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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호(여름)신작시/문정희/재수록/“응”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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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희
지난호 Art-Artist에 일부 오타가 있어 재수록합니다
“응” 외 1편
햇살 가득한 대낮
지금 나하고 하고 싶어?
네가 물었을 때
꽃처럼 피어난
나의 문자
“응”
동그란 해로 너 내 위에 떠 있고
동그란 달로 나 네 아래 떠 있는
이 눈부신 언어의 체위
오직 심장으로
나란히 당도한
신의 방
너와 내가 만든
아름다운 완성
해 와 달
지평선에 함께 떠 있는
땅위에 제일 평화롭고
뜨거운 대답
“응”
머리 감는 여자
가을이 오기 전
뽀뽈라*로 갈까
돌마다 태양의 얼굴을 새겨 넣고
햇살에도 피가 도는 마야의 여자가 되어
검은 머리 길게 땋아 내리고
생긴 대로 끝없이 아이를 낳아볼까
풍성한 다산의 여자들이
초록의 밀림 속에서 죄 없이 천 년의 대지가 되는
뽀뽈라로 가서
야자잎에 돌을 얹어 둥지 하나 틀고
나도 밤마다 쑥쑥 아이를 배고
해마다 쑥쑥 아이를 낳아야지
검은 하수구를 타고
콘돔과 감별당한 태아들과
들어내 버린 자궁들이 떼 지어 떠내려가는
뒤숭숭한 도시
저마다 불길한 무기를 숨기고 흔들리는
이 거대한 노예선을 떠나
가을이 오기 전
뽀뽈라로 갈까
맨 먼저 말구유에 빗물을 받아
오래오래 머리를 감고
접은 머리 그대로
천년 푸르른 자연이 될까
*멕시코 메리다 밀림 속의 작은 마을 이름.
문정희∙전남 보성 출생. 서울에서 성장. 1969년 ≪월간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현대문학상(1976),소월시문학상(1996), 정지용문학상(2005) 등 수상. 2008년 한국예술평론가협회가 주는 “올해의 최우수 예술가상” 수상. 미국 아이오와대학 “국제창작프로그램”에 참가(1995). 2010년 스웨덴에서 수여하는 <시카다상> 수상. 대표시집 오라, 거짓 사랑아,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 나는 문이다, 다산의 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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