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작품(전체)
50호(여름)신작시/김민호/단추 외 1편
페이지 정보

본문
김민호/단추 외 1편
눈을 동그랗게 부릅뜨고
제 몸 들여놓을 틈을 쳐다본다
이미 자리가 정해져 있다는 듯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실눈만큼의 통로를 내놓은 구멍
차가운 시선을 뚫고
가는 빛이 새어나오는 곳으로
힘껏 머리를 밀어 넣는다
싱겁게 채워진 짧은 자리
언제 내칠지 모를 위태로운 저 문턱
어둠만을 잔뜩 묻히고
툭 벗겨지기 일쑤였다
올가미처럼 칭칭 조여드는 수많은 올들
여러 번의 채우기로 헐거워져
꺾인 목을 겨우 지탱해야 하는
자리를 찾아 헤매야 할 세상 속에서
오늘도 달랑거린다
목단꽃이 피었습니다
목단이 가득 핀 채전밭
꽃 한창일 때
가족사진 꼭 한 번 찍자시던 아버지
나와 같이 뿌리를 내려
삼십 년 마당을 지킨 목단이
활짝 문을 연
마지막 오월의 푸른 첫 날
아버지, 어머니, 아내, 아들이
렌즈 안에서 반짝반짝 피어났다
셔터 너머로 인화되던 자줏빛 향기들
핏빛 가슴을 적시고 있건만
소원을 풀었다는 듯
무심한 연록의 바람을 따라
꽃송이 하나 붉게 지상을 떠나고서야
사진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사라진 풍경 안으로
지워지지 않을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무서리 내리는 머릿속
옹이 튼 말을 봄날마다 되내였다
‘목단꽃이 피었습니다 아버지’
김민호∙경남 양산 출생, 2010년 ≪시에≫로 등단.
추천0
- 이전글50호(여름)신작시/한해미/호수 속 구름무덤 외 1편 14.06.06
- 다음글50호(여름)신작시/강윤미/푸아그라 비아그라 외 1편 14.06.06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