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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호(가을호)권두칼럼/고명철|결코 사그라들 수 없는 민주주의를 향한 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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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두칼럼/고명철|결코 사그라들 수 없는 민주주의를 향한 저항
지구촌 곳곳에서 민주주의를 향한 민중의 분노가 들끓고 있다. 몇 년 전 북부아프리카로부터 들불처럼 번져나간 아랍의 민주주의를 향한 민중의 염원과 저항은 현재도 진행 중인 바, 수많은 희생에도 불구하고 시리아의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시리아 민중의 저항을 목도한다. 이 외에도 이집트에서 장기화되고 있는 정치 혼란은, 무바라크의 장기 독재에 종지부를 찍고 출범한 무함마드 무르시의 정부가 또 다시 이집트를 반민주주의로 회귀시키려는 정치에 대한 저항의 측면과 아울러 무르시 정부를 옹호하는 측의 갈등이 격화되는 가운데 이집트의 민주주의를 향한 험난함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터키 민중의 반정부 시위는 표면상 탁심 광장을 무차별적으로 개발하려는 것에 대한 터키 민중의 분노가 점화된 것이지만, 기실 이 분노의 밑자리에는 터키 민중과 민주주의적 소통이 부재한 가운데 국가권력의 일방통행식 개발주의에 대한 터키 민중의 민주주의를 향한 저항이 함의돼 있다. 그런가 하면, 브라질 민중의 반정부 시위는 정치 부패로 인한 물가상승과 이른바 사커노믹스soccernomics에 치우친 브라질 경제의 구조적 문제 등이 복합적 요인으로 작동하는 과정에서 퇴행하고 있는 브라질 민주주의를 향한 브라질 민중의 저항을 보여준다.
기실, 이러한 민중의 분노는 한국사회에서도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 생태위기와 생존권의 심각한 위기, 북한의 핵실험과 개성공단 폐쇄에서 보여지는 분단체제의 사회적 고통 등 한국사회의 민중이 직면한 산적한 문제들은 지구촌의 문제들과 밀접히 연동된 가운데 민중의 분노로 드러나고 있다. 무엇보다도 지난 대선에서 국정원의 조직적 개입 여부를 둘러싼 정치권의 진실 공방을 지켜보면서 한국사회의 민중은 참담함과 자괴감을 넘어 분노하고 있다. 우리가 어떻게 쟁취한 민주주의인데, 대통령의 직속 기관인 국정원이 민의民意가 정상적으로 반영되어야 하는, 민주주의의 가장 기초적이면서 중요한 제도적 기반인 선거 과정에 개입할 수 있단 말인가.
민주주의를 제도적으로 정착시키고, 민주주의의 소중한 가치를 일상화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것이라면, 이것에 대한 철저한 원인 분석을 통해 걸림돌을 제거해야 한다.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시민들은 욕망한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그 어떠한 반민주주의 세력을 조금이라도 용납해서는 안 되며, 여기에는 한국사회에서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는 정치경제적 기득권의 부정부패에 대한 준열한 심판이 반드시 수행되어야 한다는, 말 그대로 민주주의를 향한 민주시민의 순정한 욕망이 자리하고 있다.
국정원 사태와 관련하여, 우리는 뚜렷이 기억하고 있다. 국정원의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이른바 안기부)가 무소불위의 초법적 국가기관의 권력을 통해 국민의 일상을 감시하고 억압적으로 통제하면서 한국 민주주의는 퇴행하였다. 안기부의 이 숱한 반민주주의적 만행들이 한국 현대사에서 씻을 수 없는 오욕으로 각인돼 있다는 것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최근 국정원 사태에 대해 양심적 민주시민들이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것은 한국 현대사에서 암울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안기부의 망령이 다시 되살아나고 있다는(혹은 되살아날 수 있다는) 징후를 목도하기 때문이다. 역사를 퇴보시킬 수는 없다. 지난 MB정부에서 내걸었던 경제성장주의는 우리가 그동안 소중하게 일궈온 민주주의의 대지를 또 다시 척박하게 분탕질한 바, 무한경쟁주의의 사회분위기 속에서 시쳇말로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식의 적자생존 정글의 법칙을 우리의 삶 속으로 내면화시키는 과정 속에서 민주주의의 가치가 심각히 훼손되고 있다. 그 단적인 사건으로 표면화된 게 바로 작금의 국정원 사태다.
대다수의 민주시민들은 절실히 갈망한다. 현 박근혜 정부가 진정성을 갖고 한국사회의 민주주의를 퇴행시키는 게 아니라 좀 더 진취적으로 나아갈 수 있기 위해서는, 지난 대선 과정에서 어떠한 형태이든지 개입한 국정원 사태의 진실을 투명하게 규명함으로써 그 책임자의 처벌은 물론, 다시는 한국 민주주의에 어떠한 형태로든지 국가기관이 개입할 수 없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철저히 마련해야 한다. 따라서 누가 보더라도 합리적으로 납득할 만한 진실 규명이 있어야 하고, 국정원의 철저한 제도적 개혁이 보증되지 않는 한 박근혜 정부를 향한 대다수 민주시민들의 분노와 문제제기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만약 이러한 민주시민들의 민주주의를 향한 진심을 현 정부와 여당이 야당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한 정쟁政爭의 차원으로 인식한다면, 번짓수를 잘못 짚어도 여간 잘못 짚은 게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해둘 필요가 있다. 오히려 최근 길거리에서 이어지고 있는 민주시민들의 분노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국정원 사태를 제대로 규명하지 못하는 제도권 정치에 대한 실망과 매서운 비판에 무게중심이 실려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민주주의를 진전시키는 데 여야가 따로 없는 것이다.
그 어느 해보다 지리한 장마와 폭염에 붙들렸던 2013년 여름, 한국의 민주주의는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민주주의를 향한 염원과 결코 동떨어져 있지 않다. 어쩌면, 이제야말로 한국사회는 지난 MB정부에서 혹독하게 치렀던 민주주의의 퇴행에 따라 산적된 문제점들이 우리 눈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박근혜 정부의 민주주의를 향한 진정성과 진실이 국정원 사태를 통해 시험대에 올라있는 만큼 이 사안을 대수롭지 않게 보거나 구렁이 담 넘어 가듯 적당한 차원에서 무마하고 넘어간다면 향후 박근혜 정부를 향한 정치적 불신의 골이 더욱 깊게 패임으로써 향후 국정 운영이 순탄하지 않을 터이다.
박근혜 정부가 국민통합을 무작정 좋은 게 좋은 것 아니냐는 식의 절충과 버무림의 성격으로 파악해서는 곤란하다. 우리가 그동안 피와 땀으로 일궈온 민주주의의 아름다운 가치를 더욱 아름답게 가꿔나가기 위한 크고 작은 노력들을 융화融和시키는 일이 바로 국민통합의 핵심이다. 2013년의 여름을 보내면서 다시 한국 민주주의 위기 앞에 놓인 문학의 존재와 역할을 성찰해본다. 일체의 억압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을 부정하고, 민주주의의 아름다운 가치 그 자체인 문학의 존재를 통해 위기에 직면한 한국 민주주의를 온전히 회복시키는 언어를 더욱 담금질해야 할 시기다. 결코 사그라들 수 없는 민주주의를 향한 저항의 언어가 바로 문학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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