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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호(여름)신작시/황경숙/겨울 숲에서 듣다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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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숙/겨울 숲에서 듣다 외 1편
바위에도 귀가 생기는 마른 덤불 속에서
바스락,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겨울에 눈眼이 귀를 닮아가는 병에 걸린 나는
새 소리에 걸림이 없다
하늘과 땅 경계 가까이에서 웃는 듯 우는 새가 된다
나무처럼 봄에 산란했던 어린 새
부리로 물어온 마른 연못을 풀숲에 떨어뜨릴 때
끝이 먼 긴 문장의 행간처럼
음표 사이에 숨어 있던 오랜 쉼표처럼
지나갈 것은 잘 지나가도록 비어 있는
겨울 숲은 허공의 집
갓 돋아난 무덤 속이 그럴까
먼 곳의 목소리를 하나로 묶는 부리 모양이 다른 새
겨울의 감정을 모자이크한다
되짚어 돌아 나오는 그 숲에서
마음만 출렁이던 유배의 비망록을 지우고
바람과 바람 사이 침묵으로 몸을 씻는다
아직 아픈 하나가 된 눈과 귀
들려도 보이지 않는 봄으로 옮아간다
달빛
더는 그림을 그리지 않을 것 같던 그가
화선지를 펼치는 저녁
어디에서 온 향기일까
임계점에 이른 거친 호흡
가늘게 떨리는 붓끝의 숨이 가파르다
이미 꽃등을 켠 심장
화르르 열린 입술
사금을 품은 모래알갱이들처럼 흔들리고 흔들리며
겹치고 겹쳐지는 통증 같은 벚꽃의 떨림은
붉은 바람이 데려오는 물든 저녁을 밀어 낼 수 없다
어둠 속에서 부유하는 것들을 위로하던 당신
내 그림자에 얽힌 매듭을 풀려고 할 때
서둘러 핀 꽃잎 파지처럼 구겨져 흩날린다
끝까지 긴장을 놓치지 않는 흑각궁의 만개처럼
아픈 며칠간의 기록으로
푸른 달의 옷을 입은 얼어붙은 매혹은
어디로 가서 꽃을 완성하는가
황경숙∙여수 출생. 2009년 ≪애지≫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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