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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호(여름)한시산책 3/서경희|평이함 속의 진수를 보여준 백낙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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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6,107회 작성일 14-06-06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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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산책 3

서경희|평이함 속의 진수를 보여준 백낙천

 

 

 

20대 중반 대학의 조교로 근무하며 대학원 과정 학생이었던 나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한 여고에서 정교사 자격증이 있는 교사를 급히 구한다는 것이었다. 성대 교수로 계시던 고 김구용 시인이 근무했던 곳이라고 밝히며, 다급한 상황이니 적임자가 없으면 본인이라도 와달라고 간청하였다. 결국 시간강사 조건으로 그 제안을 수락하고 며칠 근무해 보니, 정규직 아닌 프리랜서라는 점은 좋았지만, 수업시간에 딴 짓하는 학생 때문에 심기가 불편했다. 책상 건너편에 앉은 노련한 수학 선생님께 호소했더니, 노하우를 알려 주셨다. 강의에 열정적인 학생의 눈빛을 보며 수업을 하되, 여타 학생에 대해서도 교육적인 시선을 간간이 보내라는 것.

학생들의 성적을 단시간에 끌어 올리려던 내 조급함은 결혼 후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도 드러났다. 나를 괴롭혔던 미숙한 혁신에의 열망. 서울, 미국, 지방에서 다양한 인간관계를 거치며 나는 비로소 터득했다. 주어진 일을 천명天命으로 받아들이되, 교육은 길게 보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시는 사물에 대한 탄성이고, 아픔에 대한 절규이고, 인생에 대한 성찰이다. 거기에 하나를 덧붙인다면 일상을 통한 깨달음이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많은 사람의 입에 회자되는 시가 있지만, 당대에 인기를 누린 당나라 4대 시인은 단연 이백李白(701~762), 두보杜甫(712~770), 한유韓愈(768~824), 백거이白居易(772~846)이다.

 

백거이의 자는 낙천樂天이고, 향산거사香山居士는 향산사에서 수행하던 만년의 자호이다. 그는 6세에 이미 시를 배우고 20세에는 독서에 온 힘을 쏟아 29세에 진사가 되었으며, 관직에 나아가서는 지방의 서민들을 위해 공무를 잘 수행하였다. 항주자사杭州刺史 시절 서호 주변에 쌓은 제방을 백제白堤라고 하는데, 소동파가 쌓은 소제蘇堤와 더불어 지금도 항주에 가면 두 사람의 치적으로 소개된다. 젊은 시절 그는 신악부운동을 벌이고, 시는 사회의 실상을 표현해야하는 것이라는 견해를 주장하며 많은 풍자시를 남겼지만, 은퇴 후 만년에는 불교에 심취하였고 노장사상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그가 당시로서는 드물게 75세까지 장수한 것을 보면 낙천적인 인생관을 견지한 인물이었을 것이다.

 

 

그의 시는 당시삼백수에 6수가 실려 있고, 고문진보전집에는 8수가 수록되어 있다. 당나라 현종과 양귀비의 로맨스를 다룬 장한가長恨歌는 장편 7언고시로서 퇴계선생의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마지막 몇 구절에 나오는 ‘비익조比翼鳥’ ‘연리지連理枝’는 지금도 사랑을 말하는 이들의 입에 회자되고 있다. 당시 일반인과 어린이도 그의 시를 외우고 다녔으며, 신라인들도 그의 시를 구하기 위해 금을 아끼지 않았다고 하니, 그의 시가 얼마나 인기였는지 말해준다. 소동파는 백낙천의 시를 ‘속’이라고 비평했는데, 그의 시상은 고상한 품격을 드러내기 보다는 대중적이고 통속적이었으며, 시어는 평이했다.

 

다음에 소개하는 시는 백낙천이 항주자사로 좌천되어 가는 길에 상산商山을 지나며 읊은 시로서, 제목은 「상산로유감商山路有感」이다. 상산은 중국 섬서성陝西省에 있는 산으로, 진나라 말기에 네 사람의 은둔자四皓가 머물게 되어 더욱 유명해진 곳이다.

 

만 리 길에 오래도록 있었으나

육년 만에 비로소 돌아 왔네.

지나는 곳에 옛 객관 많았는데

태반은 그 주인이 아니구나.

萬里路長在 六年今始歸

所經多舊館 太半主人非

 

백낙천이 이 시를 지은 때는 822년, 지천명知天命의 나이를 지난 51세이다. 항주자사로 좌천되어 남쪽으로 내려가다가 이곳을 지나며, 6년 전에 조정의 부름을 받고 이 길을 경유했던 일을 회상한다. 당시 두 친구도 이 길을 지나 조정에 나아갔는데, 지금은 홀로 이 길을 지나고 있다. 6년이라는 세월동안 반 이상의 객관 주인이 세상을 떠났거나 이곳을 떠나고 아는 얼굴이 별로 없다.

너무나 평이한 시이지만 시인의 심경이 전해진다. 상산사호商山四皓의 깨끗한 정신이 전해지는 산길을 걸으며 불과 몇 년 전에 그 곳을 지나던 친구와 객관 주인들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세월이 흐른다는 말이 실감나면서 감흥이 일어나 시를 읊는 시인의 모습이 그려진다.

다음은 「촌야村夜」라는 시이다.

 

서리 맞은 풀 시들고 벌레 우니

마을 남쪽 북쪽에 인적 끊어졌네.

홀로 문밖에 나가 들을 바라보니

달 밝아 우거진 메밀꽃 눈처럼 희네.

霜草茫茫蟲切切 村南村北行人絶

獨出門前望野田 月明莽麥花如雪

<?xml:namespace prefix = v ns = "urn:schemas-microsoft-com:vml"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가을달

 환하게 비추는 밤의 시골 풍경이다. 사립문 밖에서 하얀 메밀꽃 흐드러진 들을 바라보며 풀벌레 소리 듣는 시인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다. 한적한 정취를 읊은 시이다. 젊은 시절의 조급한 혈기는 사라지고, 씨 뿌리면 꽃 피우고 열매 맺을 때까지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본분을 받아들이는 일. 그것을 젊은 시절에 터득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낙천주의자가 아닌 한. 우리 모두 백낙천처럼 느긋하게 기다리며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자.

 

 

서경희∙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연구원, 한성대학교 강사, 카톨릭 대학교 강사, 성균관대학교 강사 역임. 박사논문 삼국유사에 나타난 화엄선의 문학적 형상화, 「영조 어제 해제」, 「열하기행시주」 공역. 현재 재단법인 실시학사 문학팀 정산집 번역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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