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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호(여름)책크리틱/신주철/상처의 응시와 다른 세계의 시작-김주대의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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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5,202회 작성일 14-06-06 14:48

본문

책크리틱

신주철

상처의 응시와 다른 세계의 시작-김주대의 시집

 

 

 

 

많은 사람들이 ‘그리움’을 부둥켜 안고 살아간다. 고향을 떠난 자식이 부모를 그리워하고 부모는 돌아가신 부모를 그리워한다. 어떤 사람은 헤어진 애인을, 또 어떤 사람은 고향 앞바다나 고향의 뒷산을 그리며 산다. 사람으로 태어난 것은 이처럼 ‘그리움’을 숙명적으로 떠안아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어떤 시인들에게 시 쓰기는 바로 영혼이 달려가는 그리움을 감당하기 위한 노래 부르기이기도 하다.

 

영혼은 빛보다 빠른 속도로

그리운 곳으로 간다

 

세계는 꼼짝없이 그리움의 안이다

― 「호모 싸피엔스 싸피엔스」 전문

 

그런데 그리움의 표상 아래 또는 뒤에는 종종 다양한 요소들이 내재해 있는데 동일한 대상을 그리워 할 때도 저변의 요인은 다른 경우가 많다. 쉽게 말하면 부모님을 그리워한다고 할 때 과거에 잘 해드리지 못한 죄송함과 후회로 그리워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현재가 너무 슬프거나 버거워서 피하고 싶은 도피처로써 그리워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시인 김주대가 들려주는 그리움의 노래는 과연 어디에서 비롯하는 것일까. 그리움의 넓이에서 시인이 들려주는 대부분의 노래는 기본적으로 “노래를 부를 겁니다/ 머리를 들고 입을 벌리면 소리의 분자들이 허공에 방출됩니다/ 노래는 바람을 타고 가서 멀리/ 어두운 생을 지고 누운 사람들의 머리맡에서 찰랑거릴 거예요”(「노래 되기」 일부)의 자장 안에 머무른다고 할 수 있다. 시인은 날마다 어두운 생을 힘겹게 영위하는 사람들의 그리움을 자기화 하고 그들의 머리맡에 다다라 함께 하고자 한다.

그것은 시인의 세계관이 투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을 터인데, 시인의 육성이거나 그 가까이에 있을 시적 화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나의 바깥에 있다

 

…중략…

 

나는 나의 바깥이거나 바깥까지이다

나의 몸이 아득하게 넓어질 때

눈물도 밖으로 흘러나와 제 있던 곳으로 돌아간다

나는 나의 오래된 바깥까지이거나 오래된 바깥이다

― 「주체」 일부

 

이 작품의 제목이 ‘주체’라는 점에 주목하면 시적 화자 또는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와 그가 세계와 교섭하는 방식에 접근할 수 있다. 주체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단체나 물건의 주가 되는 부분”, “사물의 작용이나 어떤 행동의 주가 되는 것” 등이다. 또한 우리는 흔히 주체라는 것을 타자들과 분리된 자신만의 고유한 성격이나 자질, 관점과 태도 등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작품의 시적 화자는 ‘나뭇가지 끝 단풍’, ‘길거리에 주저앉아 차갑게 젖은 행려자의 야윈 엉덩이’, ‘종이박스를 잔뜩 싣고 비탈길을 올라가는 노인의 굽은 허리’, ‘노동자가 죽음을 지고 고공에 오를 때’를 언급하면서 그에 동화되는 자신을 ‘주체’라고 한다. 곧 자신의 주체성 또는 존재성이 이웃하고 있는 타자들에게 있거나 그들로부터 비롯하는 것으로 표현한다. 그렇기에 시적 화자는 ‘경비 아저씨, 용접공 김씨, 노숙자, 노동운동가 김진숙’ 등을 주목하고 노래한다.

그렇다고 시인, 시적 화자가 그려내는 사람들의 힘겨움과 그에 기인한 그리움의 출처가 대상화된 사회적 문제 또는 주류로부터 소외된 이들로부터만 유발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가 우선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시적 화자가 고백하듯이 그의 그리움이 ‘상처’에서 왔다는 것이다.

 

바람이 제 살을 찢어 소리를 만들듯

그리운 건 다 상처에서 왔다

― 「출처」 전문

 

김주대 시에서 그리운 것들의 출처로서의 상처는 다양한 양상으로 펼쳐진다. 그것은 “생의 근처 어디에서나 몰려가던 촛불/ 상복 입은 사람들이 든 붉은 깃발은 선명했고/ 근처까지만 갔다가 혼자 살겠다고 돌아와 죗값을 치르듯”(「지도를 찾아서」 일부)에서처럼 어느 때인가 함께 하던 사람들로부터 이탈한 것에 대한 죄의식으로 새겨진 경우가 있다. 그런가 하면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감당하며 새긴 상처들도 다양하다. 그 가운데 특히 애잔한 울림을 주는 것은 딸에 대한 애정과 미안함이다. “나를 똑 닮은 딸이 돈벌이 노래를 부르며 피를 운다”(「영원한 시간」 일부), “하이힐을 버리고 운동화를 신고 새벽까지 일했다. 돈이 없는 불쌍한 아이다.”(「딸」 일부)에서 보이는 바는 다음과 같이도 그려진다.

 

아르바이트 끝나고 새벽에 들어오는 아이의

추운 발소리를 듣는 애비는 잠결에

귀로 운다

― 「부녀」 전문

 

이러한 시적 화자가 현재 자신의 상황을 거듭 되새기게 되는 것은 현재의 상황이 자신의 어린 시절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디만큼 왔을라나」에서 보여준 어린 시절 시적화자가 감당해야 했던 상황은 끔찍하게 무서운 것이었다. 「어머니」, 「아모레 화장품을 기억하십니까」 등의 작품을 볼 때, 시적 화자는 어른이 되어 따뜻한 가정을 꾸미고 아이들을 넉넉하게 돌볼 수 있을 정도의 경제적 여유를 가지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오랜 동안 소망하던 일들이 어긋나고 절대 하고 싶지 않던 상황과 흡사한 경우에 처하는 것은 사람 살이에 흔히 발생하는 일이다. 물론 시인의 작품에서 시적화자가 어린 시절 아버지의 모습을 모방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재 한 가장으로서 가족을 넉넉하게 돌보지 못하는 것에 대한 고뇌, 특히 딸에 대한 미안함 등은 어린 시절의 상처와 조응하면서 아픈 기억들에 대한 그리움을 유발하고 있다.

그렇다고 김주대 시인이 그려주는 시 세계가 자신과 자신의 가족 생활 또는 가족사의 범주를 맴도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의 시는 자신이나 가족에 갇혀 있지 않다. 그리움의 넓이에 그려진 작품들의 특성의 하나는 활달한 역동성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그것이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를 살펴보면 시 세계의 시․공간적 폭이 넓게 펼쳐진 것이 한 이유라고 볼 수 있다. 작품 세계는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은 현재의 생활에서부터 허공을 거쳐 우주의 시공을 가르는 것에 이른다.

「인내천人乃天」에서 시적 화자는 하늘이 자신의 시작임을 밝히며 지금 하늘이 자신을 통과하고 있다고 한다. 그것은 “나의 고대는 내 속으로 사라진 빛/ 나로부터 멀어져 내게로 온 먼 시간에서/ 한 지점으로 수축된 우주다/ 나는 날마다 내 속에서 태초를 발굴한다”(「수축된 우주」 일부)에서처럼 ‘나로부터 내게로 온’ 먼 과거의 현재적 현현으로 귀착되는 것이기도 하다. 시인의 여러 작품은 현재적 존재들을 오랜 시간과 공간의 맥락에서 현현된 것으로 그린다. 이러한 시적 화자의 발언은 우리가 독자적으로 분리된 단순한 존재가 아니고 세계의 다양한 것들과의 교섭과 공감을 통해 여기에 있는 우주적 존재임을 되새기게 한다. 그렇기에 “우리가 숲에서 죽으면 자정이 지나도/ 집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겠다/ …중략…/ 그러면 우리는 십만년 뒤에/ 새소리나 바람 소리로 잎잎이 피어날 것이다”(「숲」 일부)라는 그림이 가능한 것이다.

이상에서 다양한 면모를 가진 작품들을 살펴보았지만『그리움의 넓이』에서 연주된 노래는 주로 사람 살이의 고통에 근거한다고 할 수 있다. 고통이 생활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그것을 외면하거나 그것에 환상을 부여하는 것보다 그것에 직면하고 통찰하는 것이 정직한 시인의 태도일 것이다. 결국 시인이 말을 통해 세계를 그리는 자라는 점을 고려하면 김주대 시인 자신이 그린 다음 작품은 의미심장함을 전해준다. 시적 화자가 언급하듯 ‘상처’로부터 온 그리움들을 한 올 한 올 풀어내기 시작했을 때 다른 세계가 연주되기 시작하고 세계의 색이 바뀌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나와 우리의 슬픔과 외로움과 상처의 고통을 외면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우리는 그것들을 직면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누릴 수 있게 되지 않겠는가.

 

힘겹게 세상으로 나오는 색이 붓을 잡고

아주 다른 세계를 연주하기 시작한다

색 하나가 몸을 빠져나온 이유로 세계의 색이 바뀐다

― 「화가」 일부

 

신주철∙시집『밤새 뒤척이는 뼈』외. 한국외국어대학교 한국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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