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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호(여름)신작시/백인덕/아버지의 철모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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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덕
아버지의 철모 외 1편
함부로 열 수 없는 문 한 짝,
회색 벽 한 가운데 박혀 있다.
십자형으로 그어진
이 빠진 대검 자국,
죄와 구원의 길이 맞물려 흔들린다.
내 군번은 19907677, 아버지는
수도사단 2대 수색중대장 출신, 선임자는
설악동 계곡에서 목이 잘렸다고 했다.
실탄 세 발 남은 권총과
계급이 선연한 철모,
백여 명의 전사통지서와 함께
아버지는 원하지 않는 특진을 했다.
왼쪽 눈썹이 가려진 아버지의 사진을
앨범에서 꺼내 문
한 가운데 마른 침을 발라 붙인다.
맞물려 흔들리는 죄와 구원의 돌기,
나는 어느 쪽으로 더 기울어야 하는가.
회색 벽 한 가운데 박혀 있는
아직도 열 수 없는 문 한 짝.
난경難境 읽는 밤
―균均에게
목 치러 가자,
목 치러 가자.
깃 헤진 마음 천리를 가면,
구월, 태백 지나 지리산까지 골마다
널린 주검, 봉우리마다 맺힌 피 안개.
등 펴고 구름 산算할 자리,
쪼그려 똥이라도 쌀 데
더는 없으리,
더는 없으리.
억조창생億兆蒼生 죄가 많아,
억조창생億兆蒼生 죄가 많아,
벌써 찬장에 독주毒酒가 떨어졌나, 빈 것 같은
술병을 끌어 모아 한 잔의 불을 완성하는 새벽,
―“어떤 혁명도 순전히 개인적인 독창성의 결과는 아니다
그런 독창성이 얻을 수 있는 최대치는 광기이다. 광기는
자아에 구속된 혁명적 자유이다”-존. 버거
타는 목으로 뒤란 대숲을 서성인다.
그만 책장을 덮자,
무릎 위 장검 빼어들고 개 한 놈 치자,
서럽지 못해 휘두르는 칼날엔
쓰윽, 보리 싹 떨어지는 소리,
제 목이나 다시 질끈 동여매자.
백인덕∙1991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오래된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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