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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호(여름)장편분재/강인봉/타나의 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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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3,799회 작성일 14-06-06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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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봉 장편 분재 1

타나의 달

 

 

 

 

프롤로그

신라 자장 율사慈藏律師는 선덕 여왕이 정승을 삼으려고 몇 번이나 간곡히 불렀지만 가지 않고, “하루 동안 계를 지니다 죽을지언정 계를 파하고 백년 살기를 원치 않노라”며 분명한 자기 뜻을 밝혔다. 그가 중국 청량산에 들어가 문수보살文殊菩薩을 친견하기 위해 기도를 하던 중 허공으로부터 문수보살의 이 게송偈頌이 들려왔다고 한다.

일체의 법을 분명히 요달해 알면

자성에 있는 것이 없다.

이 법 성품이 이런 줄 알면

곧 노사나를 보리라.

了知一切法 自性無所有 如是解法性 卽見廬舍那

그 후 자장은 귀국하여 강원도 정선에 정암사淨巖寺를 짓고 수마노탑을 세웠다. 하루는 토굴에 앉아 있는데 시자侍者가 와서 말하는 것이었다.

“스님, 밖에 웬 나병환자인 듯싶은 늙은 걸인이 와서 ‘자장아’ 하고 찾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리까?”

자장은 “없다고 하라”고 했다.

그러자, 그 늙은이가 말하기를 “자장이 아직 상이 남아 있구나.” 하고는 지팡이를 휘둘러 사자를 타고 사라져 버렸다. 자장이 이 말을 듣고는 “내가 문수보살을 몰라보았구나.” 하고 안타까워하며 뒤를 쫓아갔으나 소식이 없었다고 한다.

자장은 계율戒律에 너무 집착한 탓에 오히려 그 눈을 잃은 것이 아니었을까. 어떤 의미에서, 지계持戒는 또 하나의 파계이다. 어쩌면 자기 파괴破戒야말로 진정한 구도의 지름길인지 모른다.

그래서 여기 청정 비구니 혜지慧智의 버겁고 아름다운 속세와의 사랑을 충분하게 묘사해 줌으로써 과감히 파계를 시킨 일이고, 그리고 또 하나는 그 돈오돈수頓悟頓修로 유명한 조계종 종정 성철性徹을 아무 눈치 안 보고 극명하게 재조명한 일이 그것이다. 그는 과연 이 시대의 살아 있는 부처인가, 아니면 희대의 사기꾼인가?

이제 그 여여如如의 실체를 찾아서 먼 여행을 떠난다.

타나Dana는 산스크리트어로 보시布施의 의미이다.

그리운 모닥불

1.

먼 능선들이 꿈틀꿈틀 어둠을 털며 말갈기처럼 일어서고 있었다.

어느새 잿빛 바짓가랑이는 풀섶의 이슬에 흠뻑 젖어 선득거린다. 그래도 혜지慧智는 아랑곳하지 않고 좁고 가파른 산길을 더 올랐다. 하루 시간 중에서 사람의 정신이 가장 맑을 때가 바로 이 새벽이다. 어둠이 가시고 밝음이 퍼지기 시작하는 이 교차로에 대우주의 기가 가장 충만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님들은 곧잘 새벽 포행匍行을 나오곤 한다. 절은 그 안에 있을 때는 육체의 집이었다가, 그곳에서 멀리 벗어나 있을 때는 영혼의 집이 된다. 이때는 나무 끝을 스치는 바람소리도 그대로 법음法音이다.

이제는 차츰 나무들의 형체가 조금씩 구분되어 드러나고 있었다.

무엇에 마음이 집착되어 있을 때 그 또한 어둠이며, 거기서 벗어날 때 밝음이다. 하지만 혜지는 오늘도 기어이 거기서 잠시 망설인다. 이대로 더 산길을 오를까, 저쪽 바닷가 마을로 내려가 볼까. 그녀는 아홉 살 이후 세속에 살아본 적이 없어서 그쪽을 보면 마음이 늘 저리도록 머물곤 한다. 그런데, 그에게선 왜 아직도 아무런 소식이 없는 것일까.

혜지는 끝내 어쩌지 못하고 다시 한 번 고개를 돌려 그쪽을 바라본다.

사실 그녀는 간밤의 꿈처럼 그 일들을 떨쳐버리기 위해 포행을 나왔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그 물푸레나무의 농밀한 수액 같은 어둠 속을 애렷이 헤매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그 밤의 모닥불 타는 소리는 아직도 그녀의 귓가에 맑게 울려오고 있는 듯했다.

물론 그때 그녀는 그쯤에서 냉정하게 마음을 다잡지 못하면 그로 인해 이 어둠의 늪 속에 끝없이 빠져들고 말지도 모를 거라는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때로는 자기의 마음이 어떤 사람 앞에서는 자기의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래서 이 세상 가장 질긴 것이 바로 그 인연이란 사슬일까.

그날 그가 혜지를 찾아온 것은 그녀가 선방에서 나와 잠시 청빈암淸貧庵에서 독거를 하고 있을 때였다. 그 암자는 원래 수행만을 위해 지어놓은 토굴이기 때문에 아무도 올라오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가끔씩 식량이 떨어지면 산 아래 회운사廻雲寺 큰절에 내려가서 얻어 오곤 했다. 그런데 그가 난데없이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날이 거의 다 저물어 가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잠깐 동안이나마 심각하게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시간 여기서 그를 도로 내려 보내야 할지, 어째야 좋을지.

이윽고 혜지는 바다가 잘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걸음을 멈췄다.

이 섬은 언제나 바다의 깊은 곳으로부터 시리게 눈을 씻고 해가 불쑥 솟아오른다. 멀리 장산곶 머리맡의 인당수가 손바닥만 하게 보인다. 황해도 해주 서단에서 오랜 해식애로 인해 절벽이 병풍처럼 돌출한 곶이다. 이 섬에서 그곳까지의 거리는 불과 17 킬로라고 한다.

혜지는 다시 힘주어 산길을 올랐다. 가을로 철이 바뀌어 그 성가신 풀모기들은 달려들지 않는다. 풀잎에 맺힌 이슬방울이 햇빛을 담아 영롱하게 반짝거린다. 다람쥐들이 두 눈에 생기를 띠고 잽싸게 나무 위를 기어오른다. 비릿한 바닷바람은 아직도 그녀 뒤를 따라와 목덜미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때 문득 그녀의 등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흠칫 놀라 돌아보니 행자行者 박 지선이었다. 공양을 하라며 지선이 그녀가 있는 곳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뛰어왔는지 지선의 잔잔하게 솟아오른 콧등에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혀 있다.

혜지는 지금까지 지선처럼 성품이 온화하고 사려 깊은 행자는 보지 못했다. 그녀의 눈은 항상 부드럽고 따뜻한 정이 넘치고 있었다. 지선은 시장을 봐 오거나, 아무리 작고 하찮은 음식 하나를 만들 때도 야무지고 부지런하게 온 정성을 다했다. 오직 그 일만이 자기가 혜지의 은혜에 보답할 수 있는 전부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럼 이제 그만 돌아가지.”

저쪽 야트막한 산등성이에는 억새꽃이 무더기로 피어 있다. 그 아래 밭들은 가슴을 쭉 들며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바람이 슬쩍 나뭇가지를 건드리기만 해도 나뭇잎들이 새의 깃처럼 파닥거린다. 숲 속을 울리는 청아한 새소리. 바람소리.

혜지는 그 신선한 공기를 흠뻑 들이켰다. 가슴이 고무풍선처럼 부드럽게 부풀어 올랐다. 하늘은 금세 푸른 물감이 뚝뚝 떨어져 내릴 것처럼 끝없이 맑고 깊다.

문득 그 하늘에 뜬 구름이 한 점 무심하다.

“하긴 뭐 사실은 저 뜬구름 같은 인생이지.”

그녀는 무심히 중얼거렸다. 스님들은 그래서 일정하게 머무는 곳이 없이 산다. 운수승雲水僧이다. 그 구름은 결코 흐름을 서두르지 않는다. 흰 돛배처럼 유유히 떠서 먼 마을들을 지그시 굽어볼 뿐이다. 알고 보면 부처도 불국토佛國土도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중생이 다만 멀리서 구할 뿐이지.

“하지만…….”

그녀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그때 왜 그에게 이런 말을 했던 것일까.

“누가 누굴 사랑해도 사랑은 아름답고 숭고한 거예요. 중생을 측은하게 내려다보는 부처의 자비가 숭고한 것이라면, 한 지아비가 지순하게 지어미를 마주보는 눈빛도 충분히 아름답고 숭고한 사랑이에요.”

그날 혜지도 볼일이 있어 출타를 했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시장에 들러 몇 가지 물건을 샀더니 등에 멘 바랑이 꽤 무거웠다. 거기다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들까지 그녀 뒤를 졸졸 개미떼처럼 따라붙고 있었다. 스님, 스님, 같이 가요. 산길은 뱀의 꼬리처럼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족히 수백 년이나 됨직한 아름드리 홍송이 몇 그루 듬성하게 서 있는 고개 위에 올라서며 혜지는 그제야 걸망을 추스르며 잠시 아이들에게 눈길을 주었다. 아이들은 이제 마을 쪽으로 파리 떼처럼 흩어져 날아가고 있었다. 그때 언뜻 고갯길 아래 웬 사내가 하나 묵묵히 올라오고 있는 게 보였다. 바로 그였다. 장 준우. 그는 등산복 차림이었다.

혜지는 갑자기 두 다리가 떨렸다. 바람소리가 싸하게 그녀의 가슴을 훑고 지나갔다. 그는 얼굴이 다소 여윈 듯이 보였다. 하지만 그는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고 있었는지 고갯길을 거의 다 올라왔을 때에야 비로소 그녀를 알아보았다.

그가 몸을 움찔하며 그 자리에 서더니, 멋쩍게 웃고는, 어물쩍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냈다. 그는 천성이 그런 사람이었다.

“내가 이곳에 있는 줄을 어떻게 알고서……?”

혜지의 눈은 조용히 생기를 띠고 있었다. 그녀는 아직도 자기의 마음을 숨기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저 아래 큰절에서 알려주었습니다. 기분도 그렇지 않고 해서 산행을 나왔습니다.”

그는 어색하게 변명을 하듯 말했다. 담배를 하나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이름 모를 산새가 그의 머리 위로 낮게 날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 다 저물녘에…….”

하다가, 그녀는 말을 바꿨다.

“그럼 산에는 자주 오나요?”

아직도 그 눈에는 생기가 조용히 넘치고 있었다.

“어쩌다가 가끔요. 산이야 자주 오면 좋지만 그것도 이젠 별롭니다.”

그는 거푸 담배를 빨았다.

하지만 그녀는 여기서 그를 도로 내려 보내야 할지, 어째야 할지, 심각하게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녀가 그 시간 끝내 냉정하지 못한 것은, 무엇보다 먼저 반가운 마음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그럼 제가 지내고 있는 암자로 가시지요.”

그녀가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길옆에 마른 풀들이 보기 좋게 누워 있었다. 바람이 그 마른 풀잎들을 손바닥으로 가볍게 쓰다듬고 지나갔다. 저쪽 나지막한 언덕 위에는 하얀 들국화 꽃잎이 바람에 스산하게 떠다니고 있었다. 이제 가을도 어언 한 허리였다. 노을이 붉은 띠처럼 풀리고 있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전 설마 장 선생님이 여기까지 찾아오실 줄은 몰랐어요.”

그녀가 촉촉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말없이 빨갛게 타들어 가는 담배 끝을 응시했다. 그 모습을 보자 그녀는 까닭 모르게 마음이 처연히 가라앉고 있었다. 조금 모자란 듯이 보이는 면이 없진 않지만 세상에 그만큼 순진무구한 사람은 아마 보기 드물 터였다. 시는 좀 얼마나 썼을까.

노을은 이제 수채화 물감처럼 아득히 구름을 물들이고 있었다. 언덕을 넘어서자 숲은 더 적막했다. 어디서 쫄쫄 물 흐르는 소리가 시리게 들렸다. 그런데 갑자기 그쪽 골짜기에 안개가 꿈결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두어 발짝 앞서 가던 그녀가 그를 돌아보았다.

이제 그만 버릴까 하다가 그는 다시 담배를 몇 모금 더 빨았다.

“이렇게 말없이 불쑥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그런데 스님은 어딜 갔다 오는 길입니까?”

안개는 순식간에 골짜기를 자욱이 채우고 두리번거리며 이쪽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저도 모처럼 마을에 좀 내려갔다 오는 길이에요.”

혜지는 부드럽게 웃어 주었다.

그때 언뜻 뿌연 안개 속에서 활활 불타오르는 단풍나무 한 그루가 눈길을 이끌었다. 이마에는 선득선득 비린 안개비가 내렸다. 안개비를 맞고도 그 불은 이내 꺼질 줄을 모른다. 그리움처럼 초조하게 한 작은 세계가 불타고 있었다.

이제 산은 잠시 안개의 적막한 바다 속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따로따로 외로운 한 점의 섬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불은 다시 싸리나무 가지로 옮겨 붙는다.

“그 언젠가처럼 안개가 마치 꼭 무슨 베일 같군요.”

그가 혜지를 향해 은근하게 눈빛을 보냈다.

“여기는 날씨가 가끔 이래요.”

혜지도 선뜻 그의 눈빛에 응해 주었다.

그녀도 아직 그날의 일을 잊지 못한다.

최 윤희를 찾아 그와 둘이서 청암사에 가고 있을 때였다. 그 아래 밤나무 숲을 지나고 있었는데 그때 어디서 갑자기 안개가 나타나더니 세상으로부터 그들을 베일처럼 적당히 가려주고 있었다. 그들은 갑자기 말을 잃었다. 눈송이처럼 만개한 밤꽃의 향기만 남기고 안개는 이제 온 산으로 퍼져나갔다. 이따금 먼 마을의 개 짖는 소리만이 아련히 산의 적막을 깨고 있었다.

그녀는 파랗게 입술을 떨었다. 어느새 그녀의 몸은 안개비에 흠씬 젖어가고 있었다. 그는 그때서야 퍼뜩 그녀의 손을 움켜쥐고 밤나무 밑으로 들어갔다. 굵은 물방울이 나뭇잎 위에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바람이 그녀의 몸을 스치고 지날 때마다 냉기가 찰싹 휘감겨 가슴에 하얗게 굴곡을 이루었다. 나뭇잎 위에서 떨어진 물방울은 이내 다시 그녀의 뺨을 타고 미끄러져 내려 터질 듯 부풀어 오른 젖가슴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녀는 그 심장의 소리가 너무 크게 울려서 그에게 들리지 않을까 은근히 조바심쳤다. 문득 아래를 내려다보니 그녀의 두 다리 사이 샅의 윤곽이 거뭇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그녀는 그만 당혹감에 질끈 눈을 감았다. 그런데 그 순간 그가 섬뜩 간격을 좁혀 왔다. 밤꽃의 비릿한 향기에 그녀는 정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녀의 젖은 속살에는 점점 더 격렬하게 희뿌연 소름이 돋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왜 그렇게 두려움에 떨고만 있었을까. 그는 고작 손수건으로 그녀 얼굴의 물기만을 수줍게 닦아주고 있을 뿐이었다. 이윽고 안개가 걷히자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밝게 웃었다. 먼 하늘에는 흰 구름이 목화송이처럼 애달프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제 선방에는 안 가십니까?”

혜지는 갑자기 그 말이 나오자 마치 죄를 짓다가 들킨 사람처럼 마음이 찔끔했다. 그녀는 무엇보다도 그가 절에 찾아오는 무릇 신도들과는 달리 그렇게 어리석을 정도로 순수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는 천성이 깨끗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것에 끌려 그날 그 청암사에 같이 가주고 있었는지 모른다.

“선방이요? 승려들에겐 그 참선參禪이 바로 본업이에요.”

그가 몇 번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왜 그 선방에서 나왔습니까?”

“글쎄요.”

그때 어디서 다그르르, 목탁새가 울었다. 성불하지 못한 스님이 죽어서 환생했다는 새였다.

“그리고, 왜 하필 여기서 이렇게 지내고 있습니까?”

그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것은 더 깊게 그 참선을 하기 위해서예요.”

그때 다시 다그르르, 목탁새가 울었다.

선방禪房에서는 조실 스님의 결제 법어結制法語를 듣고 비로소 그때부터 안거安居에 들어간다. 새벽 2시에 기상한다. 새벽 정진은 3시부터 5시까지, 오전 정진은 7시부터 10시까지, 오후 정진은 2시부터 5시까지, 저녁 정진은 7시부터 9시까지, 그리고 9시에 취침을 한다. 하루 10시간의 정진이다.

하지만 혜지는 하루 5시간의 수면마저 공부에 대한 일념 때문에 편히 이룰 수가 없었다. 공통적으로 허락된 그 짧은 몇 시간이라도 어떻게 하면 좀더 보람되게 활용할 수 있을까. 그녀는 이제 막 자리에 누워 잠을 들려고 하다가도 다시 벌떡 일어나 좌선 삼매에 빠져들곤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녀를 더 절실히 느끼게 하는 것은 바람 소리였다. 선창禪窓을 때리는 바람소리. 그리고 대웅전 뒤 푸른 산자락에 피처럼 스며드는 노을이었다. 그래도 신심이 부족한 탓이었을까. 그녀는 하 답답한 가슴이 속 시원히 터지지 않자 차라리 이 청빈암으로 올라온 것이었다.

이윽고 저만큼 앞에 암자가 보였다. <淸貧庵>이라는 현판이 간신히 붙어 있었다. 절 이름 그대로 너무도 애옥한 모습이었다. 마치 빈집처럼 어디에도 한 점 사람의 훈기라곤 묻어 있지 않았다. 금방 절 뒤에서 무엇이라도 기어 나올 듯 을씨년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래도 혜지는 자기가 사는 집이라고 반가워서 눈가에 환한 미소를 띠었다. 하지만 그는 쓰게 입맛을 다셨다.

“오늘은 어차피 날도 저물었고 했으니 불편하나마 여기서 쉬어 가세요.”

그녀가 먼저 걸망을 벗어 마루 안쪽에다 밀어놓고 앉으며 넌지시 그의 얼굴을 훔쳐보았다.

그는 머리를 주억거렸다.

어느새 발밑에는 어질어질 땅거미가 내리고 있었다. 저쪽 아래 골짜기에는 다시 밀물처럼 안개가 자욱이 깔리고 있었다.

“여기 잠시만 앉아 계세요. 방에 불부터 지펴야겠어요.”

그녀가 가만히 마루에서 일어났다. 그때 어디서 왁자지껄 새 울음소리가 들렸다. 다 저문 하늘에 물오리 떼가 남쪽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왜 굳이 사서 이 고생을 하지요?”

하지만 그녀는 벌써 부엌에 들어가고 없었다.

혜지는 마른 솔가지를 부러뜨려 아궁이에 쟁여 넣고 성냥을 그어 불을 붙였다. 그런데 이제 저녁 식사는 어떻게 대접해야 할지 그게 걱정이었다. 그녀는 몽롱하게 마른 솔가지에 타고 있는 불길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지금 먹고 있는 반찬이라곤 도저히 목에 넘어가지 않는 신 김치가 고작이었다. 안 그래도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그걸 먹으며 하루하루 배겨내기가 너무 힘이 들었다.

부지깽이로 솔가지를 깊이 밀어 넣다 말고 그녀는 문득 고개를 들었다. 누가 부엌 앞에 서서 자신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밖을 내다보았다. 그러나 어둠만이 온 산을 무겁게 뒤덮고 있었다.

불을 다 때고 혜지는 아궁이 앞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부엌에서 나올 때까지 그는 그대로 마루 끝에 걸터앉아 고개를 들고 먼 산봉우리들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어느 것이 주봉인가?

이 산의 주봉은 원효봉이었다.

“우선 방에 불을 지폈으니 누추하지만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그녀가 방문을 열었다. 그나마 서너 평 남짓이나 될까. 그래도 비구니의 처소라 방안은 비교적 깨끗하고 아늑했다.

“스님도 같이 들어갑시다.”

“이 토굴엔 원래 방이 둘밖에 없는 데다 공교롭게도 하나는 아직 수리중이에요. 그러니 장 선생님이나 들어가 쉬세요.”

“그럼, 방이 하나밖에 없으면 어떻게 합니까? 함께 들어가야지. 전 아직 아름답진 못하지만 그래도 그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는 잘 압니다.”

그는 방안으로 들어가려다가 혜지를 향해 멋쩍게 웃었다. 옆방은 다시 구들을 놓으려고 속을 다 들어내 버려서 동굴처럼 텅 비어 있었다.

“제가 왜 장 선생님을 모르겠어요. 그 마음이야 너무도 잘 알지만, 그래도 전 이미 삭발 염의한 몸인데 어떻게 한 방에서 같이 잘 수가 있겠어요.”

그 말을 하고 나자 그녀는 오히려 기분이 묘했다.

“그렇다면 스님이나 들어가 주무십시오.”

차츰 짙어 오는 어둠 속에서 그녀의 파르라니 삭발한 머리가 눈에 시린 듯 그는 미간을 좁혔다.

“손님을 밖에 놔두고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요.”

혜지도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은 아직도 그녀의 아프게 밀어버린 머리에 박혀 있었다. 그녀는 단호하게 덧붙였다.

“안 그래도 전 이따금 밖에 나와서 참선을 잘하거든요. 그래서 그런 자유 때문에 큰절보다 이곳이 더 좋은 거죠.”

“그렇지만 지금은 밤이지 않습니까.”

“밤이면 어때요. 불을 피우면 되지요. 그리고 저야 저 아래 큰절에 내려가도 되고요. 그럼 우리 그냥 모닥불이나 쬐며 밤을 보내면 어떨까요. 얘기도 나눌 겸. 그게 더 좋잖아요.”

“그렇다면 뭐 할 수 없지요.”

그는 시큰둥하게 말했다.

혜지는 이내 뒤란으로 돌아가 장작개비를 한 아름 안고 와서 마당 끝에 부려놓기 시작했다. 비구니에게는 꼭 행해서는 안 될 바라이죄波羅夷罪가 있다. 이를 범한 이는 승려로서의 자격을 잃는 것은 물론이고, 승려 중에서 쫓겨나 함께 살지 못하며, 길이 불법 가운데서 버림을 받아 죽은 뒤에도 아비지옥에 떨어지는 극히 엄한 중죄이다.

첫째는 살생殺生, 둘째는 투도偸盜, 셋째는 음주飮酒, 넷째는 망어妄語이다.

다섯째는 음탕한 마음을 품고 남자와 더불어 겨드랑이 아래와 무릎 위의 신체 부분을 어루만지는 행위가 그것이고, 여섯째는 염심을 품고 남자와 눈이 맞아 손잡거나 음침한 곳으로 들어가는 행위를 저지르면 그것이고, 일곱째는 도반의 바라이죄를 알고도 덮어주면 그 또한 함께 바라이죄이다. 여덟째는 세상이 다 아는 나쁜 비구를 존경하고 따르면 그 또한 바라이죄에 해당되는 것이다. 그래서 비구니에게는 이것을 ‘8바라이’라고 한다.

“이 산중에 혼자서 무섭지는 않습니까?”

저녁을 대충 먹고 나서 그는 마당으로 내려왔다. 아까 오면서 점심을 늦게 사먹은 탓에 전혀 밥 생각이 없다고는 했지만 그래도 차린 밥상을 사양할 수 없는지 그는 체면상 억지로 몇 술 뜨는 둥 마는 둥 했다.

“무서울 것은 없어요. 출가승에겐 이 세상이 그대로 다 산 속이니까. 무엇이 두렵겠어요. 오히려 전 이 토굴 생활을 통해 고독의 경건한 세계를 알게 되었는걸요.”

쏘시개에 불을 붙여 쌓아놓은 장작더미에 당겨 넣자 불꽃이 금세 훌훌 피어올랐다. 혜지는 그 위에 장작개비를 두어 개 더 얹었다. 그녀의 얼굴은 차츰 불빛을 받고 꽃송이처럼 발그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황홀하게 두 뺨에 불의 날개가 파닥이고 있었다. 그녀의 콧등에는 송골송골 땀방울이 돋았다. 탁탁탁 소리를 내며 불꽃은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장작개비를 한 개 집어 불 속에 던져 넣자 불꽃이 한숨처럼 길게 흔들렸다. 그는 서툴게 웃었다.

그때 혜지가 그의 눈을 찾았다.

“하긴 이 세상 무엇 한 가지 그냥 우연으로 된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오늘 이 경험은 장 선생님에게 시를 쓰는 데 좋은 도움이 될 거예요. 불의 한가운데로부터 솟아나는 이 한없는 평화로움…….”

그 말을 하고 있는 혜지의 눈에서도 모닥불은 선명히 타고 있었다.

“장 선생님은 이 자연이 들려주는 침묵의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나요? 그 말 없는 말을.”

“…….”

그는 가만히 입을 벌렸다.

“그것은 그 영혼이 고독에 익숙해져 있지 않기 때문이에요. 장 선생님은 가까이에서 노루를 직접 본 일이 있나요?”

“아뇨. 어쩌다 텔레비전 같은 데에서나 보았을 뿐이지.”

그는 머리를 흔들었다.

“그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노루를 직접 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신기한 일이겠습니까.”

“그해 겨울은 어찌나 많은 눈이 쏟아져 내렸는지 자고 일어나면 또 어느새 솜처럼 절 마당에 가득히 쌓여 있곤 했어요. 그래서 스님들은 모두 바깥출입을 못하고 며칠째 발이 묶여 있었지요. 그런데 어느 날 그 눈 속에 무릎까지 퍽퍽 빠져가며 한 낯선 손님이 찾아온 것이었어요.”

그것은 한 마리 노루였다.

노루는 먼 산 속에서 어렵게 헤매며 찾아온 듯 몹시 지쳐 보였다. 스님들의 그토록 떠들썩한 기세에도 노루는 달아날 생각을 않고 놀란 눈만 껌벅거리며 서 있는 것이었다. 혜지는 산에 살면서도 그처럼 가까운 거리에서 노루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쫑긋거리고 있는 두 귀가 아주 귀엽고 예뻤다.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순박하고 깨끗한 생명이라고 생각했다.

“배가 고파서 절에 먹이를 얻으러 내려왔나 보다. 온 산에 눈이 가득히 쌓여 있어서 먹이를 구할 수가 없었던 게지.”

주지 스님이 말했다.

노루는 스님들이 갖다 준 말린 시래기를 허겁지겁 먹어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노루는 그걸 다 먹고도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노루는 스님들과 한 식구가 되어 그 겨울을 절에서 지내다가 봄이 되자 다시 산 속으로 떠났다.

“하지만 전 그 후로도 오랫동안 그 깨끗한 짐승이 눈앞에서 사라지지가 않았어요. 그 신비스럽도록 선하고 맑은 노루의 눈. 노루는 왜 그렇게 스님들과 한 식구가 되어 그 겨울을 절에서 지냈을까요?”

“……?”

그는 다시 멍청히 입을 벌렸다.

“고독에 익숙해진 사람의 영혼은 사람의 고약한 냄새가 나지 않는 법이에요. 그래서 스님들의 몸에선 산 냄새가 나요. 그렇게 몸과 마음에서 산 냄새가 물씬 풍겨날 때 비로소 참다운 출가인出家人이 되는 거지요. 그런데 오늘 같은 이런 밤 곡차 생각 안 나세요?”

혜지가 갑자기 은근하게 물었다.

“술? 아니, 이곳에 웬 술이 있습니까?”

무슨 생각을 하는지 혼자서 머리를 주억거리고 있던 그가 술 소리가 나오자 귀를 번쩍 열었다.

“오늘 같은 이런 밤은 그것 이상으로 더 좋은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내일 다시 일꾼이 와서 방구들을 놓게 되어 있거든요. 그래서 아까 소주도 몇 병 사왔어요.”

“그렇다면 그거 좋지요.”

불빛처럼 얼른 반색하는 그의 얼굴을 보며 혜지가 가만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다시 불 속에 장작개비를 한 개 던져 넣었다.

이홉들이 소주 한 병과 쟁반에 안주를 담아 들고 혜지가 방에서 나왔다. 하지만 내일 방 수리할 일꾼에게 고작 그걸 새참으로 줄 생각이었는가. 그는 머리를 내저었다. 쟁반에 담긴 안주는 겨우 무화과 열매를 가공해서 말린 것이었다.

“안주가 좀 변변치 못해요. 여긴 절이니까요.”

그는 병뚜껑을 벗겨내고 종이컵에 술을 채웠다.

절간에선 술잔도 필요 없어서 혜지는 그냥 일회용 소주잔을 사온 것이었다. 그녀는 그 돈도 또한 어디서 변변히 나올 구멍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한없이 행복한 얼굴이었다. 종이컵에 담긴 것을 흡족하게 내려다보았다. 술이 이슬처럼 참 맑았다. 그 속에서도 불꽃은 화르르 타오르고 있었다.

“윤희 씨하고는 이런 경험 많이 있었지요?”

혜지는 똑바로 그의 눈을 주시했다.

그는 종이컵에 담긴 것을 얼른 입 안에 털어 넣었다.

“산악인들은 산행을 신에의 엄숙한 귀의라고 하지요. 그 사람들은 자기들의 성전聖殿이 바로 저 산상에 있으니까요.”

그것은 최 윤희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 최 윤희가 진실로 산을 좋아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렇다면 장 선생님의 문학도 하나의 종교겠지요. 그렇지 않은가요? 그릇 속의 물은 빛이 난다. 바다 속의 물은 어둡다. 사소한 진실은 명석한 말을 갖지만 커다란 진리는 침묵을 지니고 있다고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말했어요. 그런데, 장 선생님은 아직도 윤희 씨를 사랑하나요? 아니면, 미워하나요?”

“스님은 내가 그녀를 사랑하길 바랍니까?”

그는 태연하게 받았다. 그러나 그 눈은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그런 걸 왜 묻느냐고 말하고 있었다.

혜지는 얼른 그 눈길을 피했다.

“나는 그녀를 미워합니다.”

그는 다시 종이컵에 술을 채웠다.

“하지만 사랑과 미움은 두 얼굴이 아니에요. 그 미움이 바로 사랑이에요.”

혜지는 짐짓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그렇다면 사랑은 바로 미움이겠군요. 그건 왜 그렇지요? 왜 사랑이 미움이고, 미움이 사랑이지요?”

“그것은 결국 자기 스스로가 직접 깨달아서 알아야 해요.”

그런 깨달음을 얻기 위해 선종禪宗에서는 참선이 바로 승려들의 본업이다.

“그래서 실은 장 선생님 같은 분이 수행을 해야 할 걸 그랬어요. 시는 언제부터 쓰기 시작했나요?”

혜지의 목소리 속에는 어쩐지 풀 내음이 풋풋하게 배어 있었다. 그녀는 다시 모닥불 속에 장작을 집어넣었다. 불땀은 싱싱하게 잘 익고 있었다.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쓰기 시작했습니다만, 하지만 시인이 되기 전에 먼저 인간이 되라는 말이 있지요. 그냥 몇 줄 끼적인다고 해서 그것이 결코 시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긴 세간에서 살다 보면 자연 때는 좀 묻을지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래 견디며 이웃과 아픔을 같이 하는 것이 실은 보살 정신이지요. 서로가 뜨거운 눈물이 없다면 가도 가도 인간은 영원히 제각기 외로운 섬이에요.”

“내게 시를 가르쳐 준 어느 노시인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실은 삼라만상의 운행 이 자체가 바로 시요, 우리는 다만 제각기 다른 그 자기의 눈으로 그것을 보고 느낄 따름이라고. 그러므로 우리가 쓰는 시는 자연에서 자신을 발견한 만큼의 기록이요, 그 인생의 한 표정일 뿐이라고.”

“그럼 모처럼 시나 한 편 읊어 봐요. 듣고 싶어요.”

혜지는 두 눈에 맑고 시원하게 생기를 띠었다. 그때 모닥불이 바람을 타고 크게 한번 파닥였다.

“글쎄요. 이런 데서 그게 잘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선뜻 내키지 않는 얼굴이었다.

“어서요.”

혜지는 다시 재촉했다.

그는 두 손으로 적당히 술기운이 돌고 있는 얼굴을 쓱 훑어 내렸다. 가볍게 어깨를 떨었다. 이젠 밤이 꽤 깊어졌는지 먼 산에 희끗희끗 서리가 내리고 있어 보였다. 그녀의 코끝에도 차가운 밤바람이 선득선득 감겨오고 있었다.

“저 허허벌판을 내달리는 푸른 바람소리. 누가 그 풀잎들의 소리를 하늘에 전하는가. 무거운 육신을 벗고 종은 울린다. 그 푸른 아픔 뒤에 남는…….”

혜지는 고개를 들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제 막 달이 구름 속으로 숨어 들어가고 있었다. 혜지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돌무더기 틈서리. 거기 숨어서 오늘 밤도 별들은 도란거린다. 그리움의 뜨거운 심지를 돋우고, 창마다 돋아나는 먼 마을의 불빛들. 아이들은 반딧불을 잡으러 강기슭으로 간다. 그러면서 그들은 서서히 또 하나의 별이 되어 간다. 친구여, 눈빛을 달싹이며 너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아, 각기 스스로의 심장에 손을 한번 대보라.”

어느 사이 달은 구름 속에서 깨끗이 얼굴을 씻고 밝게 웃으며 빠져나오고 있었다. 모닥불 타는 소리가 맑게 절 마당을 울렸다. 허옇게 서리 묻은 달빛이 불 속에 은은히 떨어지고 있었다. 모닥불은 다시 바람을 타고 날개를 크게 파닥였다.

그는 낮게 읊조렸다.

“……저 삐죽이 웃고 있는 삐비꽃을 보면 사랑은 본래 이만큼 작은 것이었구나.”

2.

“지선은 어릴 때부터 독실하게 교회를 다녔다고 그랬지? 여고 다닐 때는 여러 번 교회에서 철야기도를 한 적도 있구 말이지.”

그때 언뜻 보니 바다에 햇빛이 물고기의 비늘처럼 떼 지어 반짝이고 있었다.

이제 저쪽 계단식 논들 사이로 몇 길이 넘는 미루나무 가로수가 듬성듬성 서 있는 신작로를 따라 올라가면 외딴집으로 난 좁은 샛길이 하나 뱀처럼 나온다. 섬에서는 보기 드물게 추녀 끝이 날씬하게 올라간 파란 기와집이다. 원래는 서울 사는 사람의 별장이었는데 동화병원 원장 현기 거사가 구입해서 혜지에게 암자庵子로 개조해 준 것이었다.

“엄마는 벌써 제가 유치원에 다니기 전부터 마치 배고픈 사람을 데리고 식당에 가듯 교회에 끌고 갔어요. 교회 권사였으니까요.”

지선은 금세 얼굴을 붉혔다.

“지금도 그렇게 부끄러움을 타나, 원. 하기야 여자는 그럴 때의 얼굴이 가장 예쁘게 보이는 법이지.”

달걀처럼 작고 둥글게 생긴 게 언제 봐도 선뜻 정이 가는 얼굴이다. 그런데 이 여자와는 전생의 어떤 인연으로 만나게 된 것일까.

혜지가 청빈암에서 독거를 하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 식량이 다 떨어져서 산 아래 큰절 회운사에 내려갔더니 웬 여자가 하나 입산을 하겠다며 뱃구레가 불룩한 가방을 들고 찾아와 있었다.

나이는 이제 갓 스물이 넘었을까. 가방이 무거워서였는지는 몰라도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서 있는 게 한눈에도 몹시 힘들어 보였다. 대개 입산을 할 때는 훌훌 다 털어버리고 오는 법인데, 대체 그 가방 속에 무엇이 그리 가득 들었을까. 혜지는 사뭇 그것이 궁금했다. 생각 같아서는 가방부터 한번 열어 보았으면 싶었다.

주지 스님은 대뜸 말했다.

“절은 뭐 그저 속세에서 살다가 속상하면 아무나 찾아와서 머리 깎고 사는 데인 줄 아나. 너 연애하다 실연당해서 왔지? 네 얼굴에 지금 그렇게 씌어져 있어. 그렇지?”

여자는 어찌할 줄을 모르더니 눈빛을 땅바닥에 떨어뜨렸다. 오히려 혜지가 더 듣기 민망했다. 할 수만 있다면 여자의 두 귀를 막아주고 싶었다. 주지 스님은 왜 그처럼 병적일 만큼 남자에 대한 피해망상에 시달리고 있는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솔직히 말해 봐. 그럼 내가 받아줄 테니까.”

여자가 무슨 말을 할 듯이 겨우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커다란 눈망울에는 어느새 그렁그렁 눈물이 괴어 있었다. 하지만 여자는 이내 도로 힘없이 그 눈을 발끝에 내려놓았다.

“그거 봐. 틀림없다니까. 오늘은 어차피 날이 저물었으니 여기서 하룻밤 자고 내일 아침 다시 집에 돌아가. 그래도 부모님 곁에서 사는 게 제일 행복한 거야.”

그제야 주지 스님은 온화한 얼굴로 여자를 다독이고는 자기 방에 들어갔다. 하지만 혜지는 왠지 여자가 안 되어 보였고, 분명 무슨 말 못할 사연이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녀가 주지실에 들어가 자기가 그 여자를 책임지겠다는 조건으로 사정을 해서 겨우 입산 승낙을 얻어냈던 것이다.

여자는 그 뒤 가끔 짬을 내어 청빈암에 올라와 앉아 있다 가곤 했다. 혜지는 그럴 때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다. 과연 언어가 필요 없었던 것일까. 그래도 여자는 혜지 옆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했다.

“그때 차라리 큰절에 그대로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랬어. 공연히 이 섬에 나를 따라와 가지고…….”

“전 절대로 스님 곁을 떠나지 않을 거예요. 저도 스님의 모습을 닮고 싶어요.”

지선이 혜지를 향해 눈을 몇 번 껌뻑였다.

“나 같은 걸 닮아서 어디다 쓰려고.”

혜지는 무심히 그 말을 받아 중얼거렸다.

“스님은 꼭 어떤 별에서 내려온 사람 같아요.”

“또 무슨 그런 말을.”

언젠가도 지선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선의 가장 잊혀지지 않는 것은 바로 이 말이었다.

“여자란 모름지기 자기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니면 가지 말아야 하는 법이다. 제가 밖에 나갈 때마다 엄마가 늘 하던 말이에요. 지금도 귓가에 그 말이 생생하게 살아나고 있어요. 그만큼 엄마는 남녀 구별 없이 사는 것을 제일 싫어했어요. 혹시나 제가 잘못 더럽혀질까봐서요. 엄마는 그렇게 아주 깨끗한 몸으로 제가 좋은 남자와 결혼을 해서 여자답게 살길 바랐어요. 저 역시 때 한 점 묻지 않은 마음으로 누군가 꼭 한 사람을 사랑해 보고 싶었구요.”

지금도 혜지의 눈 속에는 그때의 그녀 모습이 아련히 잠겨 지워지지 않는다. 그 얼굴에는 너무도 간절히 타오르는 혼의 불빛이 보였기 때문이다. 바로 그 사랑의 욕망이 여자의 가장 슬픈 본능인 것일까.

“구약전서 창세기를 보면 거기 ‘리브가’라는 아름답고 슬기로운 여인이 나와요. 여고시절 제가 가장 깊게 감명 받은 여인이었어요.”

두 눈에 밀밀히 먼 바다를 담고 있던 지선이 독백처럼 중얼거렸다.

“그때 이삭의 나이는 마흔이 넘어 있었어요. 아브라함이 100세의 늙은 나이에 난 외아들인지라 매우 귀히 여기던 터였지만, 아직 총각이었지요.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의 아내를 구하기 위해 자기 집의 모든 소유를 도맡아 일을 보고 있는 늙은 종 엘리에셀을 불렀어요.”

지선은 마치 꿈을 꾸듯 그 시절을 어릿어릿 바다 위에 떠올리고 있었다. 바다에는 햇빛이 몽롱하게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청컨대 네 손을 내 환도뼈 밑에 넣으라. 아브라함이 늙은 종 엘리에셀에게 말했어요. 내가 너로 하여금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케 하노니, 너는 내가 거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의 아내를 택하지 말고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그 아내를 택하라.”

혜지는 입 안에 괸 침을 삼켰다. 지금 지선의 내부에는 무엇이 꿈틀거리고 있는 것일까. 그녀의 두 눈은 다시 먼 곳에 가 있었다.

“주인 아브라함에게서 낙타 10필을 받아 550마일을 여행한 뒤에 엘리에셀은 하란에 도착했어요. 아직도 거기에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이 살고 있었어요. 저녁때가 가까워지자 엘리에셀은 우물가로 갔지요. 이제 곧 여자들이 물을 길러 나올 거예요. 우물가로 올 많은 여자들 중에서 어떻게 이삭의 아내를 고를 수 있을까. 엘리에셀은 조용히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어요.”

지선이 잠시 말을 끊고 넌지시 혜지를 바라보았다. 지선의 입가에는 은근한 미소가 묻어 있었다. 지선은 문득 혜지가 그 리브가 같았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 것이었다.

하지만 혜지는 잠시 장준우를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 그 밤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럼 스님은 외롭거나 괴로울 때가 없습니까?”

적적한 불빛 아래 발그레 달아오른 혜지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그가 물었다. 그녀는 장작개비를 한 개 더 불 속에 던져 넣었다. 불꽃이 긴 혀를 날름거리며 장작개비를 냉큼 집어삼켰다.

“있지, 왜 없겠어요. 외롭고 괴로울 때가 없다고 말한다면 그건 거짓말이지요. 외롭고 괴롭지 않다면 그것은 바로 부처겠지요.”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풀기가 빳빳이 들어 있었다. 그녀는 그 목소리로 한 마디 더 보탰다.

“나도 인간이고 여잔데, 왜 당연히 한 여자가 가지고 있을 그 평범한 욕망들이 없겠어요. 산에 사는 스님이라고 해서 인간 저쪽에다 밀어놓는다면 그건 큰 잘못이에요. 그들은 다만 부처님의 공부를 하기 위해서 머리를 깎았을 뿐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에요.”

“…….”

그는 말없이 종이컵에 술을 채웠다.

혜지는 자리에서 가만히 일어났다. 이제 장작이 거의 다 떨어져 가고 있었다. 그녀는 어둠을 헤치고 뒤란으로 돌아갔다. 늑골을 앙상하게 드러낸 나무들의 가지가 그물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혜지가 뒤란에서 장작개비를 한 아름 안고 오자 그는 다시 종이컵에 술을 채우고 있었다. 그때 모닥불이 바람을 타고 크게 한번 파닥였다.

그녀는 말했다.

“때문에 인간은 누구나 다 각기 하나의 외로운 섬이에요. 스스로 그 ‘자기’라는 섬에 갇혀 있어요. 그래서 우리 사문들은 그 섬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이렇게 살고 있는 거예요.”

혜지는 다시 모닥불 속에 장작을 집어넣었다. 스스로의 살과 뼈를 잔혹하게 태우고 있는 장작의 신음소리가 아프게 들리는 듯했다. 그래서 장작은 지금 밝고 아름다운 불꽃을 우리에게 선사하고 있는가.

“그렇다고 여기서 꼭 이렇게 홀로 고행을 하며 살아야만 그 무엇이 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는 머리를 흔들었다.

“이걸 고행이라고 할 순 없지요. 우리는 이 산과 하나가 되어 사니까요. 저 나무와도 소리 없는 대화를 나누고, 그러면서 우리는 절로 산의 정기를 흡입하지요. 저 무한한 공간을 흔들고 오는 바람의 정감어린 풍금 소리를 들어보세요. 지금 우리의 주변은 원시의 침묵이 감싸고 있어요. 이때 우리도 또한 자연의 일부예요.”

“…….”

“그래서 산에서는 옆 사람과 대화를 나눠도 자연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되는 거예요. 그렇게 서로 맑은 기운이 전달돼요. 이럴 때 장 선생님은 시상詩想이 떠오르지 않나요? 저 벼랑 밑에서 울려오는 슬픈 탄식의 한숨 소리가 들리지 않나요?”

혜지는 모처럼 많은 말을 하고 있었다. 불빛이 그 얼굴에 곱게 너울거리고 있었다.

“그 기도를 끝내자마자 엘리에셀의 내부에서 무엇인가가 그에게 고개를 들라고 알려주었어요. 거기 마침 어깨에 물항아리를 멘 한 처녀가 보였어요.”

지선은 자기 혼자서 열심히 지껄이고 있었다.

“엘리에셀은 그 처녀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해 버렸어요. 젊고 날씬한 처녀였어요. 그녀가 가까이 다가오자 엘리에셀은 좀더 강력하게 그녀가 자기 기도의 응답이라는 것을 감지했어요. 그 처녀가 바로 리브가였어요. 엘리에셀은 넋이 나간 채 중얼거렸어요. ……심히 아리땁고 지금까지 남자가 가까이 하지 아니 한 처녀구나.”

그제야 혜지는 문득 지선을 바라보았다. 지선의 눈에는 차가운 무엇이 무섭게 번득이고 있었다.

“나도 그 리브가가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녀가 그 오랜 방황 속에서도 유일하게 짓밟혀지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 소망이었다.

아쉬운 일이었지만 그때 혜지는 지선이 회운사에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을 떠나게 되었다. 현기 거사의 특별한 배려로 이 섬에 와서 터를 닦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회운사에 두고 온 것들이 있어 다시 찾아가게 되었는데, 이제 막 버스에서 내렸을 때였다. 웬 중년 남자가 그녀 앞에 다가와 길을 물었다.

“스님, 회운사에 가려면 어느 쪽으로 가야 합니까?”

“이 길을 따라 곧장 가십시오.”

하지만 남자는 곧장 길을 가지 않고 왠지 모르게 적의에 찬 눈으로 혜지를 응시했다. 혜지는 공연히 두근거리는 가슴을 애써 눌렀다. 왜일까. 무슨 별다른 의도가 있는 건 아니겠지만 이상하게도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그래서 그녀도 잠시 덫에 걸린 듯 그 자리에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남자는 혼자 무어라 중얼거리더니 주머니에서 구겨진 담뱃갑을 꺼냈다. 담배를 하나 입에 물고서 남자는 다시 주머니를 뒤져 성냥을 찾다가 혜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스님, 죄송하지만 혹시 성냥 있습니까?”

“없는데요.”

혜지는 못마땅한 눈으로 남자를 멀뚱히 건너다보았다. 어딘지 모르게 꾀죄죄하고 노곤하게 보이는 얼굴이었다. 산비탈의 흙먼지가 바람에 날려 그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도로 담배를 담뱃갑 속에 집어넣었다. 그 대신 입가에 쓸쓸한 미소를 물었다.

“그런데 회운사엔 무슨 일로 가십니까?”

그녀가 조용히 물었다.

“사람을 찾으러 갑니다.”

남자는 다시 허기진 눈으로 회운사 쪽을 바라보았다.

“사람?”

“여기 여승이 되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는 여자애가 하나 와 있을 텐데요.”

그렇다면 행자들 가운데 누굴 찾는 것일까.

그제야 혜지는 남자를 남겨두고 먼저 회운사에 올라와 일주문 안으로 들어섰다. 대웅전 뒤에는 온통 잣나무숲이 울창하게 둘러싸여 있어서 도량이 한층 더 장엄하게 보였다. 혜지는 이내 요사채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채공간에서는 행자들이 공양 준비에 한창 바빴다. 행자들은 끼니때마다 부지런히 공양을 짓고 반찬을 만들어야 한다. 공양을 짓고 반찬을 만드는 일이 행자들의 주소임이다. 그런 와중에서도 한쪽에서 떠듬떠듬 천수경을 외우는 소리가 들렸다.

혜지가 채공간 안으로 발을 들여놓자 천수경을 낭송하며 국을 뜨고 있던 행자가 잠시 멈칫했다. 다시 천수경이 이어지자 다른 또 한 행자는 밥주걱으로 박자를 맞춰 솥뚜껑을 때리기 시작한다. 혜지는 말없이 서서 그들 가운데 끼여 있는 박 행자를 눈여겨 지켜보았다. 아까 그 남자가 찾던 여자는 바로 저 행자가 아닐까. 박 행자는 그동안 삭발을 하고 곱고 단정하게 승복을 입고 있었다.

그때 공양 목탁 소리가 울렸다.

이제 큰방 공양에 참석하는 행자들은 더 힘이 든다. 회운사는 대중이 몇 명 되지 않은 탓으로 삭발한 고참 행자는 큰방 공양에 참석을 시키고 있었다. 이때는 여간 조심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더구나 아직 제대로 습이 안 된 사람이 죽비 소리에 맞춰 시간 내에 공양을 다 마치려면 웬만큼 마음이 급하지 않고는 어렵다. 거기다가 밥 먹으며 이것저것 심부름까지 해야 한다. 그러자니 자연 음식을 줄여서 먹을 수밖에 없다. 언제나 스님들처럼 느긋한 마음으로 자기 양을 다 챙겨서 먹을 수 있을까.

천수물千手水을 거둬들일 때는 고춧가루나 찌꺼기가 있지 않나 잘 살펴봐야 한다. 혹시 들어 있으면 천수물을 되돌려 줘서 그걸 다시 먹게 해야 한다. 이처럼 천수물을 중요시하는 것은 배고픈 아귀들을 위해서이다. 아귀들은 하루 종일 굶고 있다가 오로지 스님들이 법공양하고 발우를 씻은 이 천수물만을 먹고 배를 채우기 때문이다.

공양을 마치고 방에 앉아 있는데 누가 조심스럽게 방문을 두드렸다. 누굴까. 혜지는 다시 괜스레 두근거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켰다. 하지만 역시 그 박 행자였다. 혜지가 일어나 방문을 열자 갑자기 박 행자가 사냥꾼에게 쫓기는 짐승처럼 그녀의 품속으로 뛰어들어 왔다.

박 행자는 눈시울이 잔뜩 붉어져 있었다. 숨결도 걷잡을 수 없이 거칠어져 있었다. 아무리 자기 업대로 사는 거라지만, 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몸부림치며 괴로워하는 걸까.

“이리 와 앉아봐.”

금방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은 박 행자의 기세를 누르며 혜지가 먼저 자리에 앉았다. 박 행자도 털썩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스님, 이를 어쩌면 좋아요.”

박 행자는 그리고 한참 동안 말을 잊지 못했다.

“우선 가슴을 진정하고 천천히 말해봐.”

혜지는 지그시 눈을 내리감았다. 법당에서는 백일기도의 목탁 소리가 쓸쓸히 들려오고 있었다. 저 소리는 과연 누굴 부르는 소리일까. 염불 소리는 카랑카랑 높았다가 낮고 가늘어지며 적적한 산사를 더욱 고즈넉하게 울리고 있었다.

“스님, 제 탓이에요. 저번 때 스님이 이 절을 떠나가신 뒤 집으로 편지를 썼어요. 다 제 잘못이에요. 하지만 엄마가 걱정되어 도저히 그냥 있을 수가 없었어요. 언젠가는 스님한테 다 얘길 하려고 했었어요.”

혜지는 나직이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며 손에 든 염주알을 굴렸다.

“그래서 그 남자가 박 행자를 찾아온 거야?”

박 행자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그 남자는 누구야?”

하지만 박 행자는 말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오빠? 아니면, 아버지인가? 고개를 들고 나를 똑바로 봐.”

박 행자는 겨우 얼굴을 들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야? 집으로 돌아갈 건가?”

“…….”

박 행자는 말이 없고 혜지는 마음이 착잡했다.

“스님이 그 사람을 좀 돌려보내 주세요.”

박 행자는 그제야 입을 열었다.

“그 사람?”

“네. 제발요.”

박 행자가 세차게 머리를 내흔들었다.

“대체 그 사람이 누군데 그래?”

혜지는 다그쳐 물었다. 뭔가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그 사람은 인간이 아니에요. 제 원수 같은 사람이구요.”

혜지는 다시 혼란에 빠졌다.

“인간이 아니라니? 이거 참 갈수록 알 수 없는 말이군. 그리고 원수는 또 뭐고…….”

하지만 박 행자는 파르르 입술을 떨더니 딱 잘라 말했다.

“그는 인면수심人面獸心이에요.”

그 남자는 박 행자의 의부義父라는 것이었고, 그녀는 그 의부한테 못 당할 일을 당했다는 것이었는데, 아무래도 혜지는 들어서는 안 될 말을 들어버린 것 같았다. 혜지는 눈앞이 아득했다.

“하지만 인면수심?”

혜지는 그 겨울 노루와 함께 지내면서 짐승에 대해 전혀 다른 관점을 가지게 되었다. 그때 그녀는 노루와 무엇을 서로 깊이 교감하고 있었던 것일까. 마치 자기 집처럼 자연스럽게 공양간을 기웃거리기도 하고 법당 앞을 왔다 갔다 산책하기도 하는 노루를 보며 그 생명에 대한 깊은 외경심을 품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어느 사이 사람의 생명과 짐승의 생명을 동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에 그보다 더 순박하고 깨끗한 생명이 어디 있겠는가. 그 생명은 절대로 다른 생명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 그녀는 오히려 말 많은 사람보다는 차라리 말 못하는 짐승을 더 깊이 신뢰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신비스럽도록 선하고 맑은 노루의 눈. 그에 비하면 인간의 온갖 욕망과 이기심이란 얼마나 부질없고 추악한 것인가.

“그래서 그날 밤 저도 모르게 집을 뛰쳐나왔어요. 그리고 그 바람에 그런 곳에 잠깐 있었어요. 어떻게 된 일인지 집을 나온 뒤부터는 아무리 생각을 해도 통 기억이 나질 않아요.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런 곳에 있는 거지 뭐예요. 주인아줌마는 약간 실성을 해서 돌아다니고 있는 나를 데리고 왔다고 했어요.”

“그런 곳이라면?”

혜지는 그것도 영 마음이 찝찝했다.

“그 좋지 않은 데 있잖아요. 그래서 이젠 정말 산다는 게 너무도 힘이 들어 차라리 세상을 잊으려고 입산한 거예요. 그리고 전 여태 스님들한테 그걸 들키지 않으려고 얼마나 가슴을 죄며 걱정을 했는지 몰라요.”

혜지는 염주알을 굴리던 손을 멈췄다. 이젠 더 이상 박 행자의 말을 잔인하게 듣고 싶지 않았다. 그보다도 혜지는 금방이라도 주지 스님이 방에 들어올까 봐 마음이 졸였다. 만일 주지 스님이 이 사실을 알면 큰일이었다. 주지 스님은 남자라면 비정하리만큼 누가 자기 옆에 가까이 오는 것도 아주 싫어하는 여자였다. 심지어는 혜지가 어쩌다 손목을 잡는 것도 기겁을 했다.

“대체 무슨 일이야? 저기 저 밖에 있는 처사는 누굴 찾아온 거지? 무엇 때문에? 행자들한테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야?”

그때 방문 밖에서 기어이 주지 스님의 말소리가 들렸다. 주지 스님도 뭔가 심상치 않은 낌새를 느낀 모양이었다.

박 행자는 흠칫 몸을 떨었다.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서먹하게 침묵이 흘렀다. 이제 방문 밖에 아무런 기척이 없는 걸로 봐서 주지 스님은 가버린 것 같았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그 의부를 한번 만나봐. 그것은 어쩌다가 한 순간의 실수였을지도 몰라. 아니면 취중에 그럴 수도 있고. 세상에는 그보다 더 고약한 일도 있는 거야.”

“그럼 그 사람을 용서해 주라는 거예요?”

“용서해 주라는 얘기가 아냐. 내가 무슨 자격으로 그런 말을 할 수 있겠어. 다만 그분도 사람이니 분명 양심은 있을 게 아냐. 그러니 한 번 만나나 보라는 얘기야. 여기까지 찾아온 걸 보면 그분도 분명히 그 일을 뉘우치고 있는 거야.”

하지만 박 행자는 생각보다 완강했다.

“전 죽어도 그를 용서할 수 없어요. 어떻게 그 얼굴을 다시 볼 수 있겠어요. 그리고 또 그 모든 사실을 엄마가 알면 어찌 되겠어요. 그래서 이젠 집에 돌아갈 수도 없어요.”

그래서 그날 혜지는 그때까지 산문 밖에서 초조한 얼굴로 얼쩡거리고 있는 그 남자를 주지 스님 모르게 돌려보냈다. 지은 죄가 크기 때문인지 그는 생각보다 쉽게 포기를 하고 다시 산길을 내려갔다. 먼 산등성이의 외로운 햇살처럼 혜지는 산문에 서서 무겁게 산을 내려가는 그의 뒷모습을 측은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박 행자는 다음날 혜지를 따라 이곳으로 온 것이었다.

“전 스님 덕분에 마음을 잡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어요. 이젠 절대로 스님 곁을 떠나지 않을 거예요.”

마치 혜지에게 다짐이라도 받듯 지선이 말했다.

“어찌 산다는 게 이렇게 되었어. 나는 무엇보다 지선이 나를 믿어준 데 대해 오히려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그런데, 그때 그 가방 속에는 대체 무엇이 그렇게 잔뜩 들어 있었지?”

혜지는 끝내 그것을 묻고 말았다. 그것도 혜지로선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건 책이에요.”

지선이 슬그머니 얼굴을 붉혔다.

“책? 무슨 책?”

다시 다급히 물었다. 혜지는 오히려 궁금증이 더했다.

“…….”

하지만 지선은 입을 꾹 다물었다.

“도대체 무슨 책인데 그러지?”

본의 아니게 언성을 조금 높였다.

“동생에게 주려고 틈틈이 사서 모았어요. 원수 같은 사람의 아들이긴 하지만 그래도 제겐 소중한 동생이거든요.”

“그럼 왜 부쳐주지 않고 그걸 무겁게 가지고 다녔지?”

“우편으로 부치면 그 의부에게 제가 있는 곳이 들킬까 봐서 그랬어요.”

“그럼 이쪽 주소를 안 쓰면 되잖아.”

“전 너무 단순해서 그 생각을 못했어요. 이제 전 이 세상에는 아무런 미련이 없어요. 어차피 한 번 죽고 두 번 사는 몸이에요. 다만, 한 가지 소망이 있다면 나로 인해서 다른 사람이 절대로 상처를 입지 않는 일이에요. 내가 받은 상처가 너무 괴롭고 아프니까요.”

혜지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지선의 두 눈이 혜지를 향해 맑게 타올랐다.

“또 한 가지?”

“잃어버린 그 순결을 다시 찾고 싶어요.”

지선은 마치 자기 자신에게 다짐이라도 하듯 결연히 말했다.

“순결?”

“그래요.”

지선은 다시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럼 그걸 어떻게 되찾겠다는 건지? 이미 한번 그렇게 짓밟혀져 버린 걸…….”

혜지는 멍청하게 지선을 바라보았다. 가만히 머리를 내저었다. 사람이, 자기의 가장 깨끗하고 아름답던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은 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실현 가능한 일을 생각해야지. 누가 들어도 그것은 안 될 말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가 않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지고 하는 이 모든 현상들은 결국 다 부질없는 일시적인 것이야. 따라서 슬프다, 기쁘다, 괴롭다 하는 것도 다 우치한 사람들의 순간적인 생각일 뿐이지. 이 세상 영원한 것은 그 무엇도 없어.”

그래도 지선은 딱 부러지게 말했다.

“정말이에요. 전 꼭 그걸 되찾고야 말겠어요. 그 리브가의 순결을요.”

3

아침 공양을 마친 뒤 혜지는 다시 버릇처럼 바닷가에 나갔다. 설거지를 끝내고 지선은 곧바로 빨래를 하고 있다. 저렇게 착하고 성실한 여자가 어쩌다가 인연 하나 잘못 만나 마음고생을 그리 하고 살았다니.

“친아버지는 제가 다섯 살 때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오랫동안 엄마하고 둘이서만 살아왔는데, 몇 년 전에 그럴 사정이 있어 엄마가 그 의부하고 재혼을 한 거예요. 그때 전 여고를 졸업하고 시장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엄마를 도와주며 회사에 나가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밤이었어요. 혼자서 혼곤히 잠을 자는데 가슴이 하도 답답해서 눈을 떠보니 그 의부가 제 몸 위에서 씩씩거리고 있는 거지 뭐예요. 그때 엄마는 몸에 병이 나서 병원에 입원을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동생하고 병실 교대를 하고 와서 잠깐 잠이 들어 있었지요. 나를 직접 낳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아버지는 아버지인데, 세상에 어떻게 그런 짓을…….”

그런데 지선의 그 신앙이라는 건 대체 무엇일까. 혜지는 며칠 전에도 지선이 중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그 동생이 생각나서 몰래 소리 죽여 흐느껴 우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지선이 유치원에 다니기 전부터 그 어머니가 교회에 끌고 가서 철야기도를 시킬 정도였다는 것은 혜지도 들어서 알고 있는 일이다. 하지만 사실 그 동생은 바로 자기를 천길 나락으로 떨어뜨린 의부가 낳은 아들이다. 그럼에도 그 동생을 그리 애틋하게 그리워하다니. 세상에 이런 모순이 어디 있을까. 그것을 알고부터 혜지도 왠지 고통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지선은 이미 그런 몸이 되었어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있었는지 모른다.

혜지는 편편한 바위를 하나 골라 그 위에 쪼그리고 앉았다.

이따금 구름만 몇 점 대리석처럼 잠겨 외로이 씻길 뿐 바다는 여전히 눈이 시리게 깊고 적막한 감청 빛이다. 그녀는 넋 놓고 그 물 속을 끝없이 응시했다. 그러다 문득 눈을 들면 멀리 장산곶의 바로 머리맡에 인당수가 언뜻 손바닥만 하게 보인다.

그런데 그는 끝내 오지 않을 모양인가. 혜지는 다시 한없이 마음이 착잡했다. 소식을 보낸 지도 벌써 몇 주일이 지났는데 왜 여태 아무런 연락이 없는 것일까. 아직은 더 기다려봐야 할 일이지만, 이제 그 절망감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바다 끝에 오도카니 앉은 그녀의 몸을 바람이 스치고 지날 때마다 잿빛 승복이 찰싹 휘감겨 허리로 엉덩이로 부드럽게 곡선을 이루고 있었다. 그녀는 찬찬히 자기의 몸을 내려보다가 얼른 눈을 감아 버렸다.

그날 그에게서 온 전화를 먼저 받은 것은 원장 스님이었는데 ‘누구시냐’고 묻지도 않고 옆에 있는 혜지에게 바꿔주었다. 그 무렵 혜지는 원장 스님의 부탁으로 잠시 청빈암에서 내려와 명화원의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그녀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저쪽의 목소리를 기다렸다.

“장준웁니다. 지금 시간이 있으시면 좀 나와 주시겠습니까?”

“지금 거기 어딘데요.”

아직 아무 영문도 모른 채 혜지는 그저 생각지도 않게 걸려온 그의 전화에 은근히 감동을 하고 있었다. 청빈암에서 그렇게 모닥불을 피우며 하룻밤 다녀간 뒤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였다. 안 그래도 그녀는 그 뒤 소식을 몰라 몹시 궁금하게 여기고 있던 터였다.

“뭣 좀 부탁할 것도 있고…….”

하지만 무엇보다 그를 만나기로 작정한 것은 순전히 그 옷 때문이었다. 그날 마침 어디서 명화원에 곱디고운 속복俗服이 한 벌 들어왔는데 입어 보니 그녀의 몸에 꼭 맞았다. 분홍빛 고급 천의 투피스였다. 그동안 아이들의 옷은 많이 들어왔지만 어른 옷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 옷이 그렇게도 입고 싶어?”

거울에 이리저리 몸을 비춰 보며 좋아하는 혜지에게 원장 스님이 말했다.

“나는 뭐 여자가 아닌가요?”

그녀는 너무 어렸을 때 절에 들어와서, 그냥 사람이 사는 다같은 곳일 뿐 아직 한번도 승과 속을 따로 명확하게 구분지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럼 그 옷을 입고 한번 나갔다 와보지. 멋은 있구먼. 몸에 아주 잘 어울려. 자, 여기 옛날에 내가 어쩌다 한 번씩 명화원 운영비를 조달하기 위해 친구들을 만나러 나갈 때 쓰곤 하던 가발도 있어.”

그래서 원장 스님에게 그런 옷이 들어온 모양이었다. 그런데 혜지는 그 옷을 입고 나서 마음이 주체 못할 정도로 달떠버린 것이었다.

“한 번 그래 봐도 될까요?”

정말 그런 감정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원장 스님도 다시 다정하게 웃어 주었다.

“안 될 게 뭐 있어.”

하지만 그녀는 다시 이 한 마디를 잊지 않았다.

“그래도 사내들이란 항상 조심을 해야 돼. 옛날 신라의 월명(月明) 비구니를 봐.”

월명의 오빠 등운登雲 또한 비구가 되어 그들 두 남매는 함께 수행을 했다고 한다. 벌써 몇 번째 듣는 말인지 모른다.

“그런데 하루는 월명이 오빠 등운에게 찾아와서 하는 말이, 자기 절의 불목하니가 자꾸 성가시게 자기의 몸을 요구하는데 어쩌면 좋겠느냐고 묻는 거였어. 그러자, 등운은 그까짓 거 한 번 줘버리라고 그랬지. 그러고 난 뒤 동생 월명에게 그 뒷맛이 어떻더냐고 물었어. 월명은 장대로 허공을 찌르는 것 같았다고 했어. 그런데 그 불목하니는 비구니에게 또 그걸 원하는 거였어.”

그래서 오빠 등운은 또 허락을 했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이번에는 그 기분이 어떻더냐고 다시 물었다. 비구니는, 장대로 마른 땅바닥을 찧는 것 같았다고 했다. 불목하니는 세 번째 또 원했다. 이번에는 장대로 질척질척한 진흙 속을 쑤셔대는 것 같았다고 했다. 그러자, 오빠 등운은 이거 안 되겠구나 싶었다. 그럼에도 불목하니는 자꾸 또 그걸 요구하는 거였다.

“어느 날 저녁때 불목하니가 군불을 때고 있었지. 아궁이 속에서는 장작불이 한창 시뻘건 혀를 날름거리며 타오르고 있었어. 그때 등운이 불목하니를 그 아궁이 속에다 집어넣었어. 깜짝 놀란 불목하니가 빠름작거리며 도로 나오려고 하는 걸 이번에는 동생 월명이 냅다 발길로 밀어 넣어 버렸지. 정히 끊어버려야 될 인연이라면 그렇게 해서라도 끊어버리는 거야.”

그때 갑자기 등 뒤에서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려 깜짝 놀라 돌아보니 관광객이었다. 이미 피서 철이 한참이나 지난 어중간한 계절인데 아직도 관광객들의 발걸음은 드문드문 이어지고 있었다.

그 옷을 입고 그를 만난 곳은 언젠가 최윤희랑 셋이서 한번 들른 적이 있는 인사동 골목의 어느 전통 음식집이었다. 혜지가 그 집에 도착했을 때 그는 벌써 혼자서 백세주를 한 병 시켜 자작으로 반병쯤이나 비운 뒤였다.

혜지의 옷 입은 꼴을 보더니 아까의 무거운 목소리와는 달리 갑자기 그의 얼굴에 생기가 살아났다. 그는 혜지가 앞자리에 와서 앉기 전에 들고 있던 술잔을 얼른 비웠다.

“어서 와 앉지요.”

혜지는 부러 그렇게 조심성을 보이는 그의 태도가 싫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생각지도 않은 말을 했다.

“모처럼 장 선생님한테 전화를 다 받게 되어 기분이 좋아서 나왔어요. 그동안 얼마나 그 전화를 받고 싶었는지 알아요?”

혜지는 살짝 콧등을 찡그리며 웃었다. 옷이 바뀌니 생각도 바뀌는가. 그것은 평소 그녀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저는 웬 아름다운 여인이 이렇게 오시나 했습니다.”

그러자 혜지는 그를 향해 눈을 곱게 흘겼다.

“그건 칭찬이 아니라 욕이라구요. 그런데, 나한테 무슨 부탁할 일이 있나요? 뭔지는 모르지만 장 선생님의 부탁이라면 무조건 들어드려야죠.”

“뭐 딱히 부탁이라기보다도…… 자, 우선 음식부터 주문하지요. 뭘로 시킬까요? 지난번에 드셨던 그 산채 정식이 어떨까요? 전 이거면 되었고.”

그는 혜지의 눈치를 살폈다.

“그럼 그걸로 시켜 주세요.”

“그런데 그 옷은 어디서 난 겁니까? 그 가발은 또…….”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그가 희뜩 웃었다.

“나도 이 옷을 한 번 입어보고 싶었어요. 난 태어나서 한 번도 이런 옷을 입어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것은 무슨 욕망이었을까. 무엇보다 혜지는 그 옷을 입은 자신의 모습을 그에게 꼭 한번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야속하게도 더 이상의 관심은 보이지 않았다.

“실은 윤희 때문에 그러는데, 이런 얘긴 차마 안 하려고 했지만, 윤희는 왜 자꾸 그쪽으로만 발전해 가는지…….”

그는 다시 잔에 술을 채웠다.

“또 무슨 일이 있어요?”

혜지는 가만히 물컵을 들어 입에 갖다 대었다. 이제 그는 분명히 최윤희를 사랑하진 않는다. 그럼에도 한 여자를 잊기가 그렇게도 어려운 것일까. 집착을 놓아 버리기가 그렇게도 힘이 드는 것일까.

“그 불국토佛國土라는 게 대체 어디에 있는 어떤 세계입니까? 아니, 그것보다도 우리는 대체 어디서 어디까지가 인간일까요? 그럼, 짐승들도 그 불국토에 갈 수 있는 겁니까?”

알쏭달쏭한 말을 내뱉더니 그는 허탈하게 웃었다.

“지금 그 말 윤희 씨를 두고 하는 거예요? 무슨 그런 말이 있나요. 짐승이라니요?”

혜지는 은근히 얼굴을 붉혔다. 그럼, 그렇게 얼굴이 아름다운 짐승도 다 있는가. 하지만 그녀는 그 최윤희로 인해 그가 얼마나 고통스럽게 방황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최윤희의 집착은 또 어떤 것이기에 왜 그렇게도 한사코 그를 떠나려고 하는 것일까.

“그 여자는 산을 좋아하니까 산짐승이겠지요. 지금 그 여자는 불국토에 아주 미쳐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나는 사서 이 고생을 하는지.”

“그런데, 윤희 씨는 언제부터 그렇게 산을 좋아하게 되었나요?”

“한 번 그렇게 타고난 성격은 어쩔 수가 없는지 도무지 겁이라곤 없는 여잡니다. 여자가 정말 힘도 좋지. 산이 높은 줄을 모르는 여자예요. 또 등산에 관한 것이라면 모르는 것이 없구요. 산을 얘기할 때 그녀의 목소리에는 어떤 알 수 없는 힘이 꽉 차 있곤 했지요. 그래서 그 말에 솔깃이 귀를 기울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어느새 그 산을 그리워하게 되는 겁니다.”

하지만 그 최윤희가 진실로 산을 좋아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혜지는 아직도 솔직히 어느 것이 그녀의 본심인지 모른다. 마치 가을 산의 능선처럼 더없이 편하고 부드러운 면이 있는가 하면, 아슬아슬한 벼랑 끝에 위태롭게 달라붙어 있는 모습, 그리고 그야말로 울퉁불퉁 사람을 한없이 질리게 하는 그 바위너설 같은 그녀의 뒷모습.

“산에서 혼자가 된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냉철한 눈으로 살펴본다는 것의 의미예요.”

언젠가 회운사에 찾아와서 아득한 별빛 아래 앉아 최윤희는 이렇게 말했다.

“저 아래 세상을 좀 봐요. 쓸데없이 잡다한 것들만이 답답하게 채워져 있지 않는가 말예요. 질투와 증오가 부글부글 끓기 일쑤고, 그 온갖 추잡함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어요. 저 장난감처럼 작은 집들. 사람들은 고작 그 좁은 공간에서 수다를 떨며 행복을 찾고 있지요.”

하지만 어둠 속에서 그 아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장 선생님도 어떤 때 보면 참 이상한 면이 있어요. 그냥 가만히 놔두세요. 진정한 사랑은 육체적인 것하곤 또 다른 거잖아요.”

혜지는 왠지 모르게 그를 책망하고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그렇게 잔뜩 격앙되어 나왔다. 그는 멋쩍게 웃었다.

“그것은 무슨 말입니까?”

“진실로 그녀를 사랑한다면 그렇게 그녀를 구속하지 말고, 그냥 그녀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놓아 주라는 거예요. 하지만 그게 잘 안 되지요? 그래서 인간은 제각기 홀로 다 고독한 거예요.”

혜지는 이 말을 해놓고 곧 후회를 했다. 그가 걱정이 되어 위로를 한다고 해본 소리였는데 공연한 간섭을 한 것 같았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서로 만나 행복하게 잘 살면 그게 바로 사랑이고, 불국토가 아닙니까?”

“…….”

“그럼 그 불국토에는 남자도 없고, 여자도 없고, 사랑도 없단 말입니까? 그렇다면 그게 무슨 놈의 불국토이겠습니까?”

그는 주인 여자를 불러 다시 술을 한 병 더 주문했다.

그러자 혜지가 손을 내저었다.

“술이 너무 과하지 않아요? 많이 드신 것 같은데…….”

“이것 마시고야, 어디.”

그는 피식 웃었다.

“아니면, 연잎처럼 깨끗하게 때 묻지 않는 것이 불국토입니까? 그렇다면 그건 아예 무관계지 않습니까? 마치 스님과 나처럼 말입니다. 스님, 그렇지 않습니까?”

혜지는 냉정한 눈길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제야 그녀는 퍼뜩 제정신이 들었다. 그래서 지금 그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게 무엇인가. 술에 취해 있어서 그의 정확한 의도는 알 수 없지만 그 말 속에는 뭔가 숨어 있는 게 분명했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그와 마주앉아 있기가 거북했다. 혜지는 빨리 나오라는 뜻으로 그의 어깨를 툭 건드리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에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 어둠이 찐득찐득 온몸에 늘어붙고 있었다. 혜지는 자신에게 은근히 화가 났다. 이쯤에서 돌아가야 하는데 그게 왠지 마음대로 잘 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한참 동안이나 더 앉아 술잔을 비우다가 밖에 나왔다. 그때까지 혜지는 어둠 속에 서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왜 그런 말을 했을까. 그의 모습이 측은하게 보여서였을까. 비틀거리는 그를 보고 혜지는 말했다.

“이 세상에 어찌 여자가 윤희 씨 한 사람뿐이겠어요.”

“그렇지요? 스님도 분명히 그렇게 생각하지요?”

그는 큰 소리로 외쳤다.

“너무 취해서 안 되겠어요. 어디 여관으로라도 가든지 해야지.”

하지만 그는 그런 것쯤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집으로 가야지요.”

저만큼 어둠 속에 불빛들이 떠다니고 있는 게 보였다. 자동차 불빛이었다. 그 속에서 어서 오라고 누가 자꾸 손가락을 까부르고 있는 듯이 보였다. 그는 말했다.

“그렇다면 저걸 한 대 잡아타야지.”

“하지만 이런 몸으로 어떻게 집에 가겠어요.”

혜지는 자연스럽게 그의 팔짱을 끼었다. 그대로 놔두면 금방 넘어질 것 같았다. 그녀의 따뜻한 체온이 금세 그의 가슴까지 전달되어 갔는지 그가 꿈틀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이 싫지 않은 눈치였다. 혜지가 이끄는 대로 잠자코 따라갔다. 큰 거리에 나오자 자동차 불빛들이 쫓기는 들소떼처럼 요란하게 질주하고 있었다. 혜지는 마치 최면술사처럼 그 불빛들 사이사이로 그를 이끌어가고 있었다.

“장 선생님, 중국의 청량 국사淸凉國師는 이렇게 말했어요. 한 마음 한 마음이 부처님 마음 아님이 없고, 우리가 보는 티끌 하나 하나가 불국토 아님이 없다. 깨치고 보면 삼독三毒이 보리菩提가 된다. 부처도 불국토도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중생이 다만 멀리서 구할 뿐이다. 구하고 탐하는 마음이 바로 부처요, 오탁악세五濁惡世가 불국토이거니, 자기불自己佛을 두고 또 어디서 부처를 구하겠는가.”

하지만 그의 더운 입김이 그녀의 목덜미에 닿는 순간 그녀는 거기서 모닥불이 화르르 피어오르는 감촉을 느꼈다.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잎새가 한 무더기 우수수 바람에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저만큼 앞에 여관의 따뜻한 불빛이 보이자 혜지는 문득 걸음을 빨리 했다.

“장 선생님, 외롭지요?”

외롭다고 그는 중얼거렸다. 마치 저 은행나무의 한 이파리처럼 외롭다고.

그런데 또 그때 그녀의 물컹한 젖무덤이 그의 팔꿈치에 지그시 눌려졌다. 혜지는 세상에 태어나서 그처럼 자신의 신체가 남과 접촉되어 보긴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의 눈앞에 다시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이 보였다. 불꽃이 긴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다. 그는 한 번 비틀하다가 그 자리에 섰다. 어둠 속에서 그녀의 젖무덤이 하얗게 출렁거리고 있었다.

혜지는 얼른 그에게서 팔짱을 풀었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스님은 이제 그만 명화원에 가보시지요.”

“그럼 저 여관에서 꼭 주무시고 가야 돼요.”

혜지는 ‘꼭’자에 힘을 주며 그의 귓가에 나직하게 속삭였다. 그리고 이내 또박또박 어둠 속으로 묻혀져 갔다. 그녀는 어쩐지 밤공기가 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득 돌아보니 그는 갑자기 길을 잃은 아이처럼 그 자리에 심란하게 서 있었다. 그녀의 발소리가 안 들릴 때까지 그는 그대로 그 자리에 서 있을 모양이었다.

지금쯤 몇 시나 되었을까. 손목시계를 들여다볼까 하다가 혜지는 귀찮아서 그만두었다. 하품을 하며 밤하늘의 별들이 깜빡깜빡 졸고 있었다. 다시 뒤를 돌아보니 그는 마치 사막 한복판에 서 있는 아이 같았다. 최윤희의 얼굴이 잠깐 눈앞에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또박또박 발소리를 내며 혜지는 그에게로 되돌아갔다.

“아니, 왜 안 갔어요?”

“장 선생님 잠드시는 거 보고 가겠어요.”

혜지는 성큼 그의 옆으로 다가가서 다시 팔짱을 끼었다.

“이런 장 선생님을 두고 혼자서 어떻게 가요.”

그녀는 태연하게 속삭였다.

그러자 그가 고무줄처럼 완강하게 그녀의 팔에 감겨 왔다. 혜지는 반사적으로 몸을 사렸다.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하지만 그녀의 눈앞에는 어느새 다시 모닥불의 날개가 바람을 타고 황홀하게 파닥이고 있었다. 그녀는 세차게 머리를 내흔들었다. 그래도 어디서 스스로의 살과 뼈를 잔혹하게 태우는 장작의 아픈 신음 소리가 들렸다.

혜지는 발걸음을 딱 멈췄다.

“정말로 정말로 최윤희 씨가 미워요.”

슬픈 본능

1.

이윽고 저만큼 구릉지에 우뚝 명화원이 보이자 준우는 왼손에 든 선물꾸러미를 다시 오른손으로 옮겨 들었다. 쇠고기 닷 근이라 그게 꽤 무거웠다. 하긴 이따금 원장 스님도 고기를 듬뿍 사들고 이 길을 오른다. 길은 잠시 더 한적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스님이 왜 오라고 부르는 것일까.

그는 다시 명화원에 눈길을 주었다. 그것은 몇 겹 을씨년스런 적막 속에 몸을 움츠리며 다소곳이 잠겨 있었다. 가을 햇살은 금같이 따뜻했다. 햇살은 그리고 명화원의 구석구석을 부드러운 손길로 어루만지고 있었다.

“아저씨.”

그때 등 뒤에서 웬 아이의 목소리가 그를 불러 세웠다. 흘끗 뒤를 돌아보니 뜻밖에도 그 아이였다. 이 명화원 아이들 중에서 유독 새침하고 또랑또랑한 계집아이다. 그때는 나이가 일곱 살이었으니 지금은 열 살쯤이나 되었을까. 하지만 그 아이가 먼저 그를 알아보고 옥수수알 같은 앞니를 살짝 드러내보이며 밝게 웃고 있는 것이었다. 워낙 외롭게 사는 아이들이라 한번만 눈빛을 마주쳐도 금세 기억을 잘한다.

“너는 어딜 갔다 오지?”

“저 아래 심부름이요.”

지금도 여전히 인형처럼 깜찍하게 생긴 게 전혀 고아 같지가 않은 얼굴이었다. 그렇다면 이 아이는 아무래도 주소를 잘못 찾아온 것일까. 그래서 그런지 그가 그 여름에 왔을 때도 이 아이만은 유독 주는 돈을 받지 않았다. 그것을 윤희는 아주 기특하게 여겨 머리를 빚어주고 새 옷도 갈아입혀주고 극성을 떨었다. 하지만 만약 그 돈을 윤희가 주었어도 그랬을까.

“그래, 그동안 많이 컸구나. 이름이 뭐라고 그랬지?”

준우는 과자라도 조금 사올 걸, 후회했다. 돈을 주자니 또 안 받을 게 뻔했다.

“미영이에요. 이미영.”

“이름이 참 이쁘구나.”

그가 몇 번 머리를 끄덕거려 주자 미영이 씩 웃었다.

“엄마가 지어 주었어요. 원장 스님 엄마가요.”

“그래, 원장 스님은 안에 계셔?”

금세 선효 스님의 그 개운하게 웃는 얼굴이 눈앞에 떠올랐다. 그는 지금껏 그렇게 차분하고 맑은 여승의 얼굴은 처음 보았다. 나이는 이제 갓 사십을 넘었을까. 하지만 삭발을 한 모습이라 나이보다는 한결 어려 보였다. 깊은 산 속에나 박혀 있어야 할 그런 얼굴이었다.

“네. 계세요. 청암사에 가셨다가 며칠 전에 왔어요.”

청암사靑巖寺는 선효 스님의 본사였다.

“그리고 또 누구랑 있어?”

준우는 미영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밥하는 아줌마요.”

“그래, 미영이는 이다음 크면 뭐가 되고 싶지?”

이 아이들은 여기서 어느 정도 자라 학교 교육을 받은 뒤에는 자기의 의사에 따라 절에 보내지기도 한다고 했다. 그러나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그래서 그것이 언제나 가장 서럽고 축축하다.

그런데 미영은 뜻밖의 말을 했다.

“선생님이요.”

“선생님?”

그는 입을 딱 벌렸다.

“네. 우리 최윤희 선생님 같은, 미술 선생님.”

벌린 입을 닫기도 전에 그 말이 나와 그는 더 크게 입을 벌렸다.

“그런데 이제 그 선생님은 여기 안 오셔요.”

미영이 머리를 쓸쓸히 흔들었다.

준우는 그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지금 안에 원장 스님 혼자 계세요.”

미영이 솜방망이같이 주먹을 쥐고 방문에 조그맣게 노크를 했다. 그들은 어느새 원장실의 문 앞에까지 와 있었다. 방문은 이내 열렸다.

“아니, 장 처사님!”

선효 스님의 입이 금세 함지박만하게 커진다.

준우는 그녀에게 들고 온 선물꾸러미를 내밀었다.

“아니, 웬 고기를 이렇게나 많이……. 이거 아이들이 포식을 하겠군요. 이거, 이럴 거면 날마다 오시라고 해야겠는데요.”

하지만 정작 그녀는 고기 한 점 입에 대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종종 정육점을 기웃거린다. 하기야 자기의 입맛에 맞춰 자식들을 거두는 어머니는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 아이들은 이미 고아가 아닐 터이다. 명화원은 그것이 여느 고아원과 다른 점이다.

“그걸 가지고 많다니요. 아이들이 몇인데요.”

“어디, 아이들이 배 터지게 먹어야 맛이겠습니까. 장 처사님의 마음이 고맙고 큰 거지.”

“그런데, 혜지 스님은 아직도 소식이 없습니까?”

“그래서 지금 그 일 때문에 이렇게 오시라고 집으로 전화를 했던 거예요. 아직도 몸이 불편하실 텐데, 죄송해요.”

준우는 선효 스님이 권하는 대로 먼저 방석을 깔고 앉았다. 그때 언뜻 맞은편 벽에 걸린 ‘世界一花’라는 만공 선사滿空禪師의 글씨가 눈 속에 들어왔다.

“동화병원 현기 거사님 덕분에 좋은 치료를 받아 지금은 많이 좋아졌습니다.”

하지만 그때 그는 오히려 살아 있다는 자체가 고통이었다. 지금도 그 일만 생각하면 하염없이 눈물이 나온다. 그가 입원해 있던 508호 병실은 그 병원에서 가장 중환자들만 모여 있는 곳이었다. 대개 팔다리가 끊어진 끔찍한 환자들이었다. 그 중에는 탄광에서 일하다가 갱이 무너지는 바람에 목이 부러져 목만 살아 있고 그 아래부터는 전혀 감각이 없는 젊은이도 있었다. 그 사람은 온몸을 불로 지져도 모른다. 그 사람을 보면서 그는 그래도 희망이 한결 많다고 수없이 자위해 보기도 했다. 그런 환자들로 한 병실에 8명이 자빠져 있었다.

그 무렵 선효 스님도 한번 병실에 다녀간 적이 있었다. 환자들에게는 때로 문병객들이 영혼의 창구窓口가 되어 주기도 한다. 그래서 가까운 사람이 입원해 있으면 아무리 바쁜 중에라도 한 번씩 시간을 내어 병문안을 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차마 이 스님 앞에서는 절망하는 모습을 보일 수 없어서 그냥 수굿이 위로의 말을 다 듣고 있는 척했을 뿐이다.

“혜지 스님은 그동안 어디에 있는지 통 소식이 없다가 엊그제서야 섬에 있다고 편지가 왔더군요. 아니, 편지가 온 지는 꽤 여러 날이 된 모양이던데, 내가 청암사에 가 있는 바람에 이제야 소식을 전해 주게 되었어요.”

준우는 얼른 만공 선사의 글씨에서 눈을 떼었다.

“섬? 산에 있지 않고 어찌 섬에 있답니까? 그럼 거기에도 절이 있나요?”

그때 부엌일 하는 아줌마가 차를 끓여 내왔다.

“글쎄요. 건강이 좋지 않아 그곳에서 쉬고 있다더군요.”

선효 스님도 그 맑은 얼굴에 쓴 표정을 지었다.

“어디가 많이 아팠답니까?” 그는 찻잔을 집어 들었다.

“그것도 직접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왜 혜지 스님이 그리도 처사님을 꼭 한번 만나보았으면 하는 걸까요?”

“저를요?”

“아주 중요한 얘기가 있다며 속히 좀 소식을 전해 달라고 신신당부를 하던데,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요?”

뭔가 석연찮다는 듯 선효 스님이 깊은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

준우는 애매한 웃음을 띠었다. 하지만 이제야 그는 혜지 스님이 건강이 좋지 않아 그곳에서 쉬고 있다는 건 한갓 핑계일 뿐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는 잠시 얼굴을 붉히며 어쩔 줄을 모르다가 문득 창 밖으로 눈길을 주었다. 거기 눈물이 나게 높고 푸른 하늘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힘주어 눈을 감았다.

“세속 사람들은 결국 이런 것을 사랑이라고 하는 건가요?”

이윽고 그녀가 늦가을 깊은 골짜기에 핀 삐비꽃처럼 바르르 몸을 떨기 시작했다. 그때서야 그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물꼬를 막아놓은 듯 사위는 더없이 적요했다. 이따금 어둠 속에서 옥수수의 이파리가 바람에 서걱이는 소리만이 들려올 뿐 이제 비도 멎은 지 오래였다.

“그럼, 윤희 씨하고도 이런 걸 한 일이 있나요?”

그녀가 다시 중얼거렸다. 그는 마치 침이라도 맞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 소리는 금세 독처럼 그의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이런 것 말고 다른 사랑은 없는 건가요?”

그럼에도 그녀의 두 눈은 맑게 타올랐다.

그 눈을 오래 마주보고 있으면 어디서 은은히 샘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서 그는 마치 어떤 더러운 곳에 있다가 돌아와 깨끗하게 목욕을 하고 나오는 기분이곤 했다.

하지만 끝내 그 눈 끝에서 맑은 이슬방울이 뚝 떨어졌다. 이제부터 그의 귀에는 그녀의 어떤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멀리 군부대 사격장에서 포탄 떨어지는 소리만이 쿵쿵 그의 가슴에 울려오고 있었다.

준우가 맨 처음 혜지를 만나게 된 것은 그해 여름 용두사에서였다. 또한 그 희한하게 숨겨진 한 세상을 구경하게 된 것도 그때 그는 처음이었다.

마치 용의 머리처럼 생긴 터에다 절을 지었다 하여 용두사龍頭寺라고 했다는데, 아닌 게 아니라 금방이라도 하늘을 찌르고 불끈 승천할 듯 장엄하게 솟아오른 산세가 한눈에도 그 위용을 한껏 과시하고 있어 보였다. 그 용의 머리를 피하여 멀리 말들이 달아나는 형상을 하고 있는 산줄기들도 눈에 선하다. 그리하여 그곳에서 언젠가는 그 용처럼 용맹한 도인이 나올 것이라는 전언이 있었다고 한다. 더구나 며칠 뒤에는 그 용두사 창건 이래 처음으로 큰스님을 모셔 와서 크게 법회法會를 열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보통 사람의 몸 두 배가 더 될까 한 주지 스님은 그 그럴 듯한 풍채에 어울리게 언제나 근엄하고 여유 있게 절 도량을 배회하고 있었고, 여남은 명의 비구니 스님들은 그 자비로운 보호 아래 조용히 참선을 하거나 경을 읽고 있었는데, 이따금 공양간에서만 공양주 보살의 볼멘소리가 삐그덕거리며 문 밖으로 새어나오곤 했다. 이번 부목負木은 도대체가 전에 있던 부목 같지가 않아서 공양간 일도 안 도와주고 제멋대로 하고 싶은 일만을 골라서 한다는 투정이었다.

하지만 그 늙은 불목하니는 그러거나 말거나 푸른 산빛에 우두커니 넋을 놓고 바보처럼 서 있는 것이어서 준우는 참 안쓰러워 못 볼 지경이었다. 오죽하면 그 나이에 이런 절간에 기어들어 머슴이나 살고 있을까.

그러는 사이 마침내 그날은 왔다. 1백여 명이 넘는 대중들이 콩나물시루처럼 용두사 큰방을 빽빽이 메우고 있었다. 먼저 용두사 스님들이 상석에 앉고 그 다음은 타사의 스님들, 행자들, 그리고 신도들은 그 뒤에 앉았다.

이윽고 가슴을 조마조마하게 죄며 기다리던 큰스님이 가사 장삼을 곱게 수하고 큰방 문에 들어서고 있었다. 과연 큰스님의 얼굴은 복숭아꽃처럼 아름다웠다. 하지만 아직 육십대 초반밖에 안 된 정정한 나이였는데 옆에서 시자侍者가 조심스레 부축을 하고 있었다. 큰스님이 법상法床에 올라 고요히 좌정하자 젊은 스님 두 사람이 나와서 삼배를 올렸다.

전 대중의 눈길이 빈틈없이 우러러보는 가운데 법상에 앉은 큰스님은 주장자를 높이 잡고 잠시 양구良久하고 있다가 어느 순간 주장자를 들어 법상을 쿵, 내리쳤다. 그러고 나서 방안을 천천히 한 바퀴 둘러보더니 입을 열었다.

“옛날 경허 큰스님이 청양 장곡사長谷寺에서 지내시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경허 스님이 술을 잘 드신다는 소문을 듣고 인근 마을 사람들이 술과 여러 가지 안주를 정성껏 마련해 가지고 와서 큰스님께 바쳤습니다. 마을 선비들과 술자리가 무르익은 뒤 옆에 앉아 있던 만공 스님이 큰스님의 법문을 듣고자 넌지시 한 말씀 여쭈어 보았지요.

‘스님, 저는 혹 술이 있으면 들기도 하고, 없으면 안 듭니다. 이런 안주도 굳이 먹으려고도 하지 않고, 또 생기면 굳이 안 먹으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스님께서는…….’

할 때 경허 큰스님이 제자의 말을 끊으며 대꾸하기를,”

큰스님이 가만히 한번 그 복숭아꽃처럼 아름다운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어린애처럼 더없이 천진스러운 모습이었다.

“대꾸하기를 ‘허어, 자네는 벌써 그런 무애경계에 이르렀는가? 나는 그렇지를 못하여 술이 먹고 싶으면 제일 좋은 밀씨를 구해다가 밭을 갈아 김을 매고 알뜰히 가꾸어 밀을 베어 떨어서 누룩을 만들어 술을 빚고 걸러 이렇게 꼭 먹어야 하겠네.’ 하였습니다.

이 말씀에 만공 스님은 등에서 땀이 나면서도 오싹해지고 정신이 아찔하며, 자기의 견해가 너무 얕고, 큰스님의 경지는 하늘같이 높아서 상대가 아님을 알고 큰스님의 무애역행하시는 도리를 깊이 깨달았다고 합니다. 이 얼마나 진실되고 거룩한 생각입니까. 그러므로 도를 닦는 사람에게는 털끝만큼이라도 거짓이 있어서는 아니 됩니다. 오직 진실한 마음만이 도를 이룹니다. 그럼, 그 도를 이루면 거기 과연 무엇이 있겠는가?”

그때 시자가 찻쟁반을 들고 와서 소리 안 나게 법상 앞에 차를 내려놓았다. 법문 중에 목이 마르면 언제든지 드실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라고 한다. 법문하는 큰스님에 따라서는 간혹 술을 대접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대중들은 여전히 공손한 시선으로 팽팽하게 큰스님을 주목하고 있었다.

찻잔을 들어 차를 한 모금 후룩 마시고 나서 큰스님은 촉촉하게 웃었다. 준우는 여태 말만 들었지, 도인의 모습을 직접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큰스님의 목소리가 다시 차분하게 가라앉고 있었다.

“아미타불의 국토가 있지요. 이르는 곳마다 보배와 연꽃이 피어 있고, 지지 않으며, 모든 일이 원만 구족하여 즐거움만 있고 괴로움은 없는 자유롭고 안락한 세계입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구나! 그래서 그 불국토佛國土에 가기 위해 화두를 들고 참선을 하는 것이지요. 아시겠습니까? 그래서 종정 스님은 ‘돈오돈수頓悟頓修’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돈오돈수라! 이 얼마나 장쾌한 말씀입니까? 종정 스님은 단박에 깨치고 단박에 닦아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견성이 곧 성불인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다들. 다시 말해서, 깨달으면 바로 부처가 된다는 것이지요.”

마치 큰 바위 하나가 호수 밑으로 끝없이 가라앉는 듯했고, 대중은 계속 주의를 집중하여 큰스님의 법문을 한 마디도 빠뜨리지 않고 잘들 듣고 있었다. 그러므로 1백여 명의 운집 가운데 기침소리 하나 들리지 않고 있었다. 숨도 크게 내쉬지 않았다. 오직 법문의 핵심을 파악하기에 여념이 없는 표정들이었다. 다만 벽에 걸린 괘종시계의 추소리만이 쉬지 않고 시간은 흐르고 있음을 알려줄 뿐이었다. 참으로 진풍경이었다.

그런데 그때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다시 천천히 장내를 둘러보던 큰스님이 느닷없이 주장자를 번쩍 들어올렸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입니까? 주장자라 하면 이변理邊을 등졌으니 삼십방三十棒이요, 주장자가 아니라고 해도 사변事邊을 등졌으니 삼십방을 맞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을 무엇이라 해야 옳겠습니까?”

갑자기 대중을 향해 다그쳐 묻는 소리에 대중은 움찔 몸들을 떨었다. 그러나 누구 하나 입을 열어 말하는 이가 없었다. 아무 대답이 없이 그저 좌중은 쥐 죽은 듯이 고요하기만 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큰스님은 다시 주장자를 치켜들고 대중을 향해 다그쳤다. 그래도 대중은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꿀 먹은 벙어리였다. 그저 멍청히 넋 놓고 앉아 큰스님의 얼굴만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도무지 오리무중五里霧中이었다. 큰스님은 그리고 그 안개 속의 섬이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맨 하판 말석에 준우와 같이 나란히 앉아 있던 불목하니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외람되게도

“이것은 아시는가?”

하고, 들고 있던 쥘부채를 들이밀었다. 그러자 일순 법상에 앉아 있는 큰스님의 얼굴에 적막하게 냉기가 돌았다. 장내에는 뜻 아니 한 긴장감이 팽팽하게 고조되고 있었다.

그렇게 잠시 숨 막히는 시간이 흐르고 있는데도 그러나 큰스님은 아무 말이 없었다. 이번에는 그야말로 큰스님이 오히려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기세 좋게 대중을 향해 다그치던 큰스님이 아니었는가. 그런데 갑자기 오줌이라도 지린 얼굴이었다.

부목이 다시 한 번 다그쳤다.

“아는가, 모르는가?”

그래도 큰스님은 여전히 오줌을 지린 얼굴로 멍하게 법상에 앉아 전전긍긍하고 있을 뿐이었다.

늙은 불목하니의 관자놀이에 퍼런 힘줄이 솟았다.

<?xml:namespace prefix = v ns = "urn:schemas-microsoft-com:vml"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알면 안다 하고, 모르면 모른다 하라!”

 

강인봉∙姜印峰. 1949년 전북 김제 출생. 1970년 원광대 국문과 재학시절 불교에 입문, 그해 첫시집 수덕사의 쇠북소리를 발간하였고, 견성見性을 하였으며, 1984년에는 혜암 선사로부터 전법게傳法偈를 이어 받았음. 1979년 ≪한국문학≫ 1백만원 고료 신인상 당선. 1989년 ≪문학정신≫ 제1회 1천만원 고료 소설문학상 수상. 장편소설 구나의 먼 바다(전3권), 다시 에덴에서, 불의 침묵. 시집 첫사랑, 간월도. 산문집 풀, 누가 부처를 보았다 하는가. 혜암 선사의 법어를 편역한 법어집 늙은 원숭이 등을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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