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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호(가을)미니서사/박금산, 김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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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탄
댓글 0건 조회 5,417회 작성일 14-08-08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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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서사

 

박금산

예언

 

 

도적의 무리가 산사를 점령했다. 산사는 가난했다. 주지는 우두머리를 샘으로 유인했다. 샘물은 유난히 염도가 높았다. 주지는 우두머리의 정수리에 물을 부었다. 우두머리는 세례 받는 여인처럼 주지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샘물이 우두머리의 머리카락을 적셨다. 여름 해가 쨍쨍했다. 우두머리는 백발이 되어 무리로 돌아갔다. 소금 결정체가 흑발을 덮었다.

우두머리는 주지의 계시를 알아들었다. 그는 소금을 팔아 번 돈으로 마을을 만들었고 산사에 시주를 했다. 마을은 안전했다. 도적들은 관군에게 쫓기던 시절을 잊었다. 주지는 늙었다. 늙은 몸은 소금 알갱이처럼 작고 단단했다. 겨울 어느 날 숨이 멎었다. 도적의 무리는 장작으로 단을 쌓아 주지의 몸을 다비했다. 며칠이 지났다. 재를 뒤적이자 사리가 몇 알 나왔다.

사리의 의미를 모두가 알아들었다. 도적의 무리는 솥을 걸고 불을 지폈다. 노승을 다비하듯 도적의 무리는 바닷물을 끓였다. 샘물만으로는 공평하게 나눠가질 수 없었다. 식구가 늘었고 마을이 넓어졌다.

도적의 일부는 땔감을 구하러 숲으로 들어갔다. 일부는 해안에서 불을 지폈다. 일부는 소금을 걷어 등짐을 지고 장사를 떠났다. 먼 곳으로 간 도적이 있었기 때문에 돌아오지 않는 도적도 있었다. 숲 속에는 숯구이들이 살았다. 한 도적은 숯구이들을 찾아가 소금을 팔았다. 그는 숯구이 마을을 나서며 식구들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소금구이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밥알처럼 하얗게 소금이 피던 가마솥은 티끌보다 작게 보였다. 검은 장정들이 날카로운 장비를 들고 숲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바다는 불멸이고 숲은 유한했다. 나무는 두 마을 모두에게 필요했다. 숲이 줄어들어 두 마을이 만나면 그것은 전쟁이었다.

 

박금산

1972년 여수 출생. 2001년 ≪문예중앙≫ 신인상으로 등단. 소설집 생일선물, 그녀는 나의 발가락을 보았을까, 연작소설 바디페인팅. 장편소설 아일랜드 식탁, 존재인 척 아닌 척. 서울과학기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김혜정

이별의 풍경

 

 

어머니는 아침부터 표정이 밝았다. 나를 아버지로 착각하는 것만 빼면 거의 정상인 것처럼 보였다. 허공을 바라보는 듯 초점 없던 눈도 제자리를 찾은 것 같았다. 나는 카오디오의 볼륨을 낮추고 조심스럽게 운전했다. 어쩌면 어머니를 차에 태우고 가는 마지막 운전이 될지도 몰랐다. 아니, 그것은 기정사실이었다. 백미러에 비친 어머니의 얼굴에는 최근 몇 년 동안 보지 못했던 평온함이 있었다. 어머니는 눈을 지그시 감고 노래까지 흥얼거렸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그 소절만 반복했지 노래는 더 이상은 나아가지 못했다.

“정말 아름다운 곳이야. 당신이 이런 델 데려와줄 줄은 몰랐어.”

자동차가 나무들이 늘어선 길에서 뒤돌아가 언덕길로 접어들었을 때 어머니가 말했다. 나는 무언가 말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머니의 얼굴에 조금 전까지의 표정은 사라지고 없었다. 입을 꼭 다물고 창밖만 바라보았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가 모든 것을 알면서도 연극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바다와 초록빛 언덕에 둘러싸인 병원 건물이 모습을 드러나기 시작했다. 나는 병원 건물이 괴물처럼 느껴졌다. 나는 차마 어머니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병원 입구에는 간호사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병실로 가실까요? 원하신 대로 전망이 좋은 방으로 준비해두었어요.”

감사합니다, 라고 인사하는 나를 어머니가 힐끗 쳐다보았다.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간호사는 어머니의 팔짱을 끼고 아이 다루듯 했다. 어머니는 여전히 입을 다문 채 간호사에 매달리듯 해서 걸어갔다.

병실은 쾌적하고 볕이 잘 들었다. 간호사가 나가고 어머니와 단둘이 남게 되자 마치 여행지에라도 온 것 같았다.

“드디어 당신이 나를 버리기로 했군요. 우리 아들이 살아만 있었더라도…….”

어머니는 아들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했다. 외국 유학까지 간 아들이 어느 날 갑자기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그 표정이 얼마나 진지한지 나 말고 다른 아들이 어머니에게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그것은 아버지가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져 집을 나간 후 어머니가 나에게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말했을 때와 같은 표정이었다.

햇볕이 병실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김혜정∙여수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을 졸업. 1996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당선. 소설집 복어가 배를 부풀리는 까닭은, 바람의 집, 수상한 이웃. 장편소설 달의 문門, 독립명랑소녀, 제15회 서라벌문학상 신인상, 간행물윤리위원회 우수청소년 저작상, 송순문학상, 2013 아르코창작지원금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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