도저히 들 수가 없었다고 고백했어요. 아무리 바라봐도 그 숭고한 모습에 절로 고개가 숙여질 뿐 감히 붓끝으로 화선지에 옮길 수가 없어서 결국은 그냥 내려오고 말았다는 거예요. 하지만 그 불상 또한 어느 조각가가 조각한 하나의 작품에 불과해요.”
그는 참으로 정열적이고 진실한 예술가라는 기억이 아직도 윤희는 생생했다. 아무리 능란한 솜씨를 가진 조각가라 할지라도 부처님을 보지 않고는 그 심오한 자비의 빛을 새길 수가 없는 법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다만 그 조각가의 정신이 담겨진 불상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그는 그 조각가의 정신 앞에서 그처럼 처절하게 무너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얼마나 진실하고 감동적인 자세인가.
윤희는 다시 공허하게 중얼거렸다.
“그런데 그분은 왜 그렇게 승도 속도 아니게 살고 있는 걸까요? 정말로 도인은 도인인 모양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그것이 이해가 안 되거든요. 참으로 별난 분을 다 본다 싶어요.”
“…….”
혜지는 여전히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렇다면 그분에겐 원래 승속僧俗이 따로 없기 때문인가요?”
윤희는 다시 고개를 들고 혜지의 눈을 찾았다.
“…….”
“아무리 그렇더라도 그 초라한 불목하니로 사는 거보다는 승복을 입고 높은 자리에 앉아 지내는 게 더 편하고 좋잖아요. 서로 피차 자타가 그게 더 훨씬 생산적이구요.”
“…….”
혜지는 끝내 아무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때 이미 윤희와 자기의 운명이 서로 뒤바뀌고 있음을 예감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그 성의 사람들
1.
“명화원 원장 스님은 만나 보았니?”
아침상을 들고 와서 어머니가 넌지시 준우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아버지와 겸상을 하고 있을 때는 거의 그런 말을 하지 않던 어머니였다. 그래서 준우도 고개를 들고 어머니를 마주보았다.
“만나 보았어요.”
“무슨 일로 너를 부른 거니? 무슨 중요한 일이 있는 것 같던데…….”
그 원장 스님한테서 온 전화를 어머니가 받은 것이었다.
“별일 아니에요.”
그는 우물쭈물 얼버무렸다.
“그 스님도 잘 있고?”
“그 스님이라뇨?”
“네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자주 찾아오던 그 혜지 스님 말이다.”
“실은 그 스님 때문에 명화원 원장 스님이 저더러 한 번 와 달라고 한 거예요. 그 스님은 이제 명화원에 없어요.”
“그럼 그 스님은 지금 어디 계신다니? 너무도 고마운 스님이었지.”
어머니가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아직도 어머니의 눈 속에는 혜지의 얼굴이 곱게 남아 있었다.
“네가 연천 외갓집에 가서 있을 때도 한 번 찾아왔었다고 했잖니?”
하지만 그날 밤 그 일이 일어날 줄을 어찌 꿈에라도 생각이나 했겠는가. 준우도 깊게 한숨을 토해 냈다. 그런데 혜지는 무엇 때문에 떠나지 못하고 그처럼 그의 주위를 맴돌고 있었던 것일까.
“누가 누굴 사랑해도 사랑은 아름답고 숭고한 거예요. 중생을 측은하게 내려다보는 부처의 자비가 숭고한 것이라면, 한 지아비가 지순하게 지어미를 마주보는 눈빛도 숭고한 사랑이요, 지엄한 주인이 부리는 아랫사람을 따뜻이 감싸주는 손길도 숭고한 사랑이요, 그 머슴의 아들이 남몰래 번민하며 지엄한 주인의 딸을 연모하는 마음도 충분히 아름답고 숭고한 사랑이에요.”
준우는 마음이 착잡했다.
“저 섬에 좀 갔다 오려고요.”
“거긴 왜?”
아니나 다를까, 아버지가 기어이 참견을 했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가 있는 자리에선 되도록 대화를 삼가고 있었다.
어머니가 얼른 거들었다.
“볼일이 있으니까 가겠지, 왜는 무슨 왜요.”
“그 스님이 지금 섬에 있는데 저를 한 번 만나보았으면 한대요.”
그래서 그랬는가. 한동안 아무 소식이 없기에 어디 선방에라도 가서 공부를 하고 있겠거니 생각했는데, 그 섬에 있었다니.
“그 스님한테 무슨 일이라도 있다니?”
어머니가 다시 넌지시 그를 보았다.
“그거야 가서 만나봐야 알지요.”
그런데 그 혜지가 왜 이제 와서 갑자기 자기를 찾고 있는 것일까.
“또 누구를 만나러 간다고? 얼빠진 놈. 네놈이 만나긴 누굴 만나? 사람이 제 분수를 모르면 금수보다 못한 거여, 이놈아.”
숟가락으로 밥을 뜨다 말고 아버지가 그를 향해 두 눈을 부릅떴다. 하긴 그는 왜 여태 그 말이 안 나오나 했다. 그 집의 밥상머리 싸움은 언제나 이렇게 시작되었다.
“윤희만 해도 그렇지. 네놈이 더 주책없이 촐싹거리며 그 아이를 절간에 데리고 다녔으니까 여승이 된 게지, 이제 와서 누굴 원망해. 꼴좋다, 이 못난 놈. 네 낯바닥 하나는 네놈이 알아서 책임져야지, 그래 그게 사내자식이 할 짓이야?”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것은 혜지는 아무래도 그가 결국은 윤희와 그렇게 될 줄을 이미 다 알고 있었던 듯하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그들은 다 같이 전생에서부터 어떤 한 덩어리로 살아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놈아, 그래 억울하지도 않어? 하긴 네놈에게는 윤희가 너무도 과분했지. 그 아인 비록 편모 밑에서 어렵게 자랐어도 얼마나 당차고 얌전했느냐 말여.”
생각지도 않게 준우는 계속 아버지로부터 급습을 받고 있었다.
벌써 몇 년이 지난 일인데 아직도 그걸 잊지 않고 왜 그를 못 잡아먹어 안달을 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만큼 아버지는 윤희를 잃은 애통함이 컸다. 아버지의 눈앞에는 늘 윤희가 나타나 사라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오히려 당신이 더 어떤 배신감에 부르르 몸을 떨기도 했다.
“왜 또 그 아이는 들먹여서 자식을 병신 만드시우?”
어머니가 포르르 나섰다.
그러자 아버지가 이번에는 어머니를 향해 험악하게 눈알을 부라렸다.
“안에서 뭘 안다고!”
그러거나 말거나 준우는 그냥 계속 밥만을 꾸역꾸역 입 속에 떠넣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또 아버지의 비위에 거슬린 모양이었다.
“시인? 이놈아, 시인은 아무나 되는 줄 알어? 그저 문예창작과만 나왔다고 해서 아무나 다 시를 쓰는 줄 알어? 그것도 다 그 마음의 소산이여. 그러니께 먼저 사람부터 되어야 헌다고! 그리고, 그놈의 잡지산가 출판산가는 왜 또 며칠도 다니지 못하고 때려치운 거여? 네놈에게는 밥이 아깝지.”
“그거야 뭐 다른 일을 해볼까 해서 그만둔 거지요. 그곳에 더 있어 보았자 별 발전도 없고.”
준우는 아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더 이상의 인간적인 모욕은 당하고 싶지 않아서 그걸 잠깐 피해 가려고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게 또 잘못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네 멋대로 그렇게 일방적으로 그만두면 그쪽에서는 어떻게 되는 거여? 무슨 대책이나 세워주고 그만둬야지.”
“대책은 무슨 대책이에요. 그까짓 삼류 출판사 있으나마나 한 편집장 자린데…….”
본의 아니게 그도 다소 목소리가 격앙되어 갔다.
“이놈아, 그래도 그런 것이 아닌 거여. 사람이 그냥 살아가는 데도 다 법이 있어. 네놈처럼 그렇게 제멋대로 사는 게 아니라고!”
“앗따, 이제 그만해 두시우.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고 했어요. 지가 어련히 알아서 하려구요.”
어머니가 다시 또 끼어들었다. 하지만 이 한없이 아름다운 여인은 사실 그의 친모도 아니다. 어린 날 그 사실을 알고 나서 그는 얼마나 울었던지.
그의 생모는 그를 낳고 나서 산후 조리를 잘못하여 죽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태어날 때부터 운명이 잘못 비틀려 아버지의 한 서린 미움을 받고 자라온 셈이었다. 그래도 아버지는 다행히 곧바로 지금의 어머니를 만났고, 이 어머니가 그때부터 그를 키워준 것이었다.
“임자는 가만히 있어! 안에서 뭘 안다고, 역성을 들긴.”
“아, 인숙이가 보는 데서 이건 너무 하잖아요.”
벌써 다 밥을 처먹고 숭늉으로 입 안을 헹구고 있던 인숙이가 킥킥 웃었다.
“나는 설마 그 언니가 그렇게 끝내 삭발까지 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네요. 하긴 뭐 그 언니는 벌써 여고 다닐 때부터 불교 학생회 활동을 했으니까. 연아회硏我會인가 뭔가 하는 동아리인데, 그러다가 그 가운데 아예 여고시절에 출가를 해서 여승이 된 사람도 있었어요. 그래도 뭐 어쩌겠어. 사람마다 제각기 심보가 달라서 제 잘난 멋에 살고 있으니. 그럼에도 아빠는 그런 언니가 뭐 마음이 한없이 따뜻하고 정이 많은 여자라고요?”
“시끄러워! 네년은 또 뭐가 잘났다고 그 지랄이여?”
기어이 아버지가 숟가락을 상 위에 탁 소리가 나게 놓았다.
“무자식이 상팔자지. 자식 남매 있는 게, 두 놈이 교대해 가며 이리 속을 썩이니, 원. 네년도 이젠 대학생이 되었으니 철들 때도 되었지 않어!”
인숙이는 삼수 끝에 간신히 턱걸이해서 올해야 겨우 대학에 들어갔다. 식품공학과라나, 식품영양학과라나. 그 꼴에 대학물을 먹더니 눈만 뜨면 무슨무슨 미팅, 해가며 벌써부터 밤낮없이 뻔질나게 싸질러 다니고 있었다.
아버지가 밥상머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놈아, 그래 사내자식이 창피하지도 않어? 병신 같은 놈. 저런 것도 사람이라고 밥을 처먹어? 꼴도 보기 싫으니 어서 당장 나가 뒈지든지 해, 이놈아. 네놈이 냉큼 나가 뒈져야 내가 살 것 같단 말여. 크, 아깝다.”
아깝다는 건 윤희를 두고 하는 소리였다. 하지만 그가 사실 이처럼 병신같이 생긴 건 그 아버지를 닮은 탓이었다. 그는 오히려 그 일을 겪고 난 뒤 차라리 더 어른스러워진 기분이었다.
“준우야, 이젠 윤희를 너무 그리 원망하지 마라. 그 아이가 어디 다른 데로 시집이라도 갔다면 또 모르지만, 이미 이 속세를 떠난 아이가 아니냐.”
불현듯 짠한 연민의 정이라도 일었는가. 이윽고 인숙이까지 자기 방에 들어가자 어머니가 그를 향해 넌지시 젖은 눈길을 주었다. 아버지는 벌써 승냥이처럼 어슬렁거리며 복덕방에 나가고 집에 없었다. 아버지는 부동산 중개인이다. 그래서 몇 년 전 윤희네 아파트도 싸게 사주었었다.
“그 아이가 머리 깎고 출가를 한 지도 벌써 몇 년이 지났구나.”
“저도 이젠 윤희를 다 잊었어요. 다 운명인 걸요 뭐.”
하지만 준우는 막상 그 말을 들으니 오히려 마음이 다시 축축해지고 있었다. 미친년이지.
“하기야 그 아이는 도인인가, 누군가를 만나러 다닐 때부터 내가 벌써 다 알아보았어.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소식 한 번 없다니. 독한 것. 지금 어디서 잘 지내고는 있는지…….”
어머니가 쯧쯧 혀를 찼다.
“지금은 충청도 어느 절에 있다나 봐요.”
그도 절로 한숨이 토해졌다. 그래서 일찌감치 한 소식은 했는가? 그래서 지금 직접 그 도인이 되어 자유자재로 축지법도 쓰고, 앉아서 삼천리, 서서 육천리,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한눈에 훤히 내다보고 있는가? 신통력을 부려서 남의 사주팔자 같은 것도 죄다 알 수 있는가?
“그렇다면 그 아이가 지금 어느 절에 있는지 한 번 알아봐 줄 수 있겠니?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 아이의 동생 윤호만은 알고 있을 게 아니냐?”
“제가 한 번 윤호한테 물어볼 게요.”
“그래 주겠니?”
“그런데 왜 그걸 알고 싶어 하세요?”
“한 번 보고 싶어서 그러지.”
하긴 어머니로선 따지고 보면 윤희 또한 딸 같은 아이이기도 했으리라. 그러고 보면 혜지의 말처럼 이 세상 인연이라는 게 가장 질긴 사슬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놈의 선禪이란 게 도대체 무엇인지. 윤희는 용담을 만나고부터 뭔가 이상해진 것이 분명했다. 그분의 무엇이 윤희에게 그렇듯 활기를 주고 있는가 모를 일이다. 그날 윤희는 집요하게 그것만을 묻고 있었다.
<?xml:namespace prefix = v ns = "urn:schemas-microsoft-com:vml"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그럼 어떻게 해야 그 깨달음을 얻을 수 있나요?”
강인봉∙姜印峰. 1949년 전북 김제 출생. 1970년 원광대 국문과 재학시절 불교에 입문, 그해 첫시집 수덕사의 쇠북소리를 발간하였고, 견성見性을 하였으며, 1984년에는 혜암 선사로부터 전법게傳法偈를 이어 받았음. 1979년 ≪한국문학≫ 1백만원 고료 신인상 당선. 1989년 ≪문학정신≫ 제1회 1천만원 고료 소설문학상 수상. 장편소설 구나의 먼 바다(전3권), 다시 에덴에서, 불의 침묵. 시집 첫사랑, 간월도. 산문집 풀, 누가 부처를 보았다 하는가. 혜암 선사의 법어를 편역한 법어집 늙은 원숭이 등을 발간.
- 이전글51호(가을)미니서사/박금산, 김혜정 14.08.08
- 다음글51호(가을)고창수의 영역시단/ 14.08.08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