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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호(여름)신작시/최휘/르누아르 카페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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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휘/르누아르 카페 외 1편
저 심장에서 단단한 뼈가 자라고 있는 게 분명해 그것을 척추처럼 의지하고 앉은 밤이 흘러
그래, 애매할 땐 목덜미를 만지기도 하지 저 입 안엔 무뎌진 혀가 깨물려 있을 거야 몸은 비틀리고 밤은 출렁거리고
발은 흔들리고 소리들은 테이블을 뚫고 올라가고 벽에 부딪치고 한 테이블이 빠져나가고 곧 다른 테이블이 채워지는 밤이야
앞치마를 두른 주인은 민첩하고 갑자기 우는 여자는 서럽고 대리운전은 문 밖에서 대기 중이고 만취한 혀는 꼬이고 비틀거리는 몸을 가누려고 안간힘을 쓰지
성에 낀 잔에선 지문이 흘러내려 입 안에는 컴컴한 허공이 물려 있고 다리를 꼬며 까불대다 바닥으로 굴러 떨어지는 말도 있지 밤은 순한 등을 비비며 아무데나 드러눕지
몸통 속에 무언가 더 고인 것 같아 이 무겁고 딱딱한 것이 무얼까 엉치뼈를 찌르는 이것이 무얼까
커피의 힘
월요일 아침이 끓는다 커피물이 끓는다
요양병원 병실이 보글보글 끓는다
일요일에 다녀간 면회객 수만큼 쌓여있는 커피
커피를 마셔대는 늙은 혀들이 끓는다
병실 복도 끝에서 웃음소리가 들린다
정수기 물 흘러내리는 소리
간호사들이 떠드는 소리 호로록,
그 향기 명치까지 밀고 들어온다
노인은 커피 대신 침을 삼킨다
면회 오는 사람 없어 한 잔도 못 마신 혀가 쪼그라든다
노인이 일어선다
링거처럼 침대에 박혀 있던 몸을 일으킨다
쏟아지는 시선을 차갑게 잘라내며
복도 끝 간호실까지 간다
눈빛만 마주치면 아무에게나 커피를 구걸할까봐
온통 절룩이는 다리에만 집중하는 걸음
울리지 않는 휴대전화가 목에서 흔들리는 걸음
쓰레기통에 쌓인 커피 봉지를 뒤지려는 제 발걸음을
호되게 나무라는 걸음
봉지커피 하나를 얻으면 삶이 확 바뀔 것만 같아
오른발을 끌며 바닥에 긴 줄을 그으며 간다
온몸이 뜨거운 물관이 되어 커피 한 잔이 되어 간다
축 늘어진 식도처럼 어둡고 침침한 복도를 따라
차가운 몸을 살살 달래며 간다
최휘∙2012년 ≪시로여는세상≫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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