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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호(가을)신작특선/장종권/텃새 외 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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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탄
댓글 0건 조회 3,959회 작성일 14-08-08 11:48

본문

신작특선

장종권

 

 

텃새 외 6편

 

 

텃새들이 사는 숲에는 다른 새들이 둥지를 틀지 못한다. 텃새들은 똘똘 뭉쳐 숲을 지킨다. 하늘을 지키고 땅을 지키고 나무들을 지킨다. 바람을 지키고 이슬을 지키고 공기조차 지킨다. 텃새들의 숲은 그래서 질서가 있다. 텃새들에게는 통솔자가 필요하다. 조직도 필요하고 군대도 필요하고 무기도 필요하다. 잘 훈련된 사냥개도 필요하다. 오염 가능성이 있는 침입자들은 발붙이기 어렵다. 텃새들의 피와 땀으로 숲은 탈 없이 푸르다. 잠시 머물다가는 철새들은 숙박비만 잘 내면 된다. 오염물질을 배설해서도, 위험자들을 유인해서도 안 된다. 텃새들은 대부분 색깔도 비슷하다. 신토불이 탓이다. 색깔이 다른 새들은 숲에 들자마자 노출이 된다. 색깔이 다르니 불러 주어야할 이름도 필요가 없다. 굴러온 돌멩이로 발에 채인다. 그러나 굶을 수는 없다. 아무 데서나 잘 수도 없고 숨을 곳도 마땅치가 않다. 규율 잡힌 숲에 기대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텃새와 철새의 화해란 기본적으로 불가능하다. 철새는 언젠가는 떠나야할 입장이니 그렇다. 텃새가 되려면 천 년을 숲에서 머물러야 한다. 같은 벌레를 잡아먹고 같은 이슬을 마시고 냄새와 색깔과 목소리까지 비슷해져야 한다. 그러나 이것들은 쉽사리 바꾸어지는 것이 아니다. 변화라는 말은 해석이 좀 다르다. 텃새들만의, 텃새들의, 텃새들을 위한, 이 숲이라는 단서가 달려 있다. 역병이나 돌아야 텃새들은 잠시 위험에 빠진다. 역병이 돌면 숲에는 텃새도 사라지고 철새도 사라지고 바람도 사라지고 햇살도 사라지고 이슬도 사라진다. 숲이 통째로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나 잠시일 뿐이다. 텃새들은 워낙 적응력이 높으며 영리하고 강하다. 그래서 텃새도 텃새들의 숲도 영원한 것이 정해진 이치이다.

 

 

 

 

 

숲속의 사냥꾼

 

 

산골짜기 숲속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숲속 사냥꾼들만의 숲이다. 총이 없는 자, 총알이 없는 자는 입산금지, 정부가 발행한 사냥꾼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

 

고기 굽는 냄새가 스멀스멀 굶주린 코를 자극한다. 가뭄이 쓸고 간 빈들에는 발 묶인 허수아비들이 즐비하다. 풍요로운 꿈은 아직도 우주적인 정신의 꽃이다. 빈들을 지나 숲으로 들어간 사냥꾼들의 발자욱만 남아있다.

 

국법으로 금지된 산짐승들의 사냥이 밤낮으로 이어진다. 멧돼지, 노루, 산토끼들의 비명이 지심으로 파고든다. 아무도 들어갈 수 없다. 백성도, 국가도, 숲의 요정까지도 숲속으로 걸어 들어간 자 영원히 숲에서 산다.

 

 

 

 

 

사냥개

 

 

애시당초 태생이 좋은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혈통 관리에 주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혈통이 없는 것은 특별히 더 잔인해진다는 것이다. 전사가 되기 위해 꼬리를 자른다는 것이다. 다른 존재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냥감을 보면 결사적으로 덤빈다는 것이다. 한 번 물면 죽을 때까지 놓지 않는다는 것이다. 먹이를 챙겨주는 주인에게만 충성한다는 것이다. 굶주림이 가장 큰 공포라는 것이다. 주인 외에는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냥 이외에는 할 일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자기 생각이란 썩은 똥 속에 묻어 둔 지 오래라는 것이다. 팔팔해야 먹이라도 얻어먹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배가 고프면 언젠가는 주인을 물기도 한다는 것이다. 쓸모가 없어지면 보신탕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꼬리를 아무리 잘라도 개일 뿐이라는 것이다.

 

 

 

 

 

양날의 칼

 

 

양날의 칼을 보신 적이 있나요. 양날의 칼은 언제부턴가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베어야할 적이 양 방향에 있지는 않기 때문이지요. 양 방향에 적이 있어 양날의 칼이 필요하게 된다면 정말 위태로운 상황인 것이고 세상은 피바다가 되기 십상이지요. 늘 어느 한쪽인가는 반드시 살아남아야 인류가 자신의 존재를 이어가지 않겠습니까. 옳고 그름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무조건 어느 한쪽은 살아남아야 하는 겁니다. 인간은 늘 싸웁니다. 밥만 먹으면 싸웁니다. 터전이 좁으니 절반은 치우자는 거지요. 그래야 인류가 더 오래 버틸 수 있습니다. 반드시 한쪽은 때려눕히자는 것이 목표입니다. 한쪽이 옳다 해서 그게 정말 옳아서이겠습니까. 한쪽이 그르다 해서 그게 정말 틀려서겠습니까. 이도 저도 아닌 사람을 회색분자라 합니다. 회색분자가 평화주의자로 불리지는 않습니다. 회색분자를 무능한 집단으로 몰아도 위험합니다. 회색분자들이 요즘 칼을 간다는 소문이 파다하거든요. 사라진 양날의 칼을 밤새도록 간다는 소문입니다.

 

 

 

 

 

다리가 있는 마을

 

 

어떤 마을이 개천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백여 호 남짓이 사이좋게 갈라져 있었다. 하나 있는 다리를 건너야 교통이 되었다. 어쩐지 해 뜨는 쪽은 부자들이 많았는데 해 지는 쪽이 늘 쌀을 빌러 오곤 했다. 시절이 좋아져서 수도장 공사가 시작되었다. 공사비의 절반은 마을 전체가 부담하는 공사였다. 해 지는 쪽 사람들은 분담할 여유가 없었다. 해 뜨는 쪽 사람들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해 지는 쪽에 혜택을 주자거니 말자거니였다. 해 뜨는 쪽에도 좀 여유롭지 못한 사람들이 있어서 여유로운 사람들이 이들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결국 이들이 먼저 하나둘 마을을 떠나기 시작했고 자금 문제로 끝내 수도장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해 뜨는 쪽 사람들의 천 평 논은 이천 평으로 늘어나서 마음대로 생수를 사다 마실 수 있었으나 해 지는 쪽 사람들은 농약 풀린 개울물이나 마시게 되었다. 떠난 자들은 다시는 고향마을을 바라보지 않았다.

 

 

 

 

 

아닌 말씀

 

 

미국이 전 세계의 돈을 다 긁어갈 것이니 이를 항의하자. 일본이 전 세계의 땅을 다 사들이고 있으니 이를 막아보자. 중국이 전 세계의 철학을 다 가지고 있으니 이를 경계하자. 한국이 항의하고 경계하고 막으면 이 일들이 가능할 것이다.

 

아프리카의 빈민과 죽어가는 어린이들에게 구호품을 보내자. 중동의 사막에 나무를 심고, 아시아의 소수민족에게 독립을 주자. 오지의 비문명인들에게 우리들의 문화와 복지정책을 선물하자. 예의를 아는 민족이 앞장서면 안 될 것이 없다. 다 이루어질 것이다.

 

인간은 평등한 존재이므로 너나할 것 없이 똑같이 부자가 되자. 인간은 위대한 존재이므로 신분의 차이 없이 똑같이 영광을 누리자. 인간은 불멸의 존재이므로 모두가 신처럼 숭배하고 숭배받자. 만물의 영장이 주장하면 안 될 것이 없다. 좋은 이야기는 다 옳다.

 

아무리 땀을 흘려도 뱁새걸음이니 걸음이 큰 네 등을 빌리자. 아무리 피를 흘려도 비좁은 땅이니 많이 가진 네 땅을 나누어 갖자. 아무리 올라가도 허공일 뿐이니 높은 곳에 올라간 네 도움이 필요하다. 사람인 이상 주장하면 안 될 것이 없다. 너나 나나 모두 똑같은 놈이다

 

 

 

 

 

피라미

 

 

피라미들이 막차를 타고 벼랑으로 향한다.

신념을 위해서는 죽어도 좋다는 것이다.

 

물고기가 물고기를 먹고 그 물고기를 물고기가 먹는다.

물고기를 먹는 물고기들을 모조리 끌어내어 참수한다.

새가 새를 잡아먹고 그 새를 새가 잡아먹는다.

새를 잡아먹는 새들을 모조리 끌어내려 날개를 꺾는다.

 

사람은 물고기가 아니어서 물고기를 먹는다.

사람은 새가 아니라서 새를 먹는다.

사람은 물고기를 먹으면서 물고기를 키운다.

사람은 새를 먹으면서 새를 키운다.

 

사람이 사람 위에 서고 그 사람 위에 사람이 선다.

사람 위에 서는 사람들을 모조리 잡아내려 포박한다.

사람이 사람 아래에 서고 그 사람 아래에 사람이 눕는다.

사람 아래 눕는 사람들을 모조리 일으켜 세워 포박한다.

 

시대를 놓친 자들의 거대한 음모이다.

변화를 놓친 자들의 무모한 혁명이다.

부자연이 된 자연의 부자연스러운 얼굴이다.

꿈이 된 현실의 꿈같은 거품이다.

 

 

 

 

시작메모

꽃들은 사라지고

 

꽃들이 바람에 날리겠다. 모진 바람에 견딜 수 없을 만큼 날리겠다. 꽃들은 고개를 들 수가 있을까. 바람을 견디고 다시 아름답게 필 수 있을까. 바람에 다 꺾어지고 나면 무엇으로 꽃을 다시 피울까. 다시는 피지 못하겠다. 한 번 꺾이면 그만이니 어찌 다시 피울 수 있으랴. 봄은 다시 오지 못하겠다. 영원한 겨울이 들판을 가득 메우고 있으면 오려던 봄도 발길을 돌리겠다. 겨울은 좋겠다. 그 강력한 힘으로 세상을 지배하고 있으니 참 좋겠다. 당당하기도 하겠다. 기분이 끝내주기도 하겠다. 모든 꽃들이 고개를 꺾은 들판에 버티고 서서 아, 얼어붙은 땅이어도 끝없이 자랑스럽겠다. 겨울은 색깔도 없다. 겨울을 차지하는 자는 그냥 겨울이 된다. 들판을 차지하는 자 그냥 겨울이 된다. 눈 덮인 들판을 볼수록 깨끗하다. 모든 오염된 것들이 사라진 들판에 이리 떼와 승냥이 떼들이 싸운다. 꽃들은 사라지고. 존재도 없이 사라지고. 그러겠다. 여기저기 폭풍전야의 조촐한 만찬들, 불안한 꽃들이 소곤거린다. 난 몰라. 난 몰라.

 

장종권∙전북 김제 출생. 1985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아산호 가는 길, 꽃이 그냥 꽃인 날에, 개나리꽃이 피었습니다.외. 장편소설 순애. 창작집 자장암의 금개구리. 인천문학상, 성균문학상 수상. 계간 ≪리토피아≫ 주간.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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