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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호(가을)책크리틱/허희|실패와 불행:이면과 반면으로 다시 보기―황병승, 주하림의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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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희|실패와 불행:이면과 반면으로 다시 보기―황병승, 주하림의 시집
사숙하는 평론가가 있다. 그는 읽는 이로 하여금 시의 안과 밖을 넘나들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작품‧독자‧비평이 함께 공명하게 하는 글을 쓴다. 정동靜動과 강유剛柔를 갖춘 대가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시가 지겨워지거나 의심이 들면 다음의 구절이 포함되어 있는 그의 평론집을 탐독하면서 마음을 달랠 때가 많았다.
시는 사람들이 보았다고 믿는 것을 명백하게 볼 수 있을 때까지 저를 지우고 다시 돋아나기를 반복하며, 진실한 것이건 아름다운 것이건 인간의 척도로 파악하기 어려운 것에까지 닿으려고 정진하는 시의 용기와 훈련은 우리가 상상했던 것이 이 세상의 것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지극히 절망적인 순간에 그 절망을 말하면서까지도, 포기하지 않는다. 시는 포기하지 않음의 윤리이며 그 기술이다.
—황현산, 「책 머리에」, 잘 표현된 불행, ≪문예중앙≫, 2012, 7쪽.
“시는 포기하지 않음의 윤리이며 그 기술이다.” 흔들리는 나를 위무한 이 전언은 이제부터 다룰 두 시집을 통어하고 있기도 하다. 양자의 해설을 맡은 황현산은 황병승의 세 번째 시집 육체쇼와 전집을 「실패의 성자」로, 주하림의 첫 번째 시집 비벌리힐스의 포르노 배우와 유령들을 「이국에서 불행하기」라고 명명했다. 실패하여 불행하거나 불행하여 실패한 이들. 그렇지만 위의 인용에 근거하여 결론적으로 말하면, 황병승의 시는 실패하되 좌절하지 않고 주하림의 시는 불행하되 포기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으리라. 그런데 정말로 그러한가? 지금부터 그 면모를 살펴보려고 한다.
더 낫게 실패하지 않는 실패
육체쇼와 전집은 “사랑에 번번이 실패하는 불행한 여자”(「벌거벗은 포도송이」)가 등장하는 시로 시작해 “실패한 자로서, 실패의 고통을 안겨주는 이 페이지”(「내일은 프로」)로 끝이 난다. 이에 대하여 황현산은 “실패로부터 태어나서, 실패를 모면하려는 생각조차 없이 실패를 살며, 어디서나 실패 속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실패의 밖이 없는 실패에서는 실패와 짝을 이루는 다른 개념을 떠올릴 수 없다. 절대적 실패라는 말이 아마도 필요할 것 같다.”(「해설」182쪽)라고 설명한다.
실패에서 출발하여 실패로 귀결되므로 ‘절대적 실패’라는 규정은 타당해 보인다. 다만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실패들’을 똑같은 실패로 환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황병승의 실패는 특정한 지향을 전제하고 있는 점진적인 개선의 방법론이 아니다. 따라서 요즘 세간에 회자되면서 실패의 쉬운 핑계로 사용되기까지 하는 ‘더 낫게 실패하라’는 베케트 식의 선언과도 무관하다. 황병승의 실패는 각양각색의 양태로 시에 드러날 뿐이다. 그 중에서 표제시의 일부를 옮긴다. 이 실패를 보라.
악착같이 꿈꾸면서 악착같이 전진하면 악착같은 현실이 기다리겠지요
눈물을 질질 흘려야 우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사랑을 모르면서 사랑한다고 말하고
이별을 모르면서 이별했다고 말하고
살아 있으면서 지난 새벽에 죽었다고 말하는 겁니다 개새끼들
(중략)
저는 생각이 없어요 전집이 없습니다 누구의 자식인지 모를 골방의 아이들은
뒤죽박죽 서로를 배신하기로 협약을 맺었고
어두워진 창가를 서성이는 검은 육체의 그림자와
누구의 부모인지 모를 백 년 전의 시선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중략)
자 제가 보여줄 수 있는 육체의 쇼는 무엇입니까
어린 시절의 숲과 야만이 그리워지는 시간입니다
—「육체쇼와 전집」 부분
이 실패는 가혹하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낙관적인 미래 따위는 없음을 직언하기 때문이다. “악착같이” 살아도, “악착같은” 현실이 반복되는 한, “악착같이”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명제야말로 이곳의 진실이다. “개새끼들”은 이를 외면하거나 모른 척하면서 거짓말을 한다. “사랑을 모르면서 사랑한다고 말하고/이별을 모르면서 이별했다고 말하고/살아 있으면서 지난 새벽에 죽었다고 말하는” 위선과 위악을 부리는 것이다. “저는 생각이 없어요”라고 고백하는 시적 주체는 적어도 허위로부터는 자유로움을 방증한다.
‘생각’이 언급된 다른 시를 참조해볼까. “열심히 하면 언제든 생각이 다시 찾아온다고, 나는 믿었었다 어리석게도 마치 이 모든 게 마당의 웃자란 잔디와 같다고 생각하면서, 이 모든 게 기계의 커터 속으로 사라질 쓸모없는 잔디와 같다고 생각하면서……”(「벌거벗은 포도송이」) 이 시구에서 “어리석게도”는 온점 없는 앞문장과 뒷문장의 위치하여 선후에 모두 작용한다. 대략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다.
첫째, 현재의 ‘나’는 생각이 없다. 그렇다고 무엇이든 열심히 한다고 해서 생각이 되돌아올 거라고 믿지도 않는다. 그것은 “믿었었다”는 과거 시제가 증명하고 “어리석게도”라는 부사어가 부연한다. 둘째, 이 시에서 생각의 층위는 다르다. 왜냐하면 바로 앞에서 ‘나’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는다고 했지만, “이 모든 게” “웃다란 잔디”나 “쓸모없는 잔디”와 같이 생각하고 있는 까닭이다.
생각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나’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 극장전에서도 찾을 수 있다. 결말에서 주인공은 독백한다. “이젠 생각을 해야겠다. 정말로 생각이 중요한 거 같아. 끝까지 생각하면 뭐든지 고칠 수 있어. 담배도 끊을 수 있어. 생각을 더 해야 돼. 생각만이 나를 살릴 수 있어. 죽지 않게 오래 살 수 있도록.” 여기에서 나누어지는 것은 사색과 성찰에 가까운 생각과 자동화된 생각이나, 황병승의 실패가 시마다 단독적으로 나타나듯이, 황병승의 ‘생각’도 시마다 제각기 존재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일관된 기조의 “전집”이 없다는 중얼거림도 당연하게 들린다. “서로를 배신하기로 협약”까지 맺은 상황에서 드디어 표출되는 것은 “검은 육체의 그림자”, “육체의 쇼”이다. 관념적인 몸이 아니라 외설적인 육체가 요점인데, 소급하자면 이미 첫 번째 시집 여장남자 시코쿠부터 온갖 육체의 향연이 펼쳐지지 않았던가. 그곳에서 “저팔계 여자는 순돈육 자지를 달고 불 속을 걸었”(「에로틱파괴어린빌리지의 겨울」)고, 진짜 ‘나’를 ‘뒤통수와 항문’(「커밍아웃」)에서 찾기도 했다.
육체의 적나라한 쇼로 시단에 충격적으로 데뷔했던 황병승은 세 번째 시집에 이르러 실패했을지언정 “전집”을 구축하기를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러나 상호 속성상 ‘육체쇼와 전집’은 불화를 노정한다. 전집에 육체쇼를 억지로 통합하려는 시도는 둘 다를 폐색하고 말 것이다. “나는 결국 실패를 보여주는데 실패하고 말았다!”(「내일은 프로」) 황병승은 실패를 의도했고 그 실패마저 실패했다. 처연하기는커녕 헛된 미래를 기약하지 않는 강인한 얼굴을 한 채로.
불행을 포기하여 행복을 포기하지 않기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으리라는 각오는 기대고 싶은 마음이 산산조각 난 후에 생겨나는 반작용일 가능성이 크다. “기대지 말고 있는 그대로 살아가자고 다짐”(「아비뇽 시내에 있는 기차역에서 기차를 타고 어제는 비 오는 아를 그리고 아라타에게」)하는 행위는 “내가 손을 넣고 살며시 기댄 사람”(「작별」)이 있었으나 제목처럼 그와 ‘내’가 헤어졌기에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고립은 황현산에 따르면 ‘불행’이다. “화자는 자기 땅에서 불행하다. 주하림의 화자들이 문득 들어서 있는 다른 시간, 장소는 하나의 불행을 또 하나의 불행으로―너무나 메마르고 고독해서 눈물이 없는 불행으로―가리려는 여러 겹의 장막과 같다.”(「해설」, 162~163쪽) 과연 그의 서술대로 주하림 시는 다채로운 시간과 장소를 종횡무진 누비며 불행을 불행으로 가린다. 그녀의 소작은 네덜란드‧미국‧프랑스‧체코‧우루과이 등 세계 각국을 부단히 옮겨 다니며 그 시차들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아래는 그 중에서 가장 화려한 시이다.
우리는 비벌리힐스의 한 낡은 저택―한때 벗은 미녀와 세상의 모든 돈줄기, 구불거리는 금빛 음모를 가진 열정적인 청년들로 가득했던 이곳에 모였다 벽난로 주변에 영국식 가구가 놓여 있고 흰개미떼가 갉아 먹은 기둥 옆에 실크 침대의 자줏빛이 그녀들의 포즈를 감싼다 비디오 아티스트는 ‘욕망은 부식하지 않는다(Desire does not rust)’라는 주제로 우리를 담지만 (우리는) 우리를 반하게 하는 성질들 저택 담장 너머, 살아 있다면 새였을 묘비의 뼈들과 차가운 바닥 노예처럼 잠든 해골들이 천천히 침을 삼키는 소리
(중략)
비벌리힐스 저택은 거리에서 악사 오빠에게 농락당한 마술사가 홧김에 만들어낸 구닥다리 환상에 지나지 않았지 그럼에도 모두 일제히 백마와 흑마가 되어 즐겼고 유명 인사들은 어린 여자애들 구멍이 엉겅퀴풀로 이루어졌는지 모를 정도로 바쁘게 들락거렸다
―「비벌리힐스 저택의 포르노 배우와 유령들」 부분
‘시적 화자’ 대신 ‘시적 주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한에서 두 가지 타입의 시인을 상정해볼 수 있다. 하나는 영매로서의 시인. 그는 여러 시적 대상에 빙의된 시적 주체가 되어 시를 쓴다. 이러면 음성은 동일하되 음색은 판이한 시가 탄생한다. 다른 하나는 감독으로서의 시인. 그는 여러 시적 대상에게 각각의 역할을 맡기고 시적 주체의 지위를 부여하여 시를 공연한다. 그러면 음성은 상이하되 음색은 유사한 시가 출현한다. 주하림의 경우는 어떤가하면 후자와 지근거리에 있다. 심지어 이 시가 “우리”라는 복수대명사를 명시하고 있는데도 그러하다. 박형준이 발문에서 이 시집을 “격정의 무대극”이라고 평한 연유도 짐작하건대 이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비벌리힐스 저택의 포르노 배우와 유령들」에서 “벗은 미녀와 세상의 모든 돈줄기, 구불거리는 금빛 음모를 가진 열정적인 청년들”은 열정적으로 교합하지만 이상하게도 음란하지는 않다. 그 시기가 “한때”였고 어쩌면 전부 “구닥다리 환상”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등의 이유를 거론할 수 있겠으나, 무엇보다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하는 요인은 이 시가 실감으로 느껴지는데 앞서 “비디오 아티스트”의 작품으로 인지된다는 사실이다. 감독으로서의 시인 주하림은 분명히 미장센에 능하다. 아예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가령 황현산의 지적은 예리하고 적확하다.
“주하림의 시는 문학언어의 공적 성격을 자주 잊어버리거나 무시한다고 비난을 받을 수도 있겠다. 그의 시들은, 특히 작은 제목을 여기저기 박아놓은 긴 시들은, 어떤 정황에서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짧게 썼던 글들을, 그 정황이 잊히거나 사라지고 글도 지워진 다음에, 구글의 저장된 페이지에서 찾아내어 다시 이어 붙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해설」, 163쪽) 현란한 미장센이 실은 텅 빈 위장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면 주하림이 애써 양질의 ‘B급 영화’로 상연한 시들은 한순간에 저질의 ‘C급 영화’로 전락하고 만다.
주하림에게 신인상의 영예를 안겨준 심사위원들은 그녀가 선보인 세계와의 대결 의지와 이미지로의 변환 능력을 고평했고, “가끔씩 이미지의 전개가 불필요한 얼개들에 의존하여 장황해지는 단점”(박형준‧진은영‧신용목, 「제9회 창비신인시인상 심사평」, 창작과비평, 2009년 겨울, 498쪽)을 경계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나 출간된 그녀의 첫 시집은 보다 아슬아슬하게 그 사이에 걸쳐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이국에서 불행한 비벌리힐스의 포르노 배우와 유령들의 시편들이 포기를 거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결코 반의어로 말장난을 하려는 것이 아님을 밝히고 제언하건대, 차후에 그녀는 먼저 본국에서 행복을 추구해야하지 않을까. 처절한 불행에 절망하는 것은 지극한 행복을 누려본 자 뿐이다. 또한 이국은 본국이 있어야만 성립할 수 있는 대립쌍인데 주하림 시의 대칭축은 과도하게 한 쪽으로 기울어져 불행은 막연하고 산발적이다. 이로 인해 이 시집은 무수한 질주와 횡단을 하고 있음에도 독자는 들끓는 에너지에 감응하기보다는 애매하게 애처로워진다. 절박하지 않은 불행을 과장되게 연기하는 탓이다.
서두에 제시한 “시는 포기하지 않음의 윤리이며 그 기술”이라는 언명은 포기할 것은 포기해야 나머지를 진정 포기하지 않을 수 있게 된다는 의미와 상통한다. 좋은 시(인)는 그것을 탁월하게 구분해낸다. “쓰기의 운명은 어떤 순간에도 멈추지 않는 것”(「시인의 말」, 165쪽)을 자각하고 있는 시인이라면 기대를 걸어볼만하다. 주하림은 천변만화하는 가면을 갖고 있다.
허희∙1984년 서울 출생. 성균관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국문과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2012년 ≪세계의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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